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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스케치] 고병권이 다시 읽은 니체

조지훈 2015.01.27 23:12 조회 수 : 14

고병권이 다시 읽은 니체


2014년 11월 25일 화요토론회

발표자 고병권 (수유너머R)

<사건의 위대함과 사소함에 대하여: "언더그라운드 니체"를 쓰면서 든 이런저런 생각들>





조지훈 / 수유너머회원



 

 고병권과 니체라는 이름은 수유너머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이라면 따로 때어놓기 힘든 이름이다. 이는 단지 그가 니체 전문가여서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니체에 대한 수많은 강의와 몇 권의 단행본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고병권은 오히려 가장 진지한 얼굴로 니체의 말을 자신의 삶에 근거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누구보다도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나 니체와 함께 생각나는 이름인 것이다. 한 달 즈음 전에 행해진 화요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년 전 즈음 출간한 언더그라운드 니체에 대한 나름의 발제문을 자신의 삶 속에서 위치시켜보려는 감상문과 함께 찾아들고 왔다. 따라서 그는 어째서 또 다시 니체이고, 그것도 그 많은 니체의 저작들 중에서 서광이었던 것인지를 해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8년 만에 니체에 손을 댄 것, 그것도 서광에 손을 댄 것은 다름 아닌 그 책 서문에 나오는 언더그라운드광부라는 이미지에 꽂혔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즉 근거(Ground)의 아래(Under)로 파내려가는 광부의 이미지 속에서 다름 아닌 진정한 철학자(철학적 노동자가 아닌)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고병권과 니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언더그라운드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을 새로이 제안하는 것보다는,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을 통해 조명된 니체의 새로운 이미지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일전에 보았던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제안하는 전사, 즉 낡은 가치의 지반들을 부수기 위해서 망치를 휘두르는 화려한 이미지였는데, 서광속에서 언더그라운드를 이야기하는 니체는 그와는 사뭇 다른 소박한 이미지가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가치의 전도라는 니체의 테마가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가치의 전도가 단지 기존의 가치에 의문을 품고 맹렬히 공격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존의 가치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음미하는 묵묵한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서광속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태도를 단지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고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는 오래된 격언으로 이해될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혁명이 발발하고 우리가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을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의 문제가 가치의 전도에서 남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이 가치의 전도로 이해될 때, 우리는 혁명의 어떤 측면을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혁명을 통해 동원된 수많은 대중과 무수히 많은 유혈투쟁들? 가치의 전도라는 관점에서 혁명적 사건은 그러한 스펙터클보다는 이미 폭력적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에 사람들 마음속에 이미변화된 가치, 기존의 가치에 대한 질문에 있다고 말한다. , 사건은 스펙터클을 체험하는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스펙터클 이전에 삶 속에서 체험되는,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의문들 속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비에트가 붕괴될 때, 사실 사건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선언되는 19911225일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소비에트라는 낡은 가치가 해체되고 있었던 과정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소비에트의 해체를 지켜보는 수많은 목격자들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니체 적으로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 가치의 전도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식별한다는 것은 니체의 말마따나 거짓 불개가 뿜어내는 연기와 소란에 속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 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을 마주하는 것이다.

 




발표 이후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많았던 질문은 역시 사건의 식별이었다. 만약 혁명이 목격자에게 사건으로 식별된다고 했을 때 당사자에게는 체험되는 혁명은 사건이 아닌 것인가? 혹은 혁명적 사건이라는 것이 그렇게 늘 숙고하고 비둘기 걸음마냥 오는 것인가? 우발적인 요인들과 욱하는 마음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생겨나는, 혹은 그런 순간적인 충동과 우발로 인해서만 가능했던 혁명적 상황들이 있는데, 이는 니체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등등. 이에 발표자는 혁명이 당사자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당사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고 답변했다. 더불어 사건도 무엇인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특수한 시공간에 환원되지 않다는 것을 덧붙였다. 이는 혁명적 상황을 주도하기 위한 선동과 참여가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혁명을 참여한 사람들의 행위가 단지 연기와 소란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철학적으로 사건을 식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라고 했을 때, 당사자로부터 거리를 두고 좀 더 차분하게 볼 지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토론자가 보기에 고병권이 새롭게 들고 온 니체는 왠지 수도승 같다고 말했다. 니체의 이미지가 전사에서 수도승으로 변한 것은 발표자 자신의 체험과 8년이라는 세월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수도승 같은 철학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굳이 니체마저 수도승의 이미지로 만들어가며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서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언더그라운드, 지하에서 묵묵하게 작업하고 있는 사유의 광부를 수도승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혹시나 니체를 노쇠화 시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그는 즉각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고 웃으면서 발표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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