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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쇼 8강 요약발제

전인수 2020.11.12 11:19 조회 수 : 54

 

 

1. 밤

 

 

블랑쇼는 두 가지 밤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형적 상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최초의 밤, 휴식의 밤은 일반적으로 잠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통합으로서의 밤이다.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바깥으로서의 또 다른 밤은 가장자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내밀성으로 접근하는 밤이다. 또한 '최초의 밤은 죽음을 발견하고 망각에 이르는 밤, 또 다른 밤은 발견할 수 없는 죽음이다.'

 

 

블랑쇼는 밤 속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의 브레후노프라는 인물을 불러온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상인 브레후노프가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하인 니키타를 체온으로 살려내는 장면은 블랑쇼에게서 교훈적 의미가 아닌 인간이 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설명된다. 또한 브레후노프가 자신의 몸을 눕혀 니키타와 겹쳐지는 모습은 그가 설명하는 죽음, ‘전체를 껴안고 완결된 세계로 합류하는 죽음’에 대한 비유적 움직임이다. 죽음의 완전성은 삶의 의미를 포기할 수 있게 하는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이 가능한 밤은 낮이 전체를 위해 변증법적으로 포함하는 밤이다. 때문에 또 다른 밤은 낮의 영역에서 여전히 ‘깨뜨리고, 종말을 원하며, 심연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사랑과도 같이 드러’난다. 반면 또 다른 밤은 밤 속에서 덫으로 모습을 보여준다. 블랑쇼는 최초의 밤에서 또 다른 밤으로 다가가는 움직임을 카프카의 <굴>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굴>의 화자는 끊임없이 바깥에 대한 불안에 직면하는 인물이다. 불안을 피하기 위해 굴을 파서 은신처를 만들지만 불안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최초 출구의 형태에 대한 불안은 한 곳에 모아 놓은 저장품들의 배분과 배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입구로 향하는 미로의 완전성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굴 밖에서 굴의 입구를 지켜보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착오적 판단에 이른다. 다시 굴속에 들어온 화자는 주변에서 들리는 움직임의 소리에 극도로 집중하게 되고 움직임의 정체에 대한 불안과 취약점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이때 기존의 안과 바깥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는 공간으로 전복되고 굴속의 내밀성은 위협을 드러낸다. 동시에 화자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와 자신의 구분도 불가능하게 된다. ‘또 다른 밤은 언제나 타자이고, 그리고 그것을 들은 자는 타자가 되고, 거기에 다가가는 자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더 이상 거기에 다가가는 자가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 여기저기를 오가는 자이다’. 카프카의 <굴>은 블랑쇼에게 마치 또 다른 밤으로 접근하는 주체와 작품에 대한 알레고리로 여겨진다. 어떤 작품들은 이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 비본질적인 것에 자신을 맡기고 ‘밤의 심장부’, 근원에 가까워진다.

 

 

2. 오르페우스의 시선

 

 

또 다른 밤에 마주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자신을 맡기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블랑쇼는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하나의 작품을 일관된 이야기로 완성한다는 것은 오르페우스가 지옥의 하데스에게서 에우리디케를 낮의 세계로 데려오는 과업과 같다. 하지만 그가 지옥의 어둠으로 향하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영감의 과정이며 에우리디케는 ‘예술의 극단’ 자체이다.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세계의 깊은 곳이자 내밀성이라면 신화는 그 자체로 모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깊이에 다다르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망은 어둠속에서 에우리디케를 향해 돌아보는 충동을 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랑쇼는 ‘깊이의 과도한 경험 이 경험 자체를 위해 추구되지 않을 때에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깊이는 정면으로 주어지지 않고, 작품 속에 그 자체를 숨기면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오르페우스의 시선을 통해 작품은 해체되지만 역설적으로 작가는 영감의 중심에 그리고 근원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작품을 실패하게 만드는 오르페우스의 초조함은 한계를 넘어서려는 과도한 움직임으로, 기원에 다가갈 수 있는 열림으로 긍정된다. 그래서 ‘오르페우스의 시선은 작품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궁극의 선물이’된다.

 

 

3. 영감, 영감의 결핍

 

 

‘기원과 하나가 되고 불가능성 안에서 스스로를 바칠 수 있게 되는’ 오르페우스의 시선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속에서도 포착된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언어를 즉각적으로 받아 적고 누구나 시인이 되는 평등하고 절대적인 성격 때문이 아닌 자동기술법이 드러내는 ‘무한한 웅얼거림’, ‘비인칭의 상태’ 때문이다.

 

 

즉각적인 서술을 작품 완성의 용이성으로 파악하는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앙드레 브르통은 오히려 “반성적 사고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훨씬 간단하고 훨씬 쉬운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받아쓰게 하는 자동기술법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는 역설에 처하게 한다. 따라서 원천의 과잉 속에서 영감의 한 가운데서 초현실주의의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비인칭의 목소리가 되며 여기서 ‘용이성’은 ‘극단적인 요구’로 전환된다.

 

 

영감의 과잉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언어가 되는 모습은 폰 호프만슈탈의 <찬도스 경의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어떤 작품도 쓸 수 없으며 어떤 의미도 개념화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화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동물과 사물들의 모습이다. 어느 날 지하실에 쥐약을 치게 한 찬도스 경은 쥐떼들의 고통을 느끼고 그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물이 절반 들어 있는 물뿌리개의 물과 소금쟁이, 개나 쥐, 투구풍뎅이, 움츠러든 사과나무, 언덕 위 꼬불꼬불 구부러진 차도, 이끼 낀 바위 같은 것들에 감응하고 황홀감을 느끼게 된다. 말없는 사물들이 말하는 언어에 접속하게 된 그의 모습은 자동기술이 처한 상황과도 같은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는 ‘근원적인 수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한 웅얼거림과 과도함 움직임으로써 초현실주의는 결과적으로 영감에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불가능성을 마주하는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근원을 향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로써 오르페우스의 시선과 같은 비인칭, 또 다른 밤의 체험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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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이 당시 블랑쇼적 글쓰기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면 이 시대의 가장 블랑쇼적 글쓰기는 어떤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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