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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의 3-4장 발제문입니다.

1890년대 초 영국의 잡지 나인틴스 센츄리에 연재한 글을 모아 1902년 런던에서 출간된 책.


제3장 미개인의 상호부조

1.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가설

: 인간이 서로 돕는 방식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익만 도모하기 위해 종의 이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경쟁하는 데서 자기 보호의 길을 찾았다

1) 18세기 홉스의 사상 : 이른바 ‘자연 상태’라는 것이 야만스러운 삶의 일시적인 변덕에 의해 우연히 한데 모인 개인들 간의 끊임없는 싸움에 다름 아니다. (100p)

2) 1881년 헉슬러의 논문 : 원시인은 윤리적인 모든 개념이 결여되어 있고 생존하기 위해 끝끝내 투쟁하며 ‘끊임없는 난투’의 삶을 사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폭 좁고 일시적인 가족 관계를 넘어선 장에서는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 전형적인 삶의 형태였다.” (101p)

2. 종족에서 비롯된 인간 사회의 기원

- 우리는 인류를 다룬 고민족학을 통해서 가급적 과거로 멀리 소급해 올라갈 경우 인류가 집단, 곧 가장 높은 수준의 포유류 집단과 유사한 종족에 해당하는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집단이 씨족이나 부족 조직이 되기까지는 아주 느리고 긴 진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러서 또 다른 긴 진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일부다처제 가족이나 일부일처제 가족의 맹아에 해당하는 형태가 등장했다. 그러므로 인류 최초 조상들의 원시적인 조직 형태는 가족이 아니라 집단, 무리, 종족이었다.(102p)

  - 동물학과 고민족학에서는 최초의 사회생활 형태가 가족이 아니라 집단이라고 보는 데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빙하기나 후빙기 인류 최초의 자취들, 구석기의 석기 대량발굴, 도르도뉴 장 지류 계곡의 구석기인 동굴, 신석기의 석기 제작소, 덴마크의 조개무덤, 스위스 호상 가옥 등

  - 우리가 원시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혼인 관계의 복잡한 구조다. 그들 대부분에서 우리가 규정하는 의미의 가족은 초기의 형태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은 남녀가 일시적인 변덕에 따라서 무질서하게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느슨한 집단이 결코 아니다. 그들 모두는 분명한 조직 밑에 있으며, 모건은 모든 면에서 볼 때 그 조직은 ‘씨족’조직이라고 했다. 초기 인류가 ‘집단혼’이라고 할 만한 단계를 거쳐 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즉, 종족 전체가 혈연이라는 것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남편과 아내를 공유했다. 하지만 아주 초기부터 그런 자유로운 성관계에 일정한 제한을 가했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108p)

  3. 개별 가족이 뒤늦은 출현

  - 가족의 맹아에 해당하는 것은 그런 씨족 조직에서 나타났다. 다른 씨족과 전쟁을 해서 포로로 잡은 여자는 처음에는 씨족 전체의 소유가 되었지만, 나중에 여자가 씨족에 대한 의무를 충족하고 나서는 그 여자를 포로로 잡은 사람이 자기 소유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씨족 내에 별도의 가족을 이루었다. 그런 가족의 출현은 분명 문명의 아주 새로운 국면을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가장 낮은 발전 단계로 알려져 있던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복잡한 조직이 발전되었으며, 여론이 권위 외에는 별다른 권위가 없던 것으로 알려진 사회에서 그런 조직이 유지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가장 낮은 단계에서조차도 인간의 본성 속에 사회적 본성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런 조직 밑에서 살 수 있고 개개인의 욕망과 끊임없이 상충되는 규칙에 쉽게 복종할 수 있는 미개인은 윤리적인 원칙이 결여되어 있고 격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짐승과는 분명 다르다.(109p)

  - 씨족조직의 특징은 원시 인류를 개인적인 욕망만 따르고 자신이 힘과 교활함을 이용해서 종족의 다른 모든 대표자에게 맞서는 개인들의 무질서한 연합으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고삐 풀린 개인주의는 근대의 산물이지 원시 인류의 특징이 아니다.(110p)

