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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의 변: 수유너머104 표류기(탈출기?)

동동 2018.04.12 02:16 조회 수 : 1916

슈유너머104 표류기

 

 

안녕하세요. 김현수 입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랜 시간 고통을 견디고 계신 피해자분과 피해자께서 수용하실 수 있는 사과문을 올려주신 가해자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저희들이 본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지리멸렬하게 시간을 보내며 상당수의 회원들이 탈퇴까지 하게 되고 급기야 피해사실까지 수유너머 결정 보고문에 적시되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두 분께선 오히려 사과와 수용으로 두 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셨으니 말입니다. 두 분께 큰 상처로 남을 일에 저희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에 죄송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립니다.

 

 

그럼 이제 제 얘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번 미투 운동 처리과정에서 조사위원으로 추천되어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유너머104를 탈퇴했습니다. 저는 탈퇴 이후 더 이상 수유너머의 일에 관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요. 며칠 전 수유너머에서 공개한 결정 보고문을 보고 심사숙고 한 끝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하나는 보고문에 피해자가 고발한 피해 사실이 피해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그 부분이 보고문에서 삭제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정되기 이전에 보고문을 읽은 분들을 통해 공개되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피해사실을 모두 공개한 것도 아닌 선택적으로, 그리고 가해자의 소명과 나란히 서술해놓았지요. 저는 그건 무척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파악한 회원들 사이에서도 여러 요인으로 의견이 갈렸다는 건 이미 아실 텐데요. 그런 문제를 단순화된 몇 줄의 문장을 통해 접하게 될 외부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게다가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생략한 채 피해사실을 보고문에 올린 목적을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정 보고문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탈퇴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같은 시기에 탈퇴한 다른 분들과 뜻을 같이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고문 상에 저와 관계된 내용이 서술되어있기 때문인데요. 그 부분은 이렇습니다.

“4차 회의 이후 성폭력임을 주장하던 회원들 중 일부가 탈퇴를 했고”

위의 문장으로 보면 같은 시기 탈퇴한 제가 성폭력임을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탈퇴한 것으로 읽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그 부분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제가 이렇게 성명서 외에 별개로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도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것은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갈음할까 합니다. 더 궁금한 분께선 댓글로 질문해 주세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저의 탈퇴 사유를 설명하자면 제가 수유너머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래서 얘기가 조금 깁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시다면 처음부터 읽어주시면 좋겠구요.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면, <결정 공지문과 4차 회의>와 <회원 탈퇴> 이후 부분을 먼저 읽어주시고, 다음에 시간 내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차 회의>

저는 지난 2월 중순부터 수유너머104의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회원가입부터 탈퇴까지 체 두 달을 채우지 못했네요. 저의 지인들에게 움직이기 참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저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피해자의 고발이 회원 게시판을 통해 올라오기 2주 전 회원들 회의에 처음 참석했더랬습니다. 그날은 뒤풀이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결과 보고에 나와 있는 대로 3월 5일 피해자의 글이, 다음날 가해자의 사과의 글이 차례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3월 6일 열린 전체 회의에서 가해자의 제명이 결정 되었습니다.

그날의 회의를 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는데요. 짧게 말하자면,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갑론을박이 거듭되다가 어느 분이 피해자의 요구사항이 제명이라는 말을 하자, 그 자리에서 그냥 제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막 회원 활동을 시작하여 두 번째 회의에 참석한 저는 수유너머 회의 분위기를 알 수 없었기에 짧게 의견을 내놓았을 뿐, 회의 진행에 대한 얘기는 미처 할 겨를도 없었지요. 사실 무슨 이런 회의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다음날 두 분의 기존 회원들에게 제 생각을 전하기도 했지요.

 

 

어쨌든 그 다음날, 결과보고에 나와 있는 대로 한 회원의 문제제기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피해자의 고발 내용을 다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저는 조사위원으로 추천되어 조사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회원으로 추천 된 이유는 아마도 신입 회원이라 사건의 당사자와 사적인 친분이 없고, 수유너머가 그 동안 쌓아온 공동체의 문화와도 거리가 있어 외부인의 시선에 가깝게 사건을 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사위원의 역할을 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조사위원의 역할은 결과 보고문에 쓰여 있는 대로 관련사건의 증언을 수집하고, 가해자의 소명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몇 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다보니, 함께 했던 조사위원분들께서 저에게 전체 회원 회의의 진행을 맡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을 하시더군요. 이제 겨우 회원이 된 마당에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전체 회원 회의의 진행을 맡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1차 회의의 분위기를 떠올려보고 회원들의 동의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2차 회의>

