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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4주차 쪽글

민혁 2017.09.28 00:17 조회 수 : 115

4절

 

차이와 망아적 재현 : 무한대와 무한소 115

-- 큼과 작음을 기준으로 하는 선별 : 개념 일반이 지닌 동일성의 요구에 따른다. 한계들만을 고정시켜놓았다. 여기서 규정은 그 한계들 사이의 차이에 불과하다.

-- ‘차이를 만들기’에 본성을 두고 있는 선별 : 그러나 여전히 극단은 큼이나 작음 안의 무한에 의해 정의되는 것 같다. 개념은 전체가 되고, 규정을 근거의 자리에 놓는다.

 

이유로서의 근거 116

-- 극한으로서의 한계 : 이제 한계, 극한으로서의 한계는 더 이상 어떤 형상의 제한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거를 향한 수렴을 의미한다. - 망아적 재현의 원리는 근거에, 그 재현의 요소는 무한에 있다. 반면 유기적 재현의 원리는 형상에, 그 재현의 요소는 유한에 있다. - 규정을 사유 가능하고 선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무한이다. 따라서 차이는 이제 규정에 대한 유기적 재현이 아니라 망아적 재현으로 등장한다.

-- 망아적 재현 : 망아적 재현은 여전히 큼과 작음, 최대와 최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선택지와 같다. - 재현의 조건들 아래 무한이 유한 자체를 통해 언명될 때, 이 언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무한은 무한하게 작은 것으로 언명되거나 무한하게 큰 것으로 언명된다. - 작음과 큼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난 라이프니츠와 헤겔은 무한하게 작은 것과 무한하게 큰 것 사이의 양자택일에 다시 부딪힌다.

 

헤겔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 모순 120

-- 헤겔은 극단적이거나 상반적인 것들의 대립을 통해 차이를 규정한다. 무한이 도입됨에 따라 여기서 상반적인 것들의 상호 동일성이 귀결되거나, 타자의 상반성이 자기의 상반성으로 바뀌게 된다. - 모순에서는 실증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상호 동일성과 마찬가지로 상반자들의 단순한 상호 동일성이 극복되어 있다. - 차이가 자신의 고유한 개념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정립된 모순 안에서이다. 이 모순 안에서 차이는 부정성으로 규정된다. - 이 지점에서 무차별성이나 무관심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다. 모순을 견뎌내고 지양한다는 것은 차이(사실적 실재와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현상 간의 차이)를 ‘만드는’ 선별적 시험이다. 이런 식으로 차이는 마지막까지, 다시 말해서 근거로까지 이끌려간다.

 

라이프니츠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 부차모순(연속성과 식별 불가능자들) 124

-- dx, dy : dx는 x에 대하여, dy는 y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니다. 미규정 상태. - dy/dx : 미분비들은 상호적 규정(가변 계수들의 상호 의존성)과 완결된 규정(특이점들의 실존과 할당)의 측면을 갖는다. -- ‘완결된 것’과 ‘전체적인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 미분비는 누승적 잠재력의 순수한 요소이다. - 극한은 연속체의 역량이며, 연속성은 극한들 자체의 역량이다. - 여기서 부정의 의미는 달라진다. 순수한 제한을 뜻하는 부정, 어떤 상대적인 무(dx는 x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 연속체 안의 비본질적인 것 : 본질들 자체가 비본질적인 것 안에서 구성되는 과정이 예비되고 있다. 비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가장 심층적인 것, 보편적인 질료나 연속체를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본질들 자체를 형성하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 개체적 본질들의 구성에 선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 모나드와 세계 : 모든 모나드들은 공통적으로 세계를 표현하고 있지만, 세계는 자신의 표현들보다 앞서 실존한다. 그런데 세계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의 바깥에서, 곧 모나드들 자체의 바깥에서는 진정 실존하지 않는다. - 세계의 공가능성(계열들의 수렴), 세계들의 비-공가능성(계열들의 발산).

-- 식별불가능자들의 원리 : 모나드 안에서 유한한 차이는 명석하게 표현된 세계의 영역으로 규정된다. 반면 무한하게 작은 차이는 이 명석함의 조건이 되는 혼잡한 바탕으로 규정된다. 이런 두 가지 방식을 통해 망아적 재현은 규정을 매개하고, 그 규정을 차이의 개념으로 만든다. 망아적 재현은 매개된 규정에 하나의 ‘이유’를 지정해주는 가운데 규정을 차이의 개념으로 만든다.

