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에세이자료집] 2019인사원_니체 :: 너희가 니체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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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acle | 2019.01.31 | 664 |
1345 |
[조르주 바타유 : 위반의 시학] "폭풍의 언덕" "문학과 악" 비평
| 동현 | 2022.11.21 | 42 |
1344 |
[조르주 바타유: 위반의 시학] 『폭풍의 언덕』 비평 쪽글
| 사각사각 | 2022.11.20 | 53 |
1343 |
[사변적 우화] 스트래선, 부분적인 연결들 1부 미학 발제
| Siri | 2022.11.17 | 43 |
1342 |
[사변적 우화] 스트래선, 부분적인 연결들 pp.115~164
| 긴노래 | 2022.11.17 | 106 |
1341 |
[숲은 생각한다] 후기- 동시대 예술과 함께
[2] | 채승우 | 2022.11.14 | 161 |
1340 |
[사변적 우화: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숲은 생각한다 후기
| sora | 2022.11.11 | 51 |
1339 |
사변적 우화 :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6장 발제
| whitespace13 | 2022.11.10 | 37 |
1338 |
[사변적 우화] <숲은 생각한다> 5장 형식의 노고 없는 효력 (발제)
[1] | 엄정야 | 2022.11.10 | 121 |
1337 |
[조르주 바타유 : 위반의 시학] 9강 발제
| 필아 | 2022.11.07 | 38 |
1336 |
[사변적 우화 :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숲은생각한다> 4장 발제
| Siri | 2022.11.03 | 51 |
1335 |
[사변적 우화 :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숲은생각한다> 3장 발제
| Siri | 2022.11.02 | 90 |
1334 |
[사변적 우화: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7강 쪽글
| sora | 2022.11.02 | 31 |
1333 |
바타유 8강 발제
| 동현 | 2022.10.31 | 33 |
1332 |
[사변적 우화: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6강 쪽글
| sora | 2022.10.27 | 43 |
1331 |
[사변적 우화_발제] 숲은 생각한다 2장 - 나희덕
[2] | 평화 | 2022.10.27 | 100 |
1330 |
[사변적 우화 :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숲은생각한다> 1장 발제
| 채승우 | 2022.10.27 | 61 |
1329 |
[사변적 우화 :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숲은생각한다> 서론 발제
| Siri | 2022.10.26 | 101 |
1328 |
[사변적 우화: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종과 종이 만날때> 후기
| 채승우 | 2022.10.26 | 79 |
1327 |
조르주 바타유 [죄인/할렐루아] 우정
| 박소원 | 2022.10.23 | 61 |
1326 |
[사변적 우화: 새로운 동맹을 위하여] 종과 종이 만날때를 읽고
| sora | 2022.10.22 | 53 |
니체야말로 들뢰즈 철학의 '높고 맑은 대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들뢰즈가 니체에서 멈추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방면에서 우리가 '권력의지', '영원회귀', '가치전환'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시대적 혼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들뢰즈 철학의 본격적인 문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니체로부터 들뢰즈-우리는 어떤 실천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명법'을 도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뭔가 출구가 보일 것 같습니다.
도대체 '반시대적'으로 실천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 안에 니체-들뢰즈-우리의 삼각편대가 적들의 심장으로 향해 갈 수 있는 야전지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