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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수유너머」N 국제 워크샵공개강연  2010. 8. 20.

    「 다니가와 간의 코뮨주의 ――「원점,공작자, 그리고 유민의 코뮨으로

 

                         요네타니 마사후미(米谷匡史)

 

 

1. 공산주의/코뮨주의 사이

 

 공산주의/코뮨주의 사이를 연결하고 초월했던 혁명시인다니가와 간(谷川雁, 19231995)

근대계몽진보전위의 존재방식을 비판하고, 근대의 어둠, 사회의 주변, 역사의 잔해(瓦礫)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세계(原点)에 침잠해 <집단>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던 서클 문화운동의 <공작자(工作者).

 큐슈(九州)의 미나마타(水俣)치쿠호우(筑豊)/조선오키나와의 <유민>이 연결되어가는 코뮨.

 

포스트 냉전기의 현대. 기존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환멸.

그 후에 한층 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공동성(共同性)을 탐구.

――키워드가 된 <코뮨(コミューン)>

 

  cf. 파리 코문(1871), 광동코뮨(広東コミューン, 1927)[1]

    유고슬라비아자주관리사회주의[2], 중국문화대혁명(상하이 코뮨)

    국가통제에 의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중의 자발적인 결합이며 자치조직

 

 다니가와 간이 서클 문화활동의 <공작자>로서 활약했던 것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전반에 걸쳐서이다.

 전환기로서의 1950년대(동아시아 냉전, 조선전쟁)

1950년대 전반 일본 공산당 분열

(소감파所感派, 국제파国際派)[3], 무장투쟁노선으로.

1955        로쿠젠쿄(六全協, 第六回全国協議会)[4]에서 노선전환봉인.

1955      일본 공산당과 좌파 재일 조선인 운동 분열, 조선 소렌(総連)결성

  1956       스탈린 비판, 헝가리 봉기, 신좌익 운동 태동.

공산당의 권위 실추. 그 속에서 더욱 소용돌이쳐가는 민중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을 어떻게 연결시켜 조직할 것인가?

 

 민중(原点)/(前衛)을 매개하는 미디어로서의 <공작자>

 두개의 길항하는 중심축을 가진 <타원(楕円)>과 같은 운동이념.

불균등한 모순을 품은 불균질불투명한 비전.

 근대계몽진보전위라는 단일한 축을 통해 세계를 조망하고 지도해 가는 지()운동(運動)의 존재방식을 철저하게 비판해 간다.

<원점(原点)>――근대의 어둠, 사회의 주변, 역사의 잔해를 살아가는 민중<유민(流民)>의 세계.

 

 

  cf. 전공투(全共闘) 세대가 애독했던 세 명의 카리스마

다니가와간(谷川雁),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하니야 유타카(埴谷雄高)

 196070년대에 기존의 당조직으로부터 <자립> 이라는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연대를 찾아 고립을 두려워 않고, 힘이 다해 쓰러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지만, 힘을 다하지 않고 쓰러지는 것은 거부한다.」(전공투 운동의 슬로건(全共闘運動のスローガン), 낙서

 그러나, 다니가와 간이 썼던 말은 연대를 찾아 고립을 두려워 않는 미디어

(「공작자의 시체에 싹트는 것(工作者死体えるもの)19586月)

1950년대60년대 이후의 단층

 

  cf. 최근 오랜 시간 봉인망각되었던 1950년대서클문화운동의 재평가 기운. 서클 잡지의 복간이 이어짐(不二出版)

    서클 마을(サークル村)』(谷川雁・上野英信・森崎和江ら、195861年)

    『진달래(ヂンダレ)』(金時鐘・梁石日ほか「大阪朝鮮詩人集団」、195358年)

    『도쿄 남부 서클잡지 집성(東京南部サークル雑誌集成)

 

 

◆2. 60년 안보투쟁(安保闘争)미이케 투쟁(三池闘争)

――「두 번째의 복귀(二度目復員)정형의 초극(定型超克)

 

 안보투쟁(安保闘争)미이케투쟁(三池闘争)을 둘러싸고, 다니가와 간은 중요한 두 개의 논고 내 속의 괌 병사(わたしのなかのグアムの兵士)」(19607月),

정형의 초극(定型超克)」(196010月)을 쓴다.

 미이케투쟁(三池闘争)현장에서 부상한 민중의 자발적 운동의 존재방식을 높이 평가.

 

해방된 저층인 빈농과 어민의 공화주의와, 광부의 무정부주의가 결합된 강렬한 체취를 지닌 세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코뮨풍의 공화정신(コンミューン共和精神)

미이케(三池)는 전후 처음으로 약동했던 자연발생적 노동자 무장투쟁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의 세키군(赤軍)인 것일까?」「미이케 해방군(三池解放軍)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평가조차 할 수 없는 채 등장하여 사라져 가려고 하는 인민군은 유쾌한 군대였다.

 

  cf. 하리우 이치로(針生一郎)우리들 속의 코뮨(われらのなかのコンミューン)」(『신일본문학(新日本文学)19608 /미이케코뮨(三池コンミューン)」(『신일본문학(新日本文学)19609

 

 

 「정형(定型)」――민중의 자발적인 운동의 에너지를 기존의 틀주형에 들이부어 고정시켜 버리는 당조직의 주박.

 

다니가와 간은 전후(戦後)에도 괌에서 고독하게 게릴라전을 계속하다, 1960 5월에 발견(発見)되어 귀환했던 두 명의 일본군 병사(皆川文蔵、伊藤正)에게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보투쟁 전체보다도 남쪽 덤불 속에 16년을 살아낸 두 명의 병사 이야기 쪽이 훌륭하다.

천황보다 15년 늦었던 항복……이 뉴스는 나의 온몸(內臟)을 휘저어 놓았다.

  상황에 참여하려고 하면 할수록 참가 의욕이 사라져가는 상황, 뒤집어 말해 상황에 참가해 버렸다는 자세로밖에 참가할 수 없는 상황. 이 감촉을 (느꼈던-역자)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 돌아오자마자였던 때가 그러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두 번째로 복귀한 것이 된다.

