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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으로 쓴 초기 작품들에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숫자와 도형들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조선어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는 그러한 숫자와 도형들이 많이 줄어듭니다.

물론 ‘오감도’ 연작에서는 ‘조감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작품들을 변형한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이상문학은 건축무한 육면각체에서 조선어로 발표한 ‘꽃나무’, ‘거울’, ‘이런 시’ 사이에 

불연속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연속은 이상문학 연구자들에게 매우 큰 곤혹스러움을 안겨줍니다. 

조선어 작품들에서는 그나마 작가 이상이 경험했을 법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동시대인들에게 공감을 일으켰을 법한 

것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상문학을 일정한 구조 안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조차 해석상의 모험을 감내해야만 가능한 것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 모험은 곧,  더 큰 난관으로 이끌리는데, 왜냐하면 

그 낯선 숫자나 기하학적인 도상 이미지들을 끼워넣을 수 있을 만큼 

초월론적 해석의 근거들이 상징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편의 경치나 파편의 유희에서 나오는 ▽을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배우나 팔루스, 

또는 뱀의 머리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해석상의 공백을 키워낼 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상문학이 충분히 연구되었다는 생각들과 더불어 공존하는 것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다는 봉착, 내지는 봉쇄의 느낌들일 겁니다. 

 

이상문학에 남아 있는 말들은 여전한데, 그것에 할당할 해석적 근거와 함수들, 또는 결과값들은 

그저 빈곤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신형철 선생님은 설령 우리가 그 낯선 ‘기호들’(신형철 선생은 이상시의 언어들을 기호라고 부릅니다)의 

의미를 짐작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그것에 어떤 문학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라고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하죠. 그 고백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적어도 그 말이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이 상상할 수 있는  시적이라거나 문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의 

경계를 희미하게나마 보여주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처음 발표한 6편의 작품들과 [조감도] 연작, 그리고 [삼차각 설계도]를 거쳐 [건축무한육면각체]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초월적 사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상문학에서 어떤 구성의  일관된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러한 실험들이  

음소 이하의 차원에서부터 한국어의 통사형식, 그리고 서사와 형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언어의 초월적 사용이야말로 시종일관하게 반복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변별적일 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수행한 것이야말로

이상문학의 광적인, 또는 문학적인 측면일 겁니다. 

 

오늘은 그 중 그 실험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보죠. 

물론, 20대 초반의 호기어린 작가의 작품인 만큼 

거칠고 성마른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열정만큼은 대단합니다. 

 

삼차각설계도(三次角設計圖)

선에관한각서 6


숫자의방위학

 

Image4.jpg

 

숫자의역학

시간성(통속사고에의한역사성)

속도와좌표와속도

 

Image4+4.jpg

 

 

etc

 

사람은정력학의현상하지아니하는것과동일하는것의영원한가설이다, 사람은사람의객관을버리라.

 

주관의체계의수렴과수렴에의한凹렌즈.

 

4   제4세

 

4   1931년9월12일생.

 

4   양자핵으로서의양자와양자와의연상과선택.

 

원자구조로서의일체의운산의연구.

 

방위와구조식과질량으로서의숫자의성태성질에의한해답과해답의분류.

 

숫자를대수적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적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인것으로하는것에

(1 2 3 4 5 6 7 8 9 0 의질환의구명과시적인정서의기각처)

 

(숫자의일체의성태 숫자의일체의성질 이런것들에의한숫자의어미의활용에의한숫자의소멸)

 

수식은광선과광선보다도빠르게달아나는사람과에의하여운산될것.

 

사람은별―천체―별때문에희생을아끼는것은무의미하다, 별과별과의인력권과인력권과의상쇄에의한가속도함수의변화의조사를위선작성할것.

 

1931.9.12

<朝鮮と建築>, 1931. 10, 30~31쪽


 

위 작품에서 화자는 숫자의 방위학이나 역학에 관한 도상을 보여줍니다. 

권영민 선생님은 이를 힘, 시간, 방향, 속도 등 ‘고전물리학의 기초개념’을 도식화한 것으로 해석하죠. 

‘시간성’이나 ‘속도와좌표와속도’같은 것과 결부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4’나 이와 관련된 산술식을 세워 쓰고 뉘어 쓰는 것은 

마치 ‘선에 관한 각서2’에서처럼  1+3의 순서나 배열을 바꾸어도 

여전히 ‘블록렌즈’의 형상 안에 가두어진 것과 같은 효과를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충분히 그렇다고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주관의 체계의 수렴에 의한 오목렌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오목렌즈는 ‘선에관한 각서2’의 블록렌즈의 형상과 대비적인 짝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이는데, 

‘오목렌즈’는 이 시에서 ‘주관의 체계의 수렴’에 의한 숫자의 용법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것이 ‘숫자의 모든 성상 숫자의 모든 성질 이런것들에 의한 숫자의 어미의 활용에의한’ 활용이라고 

보다 상세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에서 성상을 찾고 어미의 활용을 찾는 것은 분명 뜬금없는 사용입니다. 

숫자에 성상이 있을리 만무하고 어미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러나, 이 숫자가 어떤 고유한 순간 (1931년 9월12일생)에 결합하거나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으로부터 해석이 이루어진 상태(양자와 양자와의 연상과 선택)에 

결합된다면 그 ‘숫자’는 더 이상 ‘방위와 구조식과 질량으로서의 숫자’의 용법은 더 이상 아닐 것입니다. 

 

“가령 언어학적 다양체는 ‘음소들’의 상호적 연관들이 이루어내는 어떤 잠재적 체계에 해당한다. 이 잠재적 체계는 상이한 언어들의 현실적 결합관계와 항들 안에서 구현된다.” (419) 

 

숫자의 성상과 어미를 상상하는 것은 분명 통상적인 사용방식은 아닙니다. 

그것은 ‘대수적’인 활용을 벗어나는 것이면서 ‘방위와 구조식과 질량’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숫자의 

용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화자는 ‘숫자’를 소리나 형상, 그리고 어미 변화에서처럼 미시적인 

차이들 속에서 새롭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일종의 ‘다양체’속에서의 활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숫자에 성상이나 어미 등 다양한 상관항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숫자, 더 넓게는 말에 관련된 잠재적인 차원을 드러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들뢰즈는 그와 같은 다양체를 통해서 ‘말하기의 능력이 가능해지고, 또 이 말하기의 초월적 대상이 가능하게 된다’ (419)고 말했습니다. 

 

만일 화자가 ‘숫자’를 통해서 경험적 실행을 벗어나는 언어의 메타적인 활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들뢰즈의 말마따나 화자는 분명히 ‘말해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숫자를 대수적으로만 활용하는  ‘시적인 정서의 기각처’에서 숫자의  ‘성상’을 복구시켜내고 

그것을 통해 ‘숫자의 소멸’을 가져오는 순간들을 창조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래서 화자가 

“별과별과의 인력권과 인력권과의 상쇄에 의한 가속도함수의 변환의 조사를 우선 작성할 것” 

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인력권으로부터 벗어나 무중력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언어를 경험적 사용의 범위 안에 고착시키고 가두어두려는 힘으로부터 벗어나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힘(별 간의 인력권)을 오히려 교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상쇄) 

‘가속도’를 변환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별과 별 사이의 인력권을 타고 가는 것. 이게 이상이 언어를 초월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의 언어적인 실험들은 말하기의 시적 실행, 또는 초월적 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메타 언어는 말해져야 하고, 오로지 잠재성과 범위를 같이하는 말하기의 시적 실행 안에서만 말해질 수 있다.”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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