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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흐르는 죽음의 시대, "열사"의 정치학

 


2014년 12월 9일 화요토론회

발표자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죽음과 정치, 자살의 문화와 정치>



박임당/수유너머N회원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 달라”



자신의 시신을 무기로 노조의 승리를 염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 故 염호석 노동자의 이야기다. 오랜 기간 무노조정책을 일관하던 삼성, 거기서도 근무 환경과 처우가 유난히 악독한 비정규직이 다수인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조 활동을 하던 이가 사측의 표적탄압과 생계 압박으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일이 바로 작년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내에서는 이미 3번째 죽음이었다. 건당 수수료 등 수리 서비스 실적에 의거한 급여 산정 방식을 악용한 사측이 지급한 월급은 3월에는 70여만 원, 4월에는 41만원이었다. 삼성은 최소한의 생계조차 꾸려나갈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노동자를 몰아갔고, 그는 2014년 5월 17일 자결을 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서에서 자신의 죽음을 끼고 승리할 것을 남은 동료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그때쯤에야 눈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의미하는 것

 

故 염호석 노동자의 사인은 자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최소한의 생존이 불가능한 조건으로 그를 차 넣은 것은 삼성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의 의지에 따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의 유서에서는 노조원들에게 당부하는 조직차원에서의 메시지가 있었다. 한 개인의 자살은 대의명분을 가질 수 있을까? 그의 죽음이 대의명분을 품고 있다고 한다면, 이후의 상황은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가? 이러한 물음들이 그의 죽음을 감싸고돈다.

 

실제로 그는 죽음 이후마저 뜻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언론은 더 이상 그의 죽음을 대단히 다루지 않았고, 경찰은 각종 폭력과 거짓과 유가족 회유를 통해 시신을 빼돌렸고, 순식간에 화장해 버렸다. 와중에 시신을 지켜내려던 노조원들은 최루액을 맞았고, 그의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어느 화장장에서 화장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들을 떠나보냈다. 이러한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이 일이 불특정 다수에게는 더 이상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그럴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불타오르는 “전태일”은 더 이상 주목될 수 없는 것일까? 자살은 대의명분은 가질 수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시킬 정치적인 힘은 이제 잃어버린 것일까?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경찰은 왜 애써 염호석 노동자의 시신을 노조로부터 빼앗으려 애를 쓴 것일까? 죽음의 정치학은 정말 불가능한가?

 




자살의 계보학 : 열사의 정치학은 가능한가?

 

발표자 천정환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위에서 고민을 던져놓고 있었다. 자살이 지금 이 시대의 어떤 문제들과 만나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발표자는 현재 우리의 삶과 죽음은 돈이라는 가치와 미디어라는 수단에 의해 직조되고 있다고 밝힌다. 이전 사람들의 자살은 주변 지인들과의 연락이나 유서 등을 남기는 죽음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자살은 온라인상에서 예고되거나 중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을 쉽게 발화되고 매도될 거리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이처럼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은 공감이나 동정을 잃어버린, 무관심이 일반화 되어버린 사람들의 정서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이를 “자살의 후기 근대”의 특징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애도가 휘발되어버린 이 시대의 죽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죽음들이 맞닥뜨린 ‘이름 붙이기’의 문제와 정치화의 문제 등을 짚어나갔다. 그럼에도 역시 발표에서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여전히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쫓아가던 발표자의 답이었을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죽어간 노동자들의 죽음은 열사의 정치학을 가능케 했던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함께 드러난 문제들과 마주치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 해고 노동자의 죽음 이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죽음은 그 이전의 죽음만큼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발표자는 그 이유를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특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속물지배의 근성, 타인과의 단절된 관계, 청소년과 젊은이의 수많은 자살 사건들… 이러한 이유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무반응적인 자살 문화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사의 정치학에 대해 재고해보아야

 

그 어느 때 보다도 무거운 분위기에서 발표를 끝맺자, 질문이 이어졌다. 상당히 많은 사건들과 문제의식들을 담고 있는 이 발표에서 발표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자는 ‘열사’에 관하여 으레 해왔던 것들에 대한 비판적 점검과 코멘트가 필요해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현재의 사회적 조건들의 어려움을 밝히고, 죽음을 정당화 하는 투쟁 방식이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고민도 내 놓았다. 이에 한 참석자는 열사화를 통해 견뎌내는 유가족의 상황들이나 다른 방식들의 의미화가 여전히 불가능한 현재의 상황을 들어 질문을 던졌다. 때문에 여전히 죽음의 정치학은 현재에도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말이다. 발표자는 이에 죽음이 넘치는 사회에서 열사화가 수반하는 희생에 비해서 그 정치적 힘은 크지 않음을 말하며, 여전히 그 딜레마적 상황의 어려움을 드러내 보였다.

 

이는 발표자가 발표 중간에도 언급했던, 언어화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사건 그 자체에서 기인한 어려움으로 보였다. 발표자의 말대로 열사의 정치학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죽음이 아닌 다른 가능한 방식들을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의 어려움이 우리 앞에 언제나 놓여 있을 뿐이다. 발표주제에 응하듯 여느 때보다 무거웠던 발표장의 공기가 그 문제의 무게감을 보여 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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