그들 괌의 병사의 귀환과 나의 두 번째 복귀는 왜 서로 겹쳐지는 것일까? 분명 내 속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명의 병사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속에 내재하는 괌 병사와 대화하는 것 없이는, 안보투쟁은 미이케 투쟁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cf. 전시 중의 다니가와 간은 육군 포병대에 징병(학생동원)되어 치바(千葉)에서 패전을 맞이한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늦건 빠르건 쇼와(昭和) 20년 말까지는 아메리카군이 본토에 상륙해 격전을 벌이겠지. 일본의 정규군은 궤멸하고 지휘계통에서 자발성을 지닌 게릴라전이 된다. 이 자발성은 설령 게릴라 자체는 망한다고 해도 장래의 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의 붕괴과정에 나도 동참해야만 한다.

사태가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아는 바 그대로다. 하룻밤 사이에 무기를 버린 수백만의 군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후 나를 크게 빗나가게 했습니다.

(「전쟁 중 20살의 편지 (戦中二十歳手紙), 십대(十代), 19878, 현대시수첩(現代詩手帖)20024호 재수록

 

 60년 안보미이케 투쟁의 와중에서 다니가와 간은 공산당에서 이탈하고 제명당했다.

이질적인 것의 횡단적인 교류를 추구하는 자유롭고 열린 서클 문화 운동의 존재방식은, 공산당의 전위주의(前衛主義)민주집중제(民主集中制)통일과 단결(統一団結)이란 조직론과 모순되었고, 충돌하고 만다.

 

 그 후, 치쿠호우(筑豊)나카마시(中間市)의 실업광부들의 운동에 깊이 관여(commit)해 간다.

 다이쇼 행동대(大正行動隊)다이쇼 광업 퇴직자 동맹(大正鉱業退職者同盟) 다이쇼 투쟁(大正闘争)

 

60년대에는 공산당에서 <자립>한 사상운동의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주목 받아 큰 영향을 끼친다.

 

◆3. 서클문화운동(サークル文化運動)에서 다이쇼 투쟁(大正闘争)으로

 

 1947年 후쿠오카(福岡)의 서일본 신문사(西日本新聞社)에서 노동쟁의를 지도하여 해고당한다. 그 해, 일본공산당에 입당.

 1950年~ 결핵 장기요양생활에 들어간다. (고향의 미나마타(水俣), 아소중앙병원 (阿蘇中央病院).

      민중(民衆), 농촌(農村), 고향(故郷)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원점(原点)의 사상을 새롭게 한다.

 1954年 「원점이 존재한다(原点存在する)발표. 시집대지의 상인(大地商人)간행.

 1958年 치쿠호우(筑豊)나카마시(中間市)로 이주.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등과 함께 잡지서클 마을(サークル)창간.

     『원점이 존재한다-다니가와 간시집(原点存在する―谷川雁詩論集)간행.

1959年   공작자 선언(工作者宣言)간행. 

1960年 『다니가와 간 시집(谷川雁詩集)간행.

 

 1950년대 후반60년 전후

  사회당공산당신좌익무당파(無党派)사회주의

  혁신세력의 분열, 기성정당에 대한 민중의 불신, 잠재되어 소용돌이치는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

  당파조직을 넘을 폭넓은 제휴를 목표로 한다.

통일전선론(統一戦線論).국민문화회의(国民文化会議)결성.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과 민중, 낡은 세대와 새로운 세대, 중앙과 지방, 남자와 여자, 하나의 분야와 다른 분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격렬한 단층과 분열은, 파란과 비약을 품은 충돌과 대립에 의한 통일, 그것을 위한 대규모의 교류에 의해서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공통의 장을 단단하게 유지하면서, 두려운 기색도 없이 모순을 깊게 파고들 것, 그것 이외 길은 없다.

  (「더욱 깊이 집단의 의미를――『서클마을(サークル)창간선언(さらに集団意味――『サークル村』創刊宣言)19589月)

 

 오늘은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낡은 공동체의 파편이, 미래의 새로운 공동 조직으로 용해되어 가는 단계이고, 그 도가니이자 다리가 되는 것이 서클이다.

 「미래사회에도 생존할 것이라 예상되는 전위 정당, 노동조합, 협동조합, 청년 부인조직, 외의 대중 조직은 모조리 어떤 면에서 일종의 서클이다이들 이종(異種) 공동조직이 지닌 경계도 사라져가고 있어서, (이들이-옮긴이) 서서히 융합하여 하나의 코뮨이 되리란 점은 충분히 예측할 있을 것이다. 」(위의 글

 

 『서클 마을(サークル)』――큐슈(九州) 각지의 서클 잡지를 네트워크 형태로 연계시켰던 미디어.

남부큐슈(南部九州)의 빈농들과 북부큐슈(北部九州)의 노동자광부들의 교류커뮤니케이션.

 우에노에이신(上野英信)치쿠호우(筑豊) 각지의 서클문화운동에 관여.

          『지하전선(地下戦線)』『탄광연립주택(炭鉱長屋)

월간타카마츠(月刊たかまつ)』(水巻),나상(裸像)』(中間)

장작 창고(まきやぐら)』(山口県・宇部),

야마다문학(山田文学)』(山田).

 다니가와간(谷川雁)쿠마모토(熊本)아소(阿蘇)미나마타(水俣)

남부큐슈 서클문화운동에 관여.

