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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눈엔 '서울'이 보이나요?"

[프레시안 books] 이와사부로 코소의 <유체 도시를 구축하라>

기사입력 2012-02-17 오후 5:53:15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현경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도시를 묘사하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하나는 도시의 모습,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고정된 형태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혹은 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도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사상이나 격자형으로 깔끔하게 자리 잡은 도로와 조각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진 기하학적 건축물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파리에 대해 묘사하며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 세느 강변의 서점들과 뤽상부르 공원의 정연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지 않은가? 여행자들만이 아니라 도시에 대해 말하고 쓰는 건축가나 도시 계획가들, 혹은 도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도시사가들의 입에서 나오는 도시 또한 대개 이러하다.

칼비노는 이런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지만, 이는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런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도시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골목 뒤편에서 진행되는 사람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보여도 금세 사라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시 계획가들이나 건축가들에게 도시 계획이란 도로와 건축물들을 보기 좋게 배열하고 정리하는 것, 곧게 뻗은 직선의 도로와 용도별로 분리된 토지들, 거기에 세워 올린 건축물, 그리고 그 사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 같은 요소들의 집합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도시 계획가나 건축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라는 장대하고 아름다운 계획이 그렇다. 격자형의 도로와 자동차의 속도를 위해 최대한 길게 연장한 도로와 블록들, 도시의 중앙에 높이 솟은 건축물들과 주변의 낮은 건축물들, 건축물들 사이의 공원 등등이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다. 거기에 그는 도로를 달릴 자동차들까지 그려 넣었다.

그러나 그 투시도에 칼비노가 말하는 '사건'이나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솔직한 투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을, 남들의 눈에 보여주고 싶은 것만은 그려 넣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시계바늘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들은 그려 넣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런 솔직함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그려진 투시도가 도시를 실제로 만들고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경우, 그렇게 증폭된 순진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불행을 야기하는 악덕이 될 수 있다. 가령 20세기 내내 전 세계 도시에서 진행된 개발이나 재개발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그처럼 멋지게 그려진 형태를 축으로 구상되고 집행되었음을 안다면, 그리고 그 재/개발 속에서 힘들게 살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거리의 문화들, 골목마다 존재하던 생기 있는 삶의 장면들이 지저분하고 보기 싫은 형상과 함께 제거되었음을 안다면, 그 불행이나 고통의 크기는 아무리 과장해도 실제에 값하기 어려운 것일 게다.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라는, 정말 외형에 대한 고려만을 콘셉트로 삼은 정책들은 물론, 여기저기 들쑤셔놓은 재개발로 소란스런 서울에 살고 있다면, 이는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보르헤스는 어떤 소설이든 그것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가장 언급하지 않게 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시 또한 그렇다. 그것이 애초부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場)인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일 게다. 도시의 역사란 그런 삶이 만들어온 것들의 역사일 것이고, 그런 삶을 만들어온 거리와 공간의 역사일 게다. 이는 거리와 공간, 건축물조차 그 삶을 통해 볼 때에만 제대로 보일 것임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으며, 순간적이기에 보여도 금방 사라져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도로와 건축물들뿐이다. 도시를 '건축'가들이 다루는 것은 이런 사정을 보여준다. 도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도시는 사실 보이지 않는 도시다. 보이는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의 본 모습이다.

도시에 대해 쓰면서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써서 보여주려고 했던 사람은 아마도 제인 제이콥스였던 것 같다. 지금은 고전의 된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유강은 옮김, 그린비 펴냄)에서 그는 도시의 형상이 아니라 거리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그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도시의 생기를, 그런 생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길거리를 오가는, 대개는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 지나치는 시선과 동선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사건들의 반복…. 도시의 삶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1960년대 초에 씌어져 '고전 중의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스의 이런 관점이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타고난 경험주의자인지라, 아프기 전엔 아픔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충고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길거리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사는 거리에서 어떤 긍정적인 종류의 삶, 이웃과의 관계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면, 혹은 사진이나 책, 도면 위에서 도시와 건축을 생각해본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제이콥스의 책에 스며들어있는 제안의 간절함과 긴요함을 체감하고 스스로 새기긴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그렇다고 해도 통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도시의 문제를 사고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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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체 도시를 구축하라!>(이와사부로 코소 지음, 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 펴냄). ⓒ갈무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쓰는 것, 그것은 그래서 드물고 희소하다. 이와사부로 코소의 <뉴욕 열전>(김향수 옮김, 갈무리 펴냄)과 <유체 도시를 구축하라>(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 펴냄)는 도시에 대한 이 희유한 책들에 속한다. 거기서 그가 쓰고 있는 것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알고 내 눈에 보인 뉴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 보이지 않는 뉴욕이었고, 통상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뉴욕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 책들은 칼비노 책의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도시'에 대한 책이었다. 그 도시를 만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자들의 삶에 대한 책이었다. 화려한 미술관과 화랑들, 빛나는 이름의 예술가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만들어지고 그 거리를 만들어가는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멋지게 보이는 것을 만드는 '젠트리피케이션'-흔히 재개발로 번역되지만, 젠트리, 즉 상류층화하는 것이고 상류층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고 해체되는 안타까운 과정에 대한 책이지만,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의 틈새에서 사람들이 사는 '거리'에서 다시금 시작되며 그 공간을 다른 것으로 변용시키는 민중들의 힘과 에너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빅토르 위고는 우리에겐 노트르담 성당이라고 알려진 파리 성당을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적이 있다. '기괴하다'라는 뜻의 '고딕'이란 말이 시사하듯, 19세기 이전에 고딕 성당은 예술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몇몇 낭만주의자들 때문이었다. 위고 또한 그에 속했다. 그래서 그는 성당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소설을 썼다. <노트르담 드 파리>, 흔히 <노트르담의 꼽추>라고 알려진 소설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성당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는 건축을 단순히 건축물로만 보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게다. 잘해도 '배경'이나 무대 이상이 될 수 없을 게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건축이란 건축물이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위고가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했던 것이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코소가 <뉴욕 열전>에서 한 것을 나는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뉴욕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종의 전기와도 같은 책. '뉴욕 열전'이란 제목이 직접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그는 뉴욕이라 불리기 이전부터 거기 살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스쾃(무단점거)했던 이민자들에 대해 쓴다. 뉴욕은 처음부터 이민자들의 도시였다. 새로 들어온 신입 이민자들을 고참 이민자들이 억압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지속된, 사실은 불편하고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코소는 그 억압과 핍박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만들어간 사람들, 그들이 말려들어간 사건들에 대해 쓴다. 그래서 그에게 뉴욕은 세계 금융 자본을 지배하는 자들의 도시가 아니라 이민을 통해 항상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밀려들어오며 새로운 삶의 장을 만드는 민중들의 도시다. 그가 '치마타'라는 일본어를 살려 그대로 쓰고 싶어 했던 '거리'가 그 책의 일관된 중심이 되고 있음은 이런 이유에서일 터이다. 그 거리에서 벌어지는 삶 속에서 민중들이 주고받는 '감응'(affect)-'정동'이라 번역되어 있다-의 다양성은 흑인, 게이, 노동자, 매춘부 같은 말에서 나 같은 좌파 지식인이 흔히 떠올리는 것조차 크게 동요시킨다. 그 동요의 끄트머리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감동이 퍼져오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의 감응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꿈은 이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힘을 집합적 신체를 구성하는 힘으로 변환시켜 도시를 통제하려는 고체적 도로와 벽들, 모든 것을 고체화하려는 권력을 범람하고 깨부수는 유체적 신체를 구성하는 것인 듯하다. 그가 <뉴욕 열전>에 이어지는 책에 <유체도시를 구축하라>라는 멋진 제목을 붙인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책에서 그가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통해 도시에 접근하려는 것도, '공간 형식으로서의 유토피아'와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유토피아'라는 두 개의 대개념을 통해 도시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대립에 다가가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가령 공공예술이나 공공성이란 말을 잡식하고 있는 국가 권력을 드러내고 공공의 것을 공통의 것-나라면 공동성이라고 표현했을텐데-으로 변환시키는 민중의 '계쟁'을 주목한다.