 

망아적 재현 혹은 무한한 재현의 불충분성 129

-- 유한한 재현 : 상반적인 것들에 의해 형상이 부여된 어떤 이차적 질료이다. 유한한 재현은 차이를 재현하되 매개하고, 유(類)라는 동일성에 종속시킨다. 유들 자체의 유비 안에서, 규정들의 논리적 대립 안에서, 고유하게 질료적인 내용들의 유사성 안에서 이런 종속을 공고히 한다.

-- 무한한 재현 : 일차적 질료인 바탕, 그리고 주어, 자아 혹은 절대적 형상인 본질 모두 포함한다. 무한한 재현은 본질, 바탕, 그리고 그 둘 간의 차이를 동시에 근거나 충족이유에 관계 짓는다. 여기서는 매개 자체가 근거가 되었다. -- 때로 바탕은 보편자가 지닌 부수적 속성들의 무한한 연속이다. 보편자는 유한한 자아들 안으로 봉인된다. - 때로 특수한 것들은 바탕 안에서 개봉되고 전개되는 어떤 부수적 속성이나 형태들에 불과하되, 그 배후에는 본질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바탕 안에 봉인되어 있는 순수한 자아 혹은 차라리 ‘자기(自己)’의 참된 규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 무한한 재현은 불충분하다 : 무한한 재현은 재현의 전제 조건인 동일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라이프니츠에게서 무한한 재현은 여전히 계열들의 수렴(↔발산)이라는 조건에 굴복한다. - 헤겔에게서는 원환들의 단일 중심화(↔탈 중심화)라는 조건에 굴복한다.

-- 무한소, 무한대 : 동일성이 분석적인 것으로, 또는 종합적인 것으로 파악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전자의 경우 근거는 동일성과 부차모순을 이룬다. 후자의 경우 근거는 동일성과모순을 이룬다. 어떤 경우든 근거가 무한을 통해 하는 일은 : 동일자를 자신의 동일성 자체 안에서 실존하도록 인도하는 일이다.

-- 부차모순적 제한인지 모순적 대립인지, 분석적인지 종합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차이는 여전히 동일성에 종속되어 있다. 차이는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되고 있으며, 상사성과 유비 안에 갇혀 있다. 무한한 재현 안에서 광기는 거짓 광기에 불과하다. - 무한한 재현은 유한한 재현과 똑같은 결함을 지닌다. 그 결함은 차이의 고유한 개념을 차이의 기입과 혼동하는데 있다. 개념 일반의 동일성 안으로 차이를 기입하는 것과 차이의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5절

 

차이, 긍정, 부정 132

-- 힘들의 대립이나 형상들의 제한이 명확한 윤곽을 띠기 위해서는 우선 훨씬 심층적인 어떤 실재적 요소가 필요하다. 이 요소는 형상을 띠지 않고 누승적 잠재력을 띤 다양체로 정의되고 규정된다. - 대립들은 어떤 섬세한 환경 속에서 거칠게 재단되어 나온다. 이 환경은 부분적으로 겹쳐진 관점들, 거리들, 소통하는 발산과 불균등성들, 다질적인 잠재력과 강도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의 긴장들을 동일자 안에서 해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균등한 것들을 하나의 다양체 안에서 분배하는 데 있다. - 제한은 일차원의 단순한 역량이다. 대립은 이차원의 역량을 재현한다. - 어쨌든 거기서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은 원천적이고 강도적인 깊이이다.

-- 제한 : 라이프니츠가 범한 유일한 잘못은 오직 차이를 부정적 제한에 묶어놓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낡은 원리의 지배를 유지시켰고, 계열들을 어떤 수렴의 조건에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발산 자체가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혹은 비-공가능성들이 하나의 같은 세계에 속하고 이 세계를 통해 긍정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공가능성들은 영원회귀라는 단 하나의 같은 세계에 속하며, 이 세계를 통해 가장 큰 죄와 가장 큰 덕으로서 긍정된다.

-- 대립 : 차이는 대립을 가정하지 않는다. 차이를 가정하는 것이 대립이다. 차이는 모순이 아니다. 모순은 깊이가 얕고 차이만큼 깊지 않다. - 차이는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공간의 깊이 안에 걸려 있고, 언제나 특이성들로 이루어진 어떤 변별적 실재의 지금-여기에 붙들려 있다. - “모든 사람은 ……을 알아보고 재인한다.” 그러나 재현되지 않은 어떤 특이성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특이성의 주체는 알아보거나 재인하지 않는다.