        『신쿠마모토문학(新熊本文学)』『불꽃의 눈()』(熊本)

아소(阿蘇)』『분화구(火口河)』(阿蘇)、

시천둥(詩雷)』『미나마타 시가(水俣詩歌)』『직선(直線)』(水俣)

 모리사키카즈에(森崎和江)여성들 잡지무명통신(無名通信)발행(195961)

 

 cf. 큐슈의 서클마을(サークル)과 병행하여 전국서클교류잡지 발간도 기획

국민문화회의(国民文化会議)라고 제창했다.단지 실현되지 못함

 

 「대중과 지식인 어느 쪽과도 격렬하게 대립하는 공작자의 무리…… 쌍두의 괴수와 같은 매체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들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원조받을 가망이 없는 유격대로서 대중의 침묵을 내적으로 파괴하는 동시에, 지식인의 번역법을 거부해야 한다. 대중을 향해서는 단호한 지식인이며, 지식인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대중인 지점에서 위선(僞善) 길을 가로지르는 공작자의 시체 위에 싹트는 , 나는 그것만을 지지한다. 그리고 오늘 연대를 찾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디어들의 대화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일을 위해 죽는 말이리라.」 (「공작자의 시체에 싹트는 것(工作者死体えるもの)19586月)

 

 

 「저는 자아를, 속에 침투한 타인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십 년 전에 발레리 (Valéry) 길을 버렸습니다.」「자기 속에 침투한 타인, 단지 그것만을 말하라

  (「공작자의 논리(工作者論理)19591月)

 

 「사상은 사유되는 것이라는 주박에서 대중을 해방하는 것이 우리들 사상운동의 목적이다. 단호하게 사상의 무서명성(無署名性) 쪽에 거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운동을 낳는다.」  (「관측자와 공작자(観測者工作者)19596月)

 

 1960년 공산당으로부터 이당(離党)제명.

다이쇼 행동대(大正行動隊)다이쇼 광업 퇴직자 동맹(大正鉱業退職者同盟)다이쇼투쟁(大正闘争)으로

갱내 점거(坑底占拠)땅밑코뮨(地底のコミューン)

 북큐슈 노동자손을 잡는 집(をにぎる)건설운동

――각지에 지원조직후방회(後方)」(東京),저항회(抵抗)」(大阪)

 도쿄에 자립학교(自立学校)설립

 

실업광부들은 각지의 야마(炭坑)을 전전하면서, 야와타(八幡, 북큐슈가마가사키(, 오사카)산야(山谷, 도쿄)로. 이에 더하여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가 되거나 남미로 이민하여, <유민(流民)으로 이산(離散).

 

 실업광부가 결합된 코뮨근거지(根拠地)만들기.

다이쇼 광업 퇴직자 동맹(大正鉱業退職者同盟)은 교섭권을 가진 노동조합으로서 인정되었다.

 「치쿠호우 기업조합(筑豊 企業組合)결성1963.

나카마 공공사업 자유노동조합(中間公共事業自由労働組合)결성1970.

취로의 확보나 집합주택의 조성 등, 생활의 장소인자립건설(自立建設)운동.

 

◆4. 큐슈(미나마타水俣치쿠호우筑豊)/조선오키나와의 유민(流民)

 

부락민, 한센병, 화산재 지대의 빈농, 이도() 어민, 재일 조선인 등은 가장 상징적인 국경 밖의 백성이며, 역사는 그들을 진정한 주역으로 삼아 움직였다. 그리고 어떠한 동란(動亂) 그들을 근저로부터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여기는 도마뱀의 머리-이족풍의 탐욕스런 아름다움(ここはとかげの頭――夷狄風貪欲しさ)19595月)

 

 「벽지(邊地) 농어민, 유랑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특수부락민, 한센병(), 재일 조선인, …… 이들 차별이라는 형태로 소외받는 자들 속에만 범형으로서의 일본이 있다.

  (「일본의 이중구조(日本二重構造)19613月)

 

 ※미나마타(水俣)라는 장소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日本窒素肥料株式会社)――1920년대 이후,

조선에서 화학공업개발을 추진.

  전후에도 미나마타를 거점으로 식민지적 개발(植民地的開発)을 계속. 전후 일본의 화학공업과 고도경제성장을 뒷받침해 가면서 <미나마타병(水俣病) 이 발생하게 된다.

 

 ※치쿠호우(筑豊)라는 장소

  북부큐슈――일본 최대의 야와타 제철소(八幡製鉄所).

석탄(石炭)은 치구호우(筑豊)나 미이케(三池)탄광에서 채굴.

  일본자본주의를 저변에서 뒷받침한 노동자광부가 집중된 지역.

  전국 각지의 가난한 농촌, 피차별부락, 오키나와, 조선으로부터의 <유민(流民)>이 만나는 장소.

 

 서클문화운동에 의한 집단(集団)코뮨 만들기 시도.

 일본 사회의 공동체집단의 존재방식이 그 옳고 그름이란 양면을 포함하여 되물어진다.  

 

일본사회의 이중구조(二重構造), 아시아적 공동체(파시즘의 온상수평적인 연대감각)

비유럽세계아시아에서의 <근대>의 존재방식. 불균등한 모순

그 모순갈등을 일본사회의 주변(周辺), 큐슈 (미나마타水俣치쿠호우筑豊)/조선오키나와를 내재적으로 연관시켜가면서 되물어 간다.

 

 「주변에서 게릴라전의근거지(根拠地)를 구축해, 농촌에서 도시(시민사회)를 포위해 갔던 모택동 주의(毛沢東主義)와도 연결되는 근대 비판 사상. 비유럽 세계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단지, 농촌공동체를 근거로 하는 단순한 농본주의나 패트리어티즘(patriotism)은 아니다.

 

민중(原点)과 당(前衛), 농촌과 도시, 공동체와 시민사회 사이를 연결하는 사상운동.

이질적인 것을 교류시켜 횡단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주체와 감수성을 혁신하고, <집단>을 통해서 문화혁명을 지향한다.

<공작자(工作者)>는 불가시(不可視)<원점(原点)> <전위(前衛)> 사이를 연결하는 미디어.

 

 cf. 우에노에이신(上野英信)――치쿠호우(筑豊)탄광에 뿌리를 내리고, 광부들의 노동생활을 묘사한 르포르타쥬를 계속 쓴다. 그리고 <유민>이 되어 이산(離散)하여, 남미로 이주했던 실업 광부들을 추적하여 취재한다.

 

 cf.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 ――치쿠호우(筑豊)탄광에서 일본인오키나와인조선인의 만남과 마찰갈등에 대하여 사색하고 파고들어간다.