  4. 현존하는 미개인들

  - 부시먼족 : 친절하고 사심없고 약속을 잘지키고 감사해할 줄 아는 사람들. 이런 특성으 평소 부족 내에서 실천해야만 함양될 수 있는 것이다.(111p)

  - 호텐토트족 : 사회성과 서로 도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 뭔가를 주면 그것을 이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나눈다. 뭐든 혼자 먹는 법이 없으며 제아무리 배가 고파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함께 먹는다. 그들은 부도덕삼과 사악함,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술책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주 조용히 살고 있고 이웃과 좀처럼 다투지 않는다. 서로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하다. 고결함, 정의를 시행할 때의 엄격함과 신속함, 순결함은 전 세계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일찍이 이 지상에 출현한 모든 민족 중에서 서로에게 가장 친절하고 자유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이다.(콜벤)”(112p)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 그들 사이에는 감정이 오가는데 그 감정은 꽤 진하다. 약한 사람이 있으면 대개 도와주고 병자는 극진히 돌봐주며 절대로 버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이 종족은 식인종이지만 자기네 종족 사람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다처제. 부족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목검과 목재방패를 갖고 결투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노예가 없고 어떤 종류의 문화도 없다.(114p)

  - 파푸아족 : 그들은 사교적이고 명랑하다. 자주 웃는다. 용감하다기보다는 소심한 편이다. 서로 다른 부족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그런대로 꽤 강한 우정을 품고 있지만, 같은 부족 사람들에게는 더 강한 우정을 느낀다. 친구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럴 때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빚을 갚아준 친구의 자식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갚아야 한다. 그들은 아픈 사람과 늙은 사랑을 보살펴준다. 늙은 사람을 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오래도록 앓고 있는 사람이 노예가 아닐 경우에는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간통을 했을 때는 벌금을 내야 하고, 벌금의 일부는 공동체에 귀속된다. 토지는 공동으로 관리하지만 수확물은 재배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도기류를 갖고 있고 물물교환 방식을 알고 있다.(116p)

  - 에스키모 : 협소한 공간에 함께 거주하면서 서로 긴밀하게 상호의존해온 덕에 공동체의 이익을 깊이 존중하는 정신이 몇백 년 동안이나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다. 여론이 실질적인 법정 역할을 했고 범법자가 받는 대표적인 처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이었다. 에스키모 생활은 공산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 사냥과 물고기잡이로 얻은 것은 씨족의 소유가 된다. 그러나 덴마크의 영향을 받은 서부 에스키모 부족이 경우에는 그들의 제도에 사유재산 개념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족 통합을 신속하게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적인 부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제거할 수 있는 독창적인 수단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는 씨족 사람들 모두 초대하는 큰 잔치를 열고 나서 다 같이 실컷 먹은 뒤 전 재산을 모두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보다 가난해졌지만 그들의 우정을 얻었다고 말했다.(120p)

  - 알류트족 : 양식이 부족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면 우선 아이들부터 신경을 쓴다. 그가 가진 모든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주고 본인은 굶는다. 그들은 좀처럼 도둑질을 하려 들지 않는다. 알류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끔 뭔가를 훔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들이 훔쳤다고 하는 것은 늘 하찮은 것이어서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알류트 사람들은 좀처럼 약속을 하지 않으려 들지만 일단 약속을 했다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킨다... 전리품을 나눌 때 탐욕을 드러내는 것, 자기 아내에게 공적인 비밀을 누설하는 것, 둘이 함께 사냥하러 나가 사냥해서 잡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파트너에게 주지 않는 것 등등을 수치스럽게 여긴다.(123p)

  5. 유럽인이 이해하기 힘든 미개한 생활의 특징

  - 미개인의 높은 도덕성과 어버이 및 유아 살해라는 두 가지 사실이 공존하는 이유:

