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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서세화, 사진/김작가

 

지난 주 12일 토요일에 불온한 인문학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관계자 분들께서 맛있는 인절미를 준비해주셔서 심포지엄 중간 중간에 우적우적 먹었습니다. 뒤풀이도 있었는데 전날 목감기 코감기 원 플러스 원을 겪고 몸 상태가 저질이었던지라 아쉽게도 1부 까지 밖에 참가를 못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후기를?? 하시는 분들. . 나눠주신 자료를 참고해서 쓰고 있습니다. 사회는 고봉준 문학평론가 님이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처음 뵈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발표자 분의 발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시는 능력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너무나 핵심을 콕 콕 집어서 알맹이만 쏙 쏙 시원하게 정리해주셔서 참가자분들이 박수를 많이 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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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표자 분은 화 님이셨습니다. 수유+너머N에서 가장 재미있는(?) 문학 세미나를 이끌고 계십니다. 화 님의 발표 주제는 <인문학 담론의 유행과 소비양상>으로, 인문학 담론이 어떻게 유행하고 있고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발표하셨습니다. 화 님은 책 소개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를 하고 계셔서 그런지 방송계와 출판계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들을 예시로 인문학 담론의 유행 양상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인문학 유행 흐름이 어떻게 현재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의 흐름을 한눈에 훑어 볼 수 있었습니다. 화 님의 지적 중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돈을 경멸했던 인문학이 이제는 돈을 벌려면 인문학을 해라!’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돈과 닮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이 하나의 스펙이 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쇄신하고, ‘남들보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가치를 창출하는 실용 학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고의 방향을 유도하는 체계적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무서워 소름이 돋았습니다. 포스코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노골적으로 지식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지식근로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마저 기업의 성장을 위해, ‘경제 발전을 위해 더 나은 국가를 위해 쓰여져야 하는 곳. 모든 것이 실용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 모든 것을 실용의 논리로 가공하기를 강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배제 또는 제거해버리는 폭력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현실. 지금 인문학은 껍데기라도 살아남기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기업의 인문학 강좌 등 그 모습을 다르게 변형하면서 소비되는 것으로 생존의 타협을 본 것 같습니다. 반항하지 않는, 얌전한, 무언의 동의로 말입니다.

 

 

화 님처럼 저 또한 인문학이라는 고고한 이름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저또한 불온한 인문학과 수유+너머 세미나를 참가하기 위해 적지 않은 것을 투자했습니다. 첫 월급으로 불온한 인문학 수강 신청비를 냈고 강좌를 듣기 위해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일이 더 없기를, 회식이 없기를 조마조마해하며 다행히 제 시간에 연구실에 오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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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표는 술 취하면 러시아어로 말을 하신다는 전설이 있는 진석스키최진석 님의 발표로 <불온한 인문학, 또는 소비 시대의 반인문학>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최진석 님은 인문학 위기 담론의 핵심은 인문학의 과소 소비에 대한 논쟁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인문학이 안 팔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취업 시장에서 안 팔리는학과를 나왔고 직접 안 팔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겪었던 입장이라 이 말이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최진석 님은 대학 안과 밖에서 인문학이 과잉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바야흐로 인문학의 위기입니다. 사실 인문학 위기의 근원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 즉 변화된 시대사적 지형 속에서 다른 생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실패와 무능력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죠. 담론 생산의 물질적 조건들이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구태의연한 영광만을 재현하려고 애쓰는 인문학 생산자들이 소비자들만을 탓하며 위기를 운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이 새롭게 달라진 생산 조건을 적시해 주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생산은 다른 생산 즉,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로서의 생산에 대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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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문학은 어떤 이미지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어 왔을까요? 최진석 님은 이것을 인문학의 휴머니즘문화주의라는 신화를 통해 알려주십니다. ‘휴머니즘의 시대라 일컬어 졌던 르네상스 시대는 사실은 약육강식의 전쟁 시대였으며 보편적 인간애나 인간의 존엄 사상에 이끌리기는커녕 간교한 지략과 냉혹한 열정에 의해 추동된 영웅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란 어디까지나 근대의 신화요 근대의 휴머니즘이 자신의 기원으로 참칭한 상상적 이미지인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즘이란 근대에 정착된 일단의 이데올로기적 내용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허구적 이미지가 인간의 이름으로 가능한 모든 폭력과 지배, 세계의 소비에 이용되어 인간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굳건히 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문학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그가 속한 공동체의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원으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인문학에 어떤 과대한 목적을 투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근대 인문학이 밟아왔던 오류를 반복할 것입니다. 지금의 인문학은 건전한 시민 육성의 교육적 프로젝트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에 쏟아지는 수많은 요구들과 비난들, ‘인간을 찾고 시민으로 변화시키며 공적인 삶에 정착시키는 역할에만 머물 것인가? 인문학은 정체성과 동일성의 서사를 거부하고 희망위로의 인문학을 넘어서 통상적인 삶의 관성에 불편하고 낯선소음을 일으키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반()문학, 불온한 인문학이 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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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수유+너머N의 진중권, 정정훈 님이 <야만성의 인문학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발표해 주셨습니다. 정정훈 님은 불온한 인문학이란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들로 하여금 무엇보다 사유하게 하는 인문학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유란 이미 암묵적으로 전제된 원리나 규칙, 혹은 공준에 따라 논리를 전개하거나 개념을 구성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유에 암묵적으로 전제된 공준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그러한 공준의 체계에서 도출 될 수 없는 앎을 구축하기 위한 지성의 고투라는 것입니다. 불온한 인문학은 특정한 양상으로 코드화된 사유의 경로들로부터 벗어나고 그러한 방식과 코드들에 맞서 다른 사유의 길들을 만들어가는 사유 활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더불어 조성된 인문학의 위기 국면은 대학 인문학의 성격을 상당히 변화시켰습니다. 인문학적 사유란 국가기관이 인증한 권위 있는 학술지가 규정하는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코드화된 사유가 되었습니다. 인문학은 점점 더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만이 관심을 갖는 협소한 전문지식을 생산, 가공, 유통하는 폐쇄적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학 바깥의 인문학도 새로운 실용적 지식을 얻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나 각박한 삶을 견디기 위한 치유와 위로의 수단, 혹은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교양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불온한 인문학은 이와 같은 체계 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앎을 주조하는 원리들을 와해시키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유의 활동입니다. 불온한 인문학의 과제는 사유를 촉발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최진석 님은 들뢰즈의 말을 인용하셨는데요. 들뢰즈는 사유는 폭력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전제들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 어떤 사태에 직면하게 될 때, 기존의 앎의 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어떤 사태와 마주칠 때, 우리의 지성은 혼란과 고민에 빠지게 되며 비로소 그것들을 규명하기 위한 사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유를 촉발하는 낯선 사건과의 조우가 바로 폭력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온한 인문학이란 바로 기존의 지배적인 인문학적 사유의 이미지(창의력을 함양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교양이며 각박한 경쟁사회 속에서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는)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이죠.

 

 

 발표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인문학만큼 다채롭게 논의 또는 비판받는 학문이 있을까, 였습니다. 고고한 학문으로 취급받아 특수 계층만 접할 수 있었던 학문이기도 했다가 돈 못 벌어온다고 까이고 또 시대 상황에 적응한다고 미필적 고의로 상업에 이용당하면 타락했다고 까이고. 인문학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참 많아서 인문학은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서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문학의 개념이 좀 더 확장된 듯합니다.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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