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서울 갔을 때
바디우에 대한 책이 나왔길래 하나 사 왔져.
바커의 <바디우, 비판적 입문>
수학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바디우의 수학적 존재론에 계속 눈길이 가는데
<존재와 사건>을 읽을 시간은 없고 해서
쉽게 공부해보겠다고 사 들고와서 부지런히 읽었는데
흙ㅜㅜ 차라리 존재와 시간을 몇 쪽이라도 원문으로 보는게 나을 뻔 했어여.
집합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바디우에 대해 책을 쓸 생각을 했다는 용기가 대단해요.
전에 김상일이란 분이 쓴 <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이란 책 사서
읽다가 열받아서 던져버린 적이 있었져.
러셀의 역설 하나로 모든 집합론을 대신하는 건 그만두고라도
집합론의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쓴 역쉬 놀라운 저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큰 차이가 없네요.
괴델 논문도 인용하며 글을 썼는데, 보르헤스적인 기법이었어요!
가령 다음 문장은 이 양반의 이해를 잘 보여줍니다.
"무한한 다수라고 간주되는 원소들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존재한다는 이념은
칸토어가 설정한 연속체가설의 핵심적 신조다."(148쪽)
'이념'이나 '신조'라는 말은 접어둡시다.
연속체가설이란 자연수의 농도와 실수의 농도 사이에 어떤초한수도 없다는 가설이예요.
이건 무한집합의 일대일대응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일대일대응은 무한집합의 농도를 비교하기 위해 칸토어가 도입한 방법이죠.
이런 방법은 "임의의 두 집합 사이에 선택가능한 대응규칙이 존재한다"는 선택공리를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지요.
연속체가설처럼 선택공리 역시 ZF공리계에서 결정불가능한 명제임을
나중에 코엔이 증명했어요.
여기저기서 주워듣긴 한 거 같은데, 그걸 이처럼 마구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놓곤
그게 연속체가설의 신조라고... 정말 황당데시타.-.-;;
사실 그 이전에도 바디우 주변 얘기, 즉 마오나 알튀세르에 대한 얘기가
잘 아는 사람이 썼다고 보이진 않아서 곤혹스러웠는데
이 역시 틀린 예감이 아니었어요.
가령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서 체계를 빠져나가는 주체가 '오인'에 의해 활성화된다(159쪽)는 말은
완죤 거꾸로 알고 있는 것임은 다 아시겠죠?
오인은 내가 아닌 것, 소외된 거울이미지를 나와 동일시하는 '오인'이고
주체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게 하는 오인인데, 이 양반은 탈주선 타는 주체가 오인에 기인한다고 알고 있나바요.
이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도, 라캉의 상상계 이론도 abc도 모른다는 뜻인데...-.-;;
그리고 들뢰즈/가타리가 국가의 예견-저지 메커니즘에 대해 쓴 것을 들어
국가가 절대적 셈하기 기계라고 주장하면서
국가가 국가의 해체에 아주 가깝게 구성되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펴고 있어요.(159~160쪽)
결국 더는 읽어봐야 득 될 거 하나 없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나니
서용순 씨가 해제에서 바디우가 이 책을 들고 들어와
"원자자와 아주 냉정한 거리를 두고 쓴 책"이라고 했다는 말이 눈에 다시 들어오네요.
이 말은 원자자의 견해와 아주 먼, 사실은 별로 상관이 없는 책이란 뜻이었던 거였던 겁니다. 흐흑
물론 첨부터 알아들었어도, 돈 주고 사서, 애써 일본까지 들고 온 게 아까워
안 읽을 순 없었겠지만...ㅜㅜ
두 권의 책에 들인 시간으로 기냥 <존재와 사건>을 앞부분이라도 읽는 게 나았을 거 같져?
혹시라도 이 책에 다시 속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아까운 시간 더 들여 이렇게 적습니다.
번역자도 고생은 고생대로 했을테니(말도 안되는 내용을 번역해야 햇을테니...)
원망할 수도 없네요.
그래도 바디우에 대해 공부를 열쉬미 했다던데
'아니다' 싶은 생각이 안 들었던 걸까요?
아니면 이미 계약도 했고, 번역도 진행되고 해서
할 수 없이 해야 했던 걸까요?
참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