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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 56장 발제

창근 2021.06.03 19:29 조회 수 : 75

5. 생기론도 아니고 기계론도 아니다

 

필자는 오늘날의 비판적 생기론자라 불리는 베르그송과 드리슈의 관점에 동의한다. 물론 그들에겐 자연적 과정에서, 그들이 식별해낸 생기를 설명하지는 못한 한계가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 자연과 물질은 언제나 양화, 예측, 통제에서 벗어나는, 생명력이라 불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사물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유지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한다.

 

비판적 생기론

 

1차대전 직전 “끊임없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가능성의 세계로서 막 태동하려는 세계로서” 바라보는 생기론이 등장한다. 드리슈의 강의가 “자연 개념의 확장”을 더하며, 공간 전체와 부분적 공간으로 배아 내의 형태적 변화의 예시를 든다, 이는 종자, 배아, 개성, 문화를 모두 유기적인 전체로 볼 수 있다면 물리적, 심리적, 문명적 질서 사이에 동형관계가 존재함으로 확장된다. 물리 화학적 수단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생기적인 힘 생명의 원리에 대한 고찰은, 이 현대과학의 실용주의적 성공이 우주를 신이 부재한 기계로 바라보게끔 위협했던 시대에, 생명과 자유에 대한 수호자로 비춰지게 한다.

 

형성 충동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순전한 물질(질료)인 물질에게 그것의 본성과 상충하는 어떤 속성(생명의 속성)을” 부여하면 안 된다 하며 물질이 자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말한다. 그러나 형성 충동은 단순한 물질의 집단 내에는 없으나 유기체 내에는 존재하는 불가해한 자기 조직적인 권력을 뜻한다. 그것은 “한낱 기계적인 형성력”과는 구별되는 ’유기적인‘ 특질을 부여하는 비물질적이고 목적론적인 충동을 뜻한다. 이는 분화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물질 덩어리가 긴밀히 협력, 절합이 되며 가장 높은 단계인 ’인간‘ 이 되도록 촉진한다.

 

그는 블루멘바흐에게서 기계론적인 원리와 유기적인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인 원리의 결합을 빌려오는데,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는 인과성,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해한’ 본성에 대한 논의에 동의한다. 이 둘은 생기적인 힘을 물질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시키려 노력한다. 더불어 이것이 자신 안에 제약을 갖고 있으며 잠재적인 “그 종족에게 분여된 내적 합목적적 소질”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 이 소질은 유기체가 일련의 목적을 향해, 자신의 되기와 안정된 창조의 순서를 연결시키게 되는데. 여기서 필자의 초점은 형성충동이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와 관련, 근본적인 제약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서 형성 충동이 자유로운 의지와 함께 공존한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그리고 칸트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입장, - (원자 이탈을 이질적인 것이 아닌, 자체 내재한 활력적 자극이라 한)에 대해서 과학적이지 않은 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필자는 칸트와는 달리, 형성충동이 행위적인 권력을 가짐에 있어, 비인격적 행위성이 물질성의 핵심이라는 생각과, 생기가 인간이나 신성한 합목적성과 구별된다는 생각 모두가 가능하다 짚는다.

 

생명력

 

드리슈는 강의에서 칸트가 갖고 있던 물질의 이미지를 지지하는데, 이는 물질이 능돌적이고 유기적인 물질이 되기 위해 그리고 미리 결정된 방식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는 구조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보충물이 필요하다는 지점이다. 이러한 생기적 원리가 우리에게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오직 유기체 내에서 실제로 수행되는 작업임을, 그렇지만 어떤 기계적 물질도 홀로 수행할 수 없는 작업을 실행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리고 생명력은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모델을 부정하는 공간 그 틈에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생기론을 입증하는 작업을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시키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기계론적 인과성의 설명으론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저자는 생명력에 대한 첫 번째 정의를 이끄는데, 그것은 성숙한 유기체의 연장적인 다양체가 그로부터 창발하는 강도적인 다양체라는 것이다. 드리슈는 성게의 세포 분열 실험을 통해, 기계론적으로만 접근했을 때, 생명을 이해하는 일의 한계를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생기적 원리는 기계론적인 신체도 무형의 영혼도 아니었다.