이 대개념은 도시를 계획하고 만들며 통제하려는 자와 거리에서 도시를 만들어가는 자 간의 대립, 도시를 지배하는 가시적인 형태와 그게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 도시를 '결국은' 잡아먹고 마는 자본과 그에 쫓겨 반복하여 쫓겨나면서도 다시금 삶의 장을 만들어가는 민중의 대립을 요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탈산업화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를 예술가들이 개조하여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로프트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화랑들이 밀려들어오고 그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게 되면서 예술가들을 쫓겨나게 되고, 그 결과 화랑도 파리 날리게 되면서 부유층의 주거지로 바뀌어간 뉴욕 소호의 역사는, 도시의 한 구역이 인기를 얻었다가 쇠퇴해가는 생태적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는 홍대 인근 지역의 역사, 즉 클럽이나 돈을 못 버는 밴드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여 신촌을 대신하는 지역으로 부상했지만 그에 따른 임대료의 상승으로 인해 거대 자본에 의해 그것들이 대체되면서 쇠락의 기울기를 그리기 시작한 역사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예술에서도 이런 대결의 과정을 주목한다. 통념적이고 지배적인 것을 돌파하려는 예술가나 작품이 갖는 특이적인 에너지를 어느새 전시물로 바꾸어 중성화시켜버리는 미술관의 흰 벽, 모든 것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모든 작품을 판매를 위한 일시적 전시물로 만들어버리는 흰 벽의 효과에 대한 미시정치학적 비판은, 예술화의 포섭 과정에조차 말려들어가지 않는/못하는 거리의 그래피티들에 대한 애정 어린 분석과 짝을 이룬다.

이런 분석은 단지 '민중 미술'에 대한 일방적 '찬사'와 다르다.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미술의 주도권을 수립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에 대해 예술의 사건성과 행위적 성격을 강조한 로젠버그 사이에 새로이 예각의 대립을 만들어지는 이론적 통찰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펙터클(구경거리!)로서 도시나 예술을 만들어가려는 시도에 반하여 민중 자신이 즐기는 페스티벌로서, 혹은 그 스펙터클을 깨는 퍼포먼스로서 민중의 삶에 주목하려는 것, 그것이 아마도, 니힐리즘이 쉬이 덮쳐올 수 있는 이 반복적인 대결의 역사에서 그가 긍정의 시야를 잃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이민자들의 삶의 흔적, 신체의 흔적 속에서, "슬픔의 역사를 역류하기 위한 기쁨의 출발점을 보고자 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그것을 예전에 벤야민은 '감각적 각성'이란 말로 설명한 바 있었다. 벤야민 말대로 감각적 각성을 야기하는 것, 가장 흔하게 얘기하면 그것은 종교와 약물의 힘을 비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종교의 힘이나 약물의 힘을 빌려 보이지 않는 이것들의 흔적과 역사를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물 없이는 못 볼 것이 아니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여도 사라지는 것을 마음에 새겨둘 수 있는 애정, 보이는 것의 광채가 닿지 않는 음지로 직접 걸어 내려가는 용기(!),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도 우울과 허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힘과 열정, 아마도 그것이 그의 감각적 각성을 야기한 요인이었을 게다. 그렇기에 그가 저 흔적들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자!'고 하는 제안을 누구도 허황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진경 수유너머N 회원·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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