알류트 족 아버지가 며칠 혹은 몇 주를 굶주리면서도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식에게 준다는 것, 부시먼 족 어머니가 아이를 따라가기 위해 일부러 노예가 된다는 것. 이렇게 애정 깊은 부모들이 아기 살해를 자행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런 관습이 그저 부족에 대한 의무처럼 필연적인 어떤 압력 때문에, 혹은 이미 자라고 있는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개인의 숫자는 무한정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출생률을 낮추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온갖 제한 조처가 부과되며 그들은 그런 조치를 엄격히 따른다. 그렇게 함에도 원시 부족은 모든 아이를 다 키울 수가 없다. 그들에게 고정적인 생존 수단이 증가할 경우에는 곧바로 아기 살해 관행을 버리기 시작한다. 노인을 버리는 관습도 같은 원인에서 빚어진다. 노인은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미개인은 죽음을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기에 구조받기를 거부한다. 오늘날까지도 미개인은 가끔 자기네 종족 출신 사람의 시체를 먹으며, 따라서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시체를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노인들은 자기가 죽는 것이 부족에 대한 마지막 보아라고 확신하면서 죽었다.(127p)

- 어떤 유럽인이 어떤 미개인에게 유럽에는 성품이 아주 상냥해서 자기 자식을 무척이나 사랑하며 아주 예민한 감성을 갖고 있어서 무대 위 배우들이 연기하는 슬픈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반면 그 이웃집에서는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기도 한다는 얘기를 해준다면, 미개인 역시 유럽인을 도통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28p)

- 평균적인 유럽인이 미개인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모든 일에서 종족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자란 미개인도 연대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도덕적인’ 유럽인을 이해할 수 없다.(128p)

6. 다약족의 정의 개념

- 모든 미개인이 피에는 반드시 피로 앙갚음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개인의 정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것은 서구 유럽에서 살인에 관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미개인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종족에 속해 있을 때는 종족과 피해자가 사건을 결말짓는다. 그러나 가해자가 다른 종족 사람이고 그 종족이 이런저런 이유로 배상을 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속해 있는 종족이 복수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보복이 가해 행위보다 더 심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새로운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원시적 입법자들은 앙갚음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에는 피 정도에 그치게 하려고 애썼다.(132p)

- 다약 족은 싸움을 워낙 자주하는 터라 젊은이가 적의 머리를 따오지 못하면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장가도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크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다약 족의 머리사냥은 자기 종족에 대한 도덕적 의무로 여기는 것에 따라서 행동하며, 그것은 유럽의 재판관이 ‘피에는 피로’라는 명백히 잘못된 똑같은 원칙에 따라서 유죄판결을 받은 살인범을 교수형 집행자에게 넘겨주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132p)

- 다약 족은 정의에 대한 종족의 개념에 따라서 살인 행위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인정 많은 사람들로 묘사된다. ... 그들에게서 늘 ‘완전한 진실’만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진실 이외의 것은 전혀 들은 적이 없었다. (133p)

7. 불문율

- 다윈이 인간 진화의 주요 요인을 인간의 사회적 특성에서 본 것은 아주 옳았다. 다윈은 인간의 힘과 스피드의 부족, 타고난 무기의 결핍 등은 우선 그의 지적 능력이 상쇄해주고도 남음이 있으며, 두 번째로 인간은 사회적 특성 덕에 동료 인간들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썼다.(134p)

- 미개인은 미덕의 전형이 아니고 ‘흉포함’의 전형도 아니다. 그러나 원시적인 사람들은 혹독한 생존투쟁의 필연성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유지된 한 가지 특성을 갖고 있으니, 자신이 삶을 종족의 삶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짓수가 대단히 많고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예의범절이 그들의 모든 행위를 규제하고 있으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즉 무엇이 자기네 종족에게 이익이 되거나 해가 되는가에 관련한 그런 예절은 그들의 공동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불합리하건 하지 않건 간에 미개인은 불문율의 규정이 제아무리 불편해도 문명인이 성문법 규정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맹목적으로 규정을 따른다. 불문율은 그의 종교요 생활 습관 그 자체다. 그의 마음 밑바탕에는 늘 씨족에 대한 생각이 깔려 있으며, 씨족의 이익을 위해 자기를 절제하고 희생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135p)

- 미개한 종족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 약간이 음식이라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먹는다.(136p)

- 개개의 가족이 부족 통합을 깨트리지 않는 한, 부족 내에서 ‘각자는 모두를 위해’가 가장 높은 선이 된다. 그러나 그런 규칙이 이웃 씨족, 부족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는다.

