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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라는 빙산 속에서 다른 종과 만날 때

 

 

강우근

 

신체라는 한계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나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살펴본 처음을 생각해 본다. 태어나서 인간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슬픔도 기쁨도 아닌 어리둥절함이 아닐까. 세계에 불시착 느낌으로 힘껏 울어 본 인간이 있고, 태어난 자는 이미 구성된 세계의 질서에 편입이 되어야 한다. 거기서 오는 낯선 감각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세계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무언가를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태어나게 된 닭, 북극곰, 개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종은 그 종이 가진 유전자적 신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어린시절 여러 동물 모형에 이름을 붙이고 종을 배워가지만, 다른 종이 인간에 대해서 배울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조심해”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른 종과 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공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리사이클링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라든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건축가라든가.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사지 않고, 동네의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도 지구의 다양한 종과 살아가는 작은 실천일 것이다. 다른 종과 함께 하려는 실천은 무엇보다도 지구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인간을 위한 실천일 수도 있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종의 모습에 인간의 모습이 내비치기 때문이다. 다와다 요코가 쓴 <눈 속의 에튀드>에서도 토스카라는 북극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조련사 바바라가 나온다.

 

만나기 전에 파트너가 존재할 수 없다

 

  만나기 전에 파트너가 존재할 리 없다. 모든 종은,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주체와 대상을 형성하는 만남의 춤을 춘 결과 생기는 존재라는 것처럼.

해러웨이, 종과종이 만날 때, p.14

 

  <눈 속의 에튀드>에는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된 북극곰이 등장한다. 토스카는 소련이 동독으로 선물로 보내서 서커스단에 오게 된 북극곰 중 한 마리다. 소설 안에서 다와다 요코는 토스카를 자주 의인화하며, 화자로 내세워서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건 ‘언어’를 빌려주는 과정 이상으로 다른 종과 ‘언어’를 나누는 과정에 가깝다. 

  소설 안에서 토스카는 발레 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백조의 호수>라는 곰이 배역인 극에서 아무런 역할을 받지 못했다고 나와 있다. 극단에서는 토스카를 상품가치로 보고 있지만 조련사 바바라는 토스카를 두고 소외된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토스카의 엄마는 무리한 연습 속에 무릎이 상해서 곡예를 할 수 없게 되자 총살에 맞을 위험에 처하지만, 운 좋게 행정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바바라는 남편인 마르쿠스와 같이 토스카와 어떤 극을 꾸밀 수 있을까, 상상한다. 

  마르쿠스는 바바라가 카우보이로 분장해서 토스카를 총으로 쏘는 척을 하기를 바란다. 탕 소리가 나면 토스카가 바닥에 쓰러지고 죽은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스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바바라를 잡아먹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마르쿠스가 떠올린 주제가 인간 폭력의 희생을 당한 북극곰의 복수라고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곰의 폭력성에 대해서 추측하는 인간이 가진 생각의 폭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바라는 토스카와 탱고 음악에 맞춰서 함께 춤을 추기로 결정한다. 토스카와 극의 과정에서 키스를 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바바라는 토스카를 만지면서 어린시절 처음 서커스단에 일하면서 조련사가 되고 싶었던 과거를 회상한다. 바바라는 말을 빗겨 줄 때마다 기분이 고조가 되었던 처음을 떠올리며 토스카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자 토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어렸을 때 말은 너보다 훨씬 컸을 텐데. 너는 올려다보았겠지. 너는 지금 그때의 그 자세를 다시 취하고 있는 거고.”

  해러웨이의 말처럼 내가 다른 대상을 만질 때 그 대상에는 ‘나’라는 주거 공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바바라는 토스카를 만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유년시절 시공간을 발견한다. 극이라는 놀이를 통해서 기쁨을 느끼면서 “함께 되기”의 생생한 감각적인 열린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질문 ‘당신은 누구입니까?’는 ‘우리는 누구입니까?’에 대한 대답이 된다.

 

첫 번째 키스 이후에 바바라의 인간 영혼이 한 조각 혼 조각 내 몸 안에 녹아들어 왔다. 내가 상상했던 만큼 인간의 영혼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영혼은 대부분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일상의 이해 가능한 언어뿐 아니라 많은 망가진 언어 조각들, 그리고 언어의 그림자들과 아직 단어가 되지 않은 이미지들이었다.

