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라고 쓰고 보니 타니가와를 만난지 벌써 11주가.....
그간 너무나도 무지했던 일본의 전후 정치적 상황에 대해 셈나시간을 통해 많이 주워 듣기도 했고,
또 우연찮게 않게 전주영화제나 오시마나기사의 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운동의 모습들(?)을 접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또 현실적 삶에서의 타니가와의 변화들에 대해 듣고 읽기도 했고......
타니가와 간이 좀 익숙 해 진듯도 싶습니다.
(아직 못 읽은 이번 주 텍스트가 갑자기 어려워지면 당장 이 말은 취소되겠지만 ㅡㅡ;;)
타니가와 때문인지
비슷한 시기에 듣고 있는 이진경쌤 강의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근래의 내 관심 때문인지
'공동체'라는 문제가 뱅뱅 맴돕니다.
타니가와가 농민들의 마을에서 보았다는 공동체적인 윤리와 분위기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 하고도 남을듯도 합니다.
물론 그 안에는 그런 공동체적인 분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전근대적인 불평등(남녀차별, 신분의 잔재 등)의 온상이기도 할터이구요.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을 제처놓고 타니가와가 말하는 공동체적인 윤리나 분위기 힘만을 놓고 본다고 해도.....
제가 경험했던 농촌의 공동체적인 문화에는..... 계산불가능(혹은 어려움)의 바탕이 있습니다.
쌀이 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감자나 고구마가 또는 상추나 고추가 돈으로 치환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것들의 정확한 가격은 그것이 얼마인지 신경써서 알아내지 않으면(이를테면 5일 장이나 뭐 그런곳에서)
그냥 감자고, 고구마고, 고추고, 상추일 뿐인 그런 물건들 입니다.
대부분 밭작물을 팔기위해서라기 보다 그냥 먹기위해서 키우기 때문에,
남으면 나눠먹고 재배 안한 작물들은 얻어 먹기도 하고....
계산 안함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문화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공동체적인 윤리의 틀.
제가 지금도 '공동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기대 하거나 지향하는 공동체적인 윤리는 자연스럽게 그쪽입니다.
그런데, 숱하게 많은 물건들이 숱하게 많은 세세한 가격으로 정해진 문화에서,
심지어는 농산물 조차도 '얼마짜리' 로서의 현금가격에 매여서
그것을 파악하려는 의도 없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문화에서,
아니 파악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놈의 얼마짜리인지가 너무나 본능적으로 파악 되어버리는 문화에서.
심지어는 자기가 누군가를 위해 지어주는 밥한끼도 얼마로,
자기가 보내는 얼마간의 시간 마저도 얼마로 정해지는 사회에서.
농촌마을의 공동체적인 연대나 유대의 끈을 살려내고 찾아낼 수는 있는 걸까요?
타니가와가 노동자에게도 그런 농촌 공동체의 뿌리가
퇴화되어가는 유전자처럼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라면,
그말은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퇴화되어가는 듯 한 유전자를 어떻게 현실에서 복원하라는 것일까요?
그가 전 생애를 걸어서 그의 시대에서 그 시대에 맞는 유전자를 복원해내려고 노력 했다면,
이제 저보고 제 생애를 걸어 제 시대에서 그 유전자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만들어 내라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렇게 주저와 망설임으로 가득차서 회의하며 해대는 질문들은.... 결국 나에대한 것입니다.
나는 그 사이 훨씬 강한 유전자로 자리잡은 '얼마짜리'로 규정되는 문화의 윤리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
내게있어 <무의식적인 공동체적 윤리의 유전자>와 <무의식적인 손익분기점 계산의 유전자>는 어떤것이 우위일까?
뭐 그런 질문들.....
흠냐리.... 뭔가 머릿속이 복잡하여 정리도 할겸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주저리 주저리 써 댔더니,
정리가 되기는 커녕 줄거리도 맥락도 대책도 없는 글이 되었습니다.ㅠㅜ
그래도 오랫만에 쓴 후기니까 그냥 둘께요.
이럴 때 외치는 한곡조. 에헤라디야~~~~
깔깔깔, 에헤라디야~*^^* 나도 한 곡조, 에헤라디야~^^
계산적 무의식과 공동체적 무의식, 대개는 계산적인 게 강하겠지요?
특히 도시에서 자란 사람으로선, 가족 말고는 어디서든 계산을 가르치고 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자신의 성향에 끌려다니며 살거나, 사회의 관습에 밀려다니며 살려는 게 아니기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그 무의식에 불을 지피고, 새로이 땔감을 넣어가면서 변성의 에너지를 만들려는 것, 그게 운동이고 그게 능동적 삶 아닐까요?^^
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의식하진 못해도, 우리 모두는 타인들, 다른 생명들, 다른 존재자들에 기대어 살고 있으니
이미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공동체적 무의식은 생각 밖으로 큰지도 몰라요.
돈 안되는 짓에 나서고, 돈 쓰는 일 해가며 무언가 다른 삶을 구하는 자들을 보면 말여요.
그래서 희망은 보이는 것보다 크고, 싹수는 보이는 것보다 파랗다고 믿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