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고고학’은 어떻게 ‘상처입은 코기토’가 됐나?
화제의 책_ 『해석에 대하여』
 
2013년 05월 27일 (월) 16:58:51 교수신문 editor@kyosu.net
 

 

   
하이데거가 1936~4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니체 강의에서 니체 철학을 ‘주체성의 형이상학으로서의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이라고 칭한 이래로, 주체 문제는 서양철학 전체의 관건적인 질문으로 대두했다. 리쾨르는 이러한 철학적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면서 자신의 철학 전체가 이 주체성의 문제, 즉 ‘자기성’(ips'eit'e)의 문제에 겨냥돼 있다고 말년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해 리쾨르는 세 명의 철학자를 ‘혐의의 세 대가들’(trios maitres du souc¸on)로 호명하는데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가 그들이다.

이들은 ‘‘허위’의식을 통해 원초적인 의식 전체를 조망하려는’ 사람들이며, 주체의 문제를 가장 급진적으로 제기한 사람들이다(80쪽). 이들을 살피면서 리쾨르는 그의 현상학적 시기를 벗어나 해석학적 전회를 완성하게 된다. 즉 자아의 초월성을 미리 전제한 상태에서의 철학은 ‘의식의 직접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해석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반성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쾨르에게 주체, 즉 자기성이란 늘 해석의 결과로서 되찾아지는 것이다. 이 저작의 중요성은 진정한 반성철학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해석학적인 길을 리쾨르가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에 놓여 있다.

 
   
반성철학과 주체문제
따라서 이 책은 리쾨르의 주체철학과 해석학이 시작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쾨르는 자신의 주체철학을 곧장 제시하는 방법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가 취한 방법은 대상이 되는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먼저 꼼꼼히 해석하고, 그 안에서 반성철학이 겨냥하는 주체문제로 서서히 다가간다. 이는 리쾨르 해석학의 특유한 성격인데, 그는 이를 ‘우회의 방법’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래서 책의 1권은 자신의 해석학이 가지는 함축을 에둘러 설명하며, 이것이 프로이트와 어떤 접점을 형성하는지 조심스럽게 밝혀 나간다. 2권은 본격적으로 프로이트를 해석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리쾨르는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자제하고 프로이트 텍스트 자체의 의미와 상징을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 따라 이 부분은 매우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라캉류의 프로이트 해석에 경도된 현대의 독자들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전 체계의 얼개를 편견 없이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여기서 리쾨르는 프로이트의 초기논문에서부터 후기의 에로스와 타나토스 이론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재구성하고 있다.

3권에서는 제목이 뜻하는 바대로 프로이트에 대한 리쾨르 자신의 철학적 해석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여기서 리쾨르는 프로이트의 철학을 ‘주체의 고고학’으로 규정한다. 프로이트의 중요성은 그가 매우 특수한 방식의 해석을 행한다는 것이다. 리쾨르 당시에 유행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이 된 구조주의의 관점에서는 방법론적 반휴머니즘을 통해 주체 문제를 체계 외부에 두면서 해석의 대상에서 배제하는데 정신분석은 적극적으로 주체를 이론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주체를 강화하지 않고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의식에 대해 프로이트가 말한 모든 것은 (…) 망각과 망설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자아는 필증적 정립이라는 의미에서의 체계화로는 절대 형성이 되지 않”는다(607쪽). 따라서 프로이트와 대결하면서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흩어진다(shatter). ‘통일성’과 ‘확실성’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은 리쾨르에게 일종의 ‘반성의 모험’으로 이해된다(621쪽). 하지만 이러한 모험의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코기코의 해체, 리쾨르 특유의 규정으로 이야기하자면 ‘상처입은 코기토’다(622쪽). “이는 자기 스스로를 정립해내는 코기토가 아니라 자기를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코기토를 뜻한다”(같은 쪽).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데카르트적인 코기토 주체가 흩어지는 상황을 방기하기보다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쾨르는 자신의 초기 저작인 『의지의 철학 I: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과 이 문제를 관련시킨다. 이 저작에서 그는 주체를 이미 욕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정립했으며, 그것은 ‘비의지적인 것’이었다. 이 비의지적인 것은 사실상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 해석되고 파악된다. 코기토가 욕망과 무의식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러한 의존성을 해석하는 것, 그 상징성을 독해해 내는 것이 반성적 의식을 통한 주체의 재구성에서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정신분석과 ‘선험적 관념론’
또한 리쾨르에게 정신분석학은 ‘경험적 실재론’으로 명명된다. 이는 정신분석이 마음대로 대상을 꾸며내어 ‘무의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니라, 임상적 절차 속에서 드러나는 환자의 증상을 증거로 삼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이 곧 무의식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증상은 무의식의 ‘표상’이며, 프로이트는 이 표상을 우회해 ‘충동’으로 간다.

결과적으로 표상을 해석하는 기술 자체가 분석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신분석은 경험적 실재론이 ‘돼야 한다’. 하지만 표상을 우회해 충동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해석은 표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무의식의 실재가 요청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발견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이 여전히 ‘선험적 관념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준다. 이러한 점이 바로 정신분석학이 ‘주체의 고고학’이 되는 이유라고 리쾨르는 말한다. 여기서 고고학이란 대상의 기원을 캐냄으로써 그 대상을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혐의의 대상으로 놓고, 그것의 직접성을 의문에 부치면서, 주체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이트의 분석이 가지고 있는 회고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후기의 문화론은 그와 다르다. 그것은 ‘초자아’와 ‘승화’의 개념을 통해 전진적으로 외부 대상과 결합하며 긍정적으로 문화를 형성하는 목적론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리쾨르는 이러한 프로이트 후기 사상을 헤겔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판단한다. 다시 말해 프로이트와 헤겔은 모두 데카르트적인 의식 철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성철학이다. 주체에 대한 앎이 리쾨르의 말처럼 최후의 지식이라면 프로이트와 헤겔은 회고적이면서도 전진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들은 리쾨르의 프로이트 해석이 지닌 엄밀함과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학문적 자세에 공감했다. 어떤 철학이든지 당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변형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텍스트의 진의를 망각한 상태에서 이뤄진다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잘못을 조용히 되짚어 줘야 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아주 재미없고 딱딱하기만 한 선생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상의 생명력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그것을 배우는 자들에게도 그 생명력이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번역이 한편으로는 프로이트 연구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리쾨르라는 이 해석학 대가의 존재감이 한국 철학계에 아로새겨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준영 수유너머 N 연구원·철학
필자는 서강대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체문제에 대한 논문을 몇 편 썼다.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이었으며, 현재 「수유너머N」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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