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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총파업, 혹은 소속도 목표도 없는 파업을 위하여

이 진 경(수유너머N)

 

우리들은 오늘 또 한 번의 메이데이를 맞아, 전 세계의 총파업에 대한 미국발 오큐파이 운동의 호소에 부응하여, ‘총파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총파업’은 어쩌면 매우 기이한 의미의 총파업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면적인 파업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전면성’은 파업참가자들의 규모나 파업에 참가한 조직의 수를 뜻하지 않으며, 파업이라곤 하지만 중단할 ‘노동’조차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교섭하거나 관철시켜야 할 어떤 직접적인 요구나 ‘목표’도 갖지 않고 있으며, 대결하고 있는 직접적인 상대 또한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혁명적 상황을 향해 돌진할 생각을 하고 이 자리에 모여든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단지 메이데이를 맞아 한 번 치르는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인가? 연대의 요청에 답해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 모여 있는 것인가? 혹은 자신의 진보성을 확인하기 위한 ‘자족적인’ 행진을 위해 모였던 것인가?

 

나는 이 모두에 대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목숨을, 삶을 걸고 시도했던 자본에 대한 항쟁을 지금 여기에서 “자, 다시 한 번!!” 하며 반복하기 위해, 그것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역량을 불러내어 상호적인 촉발 속에서 증폭시키는 하나의 ‘이벤트(사건)’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이다. ‘나의’ 일상, ‘나의’ 일, ‘우리의’ 운동을 넘어서 있는 것들,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우정의 손짓, 그리하여 일인칭의 세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타자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기쁜 ‘의무감’에 따라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이다. 특정한 상대를 위협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어떤 이득이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를 길들여 온 감각과 사고, 행동의 방식을, 지금까지 우리 자신의 형상을 그려온 모든 것의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려는,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자족성’을 위해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나 소렐처럼 일찍이 ‘대중파업’이나 ‘총파업’의 힘을 주목했던 이들이, ‘정치적 총파업’과 대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이란 말로 구별하여 강조했던 것을 나는 이런 의미에서 이해하고 싶다. ‘정치적 총파업’이란 특정한 이득이나 목표를 위한 위협이나 담보로서 행사되는 것이란 점에서 특정 목적에 귀속된 총파업이다. 이런 점에서 이는 조합적인 목적을 위해 흔히 행사되는 파업과, 양적 규모가 다르다는 것 말고는 차이가 없다. 이런 종류의 파업이 예전에 ‘경제주의’ 내지 ‘조합주의’란 말로 비판받던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파업은 명확한 목표 못지 않게 뚜렷한 대상, 뚜렷한 소속을 특징으로 한다. 파업의 참가자는 조합원의 소속을 가진 자로 제한되며, 파업의 대상은 그 목표를 관철시켜줄 수 있는 개별 자본가나 정부로 특정화된다. 이런 파업에서 작업의 정지나 공장의 정지는 조합적인 이득이나 정치적인 목표에 귀속되고 그런 점에서 결코 근본적인 중단을 야기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명명된 진정한 총파업은 이와 달리 어떤 이득이나 정치적 제도 같은 명확한 목표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그러한 이득이나 제도 자체의 전복을, 그런 목표 자체의 소멸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것은 참가의 자격을 구별하고 제한하는 뚜렷한 소속 또한 갖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소속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참가하는 파업이고, 이미 갖고 잇는 소속에서 이탈하고 그 소속을 지우는 그런 파업일 것이며, 그렇게 소속에서 벗어남으로써 모여든 이들을 이질적인 채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파업일 것이다. 어떤 특정 자본가나 정부를 상대로 하는 파업이 아니라, 그런 상대 자체를 제거하는 파업, 자본가 자체, 정부 자체의 소멸을 지향하는 파업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정녕 해야 할 파업은 이득이나 목표를 갖지 않는 파업이고 모든 이득이나 목표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총파업이다. 어떤 소속도 없으며 모든 소속을 지우고 벗어나는 파업이다. 대적할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하는 파업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감각과 사고를 대상으로 하는 파업이고, 결국은 대적할 모든 대상이 사라지게 하는 파업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여 얻으려는 어떤 직접적 이득이나 목표도 없는, 어떤 소속이나 대상도 없는 기이한 ‘총파업’을 하고 있는 것은, 이미 고식화되고 무기력한 전술형태의 방에 갇혀 버린 총파업을, 닫힌 문을 열고 새로운 통로를 통해 거리로 불러내려는 시도일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총파업을 재시작하게 하려는 즐거운 반복의 시도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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