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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15. 발제 탁선경

<바디 멀티플> 2장 다른 동맥경화증들. 3장 조정. p. 61-151

 

2장. 다른 동맥경화증들

실천을 연구하기

몰은 텍스트가 논쟁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도 이에 반대되는 수많은 가정을 암묵적으로 강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문헌 언급”의 장르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문헌을 충분히 명확하게 언급하기는 불가능하고 세부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참고문헌도 포함시키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다>(Latour 1993)에서 자연/문화 분할에서 빠져나올 방법들을 찾고 이를 근대성과 연관 짓는다. 그는 근대 세계의 실천에서도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서로 뒤얽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술과학 사회에서 표현된 지식과 그들의 실천에 박혀 있는 지식 간에 충돌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론은 근대적 분할을 만들어 냈고, 실천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라투르는 자연/사회 구분의 여러 버전을 다루는데 그중 하나는 주체와 존재자의 구분이다. 라투르는 주체와 존재자가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하며, 그 스펙트럼에는 많은 유사 주체와 유사 존재자, 혼합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주체의 생각들과 바깥에 있는 객관적 실재 사이를 변증법적으로 점프하는 대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진 실천-늘 불확실한 실천-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몰이 시도하는 것도 비슷한데 원칙보다 실천을 우선시하며, 실천을 민족지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학 하기를 철학적 움직임으로 바꾼다. 이는 아는 주체와 앎의 대상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철학의 인식론적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이 책에서는 대상, 대상의 문제를 다룬다. 몰 역시 주체/존재자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라투르와 차이가 있다면 이 이분법에서 두 번 벗어나고자 한다. 두 개의 주체/존재자 분할. 그것들은 서로 의존한다. 수많은 이분법은 모두 상호연관되어 있고 그것들 사이에는 끝없는 다양성과 부조화가 있다. 

 

주체/존재자 1

사회과학은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해 알지만, 자연과학은 자연 세계에 대해 안다. 하지만 이런 구도에 맞지 않는 지리학, 건축학, 의학 같은 분과학문도 있다. 그래도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간의 구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사회과학자가 분할을 무시한다면, 자연과학적 방법들은 제국주의적으로 모든 곳과 인간 주체들을 장악해 버리고, 말하는 대신 객관화할 것이다. 하지만 분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인간 주체 연구를 위해 기획된 사회과학적 전통, 이는 모든 종류의 주체/존재자를 포괄하도록 확장할 수 있다. 

 

고프먼

1959년 고프먼은 인간 주체를 논하기 위하여 극장의 언어를 빌려 왔다. 고프먼은 사람들이 자신을 서로에게 보여 줄 때, 자기 자신보다는 자아, 페르소나, 가면을 보여 주며 마치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보이는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의 공동 연기자이면서 동시에 극의 관객인 것처럼 대한다. 고프먼은 우리가 연기를 조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암시하면서 개인의 사회학의 가능성, 사회적 자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고프먼의 사회학은 특정한 종류의 심리학에 대한 보완으로 기획되었다.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연기하는 정체성은 다른 이들이 반응하는 사회적으로 효력을 갖는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회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다. 이제 사회학은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개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관찰할 때, 더는 뭔가 빠뜨린 깊이 있는 것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몰이 주장하는 바는 ‘행위 뒤에 행위자’가 꼭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행위자’는 행위에서, 행위를 통해 그때그때 다르게 구성된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정체성을 행하는 데 대해 표면상의 겉모습과 깊은 곳의 실재 간의 대립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정체성은 그들의 수행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에서, 수행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다. 정체성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달려 있으나 그 때 심리학은 지워져 버리거나, 사회학의 또 하나의 분파로 바뀐다. 버틀러가 관심을 두었던 특정한 정체성은 젠더 정체성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삶 속에서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보지만 4세 이전에 여자나 남자가 된다. 버틀러는 이 부분에 도전하는데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는 것이고 정체성을 행하는 수행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들이 사람들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고프먼은 수행을 연구할 때 거리를 두고 그 거리가 그에게 장막을 의식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버틀러는 거리가 아닌 대조를 강조한다. 분열. 차이들. 모순.  충돌과 위반은 분기하는 규칙과 규제들을 가시화한다. 특정 젠더 되기는 장소에 따라, 집단에 따라 다른 문제이므로, 다른 젠더를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할 수 있다. 젠더가 고정되거나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점성이 있고 수행되는 것이라면, 신체의 생식기들만으로는 젠더를 표시할 수 없다. 정체성을 수행하는 것이란 많은 사물과 상황이 연관된다. 