3월 13일에 있었던 2차 회의는 냉정함을 유지한 가운데에서 진행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차 회의와는 달리 회의에 참여한 회원들께서 돌아가실 때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핵심 회원 중의 한 분께서는 저를 끌어안기까지 하며 오늘 회의 진행 좋았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셨죠. 하지만 막상 회의 진행을 본 저는 그 회의의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열린 3차 회의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몇몇 분의 요청이 있었지만 고사하기도 했지요. 회의 결과가 저 때문일까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때까진 저 역시 불만족스럽긴 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크게 문제제기를 할 생각은 없었고, 그 결정에 일정부분 동의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1, 2차 회의에서 이러저러한 의견이 오가는 중에도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인식하고 회의가 진행이 되었다고 저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1차 회의에서 제명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쨌든 저의 불만족스러운 점은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제가 착각하고 있었던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으니 이쯤에서 2차 회의는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중간 공지문과 3차 회의>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중이라는 수유너머104의 중간 경과 보고문이 이곳 “소소한 일상”에 공지 되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제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시작됐는데요.

회원 중의 한 분께서 중간 보고문을 작성하고, 공지를 위해 회원들의 동의를 얻으려는 중에 의견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이 크게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차 회의에서 제명을 결정했던 분들 중에 해당 사건을 성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차 회의에서 역시 저의 착각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수유너머104의 결과 보고서의 3차 회의 부분에 나온 것처럼 사건을 바라보는 회원들 간의 의견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분도 계시고, 애매하다는 분도 계시고, 성폭력이 틀림없다는 분도 계시고, 아무튼 얘기 중간에 드러나는 의견들이 그랬습니다. 거기서부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회원을 탈퇴할 때까지 계속 됐습니다.

 

 

저는 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명확해 보이는 문제도 여러 관계가 끼어들면 입장은 달라지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내로남불”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들도 있구요. 하물며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따로 존재하는 문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쉽게 말해, 성폭력이라는 분과 성폭력이 아니라는 분이 나뉜 상황. 저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차분하게 사건에 대한 수유너머 공동체의 입장을 만들어내야 해결이 되겠구나. 그래서 조금 더 당사자의 얘기를 듣고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려 보자는 의견을 냈지만, 그건 오히려 당사자들의 감정싸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부딪쳤지요. 그리고 회의는 바로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징계의 수준을 정해 합의문을 만드는 과정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징계를 논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회의에서 쓰는 표현은 징계가 아닌 피해자 보호를 위한 “분리기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마음 편하게 수유너머를 오갈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수유너머에 출입할 수 없는 자격정지의 처분을 받은 분리기간 말입니다. 저는 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6개월, 1년, 3년, 5년... 아무튼 징계의 기간들을 정하기 위한 말들이 오가는 걸 보면, 모두 성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하는 건지? 그런데 그 기간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다툼을 벌일 때 나오는 말들은 성폭력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징계를 하려고 하는 건지?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사건으로 규정할 것인지 합의를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 기간을 얘기한다는 게 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머리가 지끈거리고 자리에 앉아있기가 곤혹스러웠습니다. 마침 밤늦게 일이 있어 중간에 회의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회의 결과를 전해 들었습니다. 결과 보고문에 나와 있는 대로, 피해자에게 5년의 “분리기간”을 제안했고, 수용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사건이 해결되었음을 홈페이지에 공지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쨌든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지요. (더불어 그 회의에서 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만들어진 고충처리위원회의 세 명의 위원 중에 한 명으로 추천되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4차 회의 직전에 고충처리위원회의 위원으로 추천 된 것에 대해 수락을 잠시 유보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제가 고충처리위원이 된다 한들 누군가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정 보고문과 4차 회의>

그런데 그것 역시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공지문의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가해자라는 표현도, 징계라는 표현도 넣을 수 없었던 공지문에, 5년 이라는 징계 기간도 표현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공지문을 검토하는 중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수유너머에서 발표한 결과 보고문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그런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역시 사건에 대한 공동체의 입장을 먼저 규정하지 않고는 해결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일주일 정도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 4차 회의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고, 동의를 얻어 4월 3일 4차 회의를 갖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유너머104라는 공동체는 피해자가 고발한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은 채, 가해자 없는 피해자를 위해 징계가 아닌 분리기간을 정하느라, 합의는커녕 당사자들에게 고통만 가중시켜왔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그 사건에 대한 공동체의 입장을 정하고, 그 후에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다음 당사자들에게 공동체의 입장이 이러하니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공동체의 입장이라는 기준을 갖고 양측의 요구를 조율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4차 회의에서 양해를 구하고 진행을 보았습니다. 회의를 비공개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 찬반 의견을 듣고 다수결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회의에 참석한 회원들 모두에게 사건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폭력이라 생각하는 회원이 13명,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회원이 11명, 그리고 기권 3명이 나왔습니다. 저는 거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각자 왜 그 사건이 성폭력인지, 또는 성폭력이 아닌지 논의를 해서 공동체의 입장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의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논의는 서로 감정싸움만 일어날 뿐, 공동체의 입장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얘기들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힌 분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합의문을 손봐서 당사자를 설득하자는 쪽으로 회의는 옮겨갔습니다. 합의문에 “가해자”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분리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분리기간을 5년으로 할 거면 “가해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두 가지 조건을 피해자에게 건네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 상태에선 합의문을 만들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성폭력이 아니라는 회원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해자”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해자라는 말을 결정 보고문에 쓴다는 얘긴 공동체가 성폭력임을 인정한다는 뜻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성폭력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힌 회원들에게 가해자라는 표현이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의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제 의견은 벽에 부딪쳐 더 이상 회의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성폭력임을 주장했던 회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합의문을 피해자에게 전달하여 답을 듣자는 의견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로 회의는 끝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있었으나 임시 회의에서 다시 논의를 진행하자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회원 탈퇴>

