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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7월 31일자 미디어 오늘에 실린 건데

다시 여기 옮겨 놓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208

 

링크 누르기 귀찮아 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여기 적어놓습니다.^^;

 

 

‘언론의 자유’의 주어는 누구인가?

 

 

 

일년전쯤이었던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국일보 새로 지은 건물 어때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지었던데...” 하고 물었다. 건축적인 관점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깔끔하게 새로 지은 사옥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새 집 마련해 이사한 사람들처럼 즐거운 일일 거라는 생각에서, 나름 덕담을 한다고 한 거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 건물은 한국일보가 사용하지 않는다 것이다. ‘어? 신문사가 사옥을 새로 지었는데 왜?’ 팔았단다.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한국일보사가 사정이 많이 어려운가 보다 했다. 그때 말하는 분들은 그런 사주의 처분을 비판하기보다는 내게 이해시키려 애쓴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거기선 함께 어려움을 넘어보려는 마음이 보여, 보기 좋았다.

 

올해 6월 한국일보사 회장이 기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용역들을 동원해서 편집국을 폐쇄하는 것을 신문에서 보고 남들보다 더 황당해하며 놀랐던 것은 이전의 이런 일 때문이었을 게다. 그게 아니어도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 아닌가!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의 쫓아내기 위해 용역을 끌어들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근자에까지도 자주 보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가장 유명한 신문 중 하나인데, 이게 웬일인가 했다. 요즘은 자본가들로 그런 식의 ‘구사대’는 잘 동원하지 않는 시절인데 말이다.

 

오늘(7월 30일) 아침 한국일보에서 주필이란 분이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갖는다’는 말이 모호하다면서, ‘신문의 자유’를 그에 대비하곤, 신문의 자유란 소유주인 발행인의 자유를 뜻한다고 주석을 달아놓은 걸 봤다. 이를 ‘기자들의 자유’로 착각해선 안된다면서 편집권의 독립을 군사정권 시절의 무식의 소치로 돌리는 걸 보곤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뭐든지 소유자의 권리로 돌리고, 소유자의 처분권을 절대시하는 게 지금 시대의 시대정신인 듯하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면 언론사를 통해 행해지는 발언은 ‘공중’의 의견인 양 간주되는 ‘여론’이 아니라 사주의 ‘사견’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신문이란 그 사견을 증폭시켜 사람들의 머릿속에 사주의 이익을 주입하는 장치라고 말해야 일관된 거 아닐까? 이런 ‘언론학자’는 자기 언론사의 기자들을 ‘똘마니’처럼 부리며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언론매체를 이용하는 베를루스코니 같은 인물들을 언론학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일보 사주에 대해, 소유주의 처분권을 무시하고 편집국 폐쇄를 중지하라고 한 법원의 판결은 ‘언론학’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판사들의 무지에 기인하는 것이었던 걸까? 소유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가 소유한 신문사를 닫든 말든, 용역을 끌어들이든 깡패를 끌어들이든, 거기다 쓰레기를 퍼날라 쏟아놓든 누가 뭐라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인용한 헌법의 법조문은 정말 이상해 보인다. ‘언론의 자유를 갖는다’는 말의 주어가 ‘모든 국민’ 아닌가! ‘모든 국민’이라니? 아니 언론사를 갖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를 갖는단 말인가! 이는 언론의 자유를 언론사 소유자와 무관한 ‘모든 국민’에게 넘겨주는 것 아닌가? 이는 헌법이 소유권의 신성함을 졸로 보고 있음을 뜻하는 거 아닌가? 언론의 자유가 소유자의 자유가 아니라, 소유자와 무관한 국민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반대로 소유자에게 모든 권리와 자유를 귀속시키는, 저 양반이 ‘모호하다’고 비난한 헌법 문구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유권에 대해 결코 둔감하지 않았을 입법자들이 무식해서 저런 식의 ‘모호한’ 문구를 넣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 그것의 주어는 언론사 사주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다. 언론사 사주를 위한 언론의 자유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자유인가? 그런 거라면 ‘언론의 자유’가 따로 있을 이유가 뭐 있을까? 소유자의 자유는 다른 조항에서 충분히 보장된 것인데.

 

언론의 자유는 소유권에서 자동으로 따라 나온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알다시피 수많은 언론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쟁취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언론사 사주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가령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처럼 언론의 자유가 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언론사 사주는 대개 권력 앞에 고개 숙여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는데 앞장서지 않았던가. 바로 이런 역사가, 언론의 자유란 ‘사주의 자유’보다는 ‘사주로부터 자유’를 뜻하는 것이 되게 했던 것 아닌가! 그런 한에서만 언론은 사견과 무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견’이 아니라 ‘여론’이란 이름을 빌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이란 공중의 의견, 다시 말하면 ‘모든 국민의’ 의견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의견의 주어가 되는 이들이, 언론의 자유의 주어가 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신문기사는 한 명의 기자가 쓰지만, 기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사화되는 사건에 멸려든 사람들과 사실들, 그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 그걸 조사하는 경찰이나 시민단체들, 그리고 쓰여진 기사를 편집하는 이, 그리고 발행에 관여하는 이가 모두 함께 만드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만 그 기사는 ‘여론’이란 이름에 합당한 가치를 갖는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객관적으로’, 즉 이런저런 시각에서 최대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신문기사는 문학작품이 아닌 만큼이나 특정인의 사견이어서도 안된다. 사적인 성격과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모든 국민’을 감히 참칭할 수 있는 그 거리를 아마도 ‘공정성’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6월의 한국일보 사태는 그런 공동의 공간인 신문사 안에 사주가 난입하여 ‘소유권’으로 폐쇄의 장막을 쳐서 사적 공간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따라서 거기서 쫓겨나고 배제된 이들은 단지 기자들만이 아니다. 신문기사가 만들어가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 헌법이 명시한 ‘모든 국민’이, 소유권의 폭력에 의해 배제되고 쫓겨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해고된 적은 없지만 역시 쫓겨난 자의 일인으로서, 사적 공간이 되어버린 신문사 안에 공동의 공간, 공정성의 거리를 다시 밀어놓고 설치하려는 기자들의 시도를, 심지어 그 바깥에서 그 공동의 공간을 만들고 지속하려는 기자들의 고된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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