 

슈테판 히르샤우어

사회학자로서 젠더 정체성의 수행을 조사했다. 그는 트랜스섹슈얼들은 분할된 영역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트랜스섹슈얼리티는 사회학자들에게 젠더를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법, 직업, 가족관계, 신체 등이 연관된다. 

 

신체는 “다른”젠더-자신의 생식기와 일치하지 않는 젠더-인 사람, 혹은 “다른” 젠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 의해 변경되며, 변경될 수밖에 없다. 머리 길이, 보폭, 앉는 방식, 모든 것이 이에 맞추어 바뀐다. 그래서 트랜스섹슈얼 신체는 새로운 젠더 정체성 연기의 일부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체는 트랜스섹슈얼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변경된다. 먼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다른 젠더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주고, 그 다음에 이 잘못된 신체는 다시 가능한 한 그 신체를 정상으로 만드는 호르몬을 투여하기 위해 먼저 내분비학적으로 정상으로 진단받는다. 그 다음에 수술이 시행되어 용감하게 생식기를 재형성한다. 그들이 일관성 있는 정체성을 가지려면 “올바른” 성을 가진 몸이 필요하다. 신체는 사회적 수행의 일부이고 수행들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이기도 하다. 대상들도 사회적이면서 물질적이다. 대상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수행하는 방식에 참여한다. 그러나 일단 대상들이 무대에 오르면 우리는 그것들의 정체성을 조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연구하는 것은 대상을 무대에 올리고, 다루고, 수행할 때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다. 몰은 “수행”이라는 용어 대신에 ‘실행하다’라는 단어를 쓴다. 대상들은 실행된다. 

 

주체/존재자 2

사회학이 “병”을 그 자체로 연구 대상으로 만든 이후로, 병에 관한 지식을 신체를 괴롭히는 질병에 대한 지식에 추가하려 했고 철학자들은 정신과 육체의 관점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구성하려 한다. 사회심리학적 주체와 자연 대상들 둘 다 다루어야 한다.

설리번은 환자의 주체성을 지식의 주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며 현대 의학이 데카르트가 아니라 비샤로부터 이원론을 물려받았다고 본다. 비샤는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다. 비샤에게 의학의 주체와 의학의 대상은 하나는 죽은 것이고 하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인식론적으로 아는 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의사와 알려지는 자의 위치인 환자/시체로의 구분된다. 

인간과학의 탄생 이후 인간 주체는 지식과의 관계에서 주체의 입장과 대상의 입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분할에서 빠져나오려면 환자에게 장애의 의미는 질병으로서의 장애에 대한 정의 속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푸코는 “성적 억압”에 대한 비판이 혁명적 행위가 아니라 19세기말 이후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온 섹슈얼리티 배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병리학의 근본적 역할을 비판하기보다는, 그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의심해 보자는 것이며 의학 지식의 교과서적 버전을 따르기보다는 의료 실천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경험의 다른 영역이지만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를 표시한 기록 카드와 함께, 시간은 연쇄적으로 연결된다. 임상적 문제들은 기록 속에 위치해 있다. 이를 하나의 배치가 다음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속으로 제시하는데 몰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병리학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다면,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의료 기록과 공존하는데 암스트롱은 기록을 언급했고 기록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이런 기술이 질병의 살아 있는 실재와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암스트롱의 논문에서 지식은 마음속에 있지 않고, 물질들이 실재의 실행에 적극 활용된다. 기록, 건물, 칼 그리고 시체도 들어간다. 

