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특강 :: 화요토론, 시민강좌, 심포지움 게시판입니다!


[화요스케치] 사회적 경제를 묻는다!

전성현 2014.10.01 15:00 조회 수 : 5

사회적 경제를 묻는다

(김성윤,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인 것의 문제』, 8/26 화요토론회)

 

 

 

수유너머N 회원 / 전 성 현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사회적 경제?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꽤나 큰 위기의식을 남겼다. 주주가치 중시, 이윤에서 배당의 증가, 파생상품과 자산유동화증권의 무분별한 발행 등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은 각국 경제의 거시적 궤도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민중들의 삶까지도 상당부분 망가뜨렸다.

   이로 인해 위기는 현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 및 대안사회에 대한 갈망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는 대중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업에게 까지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요청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경제였다. 우리가 지금도 흔하게 듣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투자,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공공예술, 협동조합, 마을 만들기와 같은 것들은 바로 이때 급물살을 타며 요구되고 진행되었다. 이렇게 열거한 것들 중 특히 마을 만들기와 협동조합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1990년대 말에 등장한 이 논의들은 2011년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장 취임 이후 주요 정책으로 입안되었는데, 이 정책은 사회적 경제라는 성격에 걸맞게 국가공무원이나 기업의 주도가 아닌 시민사회의 능동적인 실천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두 프로젝트에는 영리기업 뿐만 아니라 비영리 단체 및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으며, 이는 두 프로젝트가 이해관계라는 경제적 원칙에 의해 지배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의 실질적인 대안일까? 혹시나 우리는 사회적 경제의 실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회적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들은 대개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궤적만을 봤을 때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발표자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회냐 경제냐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은 주지하다시피 칼 폴라니이다. 칼 폴라니의 사회적 경제에서 주체들은 자신의 이익을 재고 계산하는 자가 아닌 총체적 인간으로 완성되기를 요청받는 자이다. 그것은 관계를 이익과 손해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으로 바라볼 때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체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바로 사회였고, 사회가 그 자체의 독립적인 운동을 통해 경제를 관리할 때만이, 경제는 비로소 사회에 묻어들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발표자는 묻는다. 우리는 칼 폴라니의 이론이 마치 사회적 경제의 일반인 것처럼 오해함에 따라, 사회적 경제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마을 만들기에서 비영리단체와 국가공무원 및 영리단체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마을 만들기에서 중요한 주체는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기업이다. 이런 저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의 중요한 목적은 분명히 이윤이다. 사회라는 수식어를 붙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이윤을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윤을 위해 기업들은 실제로 마을 만들기에 꽤나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현재의 마을 만들기의 재무적 원천 중 상당수가 바로 기업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을을 자율적으로 만드는 데에 큰 방해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마을 만들기에 종사하는 많은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여타의 관행들 때문에 자신들이 공무원인지 노동자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를 근거지은 폴라니의 이론과는 달리 사회적 경제의 실천들은 여전히 사회보다는 경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

   이러한 현실과 이론 사이의 모순은 사회적 경제의 실천적인 면모가 칼 폴라니 이론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것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회 그 자체의 특성으로부터도 기인한다. 이것이 과연 무슨 말일까? 발표자가 말하듯이 사회적인 것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다. 칼 폴라니가 강조하는 사회에는 사회부조의 측면(societas)이 강하고 이는 분명 사회의 특성 중 하나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것은 상호부조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크 동즐로가 『사회보장의 발명』에서 밝혔듯이 사회적인 것은 국가의 통치술의 일종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정치적인 투쟁에 의해서 자본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침해받는 것을 방지하고, 동시에 국가는 사회보장과 같은 사회적인 것을 정립함으로써 대중들과 자본가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사회적인 것과 경제의 대립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에 의해 잠식되어 버렸고, 사회적인 것은 대중들의 정치적인 투쟁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통치술의 일종으로도 활용되었다.

 

 

 

 

   발표자가 보기에 사회적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실천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인 것을 통한 국가의 관리라는 형식 아래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재무적인 이유 때문에도 그러하고 동시에 사회적 경제의 틀 자체가 이미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후자를 면밀히 살펴보면 일단 첫째로 마을 만들기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에 밑바탕을 둔 운동은 생산관계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을 만들기에서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은 국가와 기업에 의해 관리당하며, 협동조합에서의 주체들 또한 자신들이 속해 있는 부문의 전체적인 생산관계를 건들지 못한다. 가령 협동조합의 모범사례로 꼽힌 동네슈퍼 협동조합이나 대리운전 협동조합이 동네슈퍼 상권을 파괴하는 대기업이나 대기업 택시회사의 상시적 구조조정과 같은 문제들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아마 자신들의 협동조합을 지키는 수준밖에는 안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경제라는 틀 자체에 이미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자주관리나 베네수엘라의 국유화, 브라질의 대대적인 공공주택 보급 등과 같은 기업과 국가를 구조적으로 건들 수 있는 정치적인 가능성이 삭제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정치적 역량의 취약함이 사회의 상호부조적인 성격이라는 이론적 근거에 의해 가려진다는 점이다. 이는 마을 만들기나 협동조합 운동에서 종종 보이는 문제인데, 사회의 상호부조적인 성격만을 강조한다면 진정한 대안사회는 상호간의 도덕성에 의해 구성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관계의 역량으로 환원되고 그 속에서 국가나 자본과 같은 메타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메타구조 그 자체에 의해서 생기는 불평등이나 소외, 배제 등의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로 인해 원인과 책임이 의도치 않게 시민사회로 전가될 위험이 생긴다.

