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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소설을 싫어했던 이유

칸트는 소설 같은 글은 기억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했으며 특히 여성이 더 잘 휘둘린다는 듯한 뉘앙스를 던졌다.

이 부분이 궁금했던 차 마침 읽기 시작한 책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아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역사학자 린헌트의 <인권의 발명> (교유서가/ 전진성 옮김)은 18세기 감수성이 대두되면서 인권이란 개념이 형성됨을 두가지 측면으로 설명한다. 문화적으로는 소설의 유행, 사회적으로는 고문의 철폐 였다. 인간 개인에 대한 집중은 타자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인권이란 개념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갔다는 것이다. 

18세기 선풍적 인기를 끈 소설은 서한형식 이었다.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며 그녀의 열애상대 혹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의 심정적 고백이 주를 이뤘다. 1인칭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의해 독자들은 타자의 감정에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경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린헌트가 꼽은 당대 최고의 서한소설 top3에 루소의 작품 <신엘로이즈>를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정도로 당대 유행된 흥행소설 이었나 보다. 

독보적 계몽주의자이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에겐 유독 야박했던 루소의 다층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상을 엿볼 수 있는 <신엘로이즈> 덕에 많은 대중들이 공감능력에 눈을 떴다니 아니러니한 역사의 단편이다. 

그러나 루소는 <신엘로이즈>를 소설이라 당당히 명명하지않았다. 이유는 그 시절 소설은 꽤나 저급한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인권의 발명>에 서술 된 그 분위기는 아래와 같다. 

 

많은 도덕주의자들은 소설이 특히 하인과 소녀들의 마음에불만의 씨를 뿌릴 거라고 우려했다. 

 스위스의 물리학자 사무엘 오귀스트 티소(Samuel Augusta tissot)는 소설 읽기를 자위행위와 관련지었다. 자위행위는 물리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 퇴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티소의 생각이었다. 그에 따르면, 육체는 자연적으로 퇴화하는데 자위행위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 과정을 단축시킨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빈둥거림, 무기력, 잠자리에 지나치게 오래 있는 것, 아주 부드러운 침대, 풍성하고 영념이많이 들어가고 소금간이 되어 있고 포도주가 가득찬 정찬, 의심스러운 친구들, 그리고 음란서적이야말로 이 같은 무정제를 낳기 쉬운 원인들이다.” “음란”이라고 말했을 때 티소는 솔직히 포르노그래피를 가리킨 것은 아이었다. 18세기에  ‘음란한(licentious)’이라는 말은 에로틱한 것과 관련이 있었으나 어감이 더 나쁜 ‘외설적인(obscene)’과는 구별되었다. 사랑에 관한 소설들은 - 18세기 소설의 다수는 연애담이었다 - 쉽사리 음란함의 범주에 편입되었다. 영국에서 특히 기숙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이 그러한 “비도덕적이고 비위를 거스르는” 책들을 손에 넣어 침대에서 몰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스러워 보였다.

사제들과 의사들은 소설읽기를 시간, 생동감, 종교, 그리고 도덕성의 상실로 본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그들의 가정에 따르면, 독자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소설 속에 나타나는 행위를 모방할 터였다. <클라리사>를 읽은 여성 독자는 클라리사처럼 가족의 소망을 저버린 채 싫든 좋든 그녀를 망치는 러브레이스류의 호색한을 따라 도주하는 데 합의할 것이다. 1792년 익명의 영국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설의 증가는 매춘의 증가와 수많은 간통 및 치정에 의한 가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소설들은 육체를 과도하게 자극하고,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자기몰입을 부추길뿐더러 가정적•도덕적•종교적 권위를 파괴하는 행위를 조장했다. (p63~64)

 