앎의 활동을 다른 사물이나 관습에 폭넓게 펼쳐 놓음으로써 우리는 대상을 아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대신, 다음 단계로 실제로 실행하는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3장. 조정

시스템 혹은 에피스테메

사회는 시스템 안에서와 같이 통합된다는 점에서 신체와 같다. 

 

파슨스 

시스템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신체가 통합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이버네틱스를 고안해 낸 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의 생리학자들에 대한 주석을 삽입하고 사회 체계의 유지에 의사가 어떤 기여를 하는가에 관한 이론을 내놓는다. 의료적 지원을 구하는 것은 병자 역할의 일부이고 의사들은 환자를 관리함으로써 사회적 통제를 실행하고 사회적 의무를 다할 능력이 없다는 구실로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들로부터 사회 시스템을 보호한다.

 

캉길렘

차이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유기체의 질서를 표시하는 규범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본다. 사회가 신체를 모방한다고 주장하는데 신체들은 질서와 혼돈, 삶과 죽음의 차이를 구분하는 규범을 유지함으로써 통합성을 유지한다. 캉길렘은 배치의 규범적 방식을 고안한 사람들은 규범이 사회에서 긍정적임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규범이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을 찾아나간다.

 

의사들은 정상성의 표준을 확립한다. 하지만 의사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는 있으나 판사와 달리 규범에 따라 살지 않는 자들을 벌주지는 않는다. 정상성은 법이 아닐 뿐더러 정상성의 표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들, 비정상인 자들은 사회 가장자리로 주변화된다. 그들은 대부분이 원치 않는 곳에 놓이게 된다. “정상성”은 외부에서 규칙처럼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면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푸코는 사회 이론을 구성하면서 논쟁하는 대신 의학이 사회에 핵심적이라고 강조하려 했다. 

의학은 특수한 종류의 사회적 권력이고 의학 지식은 신체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 사이에서 중재하기 때문에 규범의 권력을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훈육이었다. 의학 지식은 정상인과 이상이 있는 사람을 차별화한다. 의학은 현대인이 맞추어 살고자 하는 표준을 세우기 시작함으로써 사회가 유기체를 모방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의학 지식은 사회를 통합하며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지식체인 에피스테메를 형성한다. 

 

연합과 다중화

라투르는 구조를 진지하게 조사해 본다면 구조가 버티지 못하고, 과학은 자신의 질서를 사회에 강요할 힘이 없음을, 과학적 훈련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우로 끝남에 대해 주장하면서 프랑스의 저온살균법을 가져온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파스퇴르의 백신으로 탄저병에서 소들을 지킨 농부들은 파스퇴르의 검사실과 열성적으로 연합하게 되지만 이를 따라도 얻을 것이 없는 개인 영업을 하는 의사들 같은 사람들은 환자들과의 관계를 비밀스럽게 유지하는 편을 더 선호했고, 국외자들에게 누가 백신을 맞았는지 말해 주기를 거부했다. 개인 의사들은 그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만 자기 진료소에서 자유로이 혈청을 이용했다. 

과학과 연합하는 검사실 밖의 행위자로 인해 과학이 확산되는데 그들은 거대한 구조나 에피스테메에 압도되지 않음에 대해, 라투르는 연합의 연쇄에 대해 말한다.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연쇄. 힘은 무엇이 연합을 지탱하는가에 따라 달려 있고 그것은 연합을 방해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데 요구되는 활동들로 정의된다. 네트워크는 에피스테메와 달리 열려 있고 내부와 외부 모두 다르지 않게 연결된다. 이 모두가 연합이고 이는 네트워크를 더 크게 만든다. 연합은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지지 않으며 한 요소는 네트워크 안에 있거나 밖에 있고 협동이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협동의 독특한 형식 따위는 없다. 

아주 다른 관점의 서로 이질적인 전통들끼리 겹치거나 반향하고, 공유하는 주제를 놓고 교차하기.

 

증식하는 자들의 목록

1. 사회적 세계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들은 비슷한 해석을 가지고, 자기들이 마주치는 사건에 비슷한 의미를 부여한다. 

