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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안전략의 주체는 누구이며,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 맑스주의 다시 읽기: 이행의 아포리아와 주체형성을 중심으로, 

박영균(진보평론 편집위원장), 화요토론회-

 




박기형/수유너머N 세미나 회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낯선 것 같은 맑스주의

 

한국 사회에서 맑스주의가 어떤 이론들보다도 열정적으로 논의되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맑스주의는 냉정하리만큼 무시되고 있는 ‘낡아빠진’ 이론이 된 듯하다. 그럼에도 ‘맑스주의 다시 읽기’라는 이번 화요토론회 주제가 낯설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사회전반적인 이유로는 최근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론 요즘 수유너머N에서 맑스 입문 강좌, 맑스주의 강좌, [맑스저작선집]세미나, [자본]세미나, 이철교 <자본> 강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세미나 등 맑스 관련 세미나와 강좌가 마구 열렸고, 나 역시 느닷없이 형성된 맑스 읽기 열풍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화토 주제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수유너머N에서 맑스 세미나 성원들을 보면 특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다. 바로 맑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거나 그의 이론을 들어보거나 접해보지도 못했을 20대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젠가 책장에 꽂아둔 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맑스주의 책들을 다시금 꺼내든 80년대 학번들도 많지만, 유독 이들이 눈에 띄는 이유는 어쩌면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맑스주의는 별로 인기 있는 공부꺼리가 아니었고, 그래서 20대들에게는 맑스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화요토론회에서 발표자가 말하는 ‘이행의 아포리아에서의 주체형성에 관한 논의’도 과거 이러한 논의를 열정적으로 탐독했었던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혹은 이제는 거대한 담론을 논의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누군가에게는 구태의연하게, 전혀 이러한 내용들을 접해보지 못했던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21세기 대안전략의 주체는 과연 적-녹-보라의 연대인가?

 

그렇다면, 이번 화요토론회와 관련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발표자가 이야기하는 이행의 아포리아에서의 주체형성에 관한 논의는 어떤 내용인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발표자는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의 미래를 위한 대안 전략의 주체는 연대를 통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때의 연대는 각기 다른 모순에서 출발하여 노동을 상징하는 ‘적’, 환경의 ‘녹’, 성정치의 ‘보라’라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기반 한 세력들 간의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적-녹-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담지 하는 운동지형이자 운동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간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이행의 아포리아에서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발표자는 21세기 대안전략의 주체는 적-녹-보라의 연대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나아가 이러한 주체 형성을 위해서는 노동패러다임에 대한 극복과 투쟁 그리고 각각의 패러다임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토론시간에 이러한 발표자의 주장에 대해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이라는 공통된 모순이 전제된다고 해서 적-녹-보라의 연대가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장애인 투쟁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 운동이나 적-녹-보라라는 개별 패러다임에 포착되지 못하는 사회문제 및 세력들도 현실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과연 적-녹-보로 상징되는 주체의 결집이 다양한 운동을 포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다시 말해 적-녹-보라고 하는 연대적 주체는 특정한 운동조직일 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운동의 다양한 흐름들을 여전히 담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문제제기였다.

이상의 반론들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지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의 주체는 누군가가 형성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형성되는 것인가? 발표자의 말대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한다면 적-녹-보라라는 특정 운동들을 연대하기 위해 그들의 외부에 당과 같은 주체를 상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련의 질의응답 과정 속에서 적-녹-보라라는 주체들이 형성되어 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이들이 특정 형태의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합의하고 조율하는 ‘소통’의 방법만으로 이들 간의 연대를 추동시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운동의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이제 이러한 질문들을 안고 다시 논의의 주제로 돌아 가보자. 그렇다면, 누가 21세기 대안전략의 주체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운동의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운동의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예컨대, 최근의 밀양 송전탑 사태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나타난 운동의 주체들은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나타났다. 이를 구체화 시켜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의제들이 제기된다. 그리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투쟁을 진행해오던 세력들과 다른 문제들에 주목했던 세력들이 그리고 전혀 관심이 없던 대중 속에서 이를 계기로 해당 문제에 주목하게 된 사람들이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모이는 것이 바로 연대적 운동 주체의 형성과정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청광장, 청계광장에 5~10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각각의 진보 세력들을 연대할 수 있게 했던 이유는 홍대 거리 앞에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피켓을 들고 침묵행진을 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이 아닌가. 이러한 운동과 연대는 특정 운동조직이 특정 패러다임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침몰하는 배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다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멀뚱히 지켜봐야만 했던, 그로 인한 죄책감과 비통함에 젖은 사람들, 비극적인 사건을 사전에 막지도, 사후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으면서 그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지도 않는 정부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와 정부의 요구에 불응하고 가만히 있지 않고 거리로 나왔기 때문에 시작되었던 것은 아닌가.

 



 

맑스주의가 낯선 이들은 ‘주체 형성 논의’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운동과 연대의 시작이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직화나 세력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제도적으로 고쳐나가기 위해서도 그러한 노력들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큰 사건이 담지 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제반의 문제들도 여전히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을 요구할 그리고 다양한 사회 제반의 문제에 주목하게 할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대적 주체’의 형성은 발표자의 주장처럼 적-녹-보라라는 특정 세력 간의 연대나 이를 추동할 ‘가정된 주체’의 존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발표자의 논의에 당연하게 수긍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조직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그리고 그 투쟁을 촉발하고 지속시킬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를 형성하도록 추동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에 이를 구태의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반감과 함께 그저 각자의 문제들에 우선 집중해서 열심히 사유하고 운동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를 생소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데에서 운동과 연대가 출발할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어떤 하나의 명제만이 우리에게 정답일 수는 없으며 여전히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 수학문제와 같이 세상에 답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21세기의 연대적 운동 주체는 과거의 이론이 아니라 지금의 흐름 속에서,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밀양 송전탑 사태, 세월호 참사 이후에 나타났던 일련의 촛불집회와 운동의 움직임들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출발해서 21세기 대안전략의 주체가 누구이고,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를 사유해보는 것이 좀 더 나은 방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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