 

제4장 야만인이 상호부조

- 인간도 역시 생존투쟁에서 서로를 가장 잘 도와주는 이들에게 가장 높은 생존 기회를 부여해주는 상호부조의 위대한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더 높은 문명 단계에 접어들어 그에 관해서 말해줄 것을 이미 갖고 있는 역사를 들여다보자마자 우리는 그 역사가 드러내는 투쟁과 분쟁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결속은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비관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인류 역사를 놓고 득의만면한 태도로 전쟁과 압제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라는 식의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인류에게 평화를 강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수의 고결한 이들에게 미래 인류의 더 나은 삶을 마련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강력한 권력에 의해서만이 인간의 호전적이고 맹수 같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사 시대 인류의 일상생활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지닌 선입견과 역사의 극적인 측면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는 둘째 치고, 우선 우리는 그들이 버릇처럼 들여다보는 문서 자료 자체가 인간 삶의 투쟁적 측면은 과장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경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밝고 화창한 날은 강풍과 폭풍 속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우리시대에 와서도 언론사나 법정, 관공서뿐만 아니라 작가들까지도 미래 역사가의 연구 자료가 될 막대한 기록을 똑같은 편향적 관점을 갖고서 쓰고 있다. 그들은 모든 전쟁과 전투, 사소한 충돌, 다틈과 폭력행위, 온갖 종류의 개인적 고통을 더없이 세밀하게 서술해서 후손에게 전해준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무수히 많은 상호지원과 헌신의 자취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 삶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곧 우리의 사회적 본능과 관례는 거의 무시하고 넘어가 버린다. 소수가 전쟁에 탐닉해 있는 동안 대다수 일반 대중은 평화롭게 노동하곤 했지만 작가들은 대중의 생활에 관해서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141p)

1. 대이동

- 2천 전 전에 모든 민족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내몰아 야만족의 대이동을 일으키고 결국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원인은 바로 건조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 우리가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만큼 빠른 속도로 아주 최근까지도 지속되었다. 몽골 북서부와 동투르키스탄 주민들은 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저지대로 이어지는 넓은 골짜기로 이동해서 그 평원에 살던 주민을 서쪽으로 몰아내는 수밖에 없었다.(143p)

2.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

- 몇 세기 동안에 걸쳐 한부족이 다른 부족을 밀어내 어느 정도 영구적인 새 거주지를 찾아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하게 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그런 식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인종 혼합이 진행되었고 원래 살던 땅에서 주민을 하나로 결속시켜주는 기능을 하던 사회제도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새로운 생활 조건의 요구에 따라 수정되거나 변경되었다. 씨족 연합은 씨족 내에 개별적인 가족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 가족이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생겨났으며, 결국 그것은 개별적인 부와 권력이 축적됨과 아울러 그 두 가지가 세습된다는 것을 뜻했다. 야만족의 빈번한 이동과 그에 따른 많은 전쟁은 씨족이 개별적인 가족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촉진시키는 기능만 했을 뿐이다.(144p)

3. 마을 공동체

- 많은 씨족이 해체에 저항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좀 더 강력한 씨족은 해체되지 않고 뒤이은 1천5백 년간 그들을 하나로 결속시켜준 마을 공동체라는 새로운 조직으로 그 시련을 극복했다. 공동의 노력으로 획득하고 지키는 공동의 땅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고, 그런 개념이 같은 혈통이라는 사라져가는 개념을 대신해서 들어섰다. 공동의 신은 점차 조상으로서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해당 지역이 토속적인 특성을 부여받았다. 해당 지역의 성인이나 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 영토’는 거주자들과 동일시되었다. 과거의 혈족 연합 대신에 영토 연합이 자라났고, 이 새로운 조직은 주어진 상황에서 분명히 많은 이점을 제공했다. 마을 공동체는 가족의 독립성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강조하기까지 했으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간섭할 수 있는 일체의 권리를 포기했다. 그 공동체는 개인의 자주성에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 공동체는 주술사와 사제, 전문적인 전사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전사처럼 공동체를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진 소수에게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결과적으로 그 조직은 미래 조직의 으뜸가는 세포가 되었으며, 마을 공동체는 많은 국가와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그 성격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가족들이 서로 연합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었고, 몇 개의 마을이 연합해서 부족을 이뤘으며, 부족들이 연합해서 부족 연맹을 이뤘다. 이른바 ‘야만족’이 유럽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발전된 사회조직의 면모는 이러했다. 씨족내에서 사유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경우는 볼 수 없었지만 마을 공동체는 가족이 사유재산을 축적하고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때의 부의 개념은 ‘불이 났을 때 완전히 타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범주에 속했다. 마을공동체는 개인의 토지 재산 같은 것은 인정해주지 않았고 또 인정해줄 수도 없었다. 땅은 부족이나 종족 전체의 공동 재산이었고 마을 공동체는 부족 땅의 일부를 소유했으며, 그 땅은 부족이 마을에 할당된 땅의 재분배를 요구하지 않는 한 마을의 땅에 속해 있었다. (147-148p)

