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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 한국일보 칼럼의 비-축약본입니다.^^


공연에 대한 인상은 그 종결부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하게, 2013년은 그 끝에서 경찰이 주도한 화려한 스펙터클로 기억될 것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민주노총을 급습하여 하루 종일 놀라서 달려온 시민들과 싸우며 건물에 난입했으나
겨냥했던 철도 파업의 ‘주동자’가 한 사람도 없어서, 대신 커피믹스 몇 박스를 ‘체포’해서 들고 나왔던 놀라운 코미디.
덕분에 철도파업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그에 대한 ‘종북’시민들의 열렬한 동조로 확산되었다.

이를 두고 했던 것인지, 코레일에서 알짜배기만 빼서 코레일의 경쟁상대로 독립시켜
‘사유화’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지겨운 통념을 두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건 이후 대통령의 말씀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로 집약되고 반복...되었다.
모든 비정상을 제거하여 정상화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안다. ‘정상’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실제로 답하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결국은 눈에 띄는 비정상을 만들어놓고, ‘비정상이 아닌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비정상이 없다면 정상도 없으며, 정상을 만들려면 비정상부터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가령 ‘미친’ 사람이 없으면 ‘제정신’인 사람도 없다. 무엇이 제정신인지 알려주기 위해
미친 사람들을 따로 모아 가두려는 시도가 수세기 전에 있었음을 푸코의 책은 알려준다.
신체적 정상을 뜻하는 의학적 ‘건강’도 마찬가지다. 그건 병들지 않은 상태, 즉 질병상태의 부정을 통해 정의된다.

하지만 바쁘신 대통령께 이런 깊은 사유를 요구할 순 없는 일이다.
다만 상식 수준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무슨 뜻인지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정상이니, 그에 대해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성을 추구하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비정상을 제거한다는 것은 공공성이나 사회성에 관한 것을 제거하여 ‘정상’인 순수한 이윤추구로 되돌리려는 것일까?
 기업에게 세금은 그런 순수한 사적 이윤에 반하기에, 세금을 가중해선 안되고 오히려 덜어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대학이나 병원 또한 ‘법인(기업!)’이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병원이나 대학이 영리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는 정상화를 가로막는 것이니 제거되어야 하고,
순수 이윤을 추구하는 정상성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철도‘민영화’나 병원의 영리사업 허용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른바 ‘복지’는 자신의 사적인 경쟁력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이 도태되는 ‘정상적인’ 과정을 저지하며
타인의 부에 기대어 생존하는 ‘비정상적’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일 게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이런 부분을 제거하여 없애버리겠다는 것일까? 당선 이후 대통령의 행보나 정책을 보면 그런 것이 틀림없다.

장애인은 어떤가?
그들은 ‘정상인’과 비교되는 생물학적 ‘비정상’이다.
장애인의 생활을 보호하는 조치에 대한 요구는 비정상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면, 그들 역시 정상적인 생존경쟁을 통해 도태되도록 해야 한다.
 500일 넘는 장애인들의 농성에 대해 못들은 척 생까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러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비정상의 정상화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장애인은 10~15%의 통계적 비율로 계속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면, 그런 이들의 생물학적 탄생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
그들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필요하다면 가두고 없애버리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전에 ‘욕을 먹어도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진행했던 나치의 선례가 있으니, 잘 참조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상식의 눈으로 보아도, 관찰력만 조금 있다면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가 대통령의 생각과는 반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정상’은 비정상을 필수적인 전제로 삼고 있다.
가령 기업의 ‘정상적인’ 영리추구는 도로나 철도, 교육 등과 같은 ‘비정상적’ 공공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홍대앞처럼 지대가 끝모르고 오르고 있는 지역에서 건물주들의 ‘정상적인’ 사적 이윤 또한
지하철과 교통, 거기에 모여드는 대중들이라는 ‘비정상성’을 착취하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병원이 그토록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생명이라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적인 생명조차 공통의 문제로 다루려는 관심과 투자라는 ‘비정상성’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몇해전 ‘산업대’에서 일반대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공대가 대부분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하나로 합쳐놓은 ‘인문사회대학’에는 단 3개의 과만이 있다.
거기에 학부학생도 없는 ‘교양학부’는 정말 예외 가운데서도 예외에 속한다.
그래서 전체 문제를 다루는 회의에선 항상 예외와 비정상의 입장을 설득해야 하는 궁색함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비정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 학교가 ‘정상화’될까? 제거할 수도 없겠지만,
제거한다면, 이 학교는 공과대학이나 산업대학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일반대학, ‘정상적인’ 대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역으로 이런 비정상이 정상의 중요한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확대를 지향할 때에만 ‘정상적인’ 대학이 될 것이다.

비정상이 제거된 것을 뜻하는 ‘정상’이란 어디에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 간의 상이한 관계들이다.
비정상은 정상에 달라붙은 찌꺼기나 잔여, 혹은 쓰레기통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역으로 정상이라고 불리는 것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정상성의 근거고 본질이다.

비정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상화하겠다는 발상은,
그런 입장을 ‘교정’이란 말로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도소에서도 결코 성공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비정상의 정상화’란 사실상 사라질 수 없는 비정상에 대한 억압과 핍박을 뜻할 뿐이며,
그런 핍박을 정상성의 본질로 삼는 것을 뜻할 뿐이다.

역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란 비정상이 정상의 불가결한 일부고 그것의 본질임을 통찰하는 것,
그렇기에 그 비정상이 정상상태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
 혹은 정상상태 안에서 안정적으로 지속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말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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