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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우화 에세이. 2023. 2. 9. 탁선경

 

사이보그의 정체성

 

우둘투둘 시뻘겋고 딱딱한, 여러개의 뿔을 지닌 멍게. 울퉁불퉁하고 투덕한 겉모습과는 달리 멍게에게선 바다 향기가 나는데 속살을 먹거리로 사용하고 난 뒤에도 남은 껍질에는 바다냄새가 오랫동안 배어있다. 어렷을적 멍게를 처음 먹었을 때를 기억한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먹고 나서 멍게의 뿔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는데, 독특한 촉감과 식감, 그리고 향과 맛이 낯설고 신기했었다. 어린 나이에 이상하게 생긴 멍게가 싫을 법도 한데 초장에 찍어 호로록 잘도 먹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멍게 만큼이나 못생긴 해삼과 미더덕. 해삼은 생긴것도 징그럽고 씹으면 딱딱하다고 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부드럽진 않은데 또각거리는 질감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도 이 징그런 해삼을 참 좋아했다. 미더덕은 매운탕에서 성질 급하게 꺼내 잘못 씹으면 입천장을 다 데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셋 다 이상하게 생겼다. 아무튼 가끔 우리 동네에는 멍게와 해삼을 파는 트럭이 왔다 가곤 했다. 

그런데 작가는 왜 멍게를 작업의 소재로 사용했을까? ‘멍게’와 ‘나’ 

작가는 전시도록에 ‘멍게’를 차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어두고 있다.

“<멍게와 나>는 멍게의 독특한 생물학적 특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멍게의 유생은 뇌, 후각, 안점, 지느러미, 신경, 척삭 등 고등 기관을 가진 동물이다. 유생 시기에는 척추동물의 태아와 큰 차이가 없으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기관을 소화시켜버리고 퇴화한다. 일정한 성장 기간을 거친 후 뇌의 일부만 남겨둔 채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식물이 된다. 멍게는 동물과 식물을 선택할 수 있고, 성별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성생식, 무성생식이 가능한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에 대한 통념과는 거리가 먼 객체로, 인간의 관점이나 시스템, 관습을 해체하는 대상으로서 차용한다.” _ 대안공간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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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부터 줄곧 상대적으로 권력이 취약한 자들을 수동화하고 그들을 피해자의 위치에 두는 것은 그들을 영원히 노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약한자들을 무구성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지금과 다른 삶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왔다. 또한 ‘여성-동물-기계’가 융합된 사이보그 재형상화를 통해 전쟁과 정복의 야욕으로 혈안이 되어 있는 ‘테크노 사이언스’와 대결하고, 한편으로는 무구한 여성성에 호소하는 ‘정체성 정치’에도 대항하며 이중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하지만 <반려종 선언> 이후로 해러웨이의 글은 이전의 이분법적 논리에 대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유머러스해진다.

<멍게와 나>에 등장하는 멍게의 모습은 해러웨이의 ‘여성-동물-기계’가 융합된 사이보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멍게를 비롯해 ‘여행 비둘기’, 반려견 ‘또리’, 춤을 추는 ‘손’, 그리고 ‘인간’ 역시 모두 사이보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여행 비둘기는 인간의 얼굴에 비둘기의 몸을, 춤을 추는 손가락에서는 산호초가 자라난다. 이 산호초가 자라나는 손은 온 우주를 누비며 베토벤 월광 소나타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들은 모두 거대하거나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라 일상의 작고 소소한 존재들로, 그들이 보고, 겪고, 넘어선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17분 정도 되는 <액체몸체> 영상에서는 여섯 파트의 애니메이션이 이어진다. 이 17분 동안 비인간 존재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며 마치 한 존재가 이야기를 끌어가듯 이어진다. 혼종의 비인간들, 배경을 이루는 장소와 공간들은 부분적으로 다른 파트에 재등장함으로써 만나기도 대립하기도 하는데, 이로써 동떨어져 있던 주제들의 경계는 지워지고 그로인해 창출되는 이미지는 전체를 연결한다. 

이 에세이에서는 여섯 파트의 이야기 중 여행 비둘기 마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부분적인 연결들>에서 메릴린 스트래선은 언어만으로의 사유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이미지가 매체가 되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하며 ‘부분성’을 제안한다.