    모리사키(森崎)는 재일일본인(식민자2)으로 대구에서 길러졌다. 전중(戰中)전후에 큐슈로 이주한다.

    조선일본 사이의 갈등을 안은 채, 일본의 연쇄적 공동체에 대한 강한 의심을 품는다.

 

  다니가와 간 자신은 1965년 치쿠호우(筑豊)을 떠나 도쿄로. 이후, 일반 미디어에는 시나 비평을 쓰지 않고 <침묵>한 시인이 되어 카리스마적 성격이 높아진다.

  라보 교육센터(ラボ教育センター)에 입사하여, 영어학습 교재로 이야기테이프(物語テープ)를 개발. 어린이들의 <집단>적인 테마활동(テーマ活動),인체표현(人体表現)의 조직자가 된다.

  1980년대 이후는 이야기문화의 회(ものがたり文化)를 결성. 미야자와 켄지(宮沢賢治)의 동화를 어린이들이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인체교향극>으로. 그 때부터 다시 비평을 쓰기 시작한다.

  1965년 직후의 굴절연속과 단절)

사람들의 신체적 감수성이나 풍경의 음영(陰影)이 고도경제성장에 의하여 마멸(摩滅)되어 가는 전환기.

 

(번역)신지영

 

◆参考文献

 

・『谷川雁セレクション』全2巻(岩崎稔・米谷匡史編、日本経済評論社、2009年)

・谷川雁『原点が存在する――谷川雁詩文集』(講談社文芸文庫、2009年)

・米谷匡史「「流民」のコミューンを幻視する――「運動体」としての谷川雁」

(『道の手帖 谷川雁』河出書房新社、2009年)

・  同  「〈運動体〉谷川雁の軌跡――一九六五年前後の屈折」

(谷川雁研究会『雲よ――原点と越境』3号、20105月)

 

・思想の科学研究会編『共同研究 集団――サークルの戦後思想史』(平凡社、1976年)

・松本健一『谷川雁 革命伝説』(河出書房新社、1997年)

・松原新一『幻影のコンミューン――「サークル村」を検証する』(創言社、2001年)

・池田浩士「サークル村の内と外――〈戦後〉が終わったとき、〈われわれ〉は……」

(『文学史を読みかえる6 大転換期』インパクト出版会、2003年)

・大嶽秀夫「ポストモダン思想家としての谷川雁」

(『新左翼の遺産――ニューレフトからポストモダンへ』東京大学出版会、2007年)

 

・『現代思想』200712月臨時増刊「戦後民衆精神史」

・ヂンダレ研究会編『「在日」と50年代文化運動

――幻の詩誌『ヂンダレ』『カリオン』を読む』(人文書院、2009年)

・鳥羽耕史『運動体・安部公房』(一葉社、2007年)

・  同  「サークル誌ネットワークの可能性

――『人民文学』と『新日本文学』から見る戦後ガリ版文化」

      (『昭和文学研究』52集、20063月)

・佐藤泉「いかんともしがたい植民地の経験――森崎和江の日本語」

(『国語と国文学』200611月号)

・ 同 「共同体の再想像――谷川雁の「村」」(『日本文学』200711月号)

・ 同 「集団創造の詩学――森崎和江『まっくら 女坑夫からの聞き書き』」

     (『社会文学』30号、20096月)

・水溜真由美「同化型共同性の拒絶――森崎和江と炭坑」(『思想』931号、200111月)

・  同  「一九五〇年代後半のサークル運動と小集団論」

(北海道大学『国語国文研究』128号、20058月)

・  同  「森崎和江と『サークル村』――一九六〇年前後の九州におけるリブの胎動」

      (『思想』980号、200512月)

・  同  「石牟礼道子と水俣――ゆらぐ〈共同体〉像」

   (北田暁大ほか編『カルチュラル・ポリティクス196070』せりか書房、2005年)

・  同  「谷川雁の共同体論とサークル構想」上・下

(『思想』1021号・1022号、200956月)

・  同  「サークルネットワークとしての『サークル村』」

(『北海道大学文学研究科紀要』129号、200911月)

・茶園梨加「炭鉱夫が炭鉱夫の生活を書くということ

――山崎喜与志作品はいかに読まれたか」

(『九大日文』9号、20073月)

・  同  「戦後サークル誌にみる文学の役割――北部九州のサークル誌(1)日炭高松」

      (『九大日文』13号、20093月)

・  同  「北部九州におけるサークル運動と朝鮮人

――上野英信「あひるのうた」が提起する問題」

(日本近代文学会九州支部『近代文学論集』35号、2009年)

・坂口博「女をよこせ――「無名通信」を読む」(『敍説』10号、19947月)

 

・『筑豊争史』(大正鉱業退職者同盟、1972年)

・『洞海公共自労三十三年の歩み』(福岡県洞海公共事業自由労働組合、2002年)

・第3期『サークル村』全12号(20032007年)

 

・森崎和江『まっくら――女坑夫からの聞き書き』(理論社、1961年)

・  同  『非所有の所有』(現代思潮社、1963年)

・  同  『闘いとエロス』(三一書房、1970年)

・  同  「民衆意識における朝鮮人と日本人」「二つのことば・二つのこころ」

(『ははのくにとの幻想婚』現代思潮社、1970年)

・  同  「民衆における異集団との接触の思想――沖縄・日本・朝鮮の出逢い」

(『異族の原基』大和書房、1971年)

・森崎和江・川西到『与論島を出た民の歴史』(たいまつ社、1971年)

・上野英信『追われゆく坑夫たち』(岩波新書、1960年)

・  同  『出ニッポン記』(潮出版社、1977年)

・石牟礼道子『苦海浄土――わが水俣病』(講談社、1969年)

・  同  『流民の都』(大和書房、1973年)

・石牟礼道子編『水俣病闘争 わが死民』(現代評論社、1972年)

・渡辺京二「流民型労働者考」(『小さきものの死』葦書房、1975年)

 

 

 

研究空間「スユ+ノモ」N 国際ワークショップ・公開講演  2010. 8. 20.

