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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인사원 <이데올로기와 주체> 쪽글 3/20

이 종 현

 

 

견고하고 아름다운 중립지대

 

 

알튀세르에 따르면, 오늘날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은 학교다.(<재생산에 대하여, 222) 학교라는 장치 속에서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의 생산 관계는 지배 계급 이데올로기의 대대적인 주입 속에 포장된 몇몇 정해진 전문 지식으로 결국 귀결되는 내용을 통해서 재생산된다.(227) 생산 관계의 재생산에서 학교가 하는 역할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뛰어난 개인이 그 역할을 바꾸어보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심지어 알튀세르는 학교 현장에서 개혁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까지 그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견고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본다면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결국 러시아문학이라는 전문 지식을 통해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의 생산 관계, 즉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러시아문학이라는 지식 분과는 19세기에 완벽한 틀을 이룬 러시아라는 국민국가에서 생산된 문학을 가리킨다. 러시아는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국민문학으로서의 러시아문학은 러시아어로 쓰인 것만을 가리키게 된다. 소수민족 출신 작가라도, 해외에 사는 이민자라도 러시아어로 글을 쓴다면 그는 러시아문학이라는 범주에 속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문학이라는 범주다. 번역어 문학‘literature'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글로 쓰인 모든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쓰인 모든 글들이 러시아문학으로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레닌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가 쓴 편지들과 기사들은 러시아문학이 될 수 없다. 그가 쓴 톨스토이에 대한 평론만이 러시아문학 연구를 위한 보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문학이라는 전문지식을 지탱하는 두 가지 요소를 추릴 수 있다. 하나는 국가의 공식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언어적 활동으로부터 문학을 변별시키는 무언가다. 공식언어는 파롤을 배제하면서 국민의 랑그를 규정하고, ‘문학은 파롤을 미학적으로 사용하는 범례들을 제공하면서 대중의 파롤들을 규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힘들이 작동하고 있는 러시아문학을 한국에서 연구한다면 자연스럽게 러시아라는 해외의 국민국가의 관념(러시아)이 당연시되고, 이에 비추어 한국이라는 국민국가도 자연스럽게 전제하게 된다. 그리고 해외에서 들여온 문화적 개념인 문학이라는 이질적 요소는 즉자적인 개인들의 발화활동보다 상위에 있는 인류 보편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러시아문학을 연구하는 활동은 러시아어 화자’, ‘한국어 화자식의 기준으로 모든 개별 발화주체들을 나누면서 동시에 문학이라는 인류 보편의 활동으로 그들을 묶는다.

 

서로 다르지만 러시아문학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우리는 도대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와는 무슨 상관인 것일까? 알튀세르라면, ‘러시아문학이라는 전문지식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학교라는 장치가 전문지식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없는 중립적 지대로 표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228) 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는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바로 너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바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모두들 얼이 빠져 수줍게 말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단지 나약한 대학원생일 뿐, 책상 앞에 앉아서 외국어로 된 옛날 책이나 뒤적거리고 있는 우리가 무슨 그런 재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우리는 오히려 열렬히 사회구성체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 이 얼빠진 지식인의 푸념을 벗어던지고 사회발전에 진정 기여를 하고 싶다! 사회활동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염원은 학교가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중립지대라는 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문학이라는 전문지식은 인류 보편에 관한 것이며 특정한 사회에 그 어떤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중립적인 것이므로 전문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원생은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바로 이 전문지식이 지닌 보편성이 학교를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세계로 표상하게 만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 자체가 바로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결과다. 이 장치가 독특한 까닭은 그 보편성의 틀 때문에 스스로가 특정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기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이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개인의 상상적 관계를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축조하는데 힘을 쏟는다면, 학교라는 장치는 그 관계를 인류 보편의 차원으로 투사해 스스로를 절대 순결한 지대로 만든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학교의 이런 중립화 작용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은 그것은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226)라는 말로 묘사한다. 그리고 학교는 특정 사회의 속성들과 억압들로부터 벗어나는 과학적 인본주의의 해방적 미덕들(228)을 방사한다.

 

스스로 중립적인 주체, 이데올로기적으로 0도에 가까운 순수한 주체를 만들고 있다는 표상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학교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본주의 과학을 통해 인류 보편성을 담지하게 된 이 주체는 오히려 그 보편성 때문에 역사적 맥락에서 탈각되고 자신이 현실의 사회구성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다른 점을 구분한다 하더라도, 러시아혁명의 위대함을 상찬한다 하더라도,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인격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19세기 인텔리겐치야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전문지식에 포섭되어 있는 이상 과학적 보편성의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사로잡힌(도스토옙스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귀신 들린’) 주체는 순결한 무력을 뽐내면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생산관계 메커니즘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 메커니즘에서 삐걱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내부의 모순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모순없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특히 장치들이 장치들 내에서 생산하는이데올로기적 부차 형성물들이 때로는 톱니바퀴를 삐거덕거리게만든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150)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혹은 무엇이 있어야 혹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러시아문학이 작동하고 있는 학교라는 장치에서 톱니바퀴가 삐거덕거릴 수 있는 것일까? (다음 쪽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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