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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힐 듯 좁은 방. 그래도 우리는 더불어 산다

-화요토론회, 동자동 쪽방촌(사랑방) 이야기(1)-

 

 

 

 

장 희 국/수유너머N 회원

 

 

 

 

좁은 방

 

"여러 가지 일에 치여 지친 몸을 이끌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내집 앞에 도착 한다. 이제야 쉴 수 있다며 힘겹게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눈앞에 서 있는 벽이다. 그리고 고개를 채 돌리기도 전에 좌우의 벽이 한눈에 같이 들어온다. 방에 들어온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방안이 나의 숨결로 꽉 채워진다. 내가 내뿜은 이산화탄소에 질식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고민한다. 다시나갈까? 하지만 나가도 갈 곳은 없다. 내가 서울 땅에서 온전히 나의 것으로 보장받은 공간은 바로 이 좁은 방뿐이니까..."

화요토론회에서 동자동 쪽방촌의 사례발표를 듣고 있자니 나의 고시원 생활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말버릇은 집에서 잔다, 집에서 먹는다, 집에서 싼다고 말하기 전에 집에서 산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집은 삶의 일반성을 담는다. 집에서 산다는 것, 거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집은 매일매일 사야하는 편의점 물건이 아니다. 매번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오늘은 무사히 집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불안해한다면 그 집은 ’살만한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쪽방"이라 불리우는 특정형태의 집은 언제라도 맘편히 쉬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집’일까? 쪽방은 보증금이 없고, 매일의 사용료를 월세 혹은 일세로 내는 아주 작은 "방"을 뜻한다. 쪽집이 아니라, 쪽방인 것이다. 이것은 집이 아니다. 화장실이 없고 세면장이 없으며 부엌은 꿈꿀 수도 없는 4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방. 매우 좁고, 더럽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루라도 월세를 어기면 바로 내쫓겨야 하는, 매일 매일 구매해야만 잠잘 수 있는 고속터미널의 수면방 같은 곳이다.

동자동 쪽방촌의 공동체인 동자동 사랑방은 바로 이 현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쪽방 주민들이 맞이한 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현실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 바꿀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를 토론회 내내 차분하게 풀어낸다.

 

 

그들은 노숙생활과 쪽방생활을 "수평이동"이라 불렀다.(사진출처, 뉴시스, 네이버블로그)

 

 

수평이동

 

동자동 쪽방촌은 현재 남성주거인구가 90%가량이고 대부분이 1인가구이다. 이들 중 다수는 노숙과 노숙자 보호원(경험과 노숙자 쉼터 생활)의 생활경험이 있고, 절반이 넘는 인구가 생활보호대상자이며, 주민들 대부분이 쉰살이 훌쩍 넘었다. 발표를 맡아준 조승화 사랑방 사무국장의 말로는 동자동 쪽방촌의 대다수의 주민들이 나이많은 남성들로 채워진 것은 IMF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갑작스레 발생한 경제변화 속에서 희생된 자들이 내몰린 장소이며, 앞으로도 발생할 경제변화의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장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 현실은 열악하다. 2평 내외의 생활공간에 자리잡기 위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도구뿐이며,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50-60만원의 비정규적인 수입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막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쪽방의 거주인구 중 상당수는 노숙(비주거)과 쪽방 생활을 오간다. 막대한 생활비의 희생에 비하여 쪽방을 통해 얻는 편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수평이동’이라는 말로 이를 표현했다. 노숙-쉼터-고시원-쪽방의 무차별성을 강조하는 이 말은 쪽방의 열악한 환경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에게 주거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한다. 주거는 단순히 벽으로 구분되어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보다 넓은 공간? 위생적인 상태? 복지시설? 안타깝게도 그것은 국가나 자선단체의 지원이 없다면 당장 실현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발표자는 전혀 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그 해결방안은 노숙인 친구들이 그리워 노숙으로 돌아갔다는 한 주민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 우리가 사는 장소는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포괄적 공간이라는 것이 해결의 단초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주공간의 한계를 공동체를 통해 극복하려 하고 있다.