 

   「 谷 川 雁 の コ ミ ュ ー ン 主 義

     ――「原点」、「工作者」、そして「流民」のコミューンへ 」

 

                            米 谷 匡 史

 

◆1、共産主義/コミューン主義の間

 

 共産主義/コミューン主義の間をつなぎ、越境した革命詩人・谷川雁(19231995)。

 近代・啓蒙・進歩・前衛のあり方を批判し、近代の影、社会の周辺、歴史の瓦礫を生きる民衆の世界(原点)に沈潜しながら、「集団」のネットワークをつくりだしていくサークル文化運動の「工作者」。

 九州(水俣・筑豊)/朝鮮/沖縄の「流民」がむすびつくコミューン。

 

 ポスト冷戦期の現代。既存の社会主義・共産主義への幻滅。

 その後でなお、資本主義に抗する共同性を探求。

――キーワードとなる「コミューン」

 

  cf. パリ・コミューン(1871年)、広東コミューン(1927年)、

    ユーゴスラヴィア・自主管理社会主義、中国・文化大革命(上海コミューン)

    国家統制による社会主義ではない、民衆の自発的な結合と自治組織。

 

 谷川雁がサークル文化運動の「工作者」として活躍したのは、1950年代後半から1960年代前半にかけて。

 転換期としての1950年代(東アジア冷戦、朝鮮戦争)

1950年代前半 日本共産党分裂(所感派、国際派)、武装闘争路線へ。

1955年 六全協(第六回全国協議会)で路線転換・封印。

   同年  日本共産党と左派在日朝鮮人運動の分離、朝鮮総連の結成。

  1956年 スターリン批判、ハンガリー蜂起、新左翼運動の胎動。

 共産党の権威失墜。そのなかで、なおも渦巻く民衆の社会主義・共産主義への希望を、いかに結びつけ、組織していくか。

 

 民衆(原点)/党(前衛)を媒介するメディアとしての「工作者」。

 二つの拮抗する中心・軸をもつ「楕円」のような運動の理念。

不均衡な矛盾をかかえ、不均質・不透明なヴィジョン。

 近代・啓蒙・進歩・前衛という単一の軸から世界を眺め、指導していく知・運動のあり方を徹底して批判していく。

「原点」――近代の影、社会の周辺、歴史の瓦礫を生きる民衆・「流民」の世界。

 

 

  cf. 全共闘世代が愛読した3人のカリスマ(谷川雁、吉本隆明、埴谷雄高)

    196070年代に、既成の党・組織からの「自立」の思想に大きな影響をあたえる。

    「連帯を求めて孤立を恐れず、力及ばずして倒れることを辞さないが、力を尽くさずして挫けることを拒否する」(全共闘運動のスローガン、落書き)

    しかし、谷川雁が記した言葉は、「連帯を求めて孤立を恐れないメディア」

(「工作者の死体に萌えるもの」19586月)

1950年代/60年代以降の断層。

 

  cf. 近年、長らく封印・忘却されてきた1950年代・サークル文化運動の再評価の気運。サークル雑誌の復刻がつづく(不二出版)。

    『サークル村』(谷川雁・上野英信・森崎和江ら、195861年)

    『ヂンダレ』(金時鐘・梁石日ほか「大阪朝鮮詩人集団」、195358年)

    『東京南部サークル雑誌集成』

 

◆2、60年安保闘争・三池闘争――「二度目の復員」と「定型の超克」

 

 安保闘争・三池闘争をめぐって、谷川雁は、重要な二つの論考「わたしのなかのグアムの兵士」(19607月)、「定型の超克」(196010月)を書いている。

 三池闘争の現場で浮上した、民衆の自発的な運動のあり方を高く評価。

 

 「解き放たれた底部で貧農漁民の共和主義と坑夫の無政府主義とが結びついた、強烈な体臭をもつ世界が形成されていった」「コンミューン風の共和精神」

 「三池は戦後はじめて躍り出た労働者の自然発生的な武装闘争となった」

 「これは私たちの「赤軍」であるのだろうか」「三池解放軍」

 「何人も予想せず、評価すら与えられないままにあらわれ、消えていこうとしている人民軍は愉快な軍隊であった」

 

  cf. 針生一郎「われらのなかのコンミューン」(『新日本文学』19608月号)

同  「三池コンミューン」(『新日本文学』19609月号)

 

 「定型」――民衆の自発的な運動のエネルギーを、既成の枠・鋳型に流しこんで固めてしまう党・組織の呪縛。

 

 谷川雁は、「戦後」もグアムで孤独にゲリラ戦を継続し、19605月に「発見」されて帰還した2人の日本軍兵士(皆川文蔵、伊藤正)に強い関心を寄せている。

 

「安保闘争のすべてよりも南の藪のなかに十六年生きぬいた二人の兵士の物語のほうがすばらしい」

「天皇より十五年おそかった降服……このニュースは私の内臓をかきみだした」

 「状況に参加しようとすればするほど参加の意欲が失われていく状況、裏がえせば、状況に参加しまいとする姿勢でしか参加できない状況。この感触にはおぼえがある。軍隊から帰ったばかりのときがそうだった。もしそうであるなら、私はいま二度目の復員をしたことになる」

「彼ら〔グアムの兵士〕の帰還と私の二度目の復員とはなぜ重なりあうのか。きっと私のなかにまだ帰りつかない一人の兵士が住んでいるのであろう」

「われらの中なるグアムの兵士と対話することなくしては、安保闘争は三池闘争の水準を越えられない」

 

  cf. 戦時中の谷川雁は、陸軍の砲兵隊に徴兵(学徒動員)され、千葉で敗戦を迎える。

 

  「当時の私はこう考えていました。――おそかれ早かれ、昭和二十年の末までにはアメリカ軍が本土上陸をし激戦になるだろう。日本の正規軍は潰滅し、指揮系統に自発性をもつゲリラ戦になる。この自発性がたとえゲリラ自体はほろんでも将来の核になりうるはずだ。だから日本軍の崩壊過程に自分もつれだ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事態がそうならなかったことはご存じの通りです。一夜にして武器を棄てる数百万の軍隊があったという事実は、その後の私を大いに狂わせました」