2. 다른 사람들은 세계의 버전들을 구별한다. 한 사람이 물리학자이면서 음악가일 수도 있고, 그래서 물리학과 음악의 세계 만들기의 방식에 교대 로 관여할 수도 있다. 

3. 개인은 또 하나의 증식자인 틀과 일치하지 않는다.  

4. 질서 짓기의 양식들이 있다. 배치의 방식들은 의미나 행동을 배열하지는 않고 조직, 습관, 건물, 테크닉, 혹은 몸짓에 퍼져 있다. 그것들은 생각하는 사람/느끼는 사람도, 행위자도 중심에 두지 않으며, 개인들이 질서 짓기의 방식들을 따라 배열된다. 무엇을 배열하느냐에 따라 이런저런 “방식”으로 바뀐다.

이 증식자들 중  “질서 짓기의 양식들”이 푸코의 “담론”과 가장 유사하다. 몰이 제시한 목록을 보면 그것들은 주체의 탈중심화를 따른다. 주체는 중심의 의미 생산자에서 탈중심화된 의미 생산자, 분석에 의해 중심화된 행위자, 다양한 배치 방식으로 수행되는 존재로 이동한다.

 

존 로의 제안

1. 담론을 사회적인 것의 네트워크에 전가할 수도 있는 일련의 패턴으로 다루어야 한다.

2. 담론을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으로 찾아야 한다.

3. 담론을 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다루어야 한다.

4. 담론들이 다른 물질들 속에서 어떻게 수행되고, 체현되고, 말해지는지 조사해야 한다.

5. 담론들이 상호작용하고, 변화하거나 정말로 절멸을 맞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문헌에는 따라가야 할 두개의 큰 길이 있다. 

1. 담론을 전체로 통합시키는 힘에 대한 의심의 산물, 이 의심을 통해 작은힘들이 서서히 통합되는 네트워크가 발명된다. 연합. 

2. 합쳐진 담론의 범위에 대한 의심으로 덮여있다. 이는 단일한 질서를 서로 다른 공존하는 질서들로 다중화한다. 질서들이라기보다는 상호작용하고, 변화하거나 절멸을 마주하는 프로세스적 관점에서 배치의 방식이다. 

 

이 책은 푸코를 기반으로 하지만 또한 푸코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두가지 방식이 제기하는 질문들 중 일부와 씨름하고 있다. 첫번째 질문은, 각각의 경험적 연구에서는 단일한 네트워크 안에서 만들어진 연합을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네트워크가 둘 이상이라면 네트워크 안과 네트워크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네트워크들이 다른 식으로 합체된다면 다른 종류의 연합이 존재하는 것인지.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 한 방식의 질서 짓기를 질서 짓기의 양식으로 바꾸며, 질서 짓기의 양식들을 구분하는 방식에 어떤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패러다임

쿤은 헬륨 원자 한 개를 놓고 물리학자와 화학자의 다른 대답을 하는 이야기를 통해 패러다임의 본질을 보여준다. 물리학자와 화학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각자 자신들의 연구와 실천 속에서 입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헬륨 원자에 대해 다른 대답을 한다. 화학자에게 헬륨 원자는 가스의 운동 이론에 따라 움직이므로 분자이고, 물리학자에게 헬륨원자는 그것이 분자의 스펙트럼을 보이지 않으므로 분자가 아니다. 쿤은 이 다름 속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과학의 구성 요소들을 분리시키는 극단적인 다원주의에서 독립적인 감각 데이터로 이동한다.

