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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선생님께 드리는 한 가지 질문.

 

안녕하세요. 김충한입니다. 수유너머104 회원이고 수학세미나, 시몽동세미나, 토요일 청년인문지능 튜터를 맡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저는 성폭력이라고 판단했습니다만, 5년의 징계에 대해서는 과하다는 입장을 4차 회의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이하에 적힌 내용은 모두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남아 있는 회원들의 의견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ㅎㅎ 선생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그 전에 ㅎㅎ 선생님께 싫은 소리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글 내용을 보면 전반적인 회의 방식이 ‘중년’ ‘엘리트’ ‘남성’들의 독단적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서술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강하게 비판할 때는 적어도 이 사건과 관련한 회의에 한 번이라도 오시고 말씀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회의에 나오지 않았어도 문제를 제기할 권리는 있고 또 회의록을 보면 그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정도’라는 점입니다.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는 어조, 표정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은 수식어들을 쓰실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좀 더 신중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3차에 걸친 회의 과정에서 그분들은 미투운동의 의의며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조근조근” 설명해주고, 극단의 의견들 사이에서도 “신중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늙고’ ‘후진’ 젠더감수성을 지닌 우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습니다”

 

싫은 소리는 여기까지고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생님 글 1번 [우리 ‘안’의 폭력과 책임에 대한 인정의 실패]과 6번 [차이들을 압도하는 주인담론의 독단적 지배]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1번의 주장은 [가해자의 가해자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고 이는 탈퇴회원들의 성명서의 2번 요구 [가해자의 ‘가해자성’에 대한 인정]과 일치합니다. 헌데 6번에서 [만약 연구실이 모든 차이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소통되는 공간이었다면, 공동체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미투 선언을 지지하는 쪽으로 수렴되어 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번에서 가해자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주장은, 성폭력인지 여부 자체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는 주장입니다. ‘일단’ 성폭력임을 모두가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얘기입니다. 헌데 6번에서는 ‘모든 차이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소통’했더라면, ‘미투선언을 지지하는 것’으로 결론 났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차이’에는 성폭력인지 여부에 대한 각자의 의견차이는 포함되지 않는 건가요?

 

저는 1번의 주장과 6번의 주장이 충돌한다고 생각합니다. 1번의 주장은 성폭력 여부 자체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논의에 부치지 말자’는 주장이고 6번은 그것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논의하자’는 주장 아닙니까.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줄 수 있었던 여러 친구들]의 주도하에.

 

아래의 글에서 김현수 선생님은 성폭력인지 그 여부 자체를 논쟁하기를 거부하는, 수유너머 회의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탈퇴의 변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해자의 ‘가해자성’에 대해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탈퇴회원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저한테는 하나의 미스터리인데, 똑같은 미스터리가 ㅎㅎ 선생님 1번 주장과 6번 주장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만일 선생님의 본심이 6번일 경우. 아래의 글에 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1번이라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전제된 상황에서’,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주장이 합당한지요?

 

탈퇴한 어떤 회원이 남긴 글을 보면 사회는 가해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행위가 인정된다면 성폭력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으면 성폭력인 것이 사회적 흐름인데, 이 사회적 흐름에도 못 따라가는 것이 수유너머104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회원이 말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소한 국가는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이 성립할 수는 없다.] 대법원 2005두6461 판결

 

물론 “성폭력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관점을 담지하고 있는 ‘법’의 언어들”을 우리가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헌데 여성학자들의 글을 읽어봐도 위의 회원이 주장하는 그런 사회적 흐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외려 반대의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하는 데에 기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말들이 나와야 하고, 그것이 성폭력을 개인화/ 사사화하지 않고 공동체의 공적/공동적 문제로 다룰 수 있는 출발점이다.] 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p.31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뜻대로 모든 것을 규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아님에도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접수하는 순간 진상조사위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 사건은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되고 처리된다.] 성화[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같은 곳, p.105

 

[조리돌림과 입막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쉬워 보이지만 가장 무능해지는 접근이다.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강력한 강간 문화가 현존하고 있고 이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통념 자체가 아예 드러나지도 않는다면 부딪혀서 변화가 만들어질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이 '갈등'을 모두 가해/피해라는 범주로 넣을 필요는 없다.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키워지지 않으면 문제는 그냥 반복될 뿐이다.] 권김현영(한국성폭력상담소),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p.52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피해자 중심주의는 ①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 전체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고, ② 처벌의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며, ③ 경험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주장하는 개념도 아니다] 같은 저자, p.53

