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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가 어쨌다구? 슬라보예 지젝지음, 한보희 옮김, 새물결. 쪽글; 왕진희

 

오늘날 학계의 자칭 급진파들 사이에는 어떤 불문율과 같은 금기가 일반적인 사회생활 못지않게 팽배해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콘텍스트화’하라, 혹은 자신의 입장을 상황 속에 잘 위치시키라는 요구가 문제 제기도 없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 예전의 표준적인 이데올로기에서는 편파성이나 특정내용의 특권화라는 왜곡을 못 보게 우리시야를 차단하는 게 보편성이었으나, 반대로 오늘날에는 급진적 역사화나 콘텍스화의 시도가 오히려 ‘실제적 추상’의 지배라는 사회적 현실을 이데올로기 적으로 은폐하게 한다. 이러한 불문율가운데 지난 10년 사이 한나 아렌트의 격상이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좌표를 받아들인 좌파의 이론적패배도 있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이런 자유민주주의적 금기를 과감히 돌파 해야 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자라고 설령 비난당한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좌파들을 우파 파시스트 독재의 쌍둥이로 매도함으로써, 자유급진파를 순화시키는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복합적 임무수행을 한다. 홀로코스트를 숭고한 악이라 불릴만한 어떤 것으로, 또는 정상적인 정치적 담론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 있는, 접촉 불가능한 예외로 승격시키는 것이다. 이 홀로크스트의 탈정치화가 지극히 냉소적인 조작인 정치적 행위나 어떤 종류의 정치적 위계 관계를 정당화하려는 목표를 가진 하나의 정치적 개입일 수가 있다. 첫째, 탈정치화, 희생자 드러내기라는 일종의 포스트모던의 전략일 수 있고 둘째, 서구 국가들이 책임져야하는 제3세계의 여러 폭력적 양상들을 절대적 악의 홀로코스트와 비교해 사소한 것으로 격하시켜버린다는 점. 셋째, 모든 급진적 정치 기획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하는 일에(급진적 정치적 상상력에 재갈을 물리는 사유금지 조치를 지원하는 일)복무한다는 사실. 가령 ‘당신이 제안한 것들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홀로코스트로 이끌어가게 되리란 걸 알기나 하십니까?’라는 홀로코스트를 절대적 악이라는 심연으로 만듦으로써, 홀로코스트를 탈정치화 하는 것에 담긴 ‘객관적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내용이란, 공격적인 시온 주의자들과 서구의 반유대주의적 우파들이 오늘날의 급진 정치적 가능성의 씨를 말리기 위해 체결한 정치적 협정이라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은밀한 협정 속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 팽창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반유대주의라는 구체적 분석, 과거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똑같은 정치역학이 어떻게 다른 수단에 의해 다른 목적을 갖고 다른 공격목표를 겨냥하여 추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석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오늘날 서구의 반 유대주의자들의 태도와 손을 잡는다.

 

따라서 지젝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사유의 의무에서 면제시키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아예 생각이란 것을 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아버리는, 전체주의라는 관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받아들인 순간 우리는 ‘전체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의존하고 지탱되고 있는, 사유금지조치의 자유민주주의속에 확고하게 매몰된다. 예를 들면 굴락과 홀로코스트가 불러일으킨 공포를, 모든 진지하고 급진적인 현실 참여를 중단하라는 경고장으로 써먹고 ‘전체주의’를 불러들인다고 매도하며 기성질서를 방어하고 위선적인 자기만족까지 얻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철학의 주된 응답들인 포스트 모던한 해체론적 좌파의 응전들이, 어떻게 그 역시도 전체주의라는 범주에 의존하고 있는지, 이러한 사이비 좌파적 비이성주의에 대항할 때 우리는 라캉의 『에크리』에 들어있는 「무의식에서 문자라는 작인作因」이란 논문의 부제‘ou la raison depuis Freud-혹은 프로이트 이우의 이성’을 떠올려야한다고 말한다.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제스처는 평범한 일상사를 그리면서 어떤 신화적인 이야기가 그 안에서 울려 퍼지도록 하는 것이고, 포스트 모던한 제스처는 반대로 신화적 이야기 자체를 평범한 일상사로 다루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행보는 대단히 위험스럽다. 예술적 모더니즘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근대화 과정 그 자체에서, 폭력성속의 야만적이고 전 문명적인 신화적 패턴을 식별해 내는 것으로, 원시적 야만성과 근대성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에 관한 것이다-근대화화 과정 속에 나타나는 야만적이고 신화형성적인 폭력의 귀환은 보수적 모더니즘 예술의 중심테마였고 신화를 다시 반복하는 핵심은, 전통적인 ‘문명화된’ 사회구조를 용해시켜버리는, 근대의 산업적 삶의 카오스적 폭력성 그 자체가 문명화된 관습의 철갑에 의해 ‘억압된’ 원초적이고 신화형성적인 야만적 폭력성으로서 직접적으로 체험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뒤이어 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다만 모더니즘에 내속하는 신화일 뿐이다.

 

무슬림은 나치의 인종 청소 캠프를 이해함에 있어 핵심적인 형상이다. 나치의 학살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대부분 그저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 생존투쟁으로 비윤리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는데, 기적적이게도 비합리적인 관대함과 위엄을 유지하며 빛을 발하는 오직 한 사람의 라캉식 일자가 있다. 사람들이 중시한 것은 이 한사람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냐보단, 그들 사이에 그가 있었다는 현존 그 자체이다. 이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한사람이 있다는 바로 그 지각이 인간성에 대해 최소한의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때로는 이 한사람이 타락하거나 가짜임이 들통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다른 수감자들이 생존의지를 잃어버리고 ‘무슬림’ 즉, 모든 일에 무관심한 상징적 진리가 없는 실재의 지점인 살아있는 시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한사람이 실제적 자질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게 아니라 그가 맡은 예외적인 역할이 전이의 역할이라는 것이다-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리 전제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치가 무슬림들에게 강요했던 인간성 말살은 그들이 비인간화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강력하게 그들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라캉의 용어로는 무슬림은 외밀 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집단 수용소에서는 물질적 타성이 관철되는 현실과 에테르처럼 가벼운 무한한 생의 영토 사이의 이러한 간극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데, 최악의 끔찍함이 있다. 이러한 간극이 정지된다는 것은, 현실자체가 괴물 스러운 사물과 점점 일치해가는 경향을 보이며, 무슬림은 너무나 피폐해 있어서 더 이상 ‘비극적’으로 보일 수조차 없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존엄성조차 하나도 남아있거나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차이, 인종학살 수용소와 굴락의 차이는 비극 너머의 공간을 차지하는 두 인간 형상사이의 대립으로 응축된다. 하나는 무슬림이고 다른 하나는 공개재판의 피해자이다. 나치의 방식은 무슬림을 만들어냈고, 스탈린의 방식은 고백을 강요당하는 피고를 만들어 낸다. 둘 모두 세속적인 생과 숭고한 생인 둘 모두를 박탈당한 채, 공허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이기주의 너머에 있고 생도 즐기지도 않으며, 세속적 만족인 존경이나 격조 등에도 무관심하다. 큰 타자가 자신들을 기억함으로 자신들의 도덕적 존엄성을 돌보는 일에서도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그 둘 다 살아있는 시체고 생의 불꽃이 꺼져버린 껍데기들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무슬림이 육체에 가해진 테러를 통해 살아 있는 시체라는 감정 없는 식물적 실존으로 환원되어버리는 반면, 공적 재판의 피해자는 자기의 존엄성을 능동적으로 내던지면서, 공적인 장에서 자신을 격하시키는 일에 참여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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