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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새로운 날 되기 - 영화 <패터슨>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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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매일 출근 준비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시계에서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지점들은 그가 하루라 불리는 단위들을 구성하는 운동의 분절점일 뿐이다. 그는 시를 지으며 버스 출발 대기의 ‘시간’을 이룬다. 시를 짓고 얼마 후면 그의 출발을 알리는 담당자가 인사를 건넨다.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것은 그 ‘순간’인 것이다. 오전 몇 시 정각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사이에도 태어났을 소곤소곤 재잘거리는 언어들을 시로 짓고, 자신의 일신사를 잠시 이야기하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는 패터슨 시의 사람들을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의 곁에서, 침대에서, 도시락을 들고 걷는 거리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 운전석에서, 패터슨 시를 가로지르며 타고 내리는 승객들과의 공간 만들기에서, 퇴근하는 길 집 앞의 기울어진 우체통을 바로 세우는 행위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순간들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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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감독은 주인공 패터슨의 월요일부터 시작하여 매일의 요일별 하루를 유사해 보이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칫 별 차이 나는 것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을 사는 버스운전기사 패터슨을 보여주려는 듯이. 주인공 패터슨은 매일 출퇴근하는 길에서 나란히 앉은 쌍둥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 중 시를 짓고 있는 소녀와의 대화를 마쳐야 했을 때, 그 소녀의 쌍둥이는 엄마와 함께 어느 건물에서 나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 유일하게 쌍둥이 중,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경우이다. 자신은 쌍둥이라고 말한 그 소녀는 비밀 노트에 시를 짓고 있었다. 그 소녀는 패터슨에게 자신이 쓴 시를 읽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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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똑같은 매일이라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보여 지고 여겨지는 것들에 관하여, 짐 자무쉬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 패터슨은 매일 시를 짓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를 적는다. 복사해서 읽힐 수 있도록 하자는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를 미루면서. 그러다 결국 매일 밤 함께 맥주홀까지 산책하는 개 마빈에 의해서 찢겨져 버린다. 소위 말하는 출판되거나 낭송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는 운명이 아님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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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혹은 매주, 개개인의 예술적 행위에 들어가는 시간의 양이 아닌, 그 강밀도는 우리 삶을 어떻게 차이 나는, 유사해 보이고 똑같이 반복하는 것 같은 순간들을 다른 색채들로 윤택하게 해주는 것일까. 주인공 패터슨이 점심시간마다 찾는 폭포와의 조우,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면서 귀 기울이게 되는 승객들의 수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버스의 고장, 늘 예술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아내의 때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예술적 욕망과 요구들에도 너그러운 마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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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패터슨이 시를 짓고, 다른 사람의 시를 들어 주고, 시를 좋아해서 패터슨 시의 폭포 앞에 앉아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행위 등은, 시를 출판하고 판매 부수를 높이고, 유명한 문학상을 받고, 인구에 회자되는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패터슨이 폭포 앞에서 만난, 자신과 유사한, 쌍둥이와도 같은 일본인을 만난 것처럼, 우리는 자신과 닮은 쌍둥이 같은 존재인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예술을 거듭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이런 점에서 시와 서예의 닮은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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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의 아내의 집안 가구들에 그림을 그리고, 컵케잌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기타를 사서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행위 또한 주인공 패터슨의 시짓기와 유사한, 쌍둥이와도 같은 행위이다. 우리 모두의,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듯하지만, 결코 똑같은 것의 반복일 수 없는, 지루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내일의 반복이 아닌 나날이 새로운 순간의 창조는, 바로 매 순간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하는 행위로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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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꽤 시간이 지난 영화 <패터슨>에 관하여 잠결에도 생각이 난 것은, 서예를 한다는 것에 관한, 새로운 강도로 자신을 밀어 붙이는 질문 때문이다. 다양한 서체에 따라 붓을 운용한다는 것이 어떤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익힌다는 것이, 새로운 도전의 과제로서 배운다는 즐거움과 흥분, 해가 뜨면 달려가 붓을 잡고 싶게 하는 매력인 동시에, 연습 과정에서 매번 드러나는 실패와 실수는 현재의 자신의 수준을 명백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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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패터슨의 호흡과 생각, 자신이 감각하는 하루하루의 모든 것들은 시어들로, 시구들로 표현된다. 드러난다. 탄생한다. 배설되어진다. 먹을 적셔 다듬은 붓을 운용하기 위해 선택된 한자와 그 결구들은 도달 가능했던 순간들을 드러내고, 폐지가 되어 사라진다. 반려견 마빈이 찢어 버린 패터슨의 비밀 노트는 폐지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 순간의 예술 행위들이 무엇이 되었단 말인가? 그의 시어들은 그의 신체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고, 그의 매 순간의, 매일이라 불리는 분절된 시간들을 새롭게, 차이 나게 하는 매우 세밀하고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를 충만하게 하는 것들이다. 수북이 쌓여 폐지주머니에 담길 운명의 서예 연습지들에 남은 붓의 흔적에서 떨어져 나와 그 연습의 순간들은 우리의 팔뚝과 신체에 각인되어지고 있다. 당장 그 어떤 작품으로 드러나지 않더라고 그것은 이미 나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과도 같은 것이다. 끊임없이 생사소멸을 거듭함으로서 나와 우리, 세계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처럼, 패터슨의 월요일의 시와 화요일의 시, 우리의 매주 금요일 밤에 써 내려가는 서예는 매우 미세하여 쉽게 그 차이들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 이번 주와 다음 주, 매 순간을 새롭게 하는, 쌍둥이처럼 유사해 보이지만, 시를 짓는 소녀와 시를 짓지 않는 소녀가 매우 다른 사람으로 보이듯이,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패터슨의 비밀 노트가 사라지고, 우리의 서예 연습지가 버려진다 해도, 예술 행위를 하는 그 순간들은 우리로 끊임없이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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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혹은 언젠가 그 행위들이 많은 사람들이 탄복할 작품으로 대우받는 자리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시를 짓고 서예를 하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패터슨이 존경하고 즐겨 읽는 시인들의 시에 빗대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천년 가까이 명성을 이어온 서예가들의 수준에 비교하여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며 그만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어떻게 매번 찾아오는 고비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고 그 예술을 즐기며 살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기꺼이 다시 시를 짓고, 다시 붓을 잡고 다듬는 것이다. 매번 유사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그 순간들을 차이 나게 하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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