   (「戦中二十歳の手紙」『十代』19878月号、『現代詩手帖』20024月号再録)

 

 60年安保・三池闘争の渦中で、谷川雁は共産党を離党し、除名される。

 異質なものの横断的な交流をめざす、自由で開かれたサークル文化運動のあり方は、共産党の前衛主義・民主集中制・「統一と団結」の組織論と矛盾し、衝突してしまう。

 

 その後、筑豊・中間市の失業坑夫たちの運動に深くコミットしていく。

 大正行動隊・大正鉱業退職者同盟の「大正闘争」。

 

60年代には、共産党から「自立」する思想・運動のカリスマ的リーダーとして注目され、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く。

 

◆3、サークル文化運動から「大正闘争」へ

 

 1947年 福岡の西日本新聞社で労働争議を指導し、解雇される。

この年、日本共産党に入党。

 1950年~ 結核の長期療養生活にはいる(故郷の水俣、阿蘇中央病院など)

     「民衆」「農村」「故郷」について思索を深め、「原点」の思想をあたためる。

 1954年 「原点が存在する」発表。詩集『大地の商人』刊行。

 1958年 筑豊・中間市に移住。上野英信・森崎和江らとともに雑誌『サークル村』創刊。

     『原点が存在する――谷川雁詩論集』刊行。

1960年   『工作者宣言』刊行。 

1960年 『谷川雁詩集』刊行。

 

 1950年代後半~60年前後

  社会党/共産党/新左翼/無党派社会主義

  革新勢力の分裂、民衆の既成政党への不信、潜在しながら渦巻く社会主義への希望。

  党派・組織をこえた幅広い連携をめざす「統一戦線論」。「国民文化会議」結成。

 

 「労働者と農民の、知識人と民衆の、古い世代と新しい世代の、中央と地方の、男と女の、ひとつの分野と他の分野の間に横たわるはげしい断層、亀裂は波瀾と飛躍をふくむ衝突、対立による統一、そのための大規模な交流によってのみ越えられるであろう。共通の場を堅く保ちながら、矛盾を恐れげもなく深めること、それ以外の道はありえない」

  (「さらに深く集団の意味を――『サークル村』創刊宣言」19589月)

 

 「今日は資本主義によって破壊された古い共同体の破片が未来の新しい共同組織へ溶けこんでゆく段階であって、そのるつぼであり橋であるものがサークルである」

 「未来社会に生残ることが予想される前衛政党、労働組合、協同組合、青年婦人の組織、その他の大衆組織はことごとくある面で一種のサークルである。……これら異種の共同組織の境界もとり去られてゆき、しだいに融解しあってただ一個のコンミューンになってゆくであろう」(同上)

 

 『サークル村』――九州各地のサークル雑誌をネットワーク状に連携させるメディア。

南部九州の貧農たちと、北部九州の労働者・坑夫たちの交流・コミュニケーション。

 ・上野英信――筑豊各地のサークル文化運動に関与。

        『地下戦線』『炭鉱長屋』『月刊たかまつ』(水巻)、『裸像』(中間)、

『まきやぐら』(山口県・宇部)、『山田文学』(山田)など。

 ・谷川 雁 ――熊本・阿蘇・水俣など南部九州のサークル文化運動に関与。

        『新熊本文学』『炎の眼』(熊本)、『阿蘇』『火口河』(阿蘇)、

『詩雷』『水俣詩歌』『直線』(水俣)など。

 ・森崎和江――女性たちの雑誌『無名通信』発行(195961年)

 

 cf. 九州の『サークル村』と並行して、全国サークル交流雑誌の発刊も企画。

「国民文化会議」で呼びかける(ただし実現せず)

 

 「大衆と知識人のどちらにもはげしく対立する工作者の群……双頭の怪獣のような媒体を作らねばならぬ。彼等はどこからも援助を受ける見込みはない遊撃隊として、大衆の沈黙を内的に破壊し、知識人の翻訳法を拒否しなければならぬ。すなわち大衆に向っては断乎たる知識人であり、知識人に対しては鋭い大衆であるところの偽善の道をつらぬく工作者のしかばねの上に萌えるものを、それだけを私は支持する。そして今日、連帯を求めて孤立を恐れないメディアたちの会話があるならば、それこそ明日のために死ぬ言葉であろう」 (「工作者の死体に萌えるもの」19586月)

 

 

 「私は自我を、私のなかに侵入した他人とみなすことでヴァレリイの道を十年前に棄てました」「自分のうちに侵入した他人を、ただそれだけを語れ」

  (「工作者の論理」19591月)

 

 「大衆を思想は私有されるものだという呪縛から解放することが私たちの思想運動の目的であり、きっぱりと思想の無署名性の側へ賭ける態度は必然的に運動をうみだす」

  (「観測者と工作者」19596月)

 

 1960年 共産党からの離党・除名。

大正行動隊・大正鉱業退職者同盟の「大正闘争」へ

坑底占拠・地底のコミューン。

 北九州労働者「手をにぎる家」建設運動

――各地に支援組織、「後方の会」(東京)、「抵抗の会」(大阪)

  東京に「自立学校」設立。

 

※失業坑夫たちは、各地のヤマ(炭坑)を渡りあるき、八幡(北九州)・釜ヶ崎(大阪)・山谷(東京)へ。さらに原発労働者や南米への移民となり、「流民」として離散。

 

 失業坑夫がむすびつくコミューン・「根拠地」づくり。

「大正鉱業退職者同盟」は、交渉権をもつ労働組合として認定される。

 「筑豊企業組合」結成(1963年)。「中間公共事業自由労働組合」結成(1970年)。

就労の確保や、集合住宅の造成など、生活の場の「自立建設」運動。

 

◆4、九州(水俣・筑豊)/朝鮮/沖縄の「流民」たち

 

