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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애먼 집착이다. 집중할 부분은 닭이 알을 낳고 알이 깨 병아리가 나온단 사실이다. 어떤 조건에서 닭은 알을 낳고 알은 닭이 되는가. 닭의 [산란]의욕, 충동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결과를 낳는다. 암수, 즉 공동체는 그 첫 조건이다. 닭의 창작활동은 그 자신 주어진 물질적 조건에서 가능하다. 알이 닭이 되는 과정은 더 극적이다. 그러므로 미학은, 그 절정의 한 순간 빼고 항상 정치다.   

 

            "위에서 논술한 양극이 특징지울 미적 체험의 이같은 2원론은 결코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이 양극은 단지 모든 미적 체험의 가장 궁극적인 본질로서 나타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욕구에 있어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즉 하나의 공통된 욕구란 자기포기의 욕구이다"(<추상과 감정이입>, 36)

            "추상충동에 있어서는 자기포기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철저한 것이다. 이 경우 감정이입의 욕구에서처럼 개인적 존재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 확고부동한 것을 관조하므로서 인간존재 일반에 있어서의 우연적인 것, 즉 일반적인 유기적 존재에 나타나는 자의(恣意)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다. 생명 그 자체가 미적 향수의 장애로 느껴지는 것이다"(36 -37)

             "'우리는 끊임 없이 자기 활동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들 본질의 근원적 욕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활동의지를 다른 대상 중에 이입함으로써 우리는 이 대상 가운데 존재한다. 우리가 내적인 체험충동으로서 외계의 대상 가운데 몸을 던져 외적인 형태 속에 융합해 있는 한, 우리는 이미 우리의 개인적 존재로부터 해방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개인적 의식에 있어서 무한의 다양성에 대해서 우리의 개인성이 일정한 한계 중에 흘러 들어간 것처럼 느낀다. 이같은 자기객관화 가운데 자포자기가 존재한다"(37)  

             "모든 미적 향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행복감 일반까지도 인간의 가장 깊은 궁극적 본질로서의 자기 포기의 충동으로 환원한다는 것은 결코 지나치게 대담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38)

             "모든 유한성에서 해방된 이 추상적인 형식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상의 혼돈상태에 당면하여 평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그리고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관계는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저 인간적인 생명표현의 본래적인 발전사에 대하여 결정적인 통찰을 부여하는 것이다"(165)

 

샤르댕 말대로, '반성'을 당면한 한 종(種)은 자연(1자연)을 외화시킨다. 새로운 자연(2자연)에서 바라본 자연은 충격 그 자체다. 꿈, 고통, 공포 속에서 그 종은 외화된 자연, 자연력과 대면한다. 숭배가 있고 타협이 있다. 추상충동을 외적 자연의 법칙화를 꾀하는 타협의 한 예로 볼 수 있을까.

 

사이렌의 노래는 저 자연의 유혹. 오디세우스 맛 볼 수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쥬이상스? "나는 과거에 어떠한 식으로 걸음마를 익혔는지를 몽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걸을 수 있지만 걷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족대이동 시기의 예술을 파묻어버렸던 고전문화의 전통이 주는 중압감에 저항했던 빈 학파의 학자들인 리글과 비크호프는 최초로 그 민족이동기의 예술로부터 그 시대의 예술을 지배하던 지각의 조직이 어떠했는지를 추론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이 획득한 인식은 뛰어난 것이었지만, 이 인식의 한계는, 이들 연구자들이 로마 후기의 지각의 고유한 특징을 형식적인 면에서만 제시하는 데 만족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지각의 변화 속에서 그 표현을 얻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양상들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들은 그런 가능성을 아예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48-49)

 

             "고로 결판을 내는 것은 리글이 말하는 '절대적 예술의욕'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 예술의욕은 저 사용목적, 소재, 기술의 세 가지 요인에 의해 한정되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요인에 대해서는 유물론적 미학이 생각한 것 같은 적극적인 역할은 이미 부여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장애적, 소극적 역할을 함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 세 가지 요인은 창작활동 전체 가운데서 소위 마찰계수를 형성한다"(<추상과 감정이입>, 20)

 

'추상', '감정이입'. 상징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런 개념들로 예술과 역사, 예술의 역사를 서술(재현)할 수 있을까. '자연주의', '양식'이란 개념은 또 어떤가. 오히려 '가상'과 '유희'(<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71-72), '제의가치와 전시가치'(같은 책, 53)라는 개념들이 훨씬 힘차다. 그 "심연 속에 변증법적 움직임이 얼마나 격하게 들끓고 있는지". (<독일비애극의 원천>, 246)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충동]'이 설명을 위해 고안된(계발된) 개념이라면 '제의가치와 전시가치'는 예술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드러난 개념 그러니까 '사회적 변혁의 양상들'을 함의할 수 있는 개념 내지 이념 아닐까.    

 

닭대가리 같은 인식론과 ·····.

