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원자료 :: 인사원의 과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신유물론 발제(제5강)

노을 2022.04.14 18:51 조회 수 : 73

3. 본사실성의 원리(<<유한성 이후>>, 83~112쪽)

 이 장에서는 데카르트의 논의에 정반대로 기대어, ‘상관관계적 코기토’를 말하고자 한다.

  1. 상관관계적 코기토는 표상의 형이상학과 필연적으로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주체와 대상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존재사유의 상관관계 개념으로 회송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아론적 코기토가 아니라 '코기토들'이다.  의식들의 상호주관적 합의에 의한 객관적인 과학적 진리를 정초한다. 그럼에도 상관관계적 코기토는 그 자체가 인류의혹은 공동체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정 유형의 유아론을 설립한다.

  3. 왜냐하면 사유 존재들에 있어서 공동체에 선행하는 현실이나 심지어 공동체 이후의 현실에 대한 사유의 불가능성을 시인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오로지 공동체 그 자체, 그리고 그것과 동시대적인 세계와 관계할 뿐이다.

Q1. 메이야수는 이런 식으로 일정한 단정을 피하는 방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한 말을 다시 번복하고, 뒤집는 것인데, 개념으로서의 ‘모순’을 말하기 위해서, 서술 방식도 모순적으로 쓰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Q2. 사유의 불가능성은, ‘상관관계적 코기토’로 인식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뜻으로 읽어도 될까요? 또한 칸트가 말한 ‘초월적 주체’도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일까요? 아니면, 공동체는 그 자체로 존속하거나, 동시대적인 세계와 관계하는 것인지, 사유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런 ‘공동체적 유아론’으로부터 혹은 ‘상호주관성의 유아론’으로부터 빠져 나온다는 건 거대한 외계에 접근한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 거대한 외계는 선조적 진술들 속에 포함된 수학들에 대해, 연장 실체와 관계하는 참된 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Q3. 여기서 ‘공동체적 유아론’이나 ‘상호주관성의 유아론’은 앞장에서 언급된 ‘언어와 의식으로 구성된 투명한 감옥’일까요?

Q4. 강조된 “거대한 외계”는 “외계”와 다른가요? 외계는 말 그대로 외부세계, 내부와 상반되는외부성으로 동일하게 봐도 될까요?

Q5. 어떻게 “거대한 외계”가 “참된 신의 역할”을 한다는 걸까요? 외계가 외부, “세계의 창문”이기에, 외부로 뻗어나가는 통로로서,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는 신이라는 뜻일까요?

Q6. 메이야수는 감각이나 지각보다, 수학을 중요하게 보나요?

 

<선행된 논의의 결과들>

선조적인 것은 절대자가 사유 가능하게 될 것을 요청하는데, 이는 선조적인 것 자체가 사유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다.

 Q7. 앞 장에서 선조성을 원화석으로 말하기에, 선조성은 왠지 이 세계 만물의 기원이나 태초의 우주적인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절대자가 신이라면, 선조적인 것은 그 자신이 사유되기 위해서 신을 사유할 뿐이라는 말일까요?

 

우리는 존재자의 절대적 필연성을 확립하는 것을 겨냥하는 모든 증명이 비합법적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절대자는 독단주의적일 수 없다.

 

Q8. 여기서 “우리”를 일종의 객체파, 우연성파로 볼 수 있다고 할 때, 필연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봐야 할까요?  “존재자”(사물? 객체?)는 절대자(신?)와 어떻게 다른가요? 절대자를 신이라고 할 때, 절대자를 독단적으로 보았던 이들(형이상학파)을 비판하고, 구별짓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우리는 상관관계적 원환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Q9. 앞 장에서 “상관주의”를 긍정하고, “상관관계적 코기토”를 말하고, “상관관계적 원환”도 긍정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왜 “상관주의적 원환”은 장애물인 것인지요? 

 

상관관계의 전 영역을 장악하는 강한 모델 안에서 상관관계적 원환이 독단주의적 절대자를 실격시킬 뿐만 아니라, 절대자의 모든 형태들 일반을 실격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에서 말이다.

 

Q10. “강한 모델”이 무엇인가요? 약한 모델이 있다면,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는 상관주의의 두 가지 모델을 구분했다. 즉자의 사유 가능성을 지지했던- 칸트적인- 약한 모델과 그 사유 가능성마저도 반박했던 강한 모델이 그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술한 바 카오스는 강한 모델의 가능성을 '객관화'한다. 카오스는 사유불가능한 것, 비논리적인 것, 모순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카오스를 약한 모델(칸트적 모델)의 가능성의 객관화로 삼으면서 카오스의 저 역능을 '구속'할 수 있지 않을까? 카오스가 카오스로서 남아있기 위해서 사실상 사유불가능한 것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12)

Q11. “상관관계적 원환”은 “상관관계의 악순환”인가요?

 

 절대적인 어떤 것을 사유한다는 건 우리에 대해 절대적인 것을 사유한다는 것이며, 결국 절대적인 그 어떤 것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Q12. 이렇게 한 문장 안에 있는, 모순된 기술이 혼란스럽게 하는데, 왜 이렇게 쓰는 건가요?

 

<우리는 강한 모델의 그물망들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 비-형이상학적인 절대자가 필요하다.>

-실재론적 절대자(에피쿠로스적 절대)는 상관관계의 우선성의 그물망을 통과하지 못한다.