「部落民、癩、火山灰地の貧農、離島の漁民、在日朝鮮人などはもっとも象徴的な塞外の民であり、歴史はつねに彼等を真の主役とすることによってうごき、そしていかなる動乱も彼等を根底から変化させ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かのようにみえる」

  (「ここはとかげの頭――夷狄風の貪欲な美しさ」19595月)

 

 「辺地の農漁民、流浪のプロレタリアート、特殊部落民、癩病、在日朝鮮人……これら差別という形で疎外を受けている者たちのなかにのみ範型としての日本がある」

  (「日本の二重構造」19613月)

 

 ※水俣という場

  日本窒素肥料株式会社――1920年代以降、朝鮮における化学工業開発を推進。

  戦後も水俣を拠点として「植民地的開発」を継続。戦後日本の化学工業と高度経済成長をささえながら、「水俣病」をうみだしていく。

 

 ※筑豊という場

  北部九州――日本最大の八幡製鉄所。石炭は筑豊や三池の炭鉱で採掘。

  日本資本主義を底辺でささえる労働者・坑夫が集中する地域。

  全国各地の貧しい農村、被差別部落、沖縄、朝鮮からの「流民」が出会う場所。

 

 サークル文化運動による「集団」・コミューンづくりの試み。

 日本社会の共同体・「集団」のあり方が、その正負の両面をふくめて問いなおされる。

 

 日本社会の「二重構造」、アジア的共同体(ファシズムの温床/水平な連帯感覚)

非ヨーロッパ世界・アジアにおける「近代」のあり方。不均衡な矛盾。

 その矛盾・葛藤を、日本社会の「周辺」、九州(水俣・筑豊)/朝鮮/沖縄の連関に内在しながら問いかえしていく。

 

 「周辺」にゲリラ戦の「根拠地」を築き、農村から都市(市民社会)を包囲していく毛沢東主義にもつながる近代批判の思想。非ヨーロッパ世界・アジアにおける共産主義。

ただし、農村共同体を拠りどころとする単なる農本主義やパトリオティズムではない。

 

民衆(原点)と党(前衛)、農村と都市、共同体と市民社会の間をつなぐ思想・運動。

異質なものを交流させ、横断的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によって、主体と感受性を変革し、「集団」をつうじて文化革命をめざす。

「工作者」は、不可視の「原点」と「前衛」の間をつなぐメディア。

 

 cf. 上野英信――筑豊・炭坑に根を下ろし、坑夫たちの労働・生活を描くルポルタージュを書きつづける。そして、「流民」となって離散し、南米に移民していった失業坑夫たちを追跡取材。

 

 cf. 森崎和江――筑豊・炭坑における日本人/沖縄人/朝鮮人の出会いと摩擦・葛藤について、思索を掘りさげていく。

    森崎は、在朝日本人(植民者2世)として大邱で育ち、戦中・戦後に九州に移住。

    朝鮮/日本の間で葛藤をかかえ、日本の閉鎖的な共同体への強い疑念をいだく。

 

 ※谷川雁自身は、1965年に筑豊をはなれて東京へ。以後、一般のメディアには詩や批評を書かず、「沈黙」した詩人としてカリスマ性を高める。

  ラボ教育センターに入社し、英語学習の教材として「物語テープ」を開発。子どもたちの「集団」的な「テーマ活動」「人体表現」のオルガナイザーとなる。

  1980年代以降は、「ものがたり文化の会」を結成。宮沢賢治の童話を、子どもたちが「集団」で表現していく「人体交響劇」へ。その頃から、再び批評を書きはじめる。

  1965年前後の屈折(連続と断絶)

人々の身体の感受性や風景の陰影が、高度経済成長によって摩滅していく転換期。

 

◆参考文献

 

・『谷川雁セレクション』全2巻(岩崎稔・米谷匡史編、日本経済評論社、2009年)

・谷川雁『原点が存在する――谷川雁詩文集』(講談社文芸文庫、2009年)

・米谷匡史「「流民」のコミューンを幻視する――「運動体」としての谷川雁」

(『道の手帖 谷川雁』河出書房新社、2009年)

・  同  「〈運動体〉谷川雁の軌跡――一九六五年前後の屈折」

(谷川雁研究会『雲よ――原点と越境』3号、20105月)

 

・思想の科学研究会編『共同研究 集団――サークルの戦後思想史』(平凡社、1976年)

・松本健一『谷川雁 革命伝説』(河出書房新社、1997年)

・松原新一『幻影のコンミューン――「サークル村」を検証する』(創言社、2001年)

・池田浩士「サークル村の内と外――〈戦後〉が終わったとき、〈われわれ〉は……」

(『文学史を読みかえる6 大転換期』インパクト出版会、2003年)

・大嶽秀夫「ポストモダン思想家としての谷川雁」

(『新左翼の遺産――ニューレフトからポストモダンへ』東京大学出版会、2007年)

 

・『現代思想』200712月臨時増刊「戦後民衆精神史」

・ヂンダレ研究会編『「在日」と50年代文化運動

――幻の詩誌『ヂンダレ』『カリオン』を読む』(人文書院、2009年)

・鳥羽耕史『運動体・安部公房』(一葉社、2007年)

・  同  「サークル誌ネットワークの可能性

――『人民文学』と『新日本文学』から見る戦後ガリ版文化」

      (『昭和文学研究』52集、20063月)

・佐藤泉「いかんともしがたい植民地の経験――森崎和江の日本語」

(『国語と国文学』200611月号)

・ 同 「共同体の再想像――谷川雁の「村」」(『日本文学』200711月号)

・ 同 「集団創造の詩学――森崎和江『まっくら 女坑夫からの聞き書き』」

     (『社会文学』30号、20096月)

・水溜真由美「同化型共同性の拒絶――森崎和江と炭坑」(『思想』931号、200111月)

・  同  「一九五〇年代後半のサークル運動と小集団論」

(北海道大学『国語国文研究』128号、20058月)

・  同  「森崎和江と『サークル村』――一九六〇年前後の九州におけるリブの胎動」

      (『思想』980号、200512月)

