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워크샵 마지막 날을 보내고 집에 들어왔는데, 쉽게 잠이 오질 않습니다.
준비세미나를 할 때, 타니가와 간의 글을 하나 둘 접하면서
그때는 정말 그의 이론과 개념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잠이 오질 않았는데,
준비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국제워크샵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내가 그렇게 매달렸던 원점, 공작자, 플라즈마, 마이너스, 플라스, 차별 등등등
더는 그런 개념들이 미칠만큼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다른 궁금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그걸 말로 만들수도 없었구요.
그래서 첫날은 그냥 심드렁 하면서, '이게 말로 듣던 국제 워크샵이구나' 하는 생각만 했지요.
'요네타니 선생님이란 분이 준비세미나 기간중에 왔으면 더 좋았겠다.'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했구요.
실은 국제 워크샵 기간에 보이지 않으셨던 소량쌤과 린이때문에
'국제워크샵 따위는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못된 생각이 제일 컸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국제워크샵 기간중에 세번째 날이었던 22일 강의에서
'두개의 촛점을 갖는 타원- 전형기에서의 분열된 혼'을 얘기하실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내려서 혼자 적잖이 고생을 했습니다.
미친여자처럼 보일까봐 화장지로 땀 닦듯이 눈물 훔쳐내느라구요.
사실은 감기걸린 것 처럼 코를 풀어야 할 많큼 그렇게 많이 울었더랬습니다.
집에와서 눈물이 쏟아져 내리게 했던 그 문장을 보니, 그리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 타원인 한 그것은 깬 채로 자고, 자면서 깨고,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고, 믿으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믿는 것을 의미한다.>
제가 그 문장에 그렇게 눈물이 나야 했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그게 제일 궁금했지만, 그걸 요네타니 선생님께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어요?
선생님은 타니가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으로서의 '전환기'를 이야기 했지만
제게는 그 전환기가 꼭 50년대와 60년대 혹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주변으로 펼쳐지는
시대적 구분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대와 전근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장애와 비장애, 여성과 남성......
삶의 어느 것 하나가 아닌 숱하게 많은 삶의 요소들이
두가지 중심축으로 돌면서 일으키는 혼란과 착란의 타원속에 존재하는 사람은
그 시간적 배경이 언제이건 전환기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참 늦되는 사람입니다.
교직생활을 좀 했는데,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10년을 살고서야 그러고도 아주 어렴풋이 '학생-되기'가 되었던 사람이니까요.
사실 타니가와를 가장 부러웠고, 존재의 위계를 느꼈던 것은 그 지점이었습니다.
그렇게 빨리 광부-되기가 가능했던 그의 능력 말입니다.
아마 타니가와 자신에게 묻는다 해도, 그래서 그가 섬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해도
그것이 '제게' 답이 될수는 없을텐데, 그 질문 또한 요네타니 선생님께 던질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ㅠㅜ
정말 정말 늦되는 타입이다 보니까
아마도 선생님이 한국을 떠나시고도 한참이 지난뒤에, 어쩌면 몇년 쯤 지난 후에
"아.... 그때 요네타니 선생님께 그런 질문을 드리고 답을 구했으면 좋았을것을...."이라는
후회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또 뭘까요?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에둘러 얘기해서밖에 전달 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이 있었다는 말은 전하고 싶기 때문인듯도 합니다.
늘상 '그게 가능할까?' 라고 생각하던 막연한 어떤 삶을
실제로 당당하게 살아 낸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해준 국제 워크샵과
일본에서 여기까지 날아와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요네타니샘과 무시가상.
분명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임은 느낄 수 있습니다.
제게 잊지 못할 경험이나 사람들은 언제나 제 삶을 바꿔놓곤 했습니다.
선생님이 현장인문학을 얘기하시면서 언급했던 고병권쌤도 그랬고,
저를 혼란과 분노와 분열속에 몰아넣었던 연구실의 '대중지성'이란 프로그랩도 그랬구요.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에 국제워크샵은 제게 어떤 영향으로 남겨질지 더 궁금합니다.
모든게 뒤섞여서 정리가 될것 같지 않은 지금의 시간들이 과연 지나가기는 할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 혼란을 폭력적으로 정리해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못했고, 그래서 감동적이었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감사한 생각이 들어서 후기를 씁니다.
워크샵 기간중에 보이지 않으셨던 김정민쌤께 쌤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했다고 꼭 전해 드리고 싶구요.
건강 안좋으시다고 했던 요네타니 쌤 건강관리 잘 하시라고 전해드리고 싶구요.
준비 세미나 기간동안 횡설수설한 후기들에 정성들여 댓글 달아 주시던 이진경쌤께도 감사 드리구요.
국제워크샵 준비세미나 함께 해 주신 님들~!
그리고 멀리 일본에서 와서 워크샵을 함께 만들어 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 드립니다.
(상 받은 것도 아닌데 뭔 수상 소감 같네 ㅠㅜ)
암튼..... 2010 국제 워크샵. 땡큐 앤 굿바이~!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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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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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선
감동적인 후기예요 ㅜ_ㅜ , 타니가와 시 강독 하는 세미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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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꾸댁
헉;;;; 여기..... 이렇게..... 올라 올..... 글이 아닌데....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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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muchos
우와 이렇게 말해주신 분 한 명이라도 계시니 우리가 했던 즐거움이나 고생 같은게 날아가 버리는 뜻하네요. 이 후기 그리고 다른 후기도 요네타니/무시가 선생님께 번역해서 보내드려도 되지요? 혹시 전달하고 싶은 말 또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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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ris
음, 역쉬 국제워크숍 후기의 대가다운 감동적인 후기네요.*^^* 가슴에 파고든 감동의 포텐셜이 새로운 사유와 신체의 움직임으로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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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세번째 강의에서 꼬꾸댁 님이 훌쩍이던 그 모습 기억하고 있어요. ^^
고맙습니다. 어떤 약보다 힘이 솟아요.
저도 두 부분에서 특히 왈콱했습니다.
첫번째는 꼬꾸댁님과 비슷한 부분이었구요,
두번째는 마지막 날 강의에서 모리사키 카즈에 이야기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다시금 광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였습니다.
번역하면서도 울고 웃었답니다.
우리의 울음과 웃음이 어느 순간 만나고 또 헤어지고 또 만나길 바래요.
아니, 이렇게 감동적인 후기를 쓰다니욧!!!!
'못된(?)' 생각을 했던 1인 추가.
정말 소량언니와 린이가 무지하게 보고 싶고,
그동안 읽고, 듣고, 말했던 것들이 정작 내 일상에 어떻게 소용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했던 기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