쿤의 시대에 많은 과학철학자들은 감각 데이터를 의미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쿤은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의미는 서로 뜻이 통하는 것만을 감지하고 초기의 인식과 그에 대한 이론과 맞는 것만이 의미가 통한다고 여기는데 예외적으로 주변에 머물다가 어느 날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되는 소수의 이상 현상들도 있다. 그래서 패러다임은 연결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런 패러다임들 안의 연결성 덕분에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표현할 수 있었고 모든 감각 데이터들이 개별적으로 떠다니는 극단적으로 다원적인 세계가 역설적으로 동질적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과학 이론이 한데 모을 것이라 기대되는 감각 데이터는 어떤 연관성도, 차이도 없는 의미가 결여된 것, 진공에서 나온다. 동질적인 과학과 함께 오는 데이터의 원자적 다원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러다임들 안의 연결성은 그들 사이의 차이와 함께 온다. 패러다임들 간의 차이는 감각 데이터 간의 차이와는 다른, 인간의 감각이 다른 데이터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게슈탈트 전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패러다임”은 연결성을 표현하는 특별한 과학적 방법, 문화를 연상시킨다. 패러다임과 문화라는 두 용어는 어떤 것들을 일관성 있는 전체로 한데 끌어모으고, 그럼으로써 다른 것들과 차별화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고립된 조각들처럼 보일 수도 있었던 것들을 전체로 바꾸고 우리가 단 하나의 동질적인 우주가 아니라 다른 세계들에 살고 있다고 상정한다. 

문화라는 용어는 복수성을 가리킨다. 매릴린 스트래선은 통일성과 복수성 둘 다 명료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개발하려 함으로써 파편화의 이미지를 비판한다. 파편들은 폭발한 전체에 대한 아쉬움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구성요소들을 원하는대로 뽑아내 결합하는 것도 비판하는데, 이런 이미지에서 개별적으로 물려 받아 자손에게 양쪽 선조의 잡동사니들을 남겨 주는 고립된 유전자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역적인 것을 더 큰 것, 포괄적인 세계성의 일부로 보는 전통적인 규모 개념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스트래선이 동원하는 반대의 이미지들 중 하나는 부분적인 연결들이다. 기능적인 단위나 적대적인 반대도 아닌, 그러나 내부이면서 외부. 스트래선은 페미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인류학자인 학자의 예를 든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들은 또한 다른 정체성이다. 그것들은 그 사이를 걷거나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다른 장소들이 아니다. 앞면을 서로 바꾸지도 않고, 대화에 참여하는 양측도 아니다. 두 명의 다른 사람도, 둘로 나뉘어진 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분적으로 연결된 하나 이상, 다수 이하다(Stratern). 하나 이상이면서 다수 이하. 몰이 동맥경화증의 실재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자(실체를 주고자, 발전시키고자, 색을 입히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이미지다."

 

유기체

충돌하지만 서로 묶여 있는 것들의 이미지. “같은 학회지에 글을 쓰거나, 같은 선조의 집에 축하하러 오는 이미지”. 연결성을 만드는 실천에 참여하는 이미지. 한데 모으는 동시에 차이를 확립하는 번역을 만드는 이미지. 패치워크, 프랙탈, 풍경, 혼합의 이미지들. 그리고 공백이 있다. 통합해야 할 것은 열린 질문으로 바뀐다. 별개의 요소들로 차별화하며, 어떻게 그것들을 함께 조합하는가라는 물음. 

유기체가 어떻게 통합되는가. 그것은 병원에서 유기체가 한 과에서 다른 과로 옮겨 가는 패치워크 덕분에 통합된다고 말한다. 숫자와 다른 데이터를 앞뒤로 번역하는 공식과 그림들. 다른 전공들이 환자의 진단과 처치에 동의하게 되는 회의들. Z병원의 유기체 안에는 격차와 긴장이 있다. 유기체는 하나로 합쳐지지만, 완전히 전체로서는 아니다. 하나 이상이며 다수 이하다. 그래서 유기체를 모방하는 사회로 시작해서, 결국 충돌하면서도 일관된 유기체로 끝나게 된다. 마치 사회처럼.

 

에세이 프로포절

에세이를 뭘 써야할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마침 단톡방에 정혜정 선생님 전시 사진이 올라와서 지난주 토요일 부지런히 보고 왔습니다.

정혜정 선생님의 전시된 작품을 가지고 에세이를 써보고 싶습니다. <멍게와 나> 전시 영상은 감사히 전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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