 

 

남겨진 질문들

   이렇듯 사회적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반대급부라기보다는 이윤추구의 또 다른 기술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경제는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할 무의미한 정책일까? 물론 발표자가 인정하듯이 사회적 경제정책에는 나름의 유의미한 성과가 있다. 분명 이 사업을 통해 시민사회의 주체적 역량이 십분 상승하고 있고, 또한 여타 민관사업에 비해 시민사회의 발언권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는 이 정도의 성과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발표자의 주요 논점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게 된다면 결국 자본주의의 주요 문제인 지대의 상승이나 생산관계의 재생산, 기업과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비대칭적 관계라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발표자는 이러한 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사회적 경제정책에 대중들의 역량을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공주택이나 사회적 서비스의 국유화 같은 곳에 대중들의 역량이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물론 이러한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들이 사회적 경제 담론에 의해 가려져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못한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일견 이것들이 사회적 경제에 비해 훨씬 대중들의 자율성이나 사회의 상호부조적 측면을 강화하는 모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국유화와 같은 국가주도의 모델이 갖는 난점들은 이 지면에서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이다. 이것과 사회적 경제와의 관계는 쉽게 비교할 수도 없고 쉽게 가치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비교연구는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2 [21회 화요토론] 성폭력 ‘피해자다움’ 강요와 2차 피해에 맞서기 file lectureteam 2018.09.05 518
101 [8월 열린강좌] 8월 26일 일요일 19시, <프루스트와 감각의 예술> 강사: 권용선 (무료) [3] 꽁꽁이 2018.08.15 1924
100 [20회 화요토론] 학병과 국가 (김건우) file lectureteam 2018.08.15 1370
99 [19회 화요토론] 영화는 타자의 언어가 될 수 있는가 - 김경묵감독 작품상영회 lectureteam 2018.08.03 974
98 [18회 화요토론] 유엔 인권 그리고 우리의 삶 (안윤교 UN인권관) file vizario 2018.07.13 1033
97 [17회 화요토론] 한국에서 한국의 SF하기 (이지용) file lectureteam 2018.07.05 772
96 [16회 화요토론]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는가?” -(권여선) file lectureteam 2018.06.14 1450
95 [15회 화요토론] 아름다운 현존의 순간적인 삶― 이브 본느프와의 시집 『두브의 운동과 부동에 대하여』(송승환) file lectureteam 2018.06.05 732
94 [14회 화요토론] 왜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가 [5] file lectureteam 2018.04.30 1468
93 [13회 화요토론] "위장취업자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지엠 사태를 바라본다 file lectureteam 2018.04.14 1310
92 [12회 화요토론] 인도주의 활동에서의 도덕적 딜레마 file lectureteam 2018.04.05 2202
91 [2018심포지움] 비트코인과 공동체: 후기 file lectureteam 2018.04.03 608
90 [2018심포지움] 비트코인과 공동체 file lectureteam 2018.03.23 2200
89 [2월 열린강좌]당신이 지젝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레닌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 | 2월 22일 목요일 저녁7시 | 무료강연 | 강사 최진석 file lectureteam 2018.02.08 2378
88 [11회 화요토론] 혐오발언 대 대항발언 (유민석) file vizario 2018.02.06 964
87 [1월 열린강좌] 증언자와 기록자, 함께 말하다-시베리아 일본군 내 조선인 포로 이야기 I 1월 20일(토) 저녁 7시 무료강연 I 강사 문용식과 심아정 file 큰콩쥐 2018.01.15 2170
86 [10회 화요토론] 주체화의 문제설정 (김현경) file vizario 2018.01.01 1019
85 [9회 화요토론] 예술노동 논쟁은 무엇을 놓쳤나? (오경미) file vizario 2017.11.29 673
84 [9회 화요토론] 예술노동 논쟁은 무엇을 놓쳤나? 발표자: 오경미선생님, 12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참가비 없음 file vizario 2017.11.29 612
83 [12월 공개강좌]다나 해러웨이와 함께 생각하기 - 최유미 | 12월 2일 토요일 오후 7시 00분 | 참가비 무료 [1] lectureteam 2017.11.25 139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