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절> 다섯 번째 공준: ‘부정적인 것’으로서의 오류
1. 분열증을 사유의 가능성으로 보는 들뢰즈(329)
2. 어리석음, 짖궂음, 광기를 오류라는 유일한 형태로 환원하는 것을 권리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 사실들 차원이 아니라.(332)
3. 어리석음이 가능한 것은 사유와 개체화를 묶어주는 연계성 덕분이다.(335)
어리석음은 바탕도 개체도 아니지만, 그 둘을 묶는 어떤 관계이다.(337)
<5절> 여섯 번째 공준: 지칭의 특권
1. 무-의미의 메커니즘은 의미의 최고 목적이고, 이는 어리석음의 메커니즘이 사유의 최고 목적인 것과 같다.(343)
2. 의미의 역설, 증식의 역설, 이중화, 이분화(344) / 중성화하는 이분화의 역설, 증식하는 이중화의 역설(346)
3. 명제의 복합 테마(345)
4. 질문과 대답의 관계가 아니라, 물음 문제와 관련된 의미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 흥미로움(346-348)
<일곱 번째 공준: 해의 양상들>
-중요한 것은 대답과 해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구성해 내는 능력이다.
-애초 변증론은 물음을 정당하게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
-진리는 해답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의 한복판에서 발생한다. 문제라는 것은 사유 안의 미분적 요소이고 참된 것 안의 발생적 요소이다.
-문제들은 이미 이념들 자체이다.
-문제가 해를 통해 일반성을 띠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통해 해가 일반성을 띠게 된다.
-해결한다는 것은 언제나, 이념으로 기능하는 어떤 연속성을 바탕으로 불연속성들을 분만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가언적인 것들의 계열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되는가 하면 정언적인 것들의 계열에 종속된다.(359)
-문제들은 어떤 플라톤적 이데아들이고 변증법적인 기초개념들 사이의 어떤 이념적 연관들이다.(360)
<6절> 여덟 번째 공준: 결과로서의 앎
-배움과 앎을 비교.
-배우는 자는 실천적이거나 사변적인 어떤 본연의 문제들을 구성하고 공략하는 사람이다.
-배움은 언제나 무의식의 단계를 거치고 언제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런 와중에 자연과 정신 사이에 어떤 깊은 공모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것이다.(363)
-인식능력들의 역설적 사용?(362)
-앎은 어떤 경험적 형태에 불과하고 경험 속으로 거듭 떨어져 나오는 어떤 단순한 결과에 지나지 않지만, 배움은 어떤 초월론적 구조이다. 이 구조를 통해 차이와 차이, 비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서로 매개됨 없이 하나로 묶이고 시간은 사유 안으로 도입된다. 그러나 이 시간은 텅 빈 시간 일반의 순수 형식일 뿐, 이러저러한 신화적 과거나 이러저러한 사라진 현재가 아니다.(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