 

[가해자의 책임을 확인하고 공동체 징계를 촉구하는 개별사건 해결절차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실관계 확인이나 사건의 맥락에 대한 판단을 중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함.] 장임다혜(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같은 책, p.70

 

[여성주의는, 이제까지 이야기의 객관성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거꾸로 여성의 경험이 객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기존의 객관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객관성을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정희진(서강대 강사), 같은 책, p.101

 

[‘2차가해’가 일종의 “금언령”으로 수용됨으로써 해당 공동체로 하여금 “조직적인 토론과 성찰을 중지”하게 하는 침묵의 알리바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 오혜진, 같은 책, p.140

 

여기에 인용된 여성학자들은 오히려 [논쟁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 사건에 대한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피해자의 의사 하나만으로 가해자를 피해자가 원하는 수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여성학자가 2018년인 지금도 있을까요?

 

여성학에 무지한 이과생이 이번 사건을 겪으며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ㅎㅎ 선생님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전회원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왜 논쟁없이 ‘가해자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라는, 여성학자들도 하지 않는 얘기를 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ㅎㅎ 선생님 글 1번에 담겨있습니다.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것이 크든 작든, 폭력을 행사한 것이 바로 ‘나’라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해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가해자성]을 인정할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우리 생활에 강하게 스며있던 일상의 폭력들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입니다. [우리 안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나도 가해자다”라고 선언하는 것. 이에 ㅎㅎ 선생님은 동참하시겠죠?

 

그러면 ㅎㅎ선생님을 외부공지에 가해자로 포함시키고, 앞으로 5년간 연구실 출입금지시키는 징계를 내려도 되겠습니까? 본인도 가해자라고 인정하셨다면, 징계도 받으셔야죠. 혹은 연구실 회원 모두가 가해자이니 연구실은 5년간 문을 닫아야겠지요. 혹시 선생님은 징계는 받을 생각이 없고, 그저 “나도 가해자다“라고 외치시는 건가요?

 

제 주장이 어떻습니까. 황당하지 않습니까. “나도 가해자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이 사건을 우리가 성폭력으로 의미화하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공동체 문화를 더 나은 것으로 바꿔나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뜻인데, 이를 실제 징계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느껴지는 거리감과 황당함. 의미화의 차원과 처벌의 차원을 혼동하는 오류죠. 그렇다면 거꾸로 제명 혹은 5년의 출입금지라는 ‘처벌이 걸려 있는 사안에 있어 가해지목자에게 일단 가해자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의미화의 차원과 처벌의 차원을 혼동하고 있는 오류’가 아닌지요?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말.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가령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한국군이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혹은 한국인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어 배상과 사죄만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건이 지금 우리에게도 지속적 의미가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순간 살인죄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어떻습니까. 이 경우에도 한국군 에게 일단 가해자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또 ”나도 가해자다“라고 선언하실 수 있습니까. 아무리 살인범이라도 자신이 그 당시 얼마나 관여했는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위치였는지 등을 감안해서 처벌의 수위를 ”계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계산을 하는 행위에 대해 뻔뻔하다고, 입 다물고 ‘가해자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요?

 

하물며 지금 우리의 사건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처럼 사실로 굳어져 있지 않아 그 자체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고, 가해지목자에게는 제명에 가까운 출입금지가 징계로 떨어집니다. 이 맥락에서도 논쟁없이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요.

 

어떤 배치, 맥락, 조건에 따라 똑같은 것도 상이한 것이 된다는 명제응 우리는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제명에 가까운 징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해서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말은 저에게 매우 해괴한 것으로 비춰집니다(성희롱이라 판단한 저에게 조차요). 이런 저의 태도가 ‘늙어가는’(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닌) 수유너머에 오래 있다 보니 생긴 ‘후진’ 감수성 때문일까요? 외려 제 눈에는 맥락에 상관없이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ㅎㅎ선생님을 비롯한 탈퇴회원들이 너무나 ‘젊어’(생물학적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보입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전제된 상황에서,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주장이 합당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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