 

가상으로서의 부정적 사태 136

-- 차이는 무한한 재현의 일반적 양자택일을 거부한다. 이릍 통하여 특수한 양자택일(제한의 부정성과 대립의 부정성)을 거부한다. 차이는 긍정의 대상, 긍정 자체이다. 긍정은 그 자체가 차이다. - 아름다운 영혼이 불러들이는 그런 차이가 아니다. -- ‘필연적 파괴’를 불러들이는 두 가지 방식 : - 시인의 방식 : 모든 질서와 모든 재현을 전복하는 가운데 본연의 차이를 긍정한다. 영원회귀라는 영구 혁명 상태에 있는 차이를 긍정한다. - 정치가의 방식 : 일탈적인 것, ‘차이나는’ 것을 부정한다. 역사 안에서 확립된 질서를 보존하고 확장한다. 이미 세상에서 자신의 재현 형식들을 부추기고 있는 역사적 질서를 확립한다. 니체의 긍정-부정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생각. ① 부정은 발동 장치이자 역량이다. 긍정은 그것의 결과, 말하자면 대용품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당나귀가 그러하다. ‘긍정한다’와 ‘짐을 진다’는 다르다. 변증법적 황소 또한 그러하다. 지양하다. 들어 올린다. 변증법의 원환의 중심은 하나다. 변증법의 선별은 항상 무한한 재현 안에 보존되는 것에 유리한 선별이다. 짊어지는 자와 짐이 된 자를 위해 봉사하는 선별이다.

 

부정적인 것의 배제와 영원회귀 140

-- ② 긍정이 일차적이다. 부정적인 것, 그것은 부대현상이다. - 노예, 보수주의자들의 관점 ↔ ‘주인’, 창조자들의 관점. - ‘주인’은 역량을 지닌 사람이지만, 권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 확립된 가치들과 창조 사이에는 재현의 보수적 질서와 창조적 무질서 사이에서처럼 본성적 차이가 있다. - 평균적 형상과 극단적 형상들(새로운 가치들) 사이에는 본성상의 차이가 있다. - 참된 선별의 운영은 영원회귀의 소관이다. 그것은 평균적 형상들을 배제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우월한 형상”을 끄집어낸다. - ‘부정의 부정’은 새로운 공식이 된다. 부정되는 것, 부정되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정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 영원회귀의 독창성은 기억에 있지 않다. 망각에 있다. - 영원회귀가 어떤 바퀴라면, 이 바퀴는 또한 폭력적인 원심 운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운동을 통해 부정‘될 수’ 있는 모든 것, 시험을 견뎌 내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축출되어야 한다. - 영원회귀의 원환은 매 순간 중심을 이탈하고 끊임없이 일그러지는 원환으로서, 단지 비동등성의 주위만을 맴돌고 있다.

-- 부정은 차이다. 그러나 작은 쪽에서 본 차이, 낮은 곳에서 본 차이다. 이와 거꾸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다시 바로 세워놓고 보면, 차이는 긍정이다. - 차이는 긍정의 대상이다. 긍정 자체는 다양체의 성질을 띤다. 긍정은 창조이다. 긍정은 창조되어야 한다. - 긍정은 차이를 긍정하는 긍정으로, 그 자체가 차이인 긍정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 부정적인 것은 발동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실증적인 미분적 요소들이 있을 뿐이며, 바로 이것들이 긍정의 발생과 긍정된 차이의 발생을 동시에 규정한다.

-- 재현과 운동의 비교 - 재현 : 하나의 중심, 단일하고 회피적인 원근법, 거짓된 깊이, 매개. - 운동 : 다원적인 중심, 포개지는 원근법, 뒤얽히는 관점들, 재현을 기형화시키면서 공존하는 계기들을 함축. 그림이나 조각은 운동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 재현들을 중복한다고 운동이 될 수 없다. - 무한한 재현은 단일한 중심을 수호한다. - 무한한 재현을 가능케 하는 법칙은 동일성의 형식인 개념의 형식에 있다. 이 형식은 즉자존재와 대자존재를 구성한다.