 

‘방’에서 ‘마을’로 : 동자동 사랑방의 탄생

 

동자동 쪽방촌의 공동체인 동자동 사랑방 의 시작은 마치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시작되었다. ‘어느날 동자동 마을에 한 명의 활동가가 쪽방 중에서도 유난히 작은 쪽방에 이사를 왔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말이다. 그는 이사를 하고, 자신의 쪽방 문앞에 ‘동자동 사랑방’이라고 떡하니 현판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는 그를 기이하게 여기는 주민들을 하나 둘 꼬여내어 술을 퍼 마시기 시작했다. 석달이나 지났을까. 그의 쪽방은 어느 새 거짓말처럼 진짜 사랑방이 되어, 주민들이 술자리를 하며 하릴 없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어느날 홀연히 나타난 그가 3개월이상의 시간동안 동네 주민들과 틈만나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만들고, 그를 배척하는 자들과 싸워가는 동안 차츰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동자동 쪽방촌의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좁은 방안에서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집 밖에서 확장된 자신의 공동공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결과로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공동체 조직이 형성되었다.

발표자는 이 동자동 사랑방의 활동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

“방 밖으로 일단 사람을 꺼내자, 밖에서 서로 만나게만 한다면 뭐라도 이루어 질 것이다.”

 

 

동자동 주민들이 탄생시킨 동자동 사랑방은 활발하게 공동체를 확장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협동조합-가난한 자들이 미래를 꿈꾸는 힘

 

동자동 사랑방은 주민들을 방 밖으로 이끌어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체육대회, 어버이날 행사, 마을 잔치등을 추진했다. ‘밥이 보약’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형성하여 일자리 창출과 주민 건강회복도 생각하였다. 이러한 공동 활동을 통해 그들은(주민들은) 고립되어 있던 방에서 벗어나 골목 한귀퉁이, 사랑방 앞의 모퉁이로 모이기 시작했고, 마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한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방 마을공제 협동조합’의 탄생이다. 쪽방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다수 주민이 제2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최저의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거나 신용불량자라 대출은 물론이고 저축도 하지 못한다. 갑자기 닥쳐올 병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금을 모아두는 것도, 쪽방촌을 벗어나기 위해 보증금을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아파도 내일 먹을 식비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명절을 맞이해 고향을 방문하기도 어렵다. 바로 이러한 악순환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랑방 마을공제 협동조합’은 주민들의 출자로 이루어졌다. 매월 5천원에서 1만원 가량을 출자금으로 내기까지 활동가들의 많은 노력과 무엇보다 주민들 스스로의 대단한 결심이 있었다. "20여만원으로 10여년을 산 사람들"에게 단돈 천원이라도 저축을 한다는 것, "내돈"을 "공동의 자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협동조합은 어디까지나 주민들의 자금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운영되어야 하며, 그럴 때에라야 손익계산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형 조합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위한 조직으로서, 그리고 주민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조직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빈민들의 협동조합은 지속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협동조합을 계기로 동자동 주민들은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들은 더 이상 경제중심의 사회로부터 버려진, 그래서 고립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사회,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함께 산다는 의미에서의 주거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동자동 쪽방촌에서 벗어나 보증금이 있는 임대주택을 얻는다거나 해서 보다 나은 주거공간을 획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 임대주택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쪽방촌으로 되돌아 온다. 임대주택에는 쪽방촌과 같은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동자동 사랑방을 오가면서 느꼇던 정이 없다. 그곳에는 내 삶이 없다. 비록 개인공간은 조금 더 넓어졌을지 모르지만, 내 생활공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

우리는 이러한 사례에서 주거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일정한 장소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 장소를 중심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들이 구성된다는 것을 포함한다. 나의 생활공간은 벽으로 구분된 영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나의 최소 생활공간이지 생활공간 전부가 아니다. 주거란 곧 삶의 터전이자,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형성된 삶의 질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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