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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글쓴 분이 여러 감정을 억눌러 가며 거듭 언어를 정제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헌데 부러 연구실 내부의 부정적인 분위기를 ‘중년’, ‘남성’ 등으로 수식 한 것은 다소 걸립니다. 물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의 원인을 규정할 때 으레 찾게 되는 것이 가까운 세대적/사회학적/생물학적 정체성이라지만, 실컷 '우리 안의 폭력' 운운의 표현으로 글의 톤을 쌓아가시다가 결국 겨냥하게 되는 것이 '중년', '남성'이라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은유적 차원에서 저런 워딩을 사용하셨다고 부연하셨으나 성차별적 구조의 최종 책임을 기꺼이 저쪽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암묵적인 가정이 뚜렷하여, 부연이 무색하게 의미심장해 보이네요. 최근 몇년간 중년 남성들을 향해 가해져온 이런저런 종류의 성토와 비난들은 확실히 징후적이었으니까요. '꼰대, 눈치 없음, 냄새남, 권위적임, 무식함, 무력한 386, 비루한 성욕, 무반성' 등의 단어들은 그들을 묘사하는 단골 수사였죠. 때론 상징적 수준에서 가장 타자화된 정체성은 중년 남성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코뮨'을 지향해온 연구실 내부에서도 그런 투박한 가정들은 통용되고 있었겠죠. 이 글은 반성폭력 운동을 추동하는 이들의 의식의 기저에 어떤 전제가 들어서 있는지를 은연중에 체현하고 있는 사례로도 읽힙니다. 문제의 열쇠가 정말 늙은 남성들에게 있을까요? 

 

수유너머의 적잖은 구성원들이 피해자 고통의 물질성에 주목하지 않고 '폭력의 경중, 처벌의 수위, 공개의 범위, 단어의 선택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들'에 그쳤다는 점을 사안을 올바르게 다루는 데에서 결정적으로 실패했다는 근거로 드셨습니다만, 사실 성폭력 케이스를 해결 하는 핵심은 폭력의 경중, 처벌 수위, 공개 범위, 단어 선택에 있습니다. 피해자 고통의 물질성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가해자에게 그/녀가 무심코 행했던 행동이 '가해'가 되는 일임을 교육하고, 바로 당신이 남에게 참을 수 없는 위해를 가한 '가해자'라는 점을 선언하는, 언어의 수행적 힘을 적확하게 사용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가해주체가 되기 때문에라도, 언어의 적확하고 비-격정적인 사용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경중, 처벌 수위, 공개 범위, 단어 선택이야말로 성폭력 케이스를 올바르게 해결하고 가해자의 인식에 개입하는 일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해자'라는 워딩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오해의 여지가 있겠으나, 사실상의 내부 공론화 및 징계 처분, 사과문 작성으로 충분히 상쇄되는 요소인 거 같고요. 실질적인 가해자 교육에 해당하는 절차들을 전부 밟게 하고, 징계 처분까지 내린 상황에서 굳이 그 토씨를 잡아 피해자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것이 이 사건에 어떤 기여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성폭력 '가해자'에 따라붙는 사회적 배제 효과와 경중을 따질줄 모르는 그 윤리적 무게를 감안할때, 가해자의 처분 수위를 조절하는 일을 피해자의 요구와 동시에 고려한다는게 어째서 문제적인지 잘 모르겠고요. 피해자-가해자의 인권보장 및 처분 및 지원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제겐 외려 놀랍습니다. 결국 문제적인 사안을 앞에 두고 얼굴을 마주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수차례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아름다운 영혼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떠난 이후 '피해자중심주의'를 논하시는 건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런 식의 글들이 타임라인 상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보면...맥이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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