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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에는 감응을 일으키는 사건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2주차 수업은 이를 이어 받아,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후반부와 [천의 고원] 14장을 읽었습니다. 

 

여러가지 논의들이 있었으나 제 흥미를 끈 것은 

에밀리 브론테를 언급하며,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형제애에 가까운 어떤 격정적인 감성을 불러냈다는 진술이었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폭풍의 언덕]이 예술작품이 된다면, 그것은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발명하거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전체를 감싸고 있는 작품 속 감정의 대기(atmosphere)가 감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서는 무엇일까요?

제가 알기로는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에 전혀 이해받지 못한 작품입니다. 

너무 악마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복수심을 그리고 있어 "언어만 영어고, 내용은 지옥"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후대의 분석가들은 이 작품에 드러난 분노, 질투 같은 감정이 당대 영국에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새로운 감정을 발명하고 제시한 것이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오늘날 그리 충격적이진 않습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우리가 즐기고 있는 막장 복수극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복수극의 구도를 위해, 과잉된 분노와 질투를 주입받아

즐기고 있는 우리들의 감성구조에 [폭풍의 언덕]은 더이상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에밀리 브론테가 시대를 조금 빨리 당겼다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녀는 격정의 파토스를 자신의 시대에 맞지 않게 미리 선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해버리면 [폭풍의 언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매력적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요약 줄거리로서의 폭풍의 언덕과 실제로 읽어 만나는 폭풍의 언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읽어도 쉽사리 흥분이 가시지 않고,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생생하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비밀은 이 작품이 실은 매우 비결정적인 구조에 놓여 주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 온 사내, 록우드와 워더링 하이츠의 증언자 넬리 등에 의해 진술되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은 때로는 모순되고, 각 부분들 사이 인과적인 연결고리를 의도적으로 부숴 버립니다. 

독자들은 파편들을 통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이야기를 파악하게 되기에

부분적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입체적인 구성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주인공들이 마치 미치광이 같아 보이지만, 이러한 인상은

실은 그들 성격에 대한 상세한 재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들 사이의 갭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최종진술이 없는 작품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매끄러운 공간 속에 사건이 구성된 것입니다. 

 

다시 읽어도 남는 것은 주인공들의 비정상적인 측면이 아니라 비결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텍스트 내의 힘을 흔들어 텍스트 밖으로 흘러넘치게 디자인된 기계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러브 스토리도, 그들의 강한 질투가 아닙니다. 

그렇게 명명해, 패인 홈을 따라가는 듯 하다가도

명명된 진술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이야기 구조 자체에 있습니다. 

베이컨의 그림에서 속도감을 지닌 터치가 인물형상선을 탈출하는 일 또한 이와 같습니다.

 

저는 예술이란 바로 이러한  감응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 날 테마를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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