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마리 :: 미술전시, 음악감상, 영화상영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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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마리 신진작가 릴레이 개인전

 

2018년 문화복합공간 소네마리의 첫 전시로 ‘여성’의 언어를 담은 전시가 선정되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은 시작이다. ‘미투’ 선언 이후, 가려졌던 목소리들이 세계의 벽들과 부딪혀가며 울리고 퍼지기 시작했다. 울림은 ‘일회성’도 ‘지나가는 흐름’도 아니다. 모든 옛것이 흔들려 무너지지 않는 이상에야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담론의 장에서 소외되고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어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울림은 성을 불문하고 온 세상의 무디고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다. 그리고 균열 난 세계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낼 것이며, 미시적인 감정과 감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세 명의 신인 작가들은 각기 다른 매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윤결 작가는 제3 세계의 억압 속 여성들의 욕망을 전시장 공간에 덮어 자연스럽게 한국 모습과 비교하게 하고, 이 다은 작가는 디지털 매체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가를 추적하며 이미지 담론을 선점하고 지배하는 ‘주체’를 겨냥해 카메라의 프레임에 날카롭게 담아낸다. 그리고 홍양무현 작가는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감정과 촉각의 결들을 종이 위에 섬세하게 스미게 한다. 사실 이 이야기들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며, 언제나 사소하기에 언급될 수 없던 또 하나의 ‘삶’이다. 하지만 이 일상에서 더는 오늘과 과거의 시간이 같은 감각을 공유할 수 없게 되고, 삶이 머무는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되었으며, ‘누군가’의 호소가 더 이상 ‘사소함’에 머물 수 없는 상황에 진입했다. 기존의 평화로운 듯 보였던 삶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과하고 난 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통점> 홍양무현

 

 

홍양무현 작가는 전시의 이름을 a pain point, 통점이라고 붙였다. 성폭력 사건에 등장하는 신체이든,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상품으로 유통되는 신체이든 간에, 통각을 느끼는 신체 자체로서의 피부나 감각들은 쉽게 배제되곤 한다.

작가는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을 통해 신체의 모습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며 이야기를 듣는다. 수채화는 이러한 듣기의 과정에서 소리들을 조금 더 증폭시켜 준다. 수채물감은 종이라는 바탕에 스며드는 질료이다. 연필은 종이 위로 신체의 돌기, 주름, 털 등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수채물감과 연필을 통한 작업은 자신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형상의 속삭임들을 듣는 작업과 같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신체의 목소리들은 여기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화폭 속에서, 많은 것들이 덧씌워진 상징의 언어가 아닌 신체로서의 감각들이 표현된다. 작가의 미시적 감각들을 찾아내는 작업은 무딤을 누렸던 이들에게 강한 진동으로 다가간다. (고산. 소네마리)

 

Unit 05, 50x42.5cm, 종이에 수채 물감과 연필, 2018 (2).jpg

Unit 05, 50*42.5cm, 종이에 수채 물감과 연필, 2018

 

홍양무현의 《통점》

 

의학적으로 ‘통점(痛點)’은 인간의 피질에 분포되어 있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점을 뜻한다. 통점에 가해지는 외부의 자극은 통각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이는 인간이 통증을 느끼는 과정이다. 통각신경은 매우 미세하기 때문에 인간의 피부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신경의 전달 속도는 다른 감각에 비해 느리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촉각이다. 인간은 ‘뾰족한 것에 손가락이 닿았다-아프다’와 같이 촉각과 통각을 연결해 자극을 인지하며, 아픈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과 후천적 학습에 의해 뾰족한 것으로부터 곧바로 손을 떼는 반사적인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자. 통점을 ‘고통을 느끼는 지점’이라고 할 때, 심리학적으로 통점의 의미는 트라우마(trauma)의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겪었던 충격적인 일과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또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기억이 소환될 경우, 당시의 정신적 고통이 되살아나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통점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상황, 즉 장소, 사물, 말, 행동 등이 될 것이며, 때로는 소리나 냄새 등도 통점이 될 수 있다. 또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경험에 의거해 발생하는 것이기에 통점 역시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앞서 설명한 통점의 두 가지 의미는 홍양무현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큰 전제가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생물의 피부를 탐구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작품 속 이미지는 실존하는 특정 생물의 피부를 육안으로 관찰해 재현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몇몇 작품에서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기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피부조직의 현미경 사진 또는 피부의 단면을 확대한 모형 같은 것을 참조한 상상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작가가 이와 같이 피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 보자. 그가 강조하는 것은 ‘생물의’ 피부 즉 ‘신체의 일부로서의’ 피부다. 그렇다면 결국 홍양무현이 주목하는 것은 피부라는 기표를 통한 신체의 이미지화다. 결과로서의 이미지가 갖는 낯섦을 뒤로 하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왜 신체인가?

 

작가에게 신체는 여러 가지 경험이 축적된 일종의 레이어(layer)다. 그 중에는 통증의 경험도 포함된다. 피부는 우리 몸의 외피(外皮)이기에 곧 몸 자체이며, 우리의 뇌는 피부에 분포된 통점들에 의해 촉각적인 고통의 경험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고통을 동반할 때, 피부로 경험한 촉각적 고통은 더 이상 신체적인 통증에 그치지 않는다. 홍양무현은 이러한 신체의 신경체계에 근거해, 피부라는 매질을 통해 신체적 통증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결국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통점이란 ‘우리의 몸에 촉각적으로 각인된 정신적 고통의 감각점’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촉각적 트라우마tactile trauma다.

