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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박소영입니다.

이번 발제문에는 내용 정리만 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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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몫』, 4부 209-233쪽

4. 역사적 여건들 III

II. 부르주아 세계

상품 순환의 질서가 우위를 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역시 상품/사물로 환원된다. 이는 본질적·내재적 가치가 세계의 활동 권역 밖으로 추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09). 칼뱅주의—자본주의의 한 동력원이었던—는, 종교가 내재성 회복을 향한 인간 욕망에의 응답이지만, 내재성의 외재화라는 모순을 안고 있었던 데에 일견 해법을 제시한 듯 보였다(210). 일어난 일을 일어나야만 했던 것으로 기술하는 근대 과학은 관념과 사물을 분리하고 있었으며, 개신교는 “[자선이라는] 더 먼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저 사물들의 질서 안에서 행할 수 있는 것만을 배타적으로 하는 일에” 인간성을 결부시켰다(211). 그러나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지 않고 주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인간 문제의 핵심이다(212). 그러니 해소되기 힘든 다음의 난제는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재성에 대한] 추구에 의해 인간이 참여하게 되는 행동이 오히려 인간을 그 스스로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가, 혹은 되찾을 수 있는가?”(213)

중세 교회는 이미 건물에서부터 “사물이 그 근본에서 오히려 한 사물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점”, “가용한 노동을 이익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유용성을 파괴하고 소진/소모하는 것”이라는 점을 표방했다(215). 그러나 교회 건축보다 공장 건설을 더 선호하는 자본주의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인간은 무분별한 낭비 대신 ‘기획’의 구조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내재적 동물성을 잃음으로써 상실과 결핍의 인식을 내면화하게 되었다(216). 개신교는 성사를 버리고 속사에의 함몰을 이끌면서 결국 “신성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게 했다(218). “민중은 생산이라는 무기력에 빠진 채 그저 사물의—반은 우스꽝스럽고 반은 꼴불견인— 기계적 생존만을” 영위하게 된다(218-9). 그에 발맞춰 확고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이 학문의 제재(題材)로 위상을 더해갔다. 이러한 사태는 인간을 대상에 얽매이게 할 뿐, 자기의식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인간이 그 스스로 자신을 찾고자 하는(즉, 주권적 실존을 갖고자 하는) 근본적 욕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용한 행위 너머”에 있었다(219).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칼뱅주의에서 진일보하여, “(경제적인) 사물이 지니는 근본적인 독립성을 분명하게 제시했다.”(220) 마르크스는 사물들의 통치, 그리고 사물로 환원하는 인간의 운동을 끝까지 밀어붙여 사물들을 “인간에게로, 그리고 또한 인간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귀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221). 마르크스주의의 자장 안에서 인간은 사물과 일치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사물의 해방을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근대 산업의 세계는 사물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신의 부재를 괘념치 않고 그 자체로 발전하는 세계이다(223). 생산에 복속하는 인간의 상태는 이익에 초점화된 순수 의지의 존재로, 일견 노예근성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나 실상 노예근성을 강화한 셈이다. 칼뱅주의자와도 비슷해 보이는 이 부르주아지는 칼뱅주의자의 각성과 긴장 대신, 성장 메커니즘에 예속되는 무기력을 채택한다(224). 성장 외에 다른 어떤 개념도 생각지 못하는 무능력 아래, 소비, 사치, 낭비가 죄악시된다. 성장의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추구는 포기된다. 인간이 사물화되어도 신성 제거의 죄명을 쓰지 않는 구조 내에서, 고통은 분출하거나 해소될 길 없이 가중된다. 그렇게 혼돈이 시작되었다.

기획 경제는 과잉의 자원을 소진/탕진하는 대신, “물질적 곤궁의 해소와 노동시간의 단축”에 유용하고자 하며, 사물 질서 차원에서의 더욱 엄격하고 정밀한 계산을 요구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학문과 기술이 발달했다. 마르크스의 혁명적 의의는 “사물들 자체의 엄격성” 배가를 통해 “모든 작용들을 사물들에 합리적으로 속박”시켰다는 데 있다(228).

“노동자를 하나의 사물로 만들고자 하는 확고부동한 무의식적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봉건제와 종교의 잔존을 무시했다(230). 하지만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물에 부여된 외양일 뿐인 특권계급과 종교의 기만적 가면을 벗기는 쪽으로 활동을 가동했다. 그것은 진정한 내재성 회복의 길이 아니었다.

사치/낭비가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자가 그로부터 소외되었다는 현상 때문에, 노동의 부정처럼 보이는 외양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노동의 세계는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를 수행한 공산주의자들은 사물에 우위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속성은 프롤레타리아의 취향—우주를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는 사물의 체계로 이해하는 것—에 기반해 있다(231). 하나의 사물이 또 다른 사물에 속박된 프롤레타리아적 연쇄체의 우주 속에서 엄밀한 현실 밖의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의 추구가 자신의 사물화로 이어지는 이 기막힌 상태는 다음의 기이한 상황을 초래한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착취를 끝장내고자 하면 할수록, 부르주아는 “인간을 사물로 환원시키는 일을 피”하기 위한 자유 유지의 필요성을 더 강렬하게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로운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거대한 노력”이 늘 관건이다. 그 결과, 부르주아는 혼란을 느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어져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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