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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104 2022-2학기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조르주 바타유 : 위반의 시학
에로티즘(L’EROTISME) 3장, 4장, 5장 발제

김동현

 

 

 

3장 번식과 관련된 금기

 

자유로운 동물적 성생활을 거부하는 우리 안의 보편적 금기

 죽음의 금기와 평행 관계를 이루는 일련의 금기들을 문제 삼는 데까지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인간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일정한 규칙과 제한 속에서 성행위를 해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그리고 성행위 앞에서 ‘금기’를 느끼는 동물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반응은 동물의 그것과 달라서 금기를 느낀다.
 금기는 형태가 분명치 않으며, 그래서 그 양상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성행위를 할 때 지키는 여러 가지 제한들은 이처럼 형태가 분명치 않은 금기에서 비롯된다.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우리를 구속하는 어떤 기본적인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다. 성에 제한을 가하는 우리 안의 금기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것이다. 여타의 개별적인 금기들은 그것의 변형들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고찰해야 하는 것은 모든 시대, 모든 풍토의 종교적 금기들의 총체이다.
 금기에는 언제나 폭력이 관계한다. 폭력은 무서운 동시에 황홀한 것이다.

 

 

근친상간 금기

 고대 사회는 인척 관계에 따라 사람들을 엄격하게 분류했으며, 그에 따른 결혼과 금기도 과학 이상으로 엄격했다.
 근친상간과 관련된 조치들은 공동체가 기꺼이 복종하기로 한 질서를 함부로 뒤흔들 폭력을 규칙 속에 묶어 둘 필요성과 일치한다.
 문제는 평온하고 합리적인 행동이 지배하는 세계와 성적 충동의 폭력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데에 기인한다. 시간이 흐르면 거기에서 생겨난 규칙들이 불안정하고 임의적인 형식이 아닌 명확한 정의를 얻을 수 있을까?

 

 

월경과 출산의 피

 피는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의 상징이다.
 출산 역시 그 자체가 이미 파열이며, 질서 있는 행동의 흐름을 넘쳐나는 과잉 아닐까?
 금기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우리가 체액에 대해 공포감을 갖는다 해도, 그와 관련된 금기들은 우리가 보기에 의미가 없다. 문제는 불변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가 다룰 것은 잘못 정의된 핵심 주변의 보조적 양상들이다.

 

 

4장 번식과 죽음의 친화성 

 

죽음, 부패 그리고 부활

 금기는 무엇보다도 일상의 폭력을 저지할 필요에서 생겨난 듯하다.
 금기들이 아주 대립적인 두 영역에 동시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번식은 사실 긍정과 부정만큼이나 대립적인 것들이다.
 하나의 죽음은 다른 하나의 출생을 예고하며, 전자는 후자의 조건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의 부패의 산물이다.
 생명은 죽음에 대한 부정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존재의 소멸과 관계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온통 삭게 만드는 죽은 육체의 부패와 관계한다. 고대인들의 경우 극단적 괴로움의 순간과 부패의 과정은 서로 관계가 깊었다. 육탈된 하얀 뼈는 벌레가 득실거리는 부패한 육신만큼 괴롭게 하지는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막연하나마 죽은 사람의 부패에서 자신들을 향한 죽은 자의 원한과 증오를 보며, 장례식은 바로 그것을 진정시킬 목적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부패에 생성 능력이 있다는 순박한 믿음은 부패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매혹이 없지 않은 공포감과 관계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구토, 구역질, 역겨움을 느낀다.

 

 

구토, 그리고 구토의 전체 영역

 시체 앞에서의 공포감은 우리가 배설해 내는 배설물 앞에서 느끼는 느낌과 아주 가깝다.
 오물, 부패, 그리고 성은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토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구토의 객관적 존재 이유는 불분명하다.
 역겨움과 구토는 전체적으로 교육의 결과이다.