(다와다 요코, 눈속의 에튀트, p. 271)

 

상품가치에서 벗어나기

 

  토스카와 바바라의 키스는 위생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극은 해체된다. 바바라는 해고가 되고 토스카는 베를린 동물원으로 팔리게 된다. 토스카는 크누트라는 북금곡을 낳게 되는데 현실의 사건에서는 토스카가 크누트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자연법칙에 의해서 크누트를 인간이 길러서는 안되고 죽게 놔두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와다 요코는 <눈 속의 에튀드>에서 토스카가 자신은 글을 써야 하므로 크누트를 다른 동물이게 길러 달라고 맡겼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와다 요코가 ‘다른 동물에게 길러 달라고’ 설정한 이유에는 어쩌면 ‘다른 종’과의 만남이 가능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안에서 다루는 문제는 토스카가 크누트를 방치한 상황이 아닌 혼자 남겨진 곰이라는 종과 또 다른 종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이다.

  베를린 동물원의 사육사 마티아스는 크누트에게 우유를 먹이며 정성껏 돌보고 길러낸다. 기적처럼 살아진 크누트를 보려 온 관람객들이 많아지고, 크누트와 마티아스의 놀이와 쇼는 관람객들을 열광시킨다. 그러나 놀이 속에서 마티아스를 다치게 하자 크누트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마티아스는 크누트로부터 격리되고 만다.

  크누트의 몸집이 커지고 동물원 안에서 함께 노는 사람이 사라지자 베를린 동물원의 매출을 올렸던 크누트의 인기는 사라지게 된다. 크누트는 한때 캐릭터화 되어서 열쇠고리, 커피 잔, 티셔츠, 스웨터, 장바구니, 배낭 핸드폰 케이스의 장식으로 쓰였다. 

 그때 크누트는 소설 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휴머니즘이란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와 교류할 때에만 작동했다.” 크누트는 회상을 하며 마티아스가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서 그동안 놀아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마티아스는 크누트를 통해서 북극곰이라는 다른 종과 이어지는 끈을 가진 것이다. 

 

  “기적을 행하는 자 마티아스가 그의 손가락 끝으로 우유가 흐르게 하여 그 아기 천재에게 젖을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북극과 이 세계가 구제되었던 것이다. 작은 곰은 구제되었고 그 대가로 그에게는 북극을 다른 위험에서 구제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다와다 요코, <눈 속의 에튀트>

 

 

 

불시착한 종과의 춤

 

  다와다 요코의 <눈 속의 에튀드>는 불시착이라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바바라와 크누트는 북극곰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이민을 온 사람, 고아, 소외된 노동자 등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어쩌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구상에 불시착한 우리라는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처럼, 빙하가 줄어드는 북극에서 태어난 곰처럼, 어미 말로부터 태어나 들판에서 눈을 뜬 말처럼 우리도 고독하고 불안하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불시착한 닭장 속의 병아리와 동물원 안의 곰과 사육장 안의 말을 우리는 발견하기도 한다. 인간도 인간이 만든 시스템인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죽어간다. 태어나서 태어남의 의미를 생성해나가는 것에는 ‘만남’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인간을 포함한 다른 종들도 만남을 통해서 기쁨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안희연 시인의 시 <표적>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동물도, 인간도 없다.

  기후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정원사의 일처럼, 우리도 다양한 종이 각자의 서식지에서, 본래의 서식지 온도와 맞지 않지만 불시착한 인간 주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해러웨이가 말한 대로 종과 새로운 방식으로 접촉지대를 만들고 그 종과의 만남을 통해서 춤을 추는 일.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지평을 늘리는 일이자 종과 종의 지평을 늘리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이 곧 우리를 말해준다.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불시착해서 살아간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런 인간이 개발과 환경 파괴를 거듭한 결과 지구가 황폐화되어서. 미래 사회에 지하벙커로 들어가서 살거나, 화성을 테라포밍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그만큼 끔찍한 풍경이 있을까. 인간이 보는 풍경이 곧 인간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빙산이라는, 눈이라는 시간이 매번 녹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른 종과 실천적인 만남을 하는 연습생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춤을 통해서 인간과 다른 종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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