 

             "우리의 미학은 고전적인 예술감정의 심리학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비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아무 것도 아니다. 미학에는 결코 이 한계는 넘을 수가 없다."(<추상과 감정이입>, 152)

             "모든 창작에 있어서 유물론적 해석의 일체를 넘어서는 것으로 증명되는 하나의 한층 높은 형이상학이 존재한다. 이 형이상학적 해석은 대체로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창조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외계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위대한 논쟁의 과정 관한 영속적인 기록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과 더불어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이와 같은 과정에 바탕을 두고, 종교나 여러가지 세계관의 현상을 제약하는 저 심리적인 힘의 다른 모양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158)

             "물(物)을 예술적으로 고정한다는 것은, 환언하면 물(物)의 현상적 존재 형태의 제약성과 외계의 끝 없는 생명의 상관성과의 결합으로 물(物)을 최대한도로 이탈시켜 그것에 의해 감성적 지각의 모든 기만으로부터 해방케 한다는 것이다"(165)

 

             "<향연>은 이념들의 영역인 진리를 미의 본질적 내용으로 전개한다. <향연>은 진리를 아름답다고 선언한다. 진리와 미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적 통찰은 모든 예술철학적 시도의 최고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진리개념 자체를 규정하는 데도 필수적인 저작이다"(<독비원>, 40)

             "진리가 아름다움에 합당할 수 있는가? 이것이 <향연>에서 가장 심오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플라톤은 아름다움의 존재를 보증해주는 일을 진리의 역할로 할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라톤은 진리를 미의 내용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폭로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껍질이 이념들의 영역에 들어설 때 불타오르는 과정, 그속에서 작품형식이 자신의 광도의 정점에 이르게 되는 작품의 연소과정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과정에서 드러난다."(<독비원>, 41-42)
             "비평은 작품의 무효선언이다. ……. 작품의 무효선언이란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작품들 속에서 낭만주의적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 즉 사멸한 작품들 속에 지식을 정주시키는 것이다. 지속되는 아름다움은 지식의 대상이다. 그리고 지속되는 아름다움이 아름답다고 칭해질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면지만, 분명한 것은 내부에 알 만한 가치가 없는 아름다움이란 없다는 점이다. 철학은 자신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을 부인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예술을 향유하게끔 이끌 수 없다. 그것은 지질학자나 식물학자가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각을 일깨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주장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된 비유가 잘못된 것처럼 지극히 맞지 않는 주장이다. 지질학자나 식물학자는 그러한 감각을 아주 잘 일깨울 수 있다. 아니 구조를 통해 세부내용이 생명을 예감하듯 포착함이 없이 아름다움에 경도된다는 것은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 구조와 세부내용에는 궁극적으로 항상 역사의 부하가 걸려 있다. 예술형식의 기능은 바로 모든 중요한 저작의 근저에 놓인 역사적 사실내용을 철학적 진리내용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철학적 비평의 대상이다. 사실내용을 진리내용으로 변형시키는 일은 영향의 퇴조과정을, 즉 그 속에서 10년 20년이 지나면서 이전의 매력들이 주던 감동이 감퇴되는 그 퇴조의 과정을, 모든 일시적 아름다움이 마침내 사라지고 작품이 폐허로 우뚝 서는 재탄생의 토대로 만든다"(<독비원>, 270-271)

 

<추의 미학> 후기에서는······.

 

미, 추를 각각의 범주로 나눌 수 있는가? 사고의 편의를 위해 경계선을 긋는 일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다. 경계는 톱니바퀴처럼 들쑥날쑥 맞물려 있다. 시대 모든 전위는 그 경계를 둘러 싼 전투다. 매일의 전투 결과에 따라 전선의 지형이 바뀐다. 창조란, 예술이란 늘 이런 측면을 갖고 왔다. 미, 추는 역사적 범주다. 

 

미의 내용을 물어야 한다. 미의 내용이 진리라면 미, 추의 범주는 그보다 낮은 심급 즉, 체계론적 철학의 부산물이다. '진리를 미의 내용으로 전개'한다면 추가 진리로 타오르는 한에서 추 역시 미다.

 

관습(convention)과 표현(expression)이 역사적, 변증법적으로 대응한다. 언어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관습이다. 관습은 사건들의 심연에서 들끓는 용암같은 표현에 찢기고 봉합된다. 다만 곧 아닌듯 무봉의 총체성의 가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예술이 역사적 범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고 진리를 통해 구제되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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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은 무협지다. 읽는 내내 김용의 <영웅문>이 어른거린다. 난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감각 혹은 정서]에 주목한다. 뤄한 큰 할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두 노새는 두려웠을까 아팠을까. "단지 백 발자국 밖에 사람들과 개가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 그는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붉은 수수밭>, 문지, 47). 쑨씨네 다섯째가 뤄한 큰할아버지의 껍질을 산 채 벗긴다. 그후 쑨씨네 다섯째는 돌았다. 일본군에게 마을 남정네의 3/4이 있는 움집 열두 개를 안내한 곰보 청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후 버드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곰보 청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뭘 겁내쇼? 뭘 걱정해요? 누가 나리가 되든 우리가 백성인 건 매한가지인데, 관아에서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세금 내라면 내라는 대로 내고, 누우라면 눕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는데, 누가 우리한테 벌을 줘요? 누가 우릴 무슨 명목으로 처벌하겠냐고요?" 

 

영웅은 [고통에] 두려움이 없다. 윤리적인 면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위잔아오는 영웅이다. 그에겐 회의, 망설임, 후회, 운명, 속죄 따윈 없다. 사건과 결단만 있다. 중국 무협지와 서양 비극의 영웅을 비교하면 재밌을까. "도덕적인 원리 속에서는 물론이고 추상화된 원리 속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고 오직 비평과 주석이 가해진 작품 자체의 전개 속에서만 나타나는, 이러한 전체적인 것의 진리내용은 도덕적인 교훈을 오직 고도로 매개된 방식으로만 포함한다"(<독비원>, 156-157).

 

<괴테의 친화력>의 구도를 빌자면 <붉은 수수밭>은 자연, 신화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는 가오미 둥베이 사람들 이야기다. 그 구도를 지금 빌면 자연은 균질한 시간으로만 나타나고, 신화는 자본주의로, 역사는 신문과 방송만을 기록한다. 돈만 친화력 있는 시대.  

 

에세이는 이렇게 후일을 기약한다. 지금 내겐 '밥벌이의 지겨움'이 신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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