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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토스케치] 불안정한 사회에서 불안을 생각한다.

수유너머웹진 2014.06.16 05:54 조회 수 : 16




불안정한 사회에서 불안을 생각한다. 

-정우준, <두려운-낯설음으로서 불안: 하이데거 불안 개념의 비판적 고찰> 화요토론회





전주희/수유너머N 회원




불안하세요?


사람들이 북적대는 광장에서 소리쳐보자. 나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아마 열에 아홉은 ‘그런데?’라며 무심하게 지나갈 것이며, 나머지 한명은 ‘너만 그래?’라며 시덥지않은 피식 웃음을 흘려보낼 것이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불안하다는 것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불안함에 무기력하게 익숙해져 있는 상태로 ‘그 불안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내가 숨쉬고 있는 공기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공기를 단 일초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불안이라는 감정은 오늘, 사회를 둘러싼 집단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기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표자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불안이라는 기분은 우리가 부정하고 몰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순도 100%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공기는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 불안이라는 기분을 나름대로 긍정하며, 우리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긍정’과 ‘받아들임’이라는 단어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일종의 체념이나 정신승리법으로 불안한 삶을 돌파하자는 것이 아니니까. 발표자는 보다 더 깊이 묻고자 한다. 그가 하이데거를 데리고 온 이유는 ‘불안’이 병리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으로 몰아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다. 적어도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공동세계에 거주하는 현존재에게 근본적인 기분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이란 기분은 일상적으로 친숙한 세계에 대한 ‘편치않음’이다. 인간은 이 편치 않음 속에서 지금껏 살아온 세계가 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기존의 터(Da)에서의 관계맺음이 아닌 존재자들과 다른 연관맺음 이라는 새로운 터를 경험하는 ‘기쁨’을 선사받게 되는 것이다.” (발표문 중)



좀 뜬금 없지만 공장점거 파업이 딱 그렇다.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조립라인이 멈춘 대신 월급통장은 주식폭락하듯 끝도 없이 마이너스를 갱신한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일터와 삶은 고작 몇 달의 파업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그때 그 직장으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보장이 없을수록 더 큰 불안이 엄습해온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비장하고 비극적이기만 한다면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가 아니라, 생지옥일 뿐이다. 파업이 무화시켜놓은 공간과 시간안에서 다른 것들이 꼬물거린다. 하이데거가 말했다면 ‘엄습해온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들 그리고 동료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건 운명처럼 한번에 엄습해오지 않는다. 우리가 막은 정지의 시간과 저들이 버린 공백의 공간을 다른 것들로 채워넣는 것은 매우 작고 더디게, 꼬물거리며 피어오른다. 만들다 만 배의 철골 갑판에 갈매기가 날아들고, 물고기가 모여들만큼 고요해지면 노동자는 어부가 된다. 기계가 빠져나간 자리에 음악회가 열리고, 버려진 공구와 목장갑이 미술 재료가 되기까지 무료함에 몸부림칠 시간이 흐르면 노동자는 가수가 되고, 화가가 된다. 멀리는 97년 영암땅 한라중공업 파업이 그랬고, 가깝게는 지금 콜트콜텍이 그렇다. 






물론 하이데거가 불안을 이야기 한 것과 우리의 불안정한 삶은 멀다. 뿐만 아니라 다르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웅’이 짊어진 ‘역사의 운명’과 ‘민족공동체’라는 거대 스펙타클 액션 대서사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불안정한 삶이라는 인디다큐와는 장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를 반복하는 것은 온전하게 우리의 권리다. 발표자는 하이데거를 호출하되, 비르노가 하이데거의 불안개념을 이해한 ‘두려운 낯설음’으로 호출한다. 

하지만 발표자역시 불안정한 노동이 어떻게 위기이자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무겁지만 치열한 현실앞에 두려움과 낯설음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불안을 긍정한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침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발표자는 이 문턱에서 망설이고 있었고 그 조건들을 분석하고 철학적 개념을 변용시키고 섞이게 하는 과정은 앞으로 더 필요할 듯 보인다. 우리가 발표내내 말했던 것은 불안정한 삶의 돌파구가 안정적인 노동과 직장으로의 회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의 익숙한 세계를 무화시키는 어떤 사건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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