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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 넘어 모든 존재가 공생하는 ‘공-산 사회’ 가능할까

[한겨레 2020-0612]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49048.html#csidx799ddd824d77ad29d9721605ca59701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의 낯설고도 참신한 사유 읽기
“인간과 개·고양이는 서로에게 반려종, 응답하는 법 배워야”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 최유미 지음/도서출판b·2만2000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 위키피디아 코먼스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 위키피디아 코먼스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도나 해러웨이(76)는 학부에서 동물학·철학·영문학을 공부하고 생물학사와 생물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과학사와 여성학을 가르친 학자다. 복잡한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학문의 장벽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유로 페미니즘 이론의 전선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자 최유미씨가 쓴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는 이 독특한 페미니즘 이론가의 저작들을 따라가며 그의 사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 책이 알려주는 해러웨이의 독특함은 이질적인 것들을 서로 연결해 기존의 사유를 전복하는 데서 확인된다. 가령, 해러웨이에게 명성을 안겨준 <사이보그 선언>(1985)은 인간과 기계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드러낸 저작이다.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하나의 정보 시스템에 접속돼 그 시스템과 함께 작업하는데, 이 접속을 통해 그 여성들은 일을 하는 동안 컴퓨터와 합체된 일종의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발상은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공-산’의 사유로 이어진다.

‘공-산’은 그리스어 낱말 ‘심포이에시스’(sympoiesis)의 번역어다. ‘심’(sym)은 ‘함께’를 뜻하며, ‘포이에시스’(poiesis)는 ‘제작·산출·생산’을 뜻한다. 함께 제작하고 함께 산출하고 함께 생산하는 것이 심포이에시스다. 해러웨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기계와 같은 인공물과 자연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돼 함께 생산한다는 사실을 이 ‘공-산’이라는 말로써 드러낸다. “혼자 일하는 장인도 도구들과 함께 제작하고, 홀로 선 소나무도 햇빛, 물, 땅 속의 균류·영양소와 함께 자신의 생명을 생산한다.” 이런 ‘공-산’의 사유에서는 생명과 사회의 최소단위로서 ‘개체/개인’(individual), 다시 말해 ‘더는 나눌 수 없는(in-dividual) 독자적 존재’는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의 90%는 박테리아를 비롯한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이 없다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모든 것들이 다른 것들과 연결돼 있는 ‘공-산’, ‘공-생’의 관계라는 것이 해러웨이의 주장이다.

이렇게 개체와 개인이라는 독자적 존재를 넘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정신과 육체,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이런 이분법은 인간·남성·정신·문명을 중심에 놓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오래된 사유의 결과다. 해러웨이에게서 이런 이분법 거부는 페미니즘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도 나타난다.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운동의 기반으로 삼는 한, 이분법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선언도 이분법에 갇혀 있다고 단언한다. 보부아르의 주장에는 자연적으로 결정된 성(섹스)을 후천적으로 구성된 사회문화적인 성(젠더)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육체라는 선천적 조건보다 후천적 능력을 중시하는 발상인 것이다. 반대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성에서 여성의 위대함을 찾는 페미니즘도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육체의 자연성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해러웨이는 비판한다. 이런 주장은 페미니즘 내부에서 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러웨이의 이분법 거부는 모든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인간과 반려종의 관계를 다룬 <반려종 선언>에서 이런 생각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반려종이란 일차로 인간과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가리키지만, 더 크게는 인간과 ‘공-산’, ‘공-생’의 관계에 있는 모든 종의 생명체를 가리킨다. 특이한 것은 개나 고양이의 편에서 보면 인간도 ‘반려종’이라는 주장이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에게 반려종이듯, 인간도 개나 고양이에게는 반려종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존재라는 이런 발상은 우리의 익숙한 인간중심주의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해러웨이의 이런 급진적인 거부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비판할 때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데리다는 ‘그러면 동물은 응답했는가’ 하고 물으며 동물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진전시킨 바 있다. 전통 철학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으로 ‘응답’과 ‘반응’이라는 구분을 든다. 인간은 언어로써 소통하기 때문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인 데 반해, 동물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응답하지 못하고 반응만 하는 일종의 ‘동물기계’라는 것이 전통 철학의 관점이다. 데리다는 이런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소통 가능성을 탐색한다.

데리다에게 이런 생각을 할 계기를 제공한 건 자신과 함께 사는 작은 암고양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 고양이가 욕실에 따라 들어와 벌거벗은 데리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데리다는 그때 고양이의 깊은 눈을 보았다면서 ‘그 눈이 데리다 자신을 비추는 첫 번째 거울이라면 어떨까’ 하고 묻는다. 전통 철학이 동물의 시선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물음은 획기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데리다가 여기서 물음을 더 전진시키지 못하고 말았다고 지적하면서, 데리다의 말을 되받아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동물의 말에 응답했는가?” 해러웨이가 보기에 데리다는 고양이의 응시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만일 데리다가 고양이의 초대에 더 잘 응답하기를 원했다면 말이 아닌 방식으로 고양이에게 응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했을 것이다.”
해러웨이의 이런 논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넘어 전체 존재를 ‘공-산’과 ‘공-생’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 기계로, 동물로, 자연으로 나아갈 때 참다운 ‘공-산’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해러웨이의 낯설고도 참신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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