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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너머N 상영회 「철학에의 권리」를 준비하며 -니시야마

 

 

철학과 대학은 어떻게 제도의 무조건성을 만들어낼 것인가

 영화 「철학에의 권리──국제 철학 콜레주의 궤적」(니시야마 유지 감독)에 관하여

 

미야자키 유우스케(니이가타新潟 대학)

yusuke@human.niigata-u.ac.jp

 

 저는 니이가타 대학에서 철학 교육에 종사하며, 특히 자크 데리다를 중심으로 현대철학과 18세기 말 독일 철학자 칸트를 연구해 왔습니다. 데리다와 칸트,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다른 두 명의 철학자가 대결하는 지점에서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붙들어 온 문제 역시 ‘철학과 대학’, ‘인문학과 대학’입니다. 오늘 제가 발표할 수 있게 된 것도 ‘철학과 대학’에 대한 연구회를 통해 이 영화의 감독 니시야마 씨와 지금까지 수년간 활동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제작에 직접 가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토대가 된 인터뷰 계획을 니시야마 씨가 다듬고 있을 때에, 니시야마 씨의 요구에 따라 조금 상담에 응한 정도입니다. 영화화한다는 말을 들었던 당초 내심 괜찮을지 다소 걱정했습니다. 국제 철학 콜레주에 대한 영화라면서 그 관계자와의 인터뷰만으로 어떤 영화가 나올지 예상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 역시 저명한 세계적 철학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제 철학 콜레주를 창설한 기둥이랄 수 있는 데리다 역시 현존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게 영화로서 성공할지, 처음부터 꼭 영화여야만 했는지, 그런 의문 속에서 영화의 제작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왜 영화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국제 철학 콜레주가 제기하고 있는 물음 중 하나는 영화에서 나오듯 ‘장소의 물음’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본거지는 파리 5구역의 데카르트 거리에 있지만, 그 고유한 시설은 없으며 공간을 빌려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 철학 콜레주는 오히려 이를 기회 삼아 파리의 대학[내]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대학 그리고 전 세계의 여러 곳에 전이 기생해, 이른바 바이러스적으로 감염시키면서 장소와 사람 간의 연결을 동시에 만들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즉 콜레주는 장소의 무제약성과 무조건성을 목표로 삼습니다. 물론 각자 뿔뿔이 흩어진 채 활자를 읽고 동영상을 보는 등의 일만으로는 어떤 움직임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장소의 무조건성에 대한 어떤 논의도 하나의 매듭지점으로서 그것을 주장하는 ‘특정 장소’가 역시 필요합니다. 유토피아로서 장소의 부정은 두기 씨도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적 공간의 관리와 감시가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장소(大学での場所), 거리에서의 장소(街中での場所), 그러한 공적 공간이 자꾸만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영화이기 때문에 복수의 사람이 모여 장소를 갖고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조건이 부과되겠지요. 따라서 니시야마 씨는 무조건적인 장소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 되게 만들며 몸소 장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장소에서 생각할 기회를, 철학과 인문학의 현장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영회를 만들어 어디서든 사람들을 모아, 이를 계기로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까지 포함하여 만들어지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영화라는 작품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내용과 관련해 이 영화의 의의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국제 철학 콜레주라는 특이한 교육 연구 제도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증언이 되고 있습니다. 콜레주는 제도적으로 국가적인 교육기관의 인가를 받은 곳이 아닌, 하나의 어소시에이션, 즉 비영리 시민 단체(일종의 NGO나 NPO)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말하자면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학술적 활동이 가능한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철학뿐 아니라 다양한 과학, 예술, 문학, 정신 분석, 정치 등등의 영역을 넘나들며(인터 섹션) 새로운 철학의 모습을 창조하는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념적 측면에서만 논의된다면 어딘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과 같이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제로 프랑스에서 그러한 장소가 존재함을 그곳과 깊이 연관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문제 제기를 수반하는 증언과 함께 끄집어낸 점은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시 데리다가 콜레주에 끼친 역할이 이로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보게 되어 매우 감명 받았습니다. 카트린느 말라부도 역설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처럼 일견 터무니없는 제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거의 비현실적이며 황당무계하다고도 볼 수 있는 반제도적 제도를, 한 치의 동요 없는 강한 의지로 수많은 정치가와 관료들 사이에서 싸워 끈질기게 교섭한 끝에 정말로 실현시키고 만 데리다라는 인물이 존재했다는 점. “철학을 위해서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몸소 보여주는 용기. 데리다의 이와 같은 용기에 개인적으로 매우 힘을 받았습니다. 브뤼노 클레만이, 국제 철학 콜레주는 데리다의 작품 중 일부이며 책 이상으로 데리다 철학의 일부라 한 발언은 실로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반제도적 제도를 만들어내 20년 이상 되는 세월 동안 그리고 사후에도 단순히 자신의 저작뿐 아니라, 제도의 존재 그 자체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을 가르치는 제도란 대체 무엇인가’를 우리가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자 데리다의 힘에 경탄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의의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어떤 시의적절함이랄 수 있는 저항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보았듯 국제 철학 콜레주는 시장원리에 의거하는 이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추세 속에서 점점 어려움에 처하고 있습니다. 자금 융통의 난점은 물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고교 교원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의 겸직을 보증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시금 콜레주 같이 특이한 제도를 재고하여 그 의의를 널리 전해 존속과 계승을 호소한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중요합니다.

