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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적인, 너무나 시국적인 식민지 지식국가(knowledge state)

 

     2014년 12월 23일 화요토론회

발표자 김인수

<식민지 지식국가론>

 

 

심아정/수유너머N 회원

 

 

 

 

 <1920년대의 빈번했던 소작쟁의에 대한 공판 기사(1930년대로 접어들자 소작쟁의는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1. "질문을 만들어낼 수 없는 시대"의 지식인들

 

발표자 김인수는 ‘식민지’적 특성을 대안적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이전에 ‘주권’에서 가로막히는   상태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속성은 "근대국가 일반"의 속성으로도 파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주권’이 무화되는 지점으로서 식민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서는 식민지적 상태라는, 얼핏 보면 비시국적인 테마를 지극히 시국적인 것으로 다루고자 하는 동시대성이 엿보인다. 1990년대 후반,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과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읽으면서 문제의식을 확장시키는 사유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그에게서, 1980년대와 90년대의 간극을 1920년대와 30년대의 그것과 관념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정치적 패배 이후 우리 사회의 행보를 모색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1930년대의 서사에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지점들이 남아있다. 이 시기는 사회를 파악하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능력이 매우 고양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만들어낼 수 없는 시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식민지적 상태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여기를 살아내고 있는 2015년의 우리들에게도 매우 시국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울림이 있는 질문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김인수가 우리들과 그 자신을 향해 던진 화요일 밤의 화두였다.

 

1930년대 중반 재조(在朝)일본인 지식집단은 주로 경성제국대학의 교수와 지식관료였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지식생산에 있어서 그들과의 협업체제를 통해 내선일체를 요구 받았다. 이때 연구질문의 주도권(initiaives)과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질문을 구성하는 것은 권력의지이고, 질문에 대응하여 답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질문자는 이미 답을 제약하는 권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수는 이러한 총력전기의 현실적 맥락을 고려하여, 재조일본인 지식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정식(印貞植)이라는 인물에 주목해왔다. 지식인이 ‘지식의 생산자’임에 주목하여 그들의 이론적 전환을 포착할 때, 지식인 이론가 인정식을 정치적 주체로 소환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지식생산수단’인 이론과 방법을 탐문하는 것이 된다.

 

 

2. 식민지 아카데미즘의 풍경, "통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말하지 말라!

 

1930년대는 ‘통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인정식을 비롯한 전향 후의 조선 지식인들이 통계치를 들고 나와 논쟁을 벌이게 되는 사태를 김인수는 ‘식민지 아카데미즘’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아카데미즘이라는 제도는 고유한 문법과 장(場)의 논리가 있고 입회에 자격이 필요하며 방법론적 공유가 요청되는 자기검열의 장소였다. 지금의 학계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이로써 조선 지식인들의 투쟁은 현장에서 벗어나 아카데미즘의 내부로 전이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혁명가가 아닌 전문인으로 전환되면서 식민국가가 만들어낸 통계자료를 그대로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 일본의 자료 안에 전제된 개념과 범주를 비판하고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작업을 치열하게 수행했다는 측면만큼은 김인수가 그들을 전사(戰士)라고 까지 명명하는 하나의 명분이 된다.

 

식민지 지식인들의 ‘통계논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김인수는 ‘수를 통한 통치’가 가능해진 ‘지식국가"(knowledge state)의 출현을 역설하고, 이를 통해 ‘범주화의 정치’를 말한다. 범주가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숫자를 모으고 통계적인 가공을 거치고 나면 공식적인 것이 되면서 힘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범주화’(categorization)는 우리가 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범주는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요청에 따라 늘 재구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범주로 집계되고 계량화되고 나면,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또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판단이 이미 구성된 범주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만들어진 사람들’(making up people)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주화에 포섭되지 않고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3. ‘사회적 평균’과 ‘균형’이라는 정치적 사고의 등장

 

김인수는 조사통계의 과학성에 대한 신화를 언급하면서 통계를 상대화시키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경계한다. 사실과 통계는 조사자의 관심에 따라 수집된 것이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며, 조사의 개념과 범주는 조사를 마친 후에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하기 이전 기획단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따라서 조사-권력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어떤 사회적 현실이 통계 데이터의 형태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 이미 어떤 기준에 의해 ‘사실’이라는 판단이 개입되어 무엇이 데이터로 등록되어야 하는지가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의 구성에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인의 한계는 조사자료 수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연구자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개념이나 통계 등을 실체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고, 일종의 재현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며, 따라서 자료의 생산과정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 또한 중요해진다.

 

김인수가 그의 연구를 통해 지식국가의 출현을 언급하는 시점은 1930년대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관계 및 갈등의 계수화와 ‘사회적 평균’과 균형’이라는 정치적 사고가 등장하게 된 바로 이 시기에 소작쟁의를 둘러싼 갈등의 해결방법 또한 달라졌음에 주목한다. 농정(農政)사회관계를 숫자로 환산하여 표상하고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소작쟁의는 이전처럼 고양되기도 전에 전국 또는 지방별 평균치에 맞추어 조정/타협되어 갔다. 이러한 양상은 지금 우리의 사회와 많이 닮아있다. 각양각색의 갈등이 그 각각이 다른 연유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자본가들이 제시하는 평균과 균형에 기반하여 그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그것에 맞춘 타협안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4. "지식국가"에 의한 "개념"의 정치에 대항하여

 

‘지식국가’란 지식이 권위를 갖는 국가다. 192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소작’개념이 1920~30년대에는 자연화된 예를 생각해 본다면, 국가는 관습에 근거하여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을 근거로 어떠한 ‘개념’을 관행화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의 정치는 지식과 권력 간의 관계를 응시하고 그것들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을 우리에게 재촉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식민지기 조사/통계 보고서의 생산과정을 분석하는 김인수의 지난한 작업은, 그 안에 개입되어 있는 권력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석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예비 학자들 중에서 자신들의 논거가 되는 1차 자료들의 생산과정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김인수의 문제의식은 연구자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사회를 향해서 ‘울림이 있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하나의 시국적인 촉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김인수, 「식민지 지식국가론-시론」, 수유너머N 화요토론회 발제문(2014/12/23)

김인수, 「이론연쇄(理論連鎖)와 전향⼀인정식의 경제론을 중심으로」,『사회와 역사』제96집(2012년)

김인수, 「총력전기 식민지 조선의 사회과학 비판⼀인정식의 비교에 관한 소고」,『아세아연구』제56권4호(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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