 

 

생명을 낭비하고 싶은 충동과 그러한 충동에 대한 두려움

 내가(조르주 바타유) 지금까지 말하려고 한 것은 공허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공허는 어떤 한 순간에 열리는 공허이다.
 나는 혐오감, 공포감을 나의 욕망의 원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공포의 대상은 처음에는 내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킬지 몰라도 이내 나의 욕망을 충동질한다.
 우리는 생명이란 것이 안정에 던져진 올가미라는 사실, 즉 생명은 온통 불안정, 불균형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의 내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열병과도 같은 어떤 충동은 죽음으로 하여금 우리를 휩쓸도록, 짓밟도록 요구한다.
 우리의 재판은 충동을 수반하는 반복된 환멸 또는 위안에 대한 집요한 기다림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루어진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부’의 몸짓

 인간의 반항은 충동을 가속시킬 뿐이다.
 자연은 모든 존재의 본령이라 할 지속에의 욕구를 거슬러서 무한 낭비를 행사하는데, 성과 죽음은 축제의 최고조의 순간에 다름 아니다.


 번식은 그것을 낳은 존재들의 죽음을 요구하며 새로운 존재는 오직 소멸을 확장시키기 위해 태어난다. 부패와 성행위는 똑같이 반감과 구역질을 자극한다.
 가장 완벽한 금기조차도 사실은 더듬거림 속에 대략 만들어졌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혼미에 휩싸여서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렇게 노력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과연 노력했을까? 사실 인간은 폭력에(자연의 극단적인 폭력) 아니라는 분명한 대답을 한 적이 없다.

 


 

 

 

5장 위반

 

위반은 금기를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금기를 초월하고 안정시킨다.

 어떤 때는 위반이 처방전으로 제시되기조차 한다.
 살해의 금기는 이성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전쟁의 처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를 선택 앞에 서게 할 것이다.
 이성만으로는 설득력 있게 둘 사이의 관계를 확립할 수 없다.
 금기는 그 자체로는 지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
 금기의 비합리적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경우 우리는 금기에 복종한다. 하지만 부정의 감정이 긍정으로 변하면 우리는 금기를 위반한다. 그러나 한번 범했다고 해서 반대 감정의 가능성과 의미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위반

대체로 금기가 그렇듯이 금기의 위반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반이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떤 때, 거기까지, 그것이 가능하다. 가 위반의 의미이다.


위반이 제한을 두지 않았을 때의 [오세아니아의 예시]

사회와 자연의 모든 삶이 왕의 신성한 인격 속에 집약적으로 상징화되는 경우 왕의 죽음은 위기를 야기시키고 의례적 방종을 조장하는 순간이 온다. 민중의 폭력과 광란은 전혀 제지를 받지 않는다. 왕의 생명을 죽음의 힘으로부터 보호하던 방어벽이 무너지자 무절제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던 규칙들도 힘을 잃고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기에 이른다. 죽은 왕의 시신이 육탈되고서야 비로소 형태도 없이 분출하던 무절제의 시간은 막을 내린다.


 

 인간의 위반은 동물적 삶의 일차적 자유와는 다르다. 인간의 위반은 일상적으로 지켜지던 금칙에 한번 도전할 뿐, 한계를 유보해 둔다. 인간의 위반은 위반의 보완물인 세속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은 채 그것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인간 사회가 오직 노동의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세속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는 동시에 (혹은 연속적으로) 위반을 구성하며, 둘은 위반의 두 가지 보완적 형태들이다. 세속의 세계는 금기의 세계이다. 신성의 세계는 제한된 위반으로 열린 세계이다. 그것은 축제의 세계이고, 군주들의 세계이고, 신들의 세계이다.
 신성한 것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지시하는 금기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차원에서) 어떤 공포감, 전율을 자아내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 감정은 헌신 더 나아가 경배로 변한다. 인간들은 두 가지 충동에 동시에 복종한다. 하나는 두려움에 의한 거부적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매혹에 이끌린 경배의 충동이다. 요컨대 신성은 금기의 매혹적 양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성은 금기의 어떤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가 반드시 위에서 본 것 같은 왕의 죽음과 그에 이은 금기의 대대적인 제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은 오히려 위반이 강요되기도 한다. 일상적인 노동의 시간으로부터 축제의 시간으로 건너가면 어떤 가치 전도가 발생한다.
 종교적 행위의 절정에는 축제가 있다는 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적과 낭비는 종교적 행위를 구성하는 두 단계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금기의 위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애초의 강력한 금기들에 기초한 영적 생명의 잔치는 축제의 의미를 가지며 이때 그것은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위반이다.
 위반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밝히려면 덜 복잡한 다른 예들을 드는 것보다는 그것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 주는 기독교 또는 불교에서의 충일을 당장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선 나는 그보다 다소 덜 복잡한 위반의 형태인 전쟁과 제사를 순차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런 다음 육체적 에로티즘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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