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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2주차 후기

재연 2022.04.02 08:45 조회 수 : 107

푸코 후기 3/28

 

물음 1. 자기 돌봄은 정치가 아닌 철학인가?

물음 2. 정치와 철학은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물음 3. 자유와 권력은 정의와 절제 따위와 함께갈 수 없는 것인가?

 

 

독립연구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매력적인 문장들을 만났다. 그녀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람이라고 느낄 때는 사회가 우리를 불러줄 때이다. 그에게 사회의 한 자리(장소)를 내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것은 ‘환대’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의 신체가 어떤 공간에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인간이다. 자연적 실체로서 인간. 그러나 누군가의 환대로 불리울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인간과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람으로서 환대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어있다.

 

우리의 눈동자로 타인의 행동을 살피고 그것으로 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환대의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자연적인'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걸까. 우리는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말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어째서 자기돌봄 행위인가? 어째서 그것은 숭고한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푸코는 어째서 후기에 자기돌봄의 행위를 통하여야만 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을까. 어떻게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모두가 떠날때조차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알키비아데스의 정치적 욕망이 사실 소크라테스의 자기돌봄의 욕망과 일치함을 ‘자연스럽게’ 알아채렸던 것은 아닐까. 당시 너드미가 쩌는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알아봐주고 그가 설파하는 자기돌봄의 가치를 알아볼 타자가 바로 알키비아데스라 여긴 것은 아니였을까.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김현경의 말을 다시 빌린다. 그는 사회를 어떤 ‘유기체나 시계, 또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집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사회는 물리적으로 분명한 무엇이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타자의 행위를 통해 존재라는 공간을 확인하고 그도 나를 알아챌 수 있도록 나의 존재 신호를 보내는 것이 바로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를 띠는 것이다. 물론 타자는 그 신호를 무시할 수 있다. 나의 존재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상호작용은 늘 관계 맺어지는 것은 아닐테다. 어찌됐든 이러한 신호들이 겹겹이 쌓여 나만의 경계, 타자와의 경계, 또 나아가 사회와의 경계들이 생겨난다.

 

상호주관이 존재하는 공간을 인식할 실천이 곧 자기돌봄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돌봄 행위는 ‘우리가 함께 사회 안에 있다는 믿음’을 위한 것이겠다.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자기돌봄에 대한 믿음으로 향하였고 이 마음은 자연스럽게 알키비아데스의 존재 공간으로 닿게 해주었다. 그가 처음부터 알키비아데스에게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알키비아데스가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존재 공간을 알아차려줄 때가 아닌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알키비아데스의 존재 공간에는 아직 자기돌봄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때라 판단한 것이며 그가 여러 다른 사랑으로부터 환대받을지라도, 결국은 알키비아데스의 정치적 욕망이 소크라테스가 감각한 그것이 맞다면 어떤 시기엔 분명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필요로 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존재 공간에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노크를 했고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와의 존재 공간에서 사랑을 경험했다. 알키비아데스의 정치적 욕망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사랑을 경험했다. 소크라테스는 진정 지혜로운 자가 아니겠는가! 자기돌봄의 중요성에 일정정도 신뢰가 간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정리한다. 푸코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위의 물음들에 더 깊이있게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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