・  同  「石牟礼道子と水俣――ゆらぐ〈共同体〉像」

   (北田暁大ほか編『カルチュラル・ポリティクス196070』せりか書房、2005年)

・  同  「谷川雁の共同体論とサークル構想」上・下

(『思想』1021号・1022号、200956月)

・  同  「サークルネットワークとしての『サークル村』」

(『北海道大学文学研究科紀要』129号、200911月)

・茶園梨加「炭鉱夫が炭鉱夫の生活を書くということ

――山崎喜与志作品はいかに読まれたか」

(『九大日文』9号、20073月)

・  同  「戦後サークル誌にみる文学の役割――北部九州のサークル誌(1)日炭高松」

      (『九大日文』13号、20093月)

・  同  「北部九州におけるサークル運動と朝鮮人

――上野英信「あひるのうた」が提起する問題」

(日本近代文学会九州支部『近代文学論集』35号、2009年)

・坂口博「女をよこせ――「無名通信」を読む」(『敍説』10号、19947月)

 

・『筑豊争史』(大正鉱業退職者同盟、1972年)

・『洞海公共自労三十三年の歩み』(福岡県洞海公共事業自由労働組合、2002年)

・第3期『サークル村』全12号(20032007年)

 

・森崎和江『まっくら――女坑夫からの聞き書き』(理論社、1961年)

・  同  『非所有の所有』(現代思潮社、1963年)

・  同  『闘いとエロス』(三一書房、1970年)

・  同  「民衆意識における朝鮮人と日本人」「二つのことば・二つのこころ」

(『ははのくにとの幻想婚』現代思潮社、1970年)

・  同  「民衆における異集団との接触の思想――沖縄・日本・朝鮮の出逢い」

(『異族の原基』大和書房、1971年)

・森崎和江・川西到『与論島を出た民の歴史』(たいまつ社、1971年)

・上野英信『追われゆく坑夫たち』(岩波新書、1960年)

・  同  『出ニッポン記』(潮出版社、1977年)

・石牟礼道子『苦海浄土――わが水俣病』(講談社、1969年)

・  同  『流民の都』(大和書房、1973年)

・石牟礼道子編『水俣病闘争 わが死民』(現代評論社、1972年)

・渡辺京二「流民型労働者考」(『小さきものの死』葦書房、1975年)

 

 

 

.많다 경우가 칭하는 이라고(六全協)로쿠젠쿄우 줄여서. 회의이다 결정되었던 포기가 무장투쟁방침을 정하고, 농촌과 공장에 많은 세포를 파견하는 한편, 무장투쟁방침을 내세웠던 것에 대해, 그러한 무장투쟁방침의 식의 포위한다 도시를 농촌에서받았던 영향을 혁명에 중국 일본공산당이(日本共産党 第6回全国協議会) : 전국협의회 6 일본공산당 [4]

[3] (역주) 일본 공산당은 1950년 이후 분열된다. 소감파(所感派, 쇼칸하)와 국제파(国際派, 고쿠사이하)는 그때 분열된 파벌 중 하나이다. 1950 1 6일 코민포름(Cominform)의 기관지에 발표된 논문인 일본의 정세에 대하여(日本情勢について)은 정치국원 노사카 산조(野坂参三)의 연합군에 대한 해방군 규정, 점령 하에서의 평화 혁명론을 비판한다. 이 비판은 스탈린 체제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일본 공산당 정치국이 1 12일에 반론의 형태로 일본의 정세에 대하여에 관한 소감(日本情勢についてする所感)을 발표했다. 소감파(所感派)라는 명칭은 이 논문 이름에서 유리한다. 그러나 코민테른에 이어 중국 공산당도 일본 공산당을 비판했기 때문에, 당내에는 비판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소감파와 국제파로 분열되었다.

[2](역주)자주관리사회주의(自主管理社會主義,self-management socialism): 중앙집권적이고 계획경제적인 국가사회주의를 시정하여 국가권력의 관리를 노동자·농민·기술자의 자주적인 관리 하에 두는 것. 구 소련의 사회주의가 지닌 관료적이고 국가적인 방식이 56 형가리 사건, 68 체코슬로바키아, 80 폴란드의 자주관리공화국을 요망하는 연대노조운동(帶勞組運動) 등을 통해 비판되면서, 대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는 48 6 28 스탈린 체제에 의해 파문당하고 새로운 사회주의의 이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49 말에 정부와 노동조합중앙은 공동포고를 발표하여 기업체에 노동자평의회를 설립하고, 50 6 27 의회는국가경제기업과 상급경제연합(上級經濟聯合) 대한 근로자 집단에 의한 관리에 관한 기본법 가결하고, 노동자자주관리를 유고슬라비아경제의 기본적 관리원칙으로 삼았다. 경제의 자주관리는 정치영역에까지 연장되어 52 4 1인민위원회에 관한 기본법 의해 의회체제 안에 생산자원(生産者院) 설치하였다. 53 1 13일에는사회정치제도의 기초에 관한 헌법적 법률 채택되면서 자주관리는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의 중심원리가 된다.

[1] (역주) 광동코뮨(コミュ): 192712 10일 중국 공산당 광동성 위원회의 지도 아래 중국 공산당원들은 광동에서 봉기를 일으킨다. 이 코뮨에는 김산을 비롯하여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있던 조선인 약 200명이 조선 혁명운동을 위해 가담했고, 대다수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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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타니가와 간 상의 유언 - 그대, 좀 더 미쳐라 / 무시가 무네히로 file 무시가sang 2010.08.21 3897
58 와다씨...는 [3] 은선 2010.08.21 3496
57 [4회 국제워크숍] 공지 :: 8.22(일) 14:00 [공작자'라는 미디어서클 '집단'의 문화혁명] 발표안 file 번역팀 2010.08.20 3236
» [4회 국제워크숍] 공지 :: 8.20(금) 19:30 [타니가와의 코뮨주의 '원점', '공작자' 그리고 '유민'의 코뮨으로] 발표안 번역팀 2010.08.20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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