‘부분성’은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어떤 것과의 연결로만 작용한다. ‘부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이며 뺄셈이 덧셈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는 하나의 레이어로써 이것은 입장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부분성’은 전체의 반을 한쌍 중 하나로 만드는 하나의 논리이다. 논의의 흐름을 막아서 ‘절단’ 하는 것. 스트래선이 말하는 ‘부분적인 연결들’은 분단에 의한 관계, 명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절단해서 얻는 관계를 말한다. “부분 중 하나인 전체. 전체로서의 연결이 아닌 부분적인 연결. 모든 연결은 부분적이다.” 스트래선은 전체와 부분을 우열관계로 놓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부분이 존재하는 러시아 인형처럼 ‘전체’와 ‘부분’이 항상 뒤바뀔 가능성과 함께 늘 동시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언어만으로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직접적인 매체일 수 있고, 이것은 그 사이의 매개 없이 이미지를 낳는다.

이미지가 물질적으로 변화되어야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미지화 되어야만 물질도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이미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물질적인 힘을 갖는다는 제인베넷의 주장과도 통한다. 이미지가 매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에 의해 우리는 바뀌어갈 수 있고,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미지는 관계와 정치적인 것들을 설명해내고, 사회의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바뀌는 ‘그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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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으로 철탑이 떠오른다. 멀리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빨간 철탑 꼭대기에 앉는다. 흔들리는 철탑은 빠르게 상승한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날아간다. 잠시후 다시 날아와 철탑의 어딘가에 앉는다. 몸의 구석구석을 쪼아댄다. 그루밍을 한다. 그루밍을 멈추고 다시 날아오른다. 지금부터는 비둘기의 시선이 우리를 대신한다. 파란 공백. 푸른 허공에 빨간 첨탑 기둥이 덩그러니 떠있다. 첨탑은 천천히 멀어진다. 구름. 서울 하늘. 비행한다. 도심 한가운데는 ‘지금’. ‘현재’. ‘여기’이다. 지금. 이 곳. 크기가 다른, 비슷한 색, 비슷한 모양의 정렬된 빌딩들이 지나간다. 건물들 사이로 녹색 존 외에 다른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아파트가 빠르게 다가온다. 아파트 가정집 창문 앞에서 몸은 비둘기, 머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이종(異種)의 새가 날갯짓을 한다. 새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몸은 비둘기, 머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여행 비둘기는 과거 북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분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여행 비둘기는 희생되었고 1910년에 절멸했다. 1914년에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여행 비둘기 ‘마사’는 그와 얽힌 모든 종들의 죽음과, 멸종한 친구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인간의 머리와 비둘기의 몸을 가진 혼종의 ‘마사’는 자연과 문화의 얽힘 속에서 신체에 그간의 시간을 축적한 다중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이다. 몸. 신체야 말로 머리만큼이나 중요한 상상의 기관이다. 신체는 지나가고,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축적하며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 현재의 ‘정체성’은 바로 이 순간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여행 비둘기의 증언 이후 작가는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통해,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겪는 소화불량의 상태와 생명의 신비함을 동시에 경험하는 다중의 감각을 표현한다. 비둘기에서 인간으로, 반려견에서 멍게로, 쓰레기를 숨긴 반듯한 도시에서 낡고, 녹슬고, 조각난 오래된 동네로. 서로 다른 존재와 존재를 횡단하며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고 이야기는 이미지들을 이끌고 바다로 향한다. 작가는 시공간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이 섞인 혼종의 여러 존재들을 등장시키며 알 수 없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은 근본적인 무언가에 가 닿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삶과 죽음에 기대어 있다’. 

밀어내고 싶고 저항하고 싶지만 그조차 힘든 도시의 검은 물질들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뜻밖의 우발적인 상황들은 헛구역질이 날만큼 숨막히고 불편하지만 그 낯설고 두려운 무언가를 통해 열리는 세계 또한 있다. 그 세계는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 ‘모성’이 느껴진다. 

멍게는 오랫동안 바다의 위험을 넘어서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 감촉과 소리, 빛, 이런 작은 변화들을 회상하며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는가. 

위험을 피해 오래도록 머물 아늑한 장소..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작고, 유약한, 내가 머물곳은 어디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삶을 원하는가. 

 

대답을 요청하는 멍게의 물음은 진행되던 텍스트를 정지시킨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참고 영상. 정혜정 개인전. <멍게와 나>. 대안공간 루프. 2022. 11, 25 -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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