 

실험실에서 이뤄진 드리슈의 작업 목적은 단순히 유기체의 역동적인 화학적, 물리적 성질에 대해 이해 뿐만 아니라, 기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식별하는 것이었다. 드리슈는 실험 끝에 힘들 추동하는 무언가를 생명력이라 불렀다. 생명력은 생명 현상을 유발하는 비-기계론적 행위자였다. 그리고 생명력은 유기체의 신체를 예술적으로 배열하거나 구성하기도 한다. 재형성 하는 과정을 넘어 오직 생명만이 형태를 형성할 수 있다. 식물의 각 부분은 산의 광물이나 화학적 성분과는 달리 전체를 이루는 구성요소이다. 이는 축음기와 다르게, 요소 하나의 변화로 조화로운 통합적 반응을 유발한다. 이러한 비-유기적 체계는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학습해낼 수 없고 구현된 모든 행위는 개별적 자극에 대한 개별적인 응답으로 구성한다. 특히 드리슈는 이 유기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지시권력, 결정적 행위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추론한다. 그러나 특정한 결과 사이의 대응관계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드리슈는 생명력이 스며든 생명과 비-유기적 물질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나와 나의 시체예시) 생명력의 지시권력은 내부에서 작동하는데, 앎과 의욕의 어떤 유사물이 모든 유기적인 과정 내에 있다고 드리슈는 말한다. 그것은 유기체 전체를 유지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들을 알고 발견한다. 드리슈는 형태 발생 설명에 있다. 모든 기계론적 설명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말한다.(기계– 재생불가, 유기체-회복및재생탄력성)

생명력은 양이 지니는 모든 (화학적) 특징을 결여하고 있으며 관계의 질서이고 절대적으로 무다” 이는 ‘생성의 가능성들‘ 만을 이용하는 물질 작용 사이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형이상학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한다.

 

베르그송과 생의 약동

 

베르그송의 생기론 역시 생명과 물질 사이의 구별에 기반을 둔다. (최대한의 능동성과 / 수동성,공간의 연장) 그는 생명이 수학적 접근 허용이 불가한 이유를 움직이는 흐름이라는 생명의 본성에서 찾았지만, 생명이 양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드리슈와 입장을 같이 한다. 그는 서로 생리학적으로 서로 다른 눈의 존재에 주목과 회복 현상을 통해, 비-기계론적인 행위자를 생각해낸다. 특히 활기가 넘치고 무언가를 촉발하는 이 특질, 생의 약동을 강조한다. 이는 “다발의 형태”로 생기적 추동력의 자기-다양화 (분화) 과정을 묘사한다. 특히 베르그송은 생기적 힘이 사용하는 수단들이 규정될 때의 우연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실제 그것이 전개되는 순간에 (가능성으로)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와 동시에 창발하는 것이다. 하여 이는 생기적 충동의 목적이 전체를 보존하는 것이라는 드리슈의 주장에 반박한다.

그에게 유지되는 전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전환의 과정에 놓이고 안팎으로 흐르는 것이다. 결국 생의 약동은 물질적 형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비결정성을 창대시키며,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된다. 이는 드리슈와 달리, 새로운 것의 창조로까지 포함한다. 이는 한 방향으로의 작용이지만 미리 설정된 계획의 구현은 아니다. 이는 자신을 초월하는 결과들을 창조하고 생성한다.

 

베르그송과 드리슈는 이 활력이 물리 화학적 성향의 제약 내에서 작동한다 보았다. 드리슈와 다르게, 베르그숑은 생의 약동은 자기-배제적이므로 자기 자신과 언제나 불화하며 스스로를 비결정적인 상태로 변화시킨다 보았다. 그는 배아 부분 발달의 예시로 단일 모델을 긍정하지 않았다. 드리슈는 생기적 행위자와 배열 및 지시 권력을 강조했고, 베르그송은 창조적인 능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둘은 모두 물질을 생산하고 조직하며 보다 활력이 넘치도록 만드는 생성 권력을 가진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6. 줄기세포와 생명 문화

 