그렇다면 무엇이 촉각적인 트라우마가 될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골목길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성이 내 가슴을 스치며 지나가놓고 사과는커녕 뒤돌아보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다. 또는 이런 것이다. 지하철 옆 자리 남자의 팔꿈치가 옆구리에 닿아서 몸을 피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몸을 기대온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크고 작은 성추행은 여성의 몸에 촉각적으로 기억된다. 뾰족한 것에 닿으면 반사적으로 손을 떼는 것처럼, 피부에 축적된 경험은 여성의 몸을 점점 움츠러들게 만든다.

홍양무현은 이러한 여성들의 촉각적 트라우마에 주목한다. 전시 작품의 대부분을 이루는 <신체감각도> 시리즈는 “촉각적 트라우마가 시각적으로 발현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시각에 의해 인지되는 평면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촉각적인 ‘인상’을 준다. 뾰족한/ 울퉁불퉁한/ 미끌미끌한/ 끈적끈적한/ 축축한 등의 촉각적 형용사가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의 경험을 추상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한편, <사물> 시리즈는 일상적인 사물들이 흉기로 변했을 때의 감각을 본래 사물에 투영해 그린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체로 불쾌하고, 찝찝하고, 소름 돋는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다. 홍양무현의 작업은 불편하리만큼 명백히 촉각적 경험에 대한 공감을 유도한다. 그리고 여기서 ‘통점’의 새로운 의미가 파생된다.

작가는 오랜 기간 성폭력 상담소에서 많은 여성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관한 증언을 들어왔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공감과 동조는 홍양무현의 작업 전반을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다. 개인마다 경험은 다르고 따라서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통점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단지 피해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쾌한 현실들과 모두의 신체에 아로새겨진 폭력과 상처들은 일정 부분(어쩌면 그 이상으로)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홍양무현의 작업은 이 지점을 건드린다. 온 몸을 휘감는 공포와 불쾌와 혼란의 기억들, 무질서하고 모순된 감정들과 그 안에서의 고통의 시간들. 성폭력 생존자들의 타임라인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과 감각들이 뒤엉켜 되풀이된다. 작가는 흰 종이 위에 서걱거리는 연필로, 말하지 않아도 피부로 전해지는 불안과 괴로움의 파동을 그려 낸다. 그리고 종이에 물감이 스미듯, 그 고통에 스며든다. 곧 사라질 것 같은 엷은 수채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공감 또는 동조의 경험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봉인되었던 촉각적 트라우마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여성의 신체에 각인된 통점들을 아우르면서, 그의 작업은 여성 연대의 ‘통점(通點)’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송윤지, 미술비평)

 

■ 작가노트

나는 내가 만났던 생존자들의 상황을 그려내려 시도한다. 예를 들어,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 이전과 이후를 매우 다르게 구성하며, 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역사를 재편성하기도 한다. 자기 탓을 하다가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도 하는 것은 생존자에겐 그러한- 무질서하고 혼재된- 타임라인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피부가 닿았던 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좁혀들게 하는 기억으로 고정되어 자꾸만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수한 감각들을 동원한다.

나는 성폭력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상태에 깊이 동화되었다. 생존자들의 감정이나 신체적 감각이 마치 종이가 물에 젖듯이 자연스럽게 내게 흘러들어 왔다. 그 아픔은 액체처럼 부드럽게 내게 스몄고, 어느새 내 일부가 되었다.

상담은 동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법들을 제시하고 대안들을 제안해야 하니까, 일정 부분이상 빠져들어서도 안 되지만, 생존자들의 말을 실제로 듣는 것은 중요하며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하기’를 들으면서 신체적, 감정적으로 동화되면서도, 판단은 그와 다르게 내릴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에는 저항해야 하지만, 전략적으로 생활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는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방법이 어느 상황에 걸맞는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러한 힘을 믿는 것이 여성주의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혼합된 상태, 엉켜있는 상황의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 모순들을 나의 그림에서 보고 충분히 휩쓸리고 함께 헤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에서 빠져나와 분리되었을 때, 그 때 볼 수 있는 세상은 예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 작가소개

 

홍양무현 HongYang, MooHyun / plentifullbeer@gmail.com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에서 2년여간 근무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3년간 미술반을 맡아 가르치고 배웠다. 여성주의 시각예술공동체 언니모자의 구성원이다.

사람들, 특히 소수자들이 다르게 감각하는 상황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각기 다른 입체적인 상황을 목격하여 상황을 포괄적으로 드러나게 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유효한 도구로써 관찰에 사용된다. 신체를 기준으로, 개인마다 각기 다른 감각의 흐름이 사회로 향할 때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수합해내는지,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감각은 어떻게 다르게 흐르는지에 대해 다투려 한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104는 인문학 연구를 넘어, 다양한 관심의 촉수를 뻗어 일상과 공존하고 다양한 방식의 접속이 발생하는 공동체 실험의 장으로 복합공간 소네마리를 마련했다. 지난 6월 <개소를 위한 우정전>을 시작으로 복합공간 소네마리는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예술가, 다양한 공동체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접속의 장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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