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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수유너머104 인사원_불온함 페미니즘 190603 효영

 

다나 해러웨이, 『종과 종이 만날 때』(2008), 최유미 옮김

 

제1부 우리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해러웨이의 일관된 물음은 복수의 종이 ‘함께하다(becoming with)‘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현실세계적(worldly)’ 실천이 될 수 있는가이다. 그에게 현실세계란 하나의 얽힘, 콘택트 존(contact zone)이다. 여러 차원이 착종하고 각자의 신체가 치열한 일상을 체현하는 뒤얽힘 속에서 산다. 그 얽힌 내실을 파악하기 위해 해러웨이가 택하는 도구는 ‘형상(figure)’이다. 어떤 표상이나 교훈적 예시로 환원되지 않는 형상은 그 자체가 서로 교차하고 서로를 형성하는 ‘물질-기호론적 결절점 내지 이음매’(3)로 작동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남아있다는 용례를 차용해 해러웨이는 이를 ‘키메라적 시각(chimerical vision)’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습기 찬 협곡에 세콰이어 그루터기가 만들어 낸 ‘짐의 개’(4), 비트로비우스적 인체도를 견체도로 슬쩍 바꿔놓은 ‘시드니 해리스의 개’(6) 단 피라로(Dan Piraro)의 풍자만화에 등장하는 랩탑과 대결하는 랩독들(6), 야생의 늑대 무리 중 한 마리가 과학자에게 길러진 늑대를 동료에게 소개하는 워렌 밀러의 삽화(9)는 모두 이런 형상의 차원이자 키메라적 시각으에서 제안되고 탐구된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분명 순수/초월적인 테크노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레오나르도의 개’보다는 ‘잡동사니 모임’에 가까운 ‘짐의 개’를 더욱 선호하고, 인간예외론의 판타지를 부순 프로이트에 머물기보다는 사이보그 정보론이라는 네 번째 파열의 지대가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 유기적 육신과 테크놀로지의 육신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 라투르가 ‘큰 분기(Great Divides)’라고 부른 그 사이에서, 해러웨이는 어떤 행복한 결말도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 만남에 주목한다. 오직 ‘약간의 기품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서로 경의를 갖고 서로에게 응답할 것인가?

함께 되는(becoming with)의 과정에서 해러웨이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두 사례는 데리다와 들뢰즈ㆍ가타리이다. 작은 고양이의 시선으로부터 응답(response)과 반응(reaction)의 구별을 고민하고, ‘이름이 부재하다는 것을 상실 이외의 어떤 것’(16)이라는 통찰까지 나아갔던 데리다는, 적어도 ‘응답(response)’과 ‘경의(respect)’라는 덕목을 위한 우리의 씨름, ‘무슨 수를 써서라도(꼭) 본다는 것(respecere)’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런 시선에 응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데리다에게 자신의 작은 고양이는 응답을 육성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반면 해러웨이에게 들뢰즈ㆍ가타리는 용납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무엇보다도 이들의 동물-되기에서는 ‘온갖 세속적이고 보통의 존재에 대한 조소와, 실재 동물들에 대한 호기심과 경의의 철저한 결여 밖에 발견되지 않’(21)기 때문이다. 오히려 들뢰즈ㆍ가타리가 강조하는 ‘예외적 존재’란 해러웨이에게 ‘함께 망을 형성하는 유능하고 숙달된 동물이 아니라 특성을 갖지 않고 부드러움도 갖지 않은 존재’(23)일 뿐이다.

해러웨이는 여기서 다시 마굴리스의 ‘오토포이에시스’(25), 그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발생생물학자 스코트 길버트가 제안하는 ‘종간(interspecies epigenesist)’(25) 개념을 거쳐 동물행동학자 셀마 로웰의 사례로 눈을 돌린다. 스물 두 마리의 양에게 매번 스물 두 번째의 보울을 놓는 실천 속에서 행해지는 양과 연구자간의 세속적이고 정중한 행동에 해러웨이는 경의를 표한다.