-- 부분을 이루는 각각의 재현은 기형화, 이탈, 강탈된다. - 관점이 사물화 되고, 사물이 관점화 되어야 한다. - 주체의 동일성, 사물의 동일성 모두 차이 안에서 사분오열되어야 한다. - 차이는 요소, 궁극적 단위가 되어야 한다. 차이는 배후의 다른 차이들과 관계하며, 이로 인해 차이는 동일성의 정체성에 빠지지 않고 다만 분화의 길로 간다. -

--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것, 곧 감성적인 것의 존재는 차이, 누승적 잠재력을 띤 차이, 질적 잡다의 충족이유인 강도적 차이 등을 뜻한다. - 차이는 모든 사물들의 배후에 있다. 그러나 차이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 영원회귀는 모든 변신들 안에 현전하고 있으며, 자신이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과 동시적이다. - 세계는 재현 안에서처럼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즉 세계는 완성되어 있고 무제약적이다. - 영원회귀는 완성된 세계 자체의 무제약성이다. 그것은 차이를 통해 언명되는 일의적 존재이다. - 반복의 궁극적 요소는 계속되는 불일치에 있으면 재현의 동일성에 대립한다. - 영원회귀의 원환은 일그러진 원환이다. 이것은 차이나는 것만을 통해서만 같음을 언명한다.

-- 부정적인 것이 제한을 통해 파악되든 대립을 통해 파악되든, 동일성이 분석적인 것으로 생각되든 종합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중요치 않다. 차이는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 되었고 동일자에 종속되었다. - 신적 실체의 단일성과 동일성만이 동일성을 띤 단일한 자아를 보증하고 자아를 지켜내는 한에서만 을 보존할 수 있다. -- 차이들은 실체 안에 있는 것도, 주체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차이들은 지하에서 울리는 긍정들이다. 영원회귀가 가장 지고한 사유인 것은 영원회귀의 일관성이 사유하는 주체의 일관성, 세계의 일관성, 그리고 보증하는 위치에 있는 신의 일관성을 모두 배제한다는 데 있다.

-- 칸트의 이전, 이후 보다 중요한 대목은 칸트 사상의 어느 한 국면이다. 순수 자아 안에 일종의 불균형, 틈새나 균열, 권리상 극복 불가능한 어떤 권리 소외를 도입한 잠깐의 국면.

 

6절

 

플라톤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149

-- 플라톤주의의 전복 안에는 플라톤적 성격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 플라톤주의 안에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세계도 있다. 이데아 안에는 ‘재현 불가능한’ 것이 있다. 실의 도움 없이 미로를 탈출한다. 나눔의 방법은 무매개적 절차이고 이데아의 영감들에 의존한다. 나눔은 일관되지 못한 절차이고 도약이다. 그러나.

 

나눔의 방법에 등장하는 것들 : 지망자와 근거의 시험, 물음과 문제, (비)-존재와 부정적인 것 151

-- 플라톤의 나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와 종차로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문제는 종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별의 방법에 있다. 순수하지 않은 소재에서 출발하여 순수한 계통을 선별하는 것이다.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짜와 가짜 사이의 차이다. 나눔이 목표로 하는 것은 경쟁자들의 선별에, 지망자들의 시험에 있다.

-- 플라톤은 나눔의 근거로 ‘신화’를 끌어들인다. 목자-신이라는 원형이 있고 이 모델에 가장 가까운 정치가가 있다. 정치가의 경쟁자들로 부모, 하인, 조수, 사기꾼, 위선자 등이 있다. 이들은 상기와 관조에 따라 순서가 정해진다. 소피스트는 순위에서 배제된다.

-- 플라톤에게서 신화의 구조는 원환적이다. 신화에는 근거가 등장한다. 이 근거로 차이를 만들고, 역할이나 지망자들을 측정한다. 근거는 이데아의 형태를 띤다. 천상을 순회하는 영혼들에 의해 관조되는 이데아들. - 나눔은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근거로서 원환적 구조의 신화를 요구하고, 신화는 근거 지어져야 하는 것 안에 있는 차이의 상태로서 나눔을 요구한다. - 근거는 나눔에게 매개를 제공하고, 차이를 일자에 관계 짓는다. - 올바름만이 올바르다. 올바름이 일차적 소유자이고, 올바르다고 불리는 자들은 다만 이차적, 삼차적 ……으로 소유한다. 마지막에는 허상적으로 소유한다. - 올바름(근거, 분유불가능한 것), 자질(지망대상, 분유되는 것), 올바른 자들(분유자들). - 나눔의 목표는 수평적 구별에 있지 않고, 수직적 계열이나 계통의 확립에 있다.

