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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후기입니다.

혜정이 2010.06.09 16:04 조회 수 : 3280

일본 유학을 마치고, 혁명의 소용돌이가 불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문이나 베껴 쓰고 있는 노신에게 친구 전현동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자넨 이런 걸 베껴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나?"

"글세, 아무 소용도 없을지 모르지."

"그럼 자넨 무슨 의미로 그런 글을 베끼고 있는 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네."

 

그럼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는 좋은 글을 써달라는 전현동의 말에 노신은,

 

"가령 창문도 전혀 없고 쉽게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방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오래지 않아 모두들 숨이 막혀 죽을 거야. 하지만 혼미한 상태에서 곧장 죽음으로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소리로 외치며 비교적 맑은 정신이 남아 있는 사람들 몇몇을 깨워 일으켜서, 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알게 한다면, 자넨 그들에게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전현동은,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라며 일깨워줌으로써 생길 "희망"을 이야기했지요.

 

이 희미한 "희망"을 보고 노신은 본격적으로 계몽가, 혁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나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상대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중국 현대시기에는 노신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선두가 되어 "희망"을 지니고 계몽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 지식인들의 계몽에는 뭔가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민중들의 정신을 계몽시킨다고 사용했던 방법이 식자들만이 누릴 수 있던 문학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설의 백화를 주장하고, 첫 백화 소설인 <광인일기>가 참신했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지식인들 계층에서만 충격적이었던 그들만의 리.그속 계몽 및 혁명일 뿐이라는 것, 가뜩이나 어려운 한자 때문에 문맹률이 꽤나 높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대중의 입장에서 약간의 자기 비하를 섞어 본다면 당최 그들의 오만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타니가와 간의 난해한 글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플러스의 공작자로서 마이너스의 공작자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지식인으로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고는 해도, 그리고 대중과 자신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원점으로 간다는 발상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결국에는 그 참신한 발상을 어려운 글로 풀어내는 지식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요. .. 좀 과격하게 말한다면, 미칠 듯 더운 날 웃통을 아무렇게나 벗어 제끼는 상놈들을 부러워하는 양반들의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꼬인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저 생각들이 오히려 무서운 편견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순수했건 아니건 간에 처음부터 색안경 끼고 아니꼽게 여겨 제가 먼저 벽을 세워 두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타니가와 간의 앞으로의 글들과 행보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지니고 있던 생각들에 또 어떤 변화들이 생길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변성생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혁명가와 시인의 관계에 대한 것을 보고, 제가 얼마 전 읽은 김남주 시인의 연서 <편지> 중의 문장이 떠올라 옮겨 봅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전투적이라고, 그래서 무섭다고 하는 사람에게 김남주는 말을 합니다.

 

 나는 전문적으로 시를 쓰자고 덤비는 소위 직업 시인은 아니오. 출발부터가 그러했소. 나에게 있어서 시작활동은 내 사회적 활동의 한 부산물 외 아무것도 아니었소.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분으로 생긴 부산물 외 아무것도 아니었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의 시는 혁명에 종속하는 것이오. 시가 먼저 있고 혁명이 있는 게 아니고, 혁명적 실천이 먼저 있고 시는 그 자연스런 산물인 것이오. 나에게 있어서 시는 혁명의 무기일 뿐이오. 적어도 내가 사는 이 사회가 계급사회인 한에서는. 그래서 혁명적 싸움 없이 나는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었소. 싸움할 상대가 없어지면, 민족을 억압하고 민중을 착취하는 무리들이 없어지면 나의 시도 쓰여지지 않을 것이오. …… 80년대 이후 시가 그토록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회적 분위기가 그토록 긴장되어 있고, 억압과 착취의 한계가 극한의 경지까지 와 있기 때문일 터이고 문학의 장르 중에서도 유독 압축과 긴장을 그 생명으로 하는 시만이 이 격동기의 현실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오. 시야말로 문학의 장르 중에서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감각적으로, 가장 상징적으로 그릴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일 것이오.…… 시는 긴 분석도 아니고 느슨한 산문적 이야기도 아니오. 현실의 변혁을 위한 무기로서 시는 촌철살인의 풍자이어야 하고 백병전의 단도이며 치고 달리는 게릴라전이라야 하오.”

 

처음에는 연서라기에 낚여 보기 시작했습니다. 연서가 맞기는 한데, 과격한 표현들이 자주 나옵니다. 원체 전투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좀 무서워해 하며 읽기는 해도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는 않네요. 막 무서워하면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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