궁극적으로 서론의 결론은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와 함께되기라는 것은, 현실세계적이 되기의 실천과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28) ‘콘택트 존’이 가리키는 ‘접촉’ 내지 만짐‘은 이 질문에서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오직 ’10%만이 인간 게놈이고, 나머지 90%는 세균, 균류, 원생샐물 등의 게놈으로 가득차 있다’(2)는, 말그대로 ‘혼효적 진흙속에 싫든 좋든 존재하고 있는’(28) 우리 파트너들에게 해러웨이는 ‘접촉하는 것이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지엽을 넓히고, 설명책임을 조형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더 살기 적합한 ’다른 세계들(autre-mondalisation)을 지상 특유의 복잡성의 내부에서 찾는 작업에 참가하기 위한 결합 부위들은‘ 우리가 자신의 개를 처음 어루만졌을 때 생각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33)

 

+)재미있었던 부분: 데리다 사례와 관련된 ‘상호응답’의 문제를 ‘얼굴’로 설명한 부분

+)질문:-모든 것들을 형상(figure)으로 생각해보자는 해러웨이의 권유는 ‘구체적인 것’ ‘신체 자체’ ‘살아온 현실이 갖는 힘과 만나는 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 같다. ‘형상’을 ‘스토리텔링화’로 이해해도 될지?

-‘중첩하는 거북이’(25)와 로웰과 양들의 사례는 이해가 어렵.

-예외적 개체에 대한 해러웨이의 비판을 재고할 가능성은 예외적 개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않을까. 로웰의 사례 중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예상대로 행동할 양인가, 아니면 우리을 놀라게 하고, 사회적이다 함은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정의를 확장해주는 양인가’(28)

 

2. 가치를 띤 개와 살아있는 자본

맑스가 고찰한 상품의 형태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관계적인 감각성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인간주의적인 목적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혐의를 갖는 맑스에게 던지는 해러웨이의 물음은, 인간의 노동력이 ‘살아있는 자본(biocapital)’의 ‘일부’일 뿐이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이로부터 2절에서 해러웨이는 <생-자본론> 쓰기를 시도한다. 개의 세계에 격렬한 상품화가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해러웨이는 이 장을 맑스가 설정하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에 더해, 만남의 가치라는 삼자 간의 구조를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개에게 값어치를 매기는’ 생 자본에 대한 탐구의 첫 번 째 주제는 ‘시장과 상품’이다. 산업으로서의 애완동물 사료시장, 건강과 관련된 의료시장, 휴가나 완구시장, 혹은 그 반대편에 품종에 따른 개의 상품화 등을 훑는 해러웨이의 검토는 결과적으로 (아마 맑스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복수종이 관계하는 망’의 복잡성을 지시한다. 반려견의 MRI비용으로 400달러를 지출하는 것과 공립학교 설립 내지 습지 보전을 위한 지출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그보다 이전에 ‘살아있는 자본이라는 체제에서 도대체 어떤 비교를 하는 것이 적절할까?’(5) 분명한 것은 ‘부모/어린이, 후견인/피후견인, 소유자/재산/등의 관계는 ’우리 가운데서 출현하고 있는 복수종을 포함한 모든 관계성에 있어서 쓸모가 없다는 사실‘(6)이다. ’인간예외주의‘에 대항하는 데는, ’인간의 상대인 개의 인간화에의 저항‘이 필요하다.

두 번째 주제는 ‘기술, 일꾼. 지(지식)’이다. 개는 분명 노동의 주체이다. 목양견은 그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개는 인간의 노예도, 임금 노동자도 아니다. 개의 앞발은 단순한 앞발이지 노동자의 손이 아니다. 에드먼드 러셀이 지적하듯, 생물을 기술 그 자체로 분석하고, 바이오테크놀로지를 공장, 일꾼, 생산물로 본다면, 살아있는 자본이라는 체제에서 개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일꾼, 테크노사이언스의 지식의 생산을 매개하는 주체’(10)이다.

마지막 세 번째 주제는 ‘만남’이다. 형무소에서 개와 인간의 만남은 여기서 좋은 사례가 된다. 한편으로 형무소는 개에게 포로를 위협하는 임무가 맡겨져 공격견으로 살다 안락사를 기다려야 하는 끔찍한 공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같은 형무소를 다른 문맥에서 살펴볼 수도 있는데, 독방에서 인간수형자와 개가 함께 사는 프로젝트는 상호복종과 훈련을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몸에 습득하는 과정을 그린다. 개와 인간이 서로 변용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만남의 가치를 발견한다.

물론 <생-자본론>1권을 개와 인간만으로 쓸 수는 없다. 언제나 문제는 반려종이고, 그것은 곧 ‘약속이고, 과정이고, 산물이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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