21세기 초반 생명과 물질 사이의 근본적인 구별에 대한 (배아 줄기세포등) 논의가 활발해진다. 영혼의 생기론에 함의된 신-인간-자연 이라는 위계적 논리가 손쉽게 사회, 정치 계급 사이의 위계로 전환되는 사이, 드리슈는 연구실에서 배아 발달 문제를 다룬다, 그는 작동하는 비-물질적인 행위성(생명력)을 긍정하는 동시에 초자연적인 행위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한 생명의 생기론적 원리에 반하는 전체론적 협력과는 반대했다. 영혼이라는 개념을 거부했고, 생기적 힘이라는 개념을 자유주의적 평화주의와 연결 짓고자 했다. 그러나 생명문화 생기론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줄기세포

 

(부시의 생명중시 후 전쟁하는 이중성 비난후) 줄기세포는 만능적 치료제로 쓰임이 있다, 이런 세포 추출의 작업은 생명문화의 옹호론자에게 큰 불쾌감을 낳으며 연구 논쟁의 중심에 서지만. 완전히 분화된 유기체로의 능력은 없다.

 

계급의 자연적 질서

 

a. 생명은 물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현대적이고 비판적인 생기론과 달리 이러한 생기론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통찰이 주는 이점을 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b. 인간의 생명은 다른 모든 생명과 질적으로 다르다. c. 인간의 유일성은 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d. 세계는 신성하게 창조된 질서를 따르며 그 질서는 고정적인 위계 구조를 갖는다.

▶ 영혼 생기론은 인간을 가장 꼭대기에 둔, 도덕적으로 계급화된 창조의 세계다. 이와 같은 논리는 사람들 사이에도 계급차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져, 군사적인 대상의 열렬한 옹호자 같은 성향으로 나타난다. 반면 드리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생명력이 분배되어 있다는 것을 넘어서 모든 사물들이 생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생기와 자유

 

생기론과 폭력 사이의 연결은 우연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생기론의 핵심이 자유로운 활동을 긍정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 바흐친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것이 특정 원인과 특정 결과 사이 대응의 불명확성에 대한 자유를 의미하든,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생시키는 자유를 의미하든, 생기론은 같은 원리로 계속 되돌아가게 되는데, 왜냐하면 생기론은 세계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고 개방되어 있다는 주장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로운 생기의 다양한 특징들은, 우리가 물질세계의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나 그것은 외부의 권력이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제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필자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쟁을 생기론과 유물론 논쟁의 부활로 바라보며, 생기론은 기계론적 유물론에 대한 반동적 형성의 성격임을 밝힌다. 심지어 무력한 물질을 상정하는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모델은 더 이상 과학적이지도 않지만, 이것은 여전히 널리 지지받고 있는데, 이는 과학 공동체가 인간의 능력이 어떻게 자연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를 물질의 자유성에 비해 강조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물질에 뛰어들기

 

미국 국립보건원의 보고서엔 다음 두 가지 내용이 들어 있다. 배아 줄기세포가 자궁 안 배아에서 그 상태로 존재하는지 실험실 환경에 놓이기 이전에 존재하는지 여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배아 줄기 세포조차 그것이 실제 미분화되어 있는지를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물질성‘이 흐름이라는 베르그송의 관점을, 즉 물질성이 불가분하고 연속적인 생성 과정이며 그러한 생성의 변화 무쌍한 요소들은 흐르는 환경 안에 정교하게 중첩돼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흐름으로 여겨 질 수 있음을 뒷받침 한다.

 

요한 고트프리트는 신학적인 태도로 물질의 생기성을 보지 못한 칸트에 반대하면서 “물질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다. 물질의 내부에서 그리고 물질의 외부와 내부의 기관들에 순응하면서, 수천이 살아 있는 다양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물질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안의 힘들을 더 발견하게 될 것이고, 죽은 연장이라는 공허한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 말한다. 생기적 유물론자들은 능동적인 원리로서의 물질을, 응결과 확산의 다양한 단계에 언제나 존재하는 활력있는 물질성의 우주를, 능동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는 물질성을 긍정한다. 드리슈와 베르그송은 비록 생명의 왕성함을 적절히 다루는 유물론을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창조와 존재가 끊임없이 경쟁한다는 점에서 필자와 생기적 유물론의 궤를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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