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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아이고! 충한샘이 저를 대신해, 제가 할 수 없는 답변을 해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저도 약속을 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차원의 답을 시도해 볼게요. 

 

우선 첫번째 질문인 '신속함과 신중함은 대립하는 개념인가'에 대해 말해보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철학은 기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거나 혹은 상투적으로 사용되어 화석화된 개념들을 독창적으로 사용해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여는 것에 다름 아니죠.

그러므로  통상적인 이해에서 대립하지 않던 개념들도 얼마든지 대립항으로 정립할 수 있고, 역으로 기존의 용법에서 대립적인 개념들도 같은 계열로서 다룰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문제는 어떤 개념들의 대립이 가능하냐 아니냐 보다는, 그러한 사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일일 것입니다. 

 

사실 '신중함/신속함'은 데리다가 정의의 모순적 조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제 글의 6번과 7번)을 제가 간명하게 줄인 개념들입니다.

즉 정의의 판단에는, 판단자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것이 바로 타자이죠)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측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함은 실행됨으로써만 확보되므로, 당장 판단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긴급성이라는 측면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신중과 신속이라는 두 측면은 정확히 상반되지만,

그러나 어느 한 쪽을 생략해서도 안 되는, 결국은 하나가 되어야 할,

정의에 대한 결정의 두 축이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도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현수샘이 '저에게는 선생님의 판단이 신속하면 신중하지 못하고, 신중하면 신속하지 못한 것처럼 읽히는데요.'라고 위에서 말했을 때,

그것은 오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정확히 그 반대의 것, 즉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와 관련되어 있는 더 심각한 오독은, 제가 신속을 성폭력을 인정한다는 쪽으로, 신중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대응시켰다고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제 생각입니다.

신속과 신중의 문제는, 성폭력 인정의 여부에서부터 징계의 수준을 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편과 다른 편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의 이들의 마음 속에, 다른 높낮이와 경중으로, 들어 있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의를 판단하는 일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특히 이번 일에서 모든 대화와 타협과 합의와 결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controversial) 것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매우 어렵더라도 서로의 판단의 차이를 인정하고 좁혀나가는 대화가 지속되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것만이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정의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서는 일이니까요. (현수샘 역시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때 정의란 결코 미리 정해놓은 것이 될 수 없고, 아무런 '이미지 없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현수샘은 회원탈퇴 이전에 이미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말하셨지만, 그 협상의 단절이 바로 이런 미리 정해 놓은 생각과 결론에서 결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느 쪽에서 왔든지 말이죠. 아마도 벽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믿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어 놓는다면, 대화는 끊겼다가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 때 우리의 차이는 그렇게 크게 보이지도 않으며, 그렇게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결별과 분열이라는 것이 너무 근시안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과거가 된 시간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가올 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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