4. 공동 작업

- 숲이나 초원을 개간해서 경작지로 만드는 일은 주로 마을공동체가 맡아서 하거나 최소한 몇 가족이 공동으로 했다. 하지만 몇 가족이 작업해도 사전에 항상 공동체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개간된 경작지는 그 몇 가구가 4년이나 12년, 혹은 20년 동안만 소유하고 그 기간이 끝난 뒤에는 마을의 공동 경작지의 일부로 취급되었다.(148p)

- 마을공동체는 각자에게 공유 토지의 공정한 몫을 보장해주기 위한 연합체였을 뿐만 아니라 공동 경작, 가능한 모든 형태의 상호지원,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지식과 종족의 결속과 도덕적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합체이기도 했다.(149p)

- 야만족의 마을 공동체에서도 농지의 공동 경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공동 경작이 꼭 공동 소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으로 수확한 식량조차도 그 일부를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고에 저장한 뒤에는 대체로 각 가구별로 분배된다. 공동으로 밭갈이를 하고 파종을 하는 관행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마을 공동체가 다양한 농사일을 더불어 하는 관행은 지속되었다.(151p)

- 공동으로 관개수로를 파거나 정비하고 공유 목초지의 풀을 함께 벤다. 울퉁불퉁한 도고, 나루터, 겨울철에는 철거해뒀다가 봄 홍수가 지나가고 난 뒤 다시 건설하곤 하는 목조다리, 마을의 울타리와 말뚝 담장, 공동체의 땅 곳곳에 흩어져 있는 토성과 작은 탑은 야만인 공동체가 이루어낸 것이다.(153p)

5. 사법 절차

- 모든 분쟁 건은 조정자나 중재자들 앞에 먼저 회부되었으며, 야만족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그 중재자들이 대부분의 사건을 끝냈다. 하지만 만일 사건이 너무나 중대해서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에는 민회에 회부되었다. 민회는 반드시 ‘판결을 내려야’할 입장이어서 ‘만일 잘못이 입증되었을 때는 이러저러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조건부 결정을 공표했다. 그리고 그런 잘못은 여섯 명에서 열두 명 정도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실임을 서약하거나 사실이 아님을 서약하는 식으로 해서 죄가 있고 없음을 판결해야 했다. 양쪽 배심원들의 증언이 서로 팽팽하게 맞설 경우에는 죄인판별법이 동원되었다.(154p)

- 그런 절차가 지닌 도덕적인 권위 말고는 민회의 결정을 집행하게 해줄 만한 다른 어떤 권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권위에 반기를 드는 사람에게 공동체가 써먹을 수 있는 유일한 위협 수단은 그를 공동체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법자로 선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협도 일방통행적인 것이 아니었다. 민회의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은 그 부족을 버리고 다른 부족에게 가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었다. 부족의 입장에서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위협이었다. 구성원 중의 어느 한 사람을 불공정하게 대한 부족에게는 온갖 재난이 닥쳐올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155p)

- 코뮌의 도덕적 권위는 실로 막강해서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마을 공동체가 봉건영주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도 마을 공동체는 본래 갖고 있던 사법권을 그대로 유지했다.(156p)