그 다음날부터 회원 분들의 탈퇴가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4월 6일 임시회의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임시회의가 있기 하루 전 4월 5일 아래와 같은 탈퇴 사유를 회원게시판과 회원단체카톡방에 남기고 회원 탈퇴했습니다.

"수유너머의 운영방식은 제 스타일과는 많이 달라 회원 활동은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중에 강의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면 뵙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탈퇴 이유입니다. 저는 그 사건이 성폭력임을 주장하다 탈퇴한 것이 아니라, 입장의 차이가 크게 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라는 이유 때문에 논쟁을 포기하고 수습하려는 수유너머104의 회의방식에 반대하여 탈퇴한 것입니다.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해자”라는 표현이 결정 보고문에 들어가도 반대하지 않는,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에 반대하여 탈퇴한 것입니다. 논쟁을 멈춘 집단에게 어떤 새로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수유너머104 결정 보고문>

결정 보고문이 올라왔더군요. 보았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더 놀라운 것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결정 보고가 홈페이지 베너나 팝업창이 아닌 “소소한 일상”이라는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아니, “소소한 일상”이라니요. 중간 공지문을 같은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저 역시 동의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결과가 아니니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사위에서나 전체 회의에서나 결과 보고문은 언제나 베너 또는 별도의 팝업창으로 알려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소소한 일상”이라니요. “가해자”가 있는 “성폭력”이 소소한 일상입니까? 지금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 조그맣게 바로가기를 만들어 두었더군요. 하하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보고문 하단에 있던 부분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 연구실이 책임을 지는 방식은 피해자가 요구하는 바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모아,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가해자에게 5년간의 자격정지를 징계조치하였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여전히 이번 사건에 대해 연구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그저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폭력”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 사건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역시나 피해자의 요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연구실은 피해자의 고발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회원 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어 5년간의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부분에서 저는 피해자와 가해자 두 분 모두에게 무척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와 무관하게 말입니다. 바로 위에 연구실이라는 표현을 쓴 게 조금 무색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수유너머104 역시 두 분 모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이렇게 장시간 탈퇴의 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유너머 “소소한 일상”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사람들 참 모질다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니 합니다. 세상엔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그런 글들을 읽는 피해자께서 고통스러워 할 것이 걱정입니다. 어찌 할 방법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좀 짚어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렇습니다. “익명씨”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시는 분의 얘기 입니다. 그 분의 글도 “허허... 참 세상엔 정말 여러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함을 했습니다. 아래의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배가 슬슬 고프네요. 오늘은 파스타를 먹어 볼까요.”

저는 그 대목을 읽다가 단식투쟁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게걸스럽게 짜장면과 피자를 먹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상처의 크기로 따지자면 비교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애정을 갖고 생활하던 공동체에서 상처를 입고 떠나온 사람들에게 글을 쓰면서 어떻게 저런 표현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전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일 거라는 건 그의 글 전체에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지면이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스타 많이 드시길 바랍니다.

 

 

<드리는 말씀>

아마도 결과 보고문을 공지한 후에도 수유너머 내부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오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착각일까요?) 전 과정을 통해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처음부터 성폭력임을 주장하셨다던 분께서 기다려달라고 글을 올리기도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명서에서 요구한 내용을 충분히 담아낸 사과문이 올라오기를 말이죠. 제 기다림이 허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도 지칠 테고, 그냥 포기하고 말겠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냥 지나가게 될 거라고 봅니다. 수유너머는 이번 일을 잊고 과거의 그 즐겁던 시절로 돌아가겠죠. 아마도 상처는 두 당사자만의 문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결정 보고문이 올라온 이후로 관심을 보내 주고 계시는 것을 게시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장의 차이와 상관없이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번 사건이 끝날 때까지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게시판에 좋은 의견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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