-- 사람들은 신탁에 대해 묻는다. 그러나 신의 대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제이다. 변증술은 반어이다. 반어는 문제와 물음들의 기술이다. - ‘비-존재’에서 ‘비(非)’는 부정적인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한다. 전통 이론은 선택을 강요한다. 한편에서는 비-존재는 없고 부정은 가상적이며 근거가 없다. 다른 한편 비-존재는 있고 이 비-존재는 존재 안에 부정적인 것을 위치시키며 부정의 근거가 된다.

-- 문제와 물음 : 문제제기 구조는 대상들의 일부를 이루고, 대상들을 기호들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물음을 던지거나 문제를 설정하는 심급이 인식의 일부를 이루고, 배움의 행위 안에서 인식의 실증성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전적으로 같다.

-- (비)-존재 : 문제나 물음에 ‘상응’하는 것은 존재이다. 존재와 물음을 서로 관련짓는 어떤 존재론적인 ‘통로’, ‘틈’, ‘주름’ 같은 것이 있다. 존재는 본연의 차이 그 자체이다. 존재는 또한 비-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존재는 부정적인 것의 존재가 아니다. 비-존재는 문제틀의 존재, 문제와 물음의 존재이다. 비-존재는 본연의 차이, 곧 반대가 아닌 다름이다. 비-존재는 (비)-존재라고, ?-존재라고 적어야 한다. - 모순의 저편은 차이다. 비-존재의 저편은 (비)-존재이고, 부정적인 것의 저편은 문제와 물음이다.

 

7절

 

차이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 : 허상과 허상의 저항 162

-- 플라톤주의를 전복한다는 것은 모사에 대한 원본의 우위를 부인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이미지에 대한 원형의 우위를 부인한다는 것이며 허상과 반영들의 지배를 찬양한다는 것이다. - 영원회귀는 자신이 존재하게(그리고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에 허상이라는 자격을 부여한다. - 허상은 자신의 고유한 반복 조건들을 내면화하는 기호이다. 허상은 사물로부터 원형의 지위를 박탈하지만, 그 사물 안에서 어떤 구성적 성격의 불균등성을 움켜쥔다. - 자신의 역량 전체 안에서 긍정될 때 영원회귀는 어떠한 정초-근거(현재와 과거)의 설립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영원회귀를 통해 우리는 보편적인 근거와해를 목격하게 된다(미래철학).

--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배후에서 모순을, 카오스라는 어떤 가정된 상태를 보았다. 다시 말해 가장 낮은 등급의 역량을, 마지막 단계의 분유를 보았다. 그러나 실상 n승의 힘은 두 번, 세 번, 네 번을 경유하지 않는다(순위, 등급). n승의 힘은 직접적으로 긍정되어 지고한 것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 소피스트는 모순의 존재자(혹은 비-존재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모든 사물들을 허상의 상태로까지 끌고 가는 자, 허상의 상태 안에서 사물들 전체를 운반하는 자이다. - 차이의 각 계기는 선별, 반복, 근거와해, 물음-문제 복합체 등과 같은 자신의 진정한 형태를 발견해야 한다.

-- 감성적인 것에 대한 이론, 재현, 현대 예술작품 : - 실재적 경험의 조건들을 규정한다면 감성적인 것의 존재는 예술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동시에 예술작품은 경험이나 실험으로 나타나는 상황이 벌어진다. - 재현은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는가? 동일성의 형식에 머물기 때문이며,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라는 이중의 관계 아래 머물기 때문이다. - 현대 예술작품은 서로 교대하는 계열들과 원환적 구조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때 예술은 철학에 재현을 폐기하는 데까지 이르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 모든 것은 허상이 되었다. 허상은 원형이나 특권적 위치라는 생각 자체를 반대하고 전복하는 행위이다. -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모상인지 가리킬 수 없다. 이런 방향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한 경험의 조건들이 아니라 실재적 경험의 조건들(선별, 반복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재현 이하의 영역의 실재성을 체험적으로 발견한다. - 재현이 동일성을 요소로, 유사한 것을 측정 단위로 한다면, 허상 안에서 나타나는 바 그대로의 순수한 현전은 ‘계속되는 불일치’를 측정 단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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