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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혹은 후기] 홍양무현의 통점 혹은 a pain point

yumichoi 2018.08.10 22:17 조회 수 : 501

홍양무현작가의 “통점” 혹은 “a pain point”

 

 

최유미/수유너머104

 

 

홍양무현은 자신이 만났던 성폭력 생존자들의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 그들이 몸으로 겪어내었던 시간들을 피부에 켜켜이 쌓인 통각세포들의 기억으로 표현하고 싶었단다. 그 시간들이 단일하지 않은 만큼 그 기억들은 어떤 총체화의 시도도 거부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떤 혼합된 상태, 엉켜있는 상황의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 모순들을” 그리고 싶었고 그 때문에 관객들이 헤맬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통점”이라는 제목, 특히 “a pain pont”라는 영어 제목은 그가 의도했던 부자연스러움, 모순들을 하나의 총체성으로 쓸어 담아버리는 것이었기에 전시가 시작되기 전에 『작가노트』와 제목의 부조화가 이상하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통점2.jpg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총체화의 시도가 보이는 두 점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a pain point”로 환원되지 않는 감응을 불러일으켰다. 투명해 보이는 수채화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연필로 뾰족뾰족한 패턴을 빽빽하게 그려넣었음에도 통점이라는 제목이 없다면 오히려 나른하고 몽환적으로 보이기까지 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성적인 유혹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것은 작품이 그 작가가 정한 제목을 배반해 버리는 사태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 배반을 축하해야 할지, 아니면 전시가 실패했다고 해야 할지 그것이 일 순 애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전시를 실패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 배반을 축하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작가가 제목으로 정한 “통점”을 메타플라즘(metaplasm)해서 읽을 수도 있겠다 싶기 때문이다. 메타플라즘은 단어의 문자나 음을 더하거나 빼고 혹은 뒤집기도 하고 바꾸기도 해서 그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실패이기도 하고 재형성이기도 하고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일탈이기도 하다. 사실 언어란 언제나 걸려 넘어지는 것 아닌가. 작가는 자신의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에 커다랗게 한글로 통점이라고 쓰고 있었고 a pain point를 병기했다. 나는 a pain point라는 난감한 제목에는 눈을 감기로 했다. 그것은 결코 하나일 수 없기 때문이다.

 

 

“통점”의 “통”으로 발음되는 한자의 대부분의 뜻은 고통과 서러움이지만, 다른 뜻들도 있다. 가령 송윤지씨가 읽었듯이 연대를 의미하는 ‘통할 통(通)’자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아갈 통(捅)’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있는 ‘으름덩굴 통(蓪)’이 될 수도 있고, 북을 두드리는 ‘두드릴 통(㪌)’이 될 수도 있고 꿰뚫는다는 의미의 ‘밝을 통(洞)’이 될 수도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밝을 통(洞)자’는 혼돈한 모양 동(洞)자의 의미도 있는데, 그건 뭔가를 꿰뚫어 안다는 것은 그 명료함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돈이 실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홍양무현의 작품들은 “통점”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것은 고통으로 단일화 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고통과 서러움을 표현한다고 해도 상당히 다른 빛깔들의 수많은 통점들이다. 뿐만 아니라 관객을 두드리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표현했고, 생존자의 고통이 작가 자신에게 스며들어버려서 그 자신과 도무지 분간이 안가는 그 흐릿하고 모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작가의 작품은 말끔하지만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비평한 사람들이 말한 대로 적절한 거리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몰입이 덜 된 문제였을까? 다시 『작가노트』로 되돌아가서 질문해보자. 홍양무현은 과연 생존자의 피부감각 켜켜이 쌓인 혼란스런 상황을 성공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들이 혼란해 한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타인의 고통을 그렸다고 했을 때 종종 제기되는 질문은, 그들의 고통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봤느냐 라는 것이다. 그 질문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욕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그것에 공감한다면 가능하다는 말일까? 그 몸은 내 몸이 아닌데 신이 아닌 다음에야, 아니면 잘난 척 하는 남근적인 발상이 아닌 다음에야 남의 몸의 그 무수한 기억들을 무슨 수로 표현한단 말일까? 게다가 a pain point라는 단일 점으로...

 

 

통점.jpg

                                  Unit 05, 50*42.5cm, 종이에 수채 물감과 연필, 2018

 

 

 

차라리 나는 작가가 자신에게 스며들고 말았던 그 고통들을 표현하려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몸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의 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몸이지만 그의 몸은 이미 수많은 것들의 구성물이다. 가령 그날 아침 먹은 밥과 들었던 음악과 엄마의 잔소리, 그날 마신 커피냄새와 길고양이의 조우, 혹은 버스에서의 불쾌한 시선 등등 그것들이 다시 그들의 고통과 조우하면서 한 겹의 피부를 한 겹의 기억을 한 겹의 세포층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실 작가는 자신의 피부에 쌓인 그 수많은 통점의 기억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존자의 상황을 그리겠다고 했기에 관념성으로 미끄러지곤 했다. 작가가 그 자신의 피부에 깃든 그 기억들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랬다면 “a pain pont”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에필로그] 신진작가 릴레이전을 마치고

홍양무현 작가의 작품 『통점』을 끝으로 5월 29일부터 8월6일까지 릴레이로 있었던 신진작가전이 끝났다. 지난 봄 연구실을 휩쓸었던 “그 일”의 와중에 전시를 준비해야 했던 작가들은 엄청 힘이 들었고, 거의 탈진 상태에 빠져있던 나와 연구실사람들도 전시를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했다. 이것은 용량(capacity)의 확장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고, 통점(痛點)을 유발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나 해러웨이는 내게 복수종생물들의 복잡한 관계성을 “실뜨기”라고 가르쳐주었는데, 우리가 겪었던 “그 일”은 나에게 “실뜨기”와 흡사하게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 친구와 했던 실뜨기놀이를 잘 하지는 못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매번 약간의 긴장을 했고 딴에는 조심스럽게 매듭을 잡아서 새로운 패턴을 시도했지만 손가락 한쪽이 빠진다거나 해서 실이 풀려버리기 일쑤였다.

실뜨기는 한번은 주도적이 되었다가 또 한 번은 상대가 실뜨기를 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것이고,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만든 어쩌면 문제가 있을 패턴을 넘겨받아서 거기서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실이 풀려버리기도 하지만 또 유용한 패턴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계집애들 사이의 재미있는 게임이었을 때는 실패도 깔깔거릴 수 있었지만, “그 일”처럼 우리의 실수였든 ,무능이었든, 혹은 누군가 지적했듯이 오만이었든 제 차례에서 실을 놓쳐버린 것은 대참사였다.

나는 이번 3번의 전시회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매번의 전시회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데 참여하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대단히 부담되고 두려웠던 것이 사실이어서 강의핑계를 대고 빠져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 일”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터였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일”이 소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아마도 그 실패를 이어받은 새로운 실뜨기의 속개(續開)일 터,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지도 않은 것이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패턴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면적인 화해라든지 갈등의 중재라든지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예기치 않은 아주 부분적인 매듭의 회복이라도 꾀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아픈 실패를 계승하고 산다는 것에 대해 계속 배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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