국제 철학 콜레주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제도의 무조건성[무제약성]에 있습니다. 즉 지적 활동의 무조건성을 제도적인 차원으로 체현하려 하는 점에 있습니다. 기본적인 논점을 확인해봅시다. 원래 대학이라는 곳은 시장원리나 경제적인 이익의 추구에서 일단 떨어진 곳에서 학문간의 발전과 진리 탐구에 종사함을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학문의 발전과 진리의 탐구는 그 스스로가 명하는 장소의 자율성에 한하여 추진돼야 하며, 단순히 영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특정한 정치적 선전의 담당자가 되어도 안 됩니다. 어떠한 이해관심interest으로부터도 독립된 채 사고하는 곳, 그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처가 될 앎 본연의 방식을 실로 철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인문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칸트는 「제학부의 싸움」에서 대학의 기본 원칙을 설명하며 철학부를 통해 어떤 이익관심에도 구애되지 않는 이성의 자율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란 제도 자체가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시장원리의 거센 파도 속에 경쟁이라는 원리 속에 내던져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학은 서로 학생을 빼앗고 국가로부터 자금을 받아내야 하는 등 일종의 기업체로 변질돼 버렸습니다.(Esp. cf. Bill Readings, The University in Ruin, 1996). 이런 경향은 특히 냉전 체제 붕괴 이후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미 대학 그 자체로부터 어떤 희망도 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철학이나 인문학의 활동은 궁지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꼭 기존 대학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동시에 단순히 무관하지도 않은 형태로 개입하며 철학과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아래 사유의 무조건인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데리다는 ‘국제 철학 콜레주’라는 해답을 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데리다는 7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GREPH라고 하는 철학 교육 그룹을 이끌며 제도적인 실천을 거듭해 온 것인데요, 그 하나의 도달점으로 콜레주는 훌륭한 해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영화는 그것을 새삼 확인시키는 것이며, 이런 콜레주의 중요성뿐 아니라 그 저항의 지점을 어떻게 유효한 방식으로 미래를 향해 계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지적되듯 문제점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콜레주는 현존하는 제도인 이상 당연히 그저 무조건적이지는 않으며, 그 안에는 꼼짝없이 시대와 장소, 그와 관련되는 사람들과 문화에 따라 제도로서의 유한성이랄 수 있는 다양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콜레주를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물음보다는, 오히려 대학이나 인문학에 많든 적든 관련되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프랑스 밖, 혹은 일본이나 한국 상황 속의 제약을 의식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주와 같은 것이 프랑스 밖에서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이 될 지, 그런 물음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 장소를 빌려 여러분과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miyazaki 철학에의 권리 토론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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