- 색슨 부족범에서는 방화와 무장 강도를 저질렀을 때는 거리낌 없이 사형 판결을 인정했지만, 그 밖의 야만족의 법은 친족을 배신했을 때와 공동체의 신을 모독했을 때만 사형 판결을 내렸으며, 후자이 경우에는 오로지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157p)

6. 부족 간의 법

- 공동체는 결속 감정에 의해서 뭉치는 사람들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부족이 종족으로 연합했을 뿐만 아니라 종족 역시 연맹으로 하나가 되었다. 일부 연맹의 결속력은 아주 강했으며, 반달 족은 연맹이 일부가 라인 강 유역으로 d하고 거기서 다시 에스파냐와 아프리카로 이동한 뒤에도 그들은 자기네 연맹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경계표와 마을을 40년 동안이나 존중하면서 고스란히 내버려뒀고, 사절을 보내 떠나간 사람들이 돌아올 의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그 마을을 소유했다.(159p)

7. 우리 당대인의 삶을 통한 사례

- 야만족이 점유하고 있던 유럽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 국가와 같은 것이 성장하기 훨씬 전에 유럽 전역에서 민족의 개념이 서서히 발전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이 민족들은 언어 공동체를 통해서, 그리고 어느 특정 가문 출신 사람만을 군주로 뽑는 소국들의 묵계를 통해서 하나로 결집되었다. 전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이동은 곧 전쟁을 뜻한다. 헨리 메인 경은 국제법의 부족적 기원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연구에서 “인간은 전쟁을 예방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전쟁이라는 악에 무작정 기댈 만큼 흉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다.”는 점을 입증헸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막거나 그것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내재된 고대 제도의 숫자가” 얼마나 엄청나게 많았는지를 자세히 보여줬다.(160p)

- 전사라는 직업이 전문화된 원인은 바로 인간의 평화 지향성이었으며, 후대에 이르러 그런 전문화가 농노제를 낳았고, 인류 역사에서 ‘국가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의 온갖 전쟁이 벌어졌다.(161p)

8. 야만인

- 부랴트 족 : 어느 한 가족이 가축 떼를 잃으면 더 부유한 가족이 그 가족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게끔 얼마간의 암소와 말을 주는 관습이 있다. 가족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이웃 사람의 오두막에서 식사를 한다. 잠도 저녁을 얻어먹은 집에서 잔다. 부유한 가족이 일군을 고용할 때면 반드시 다른 씨족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 커바일 족 : 토지의 사유재산제와 공유재산제가 공존하고 있다. 조직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마을공동체인 타다르이다. 젬마라고 하는 마을 공동체의 민회 외에는 어떤 권력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만장일치제로 참석한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까지 토론을 계속한다. 공동경작, 공동집짓기, 도움은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상호부조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악의 힘을 약화시키고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가 포함된 장터, 아나야와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우발적 사태로부터 구성원들을 지켜주는 국경의 한계를 넘어서는 친화적 상호관계를 드러낼 의도로 형성된 초지역적 연합, 소프가 가장 특징적이다.

- 캅카스 산악민 : 아주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사소한 다툼이 목숨을 건 심각한 싸움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정직함, 동료의 권리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전형적인 특징이다.

- 아프리카 종족 : 국가법은 왕이 단순한 변덕에서나 과한 욕심 대문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허용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관습법은 상호지원을 위한 제도의 관계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결론 : 인류 역사에서는 유사한 진화과정이 지속되어 왔다. 씨족 조직이 안으로는 개별 가족에 의해서, 밖으로는 일부 씨족이 떨어져 나가고 그에 따라 다른 혈농의 외부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에 의해서 위협을 받았을 때 영역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가 출현했다. 야만족은 씨족에게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이 새로운 제도에 힘입어 고립된 가족으로 와해되어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던져지는 일 없이 역사상 가장 어지러운 한 시대를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었다. 다른 혈통을 가진 종족에게까지 확대된 더 넓은 연합 개념이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그저 앙갚음에 치우쳤던 과거의 정의 개념은 서서히 깊은 변화를 겪으면서 복수 대신에 잘못의 교정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갔다.

상호지원을 지향하는 대중의 성향이 택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훗날 출현한 국가는 이미 마을 공동체가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시행해왔던 모든 사법적, 경제적, 행정적 기능을 그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독차지하는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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