티소 란 인물은 계몽주의적 의학을 펼쳤으며 루소의 주치의였다. 계몽주의자 답게 육체노동에 의한 물리적 신체의 병에서 개인들의 정신적 심리적 문제로의 집중을 보여주기도 했지만(<읽고 쓰는 사람의 질병>) 자위는 건강학적으로 자살행위라는(<오나니즘에 의해 생기는 질병에 관한 논문>) 종교학적 한계도 함께 보여준다. 칸트의 인간학을 읽으며 느끼는 껄끄러운 느낌들과 꽤 비슷한 결이다.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확산된 개인의 존엄에 대한 관심은 소설을 통해 공감과 감수성을 확장시켰고 후대의 다양한 인권선언들이 탄생시켰다는 것이 린헌트의 해석이다. 다만 그 선언들에는 여성의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도 지적한다. 

 

 공감 또는 감수성 - 후자는 불어에서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 - 은 18세기 후반 대서양 양안에서 광범위한 문화적 반향을 얻었다. 제퍼슨은 소설가 스턴이 “도덕성의 최고 도정”응 제공했다며 그의 글을 인용했으나 허치슨과 스미스의 저작도 읽었다. 대서양 연안에서 동정과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일반화되기는 했지만 미국인이 쓴 최초의 소설이 1789년 ‘동정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동정과 감수성은 문학, 회화, 심지어 의학 분야까지 파고들어 일부 의사들이 그것의 과잉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것이 ‘멜랑콜리(melancholia)’, ‘우울(hypochondria)’, 혹은 ‘망상(the vapors)’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의사들은 유한계급 숙녀들(여성 독자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동정과 감수성은 선거권이 없는 수많은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물론 여성에게는 아니었다. (p77~78)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제한된 환경아래 좌절과 다양한 극복사례를 통한 인간 권리의 승리라는 감정을 대리경험할 수 있었던 점 때문일 것이다. 린헌트에 따르면 유독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제퍼슨같은 남성들까지 소설의 팬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성은 해방되어서는 안될 존재였을 것이다. 물리적 신체의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와 소설을 결부시킨 억지는 여성을 계속해서 지배하고 싶은 남성들의 심리적 발로가 아니였을까? 

칸트가 소설을 싫어한 이유가 단순한 서한형식에 대한 취향의 문제인지 실은 여성이 주인공인 연애담이 싫었던 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다만 종교적으로 음란물에 해당했던 장르라면 바른생활 사나이 칸트로선 소설에 너그럽기 어려웠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당연스럽게 여성과 장애인을 권리가 미약한 존재로 생각한 그가 소설에 대한 의학계와 신학계의 주장을 반박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칸트뿐만이 아니라 당대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다 그랬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루소의 근대인 안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던 것 처럼 제퍼슨 또한 노예소유주 였다. 칸트에게만 분기탱천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인권의 발명> 서문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칸트를 포함한 18세기 사람들의 사상을 대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18세기 사람들이 권리를 제한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거기서 멈춘 채로 우리 자신의 상대적 ‘진보성’을 자화자찬한다면, 이는 초점에서 벗어난 일이다. 노예제와 대인 종속, 그리고 자연법칙처럼 보이는 굴종에 기반한 사회에 살던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그들과는 다른 -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마저도- 동등한 존재로 상상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권리의 평등이 별 그럴듯하지 않은 장소에서 ‘자명한’ 진리가 되었는가? 특히 놀라운 것은 노예 소유주인 제퍼슨 같은 인물, 그리고 귀족이었던 라파예트 같은 인물이 자신들은 전 인류의 자명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다면, 인권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25)

 

2023년에도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흑인 소녀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포스터와 스틸컷이 공개되자 대중의 비난이 쏟아졌다. 나 또한 흑인과 동양인을 설정할 수 있지만 '예쁘지 않은' 배우에 대한 반감이 절로 들었다. 조카에게 유색인종 커리어우먼 바비인형을  부러 골라 선물하던 나의 PC함은 다음세대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린헌트의 타이름처럼 나의 감성은 미국10대 기준으로는 여전히 언피씨한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칸트선생을 다시 보니 한껏 너그러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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