-상관관계적 절대자(관념론적인 절대자)는 사실성의 그물망을 통과하지 못한다.

 

Q13. 이런 표현들은 뭔가 들뢰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자본주의의 그물망들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 메이야수는 자본주의와는 완전 상관이 없나요?  ‘비-형이상학적인 절대자’는 ‘객체지향적 존재론’으로 대체가 가능할까요?

 

Q14. 앞 장에서 관계, 상관관계를 중시했기에, 상관관계만 나오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절대자라는 부정적인 언표(?)와 결합하면, 부정적으로 쓰이게 된다고 봐야 할까요?

     

Q15.  사실성은 경험성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상관주의가 절대주의적 사유를 실격시키도록 허락하는 원리 그 자체를 절대화해야 한다.>

실제로 이것이 주관주의적 형이상학들이 시도했던 바다.

 

Q16. 주관주의적 형이상학자들이 누구인가요? 칸트의 선험철학에 맞서는 형이상학자들인가요?

 

<역-공격의 첫 번째 물결>

    주관주의적 형이상학자들은 경험-비판적인 탈절대화의 도구인 상관물 자체를 절대자의 새로운 유형의 모델로 삼았다.

    주관주의 형이상학들에서 문제는 비판-회의주의를 반격할 수 있는 절대자를 발굴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그 논의에 힘을 제공하는 진정한 원천을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상관주의가 본질적 필연성을 발견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상관관계만이 유일한 진정한 즉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회의주의적 논의 속에 숨겨진 존재론적 진리를 도출해냈다. 사람들은 근본적 무지를 존재에 대한 앎으로, 참된 절대성으로 드러난 존재에 대한 앎으로 변질시켰다. 

 

<상관관계적 원한의 황폐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절대자가 여전히 사유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강한 모델의 두 번째 결정의 절대화에서 – 즉 사실성으로부터- 유래하는 절대자일 것이다.> 

 

Q17. “강한 모델의 두 번째 결정의 절대화”가 무엇인지요? 읽다가 자꾸 막히는데, 강한 모델은 무엇이고, 두 번째 결정이 있다면, 첫 번째 결정은 무엇이었는지…..궁금합니다.

 

<사실성 아래 숨겨진 존재론적 진리(모순 : 탈절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원천 자체가 거꾸로 절대적 존재로의 접근이라는 것)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관관계적 회의주의도 건드릴 수 없는 어떤 하나의 진리에 접근해야만 할 것이다.>

Q18. 왜 상관물이 아니라, 상관물의 사실성이 절대자인가?

Q19. 왜 사실성이 사유가 자신의 본질적 한계들로부터 만들어내는 경험이 아니라, 거꾸로 사유가 절대자에 대한 자신의 앎으로부터 만들어내는 경험인가?

 

<사실성에서 절대자에의 접근 불가능성이 아니라, 즉자의 계시를 포착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유가 함축하는 오래된 미비의 표식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불변적 속성으로서 말이다.>

Q20. 이런 명제들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Q21. 사실성은 무엇인가? 사실성은 왜 “사유의 본질적인 무능력”을 표현하는가? 이미 본래부터 주어진 것, 소여된 것이 사실성이기 때문일까요?

 

<사실성은 절대자에 대한 앎으로 계시된다. 결국 우리는 사유의 무능력 때문에 환영적으로 붙잡고 있던 무엇을 사물 속으로 되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Q22. “환영적으로 붙잡고 있던 무엇을 사물 속으로 되돌린”다는 말은, 우리가 사물의 속성이나 연장을 왜곡한다는 말일까요?

Q23. “이유없이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은 무용한 사물(사물의 속성이 이유가 없고, 무용하다는 것)도, 그 자체로, 무용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무용한 것도 역설적으로 능력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성 원리의 실패는 이성 원리의 허위성에서 비롯된다.>

참으로 그 어떤 것도 존재 이유를 갖지 않으며, 다르게가 아니라 그렇게 존속할 이유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Q24. 그렇다면, 객체의 철학은 ‘없음의 철학’ ‘부재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유 없음 자체를 사물의 속성으로 보고 긍정하라는 것일까요? 하먼에게 있어서도 ‘없음’과 ‘무한’이 중요한 거 같은데, 이와 연관성이 있을까요?

 아울러,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원인-철학론적 관점과도 상반되는 것일까요?

 (“탁월한 원인의 사유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혼란과 고통이 치유되기 어렵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 :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 

 

Q25. 사실성의 절대화가 왜 상관관계적 원환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상관주의자의 예상 반론>

사실성이 모든 사물의 이유의 실제적 부재에 대한 앎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진술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사실성과 우연성은 다르다.

세계의 명백한 비이성(이유의 부재)이 비이성 그 자체(이유가 부재하는 다르게-되기의 실제적 가능성)이며, 우리에 대한 비이성(필연적 이유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에 대한 (비이성) 그 자체로의 이행은 필연성, 우연성에 있어서 불가능합니다.

 

 우연성 : 어떤 것에 대해 지속되거나 사라지는 것과 무관한 가능성

          내가 규정된 사물의 실제적 사멸성에 대해 갖게 되는 앎

          실제적인 유약함, 비-존재의 가능성

사실성 : 우리의 본질적인 무지를 지시.

         사물들 자체의 속성. 안다고 가정되는 속성.

 

Q26.  (사실성을)  “우연성의 형식으로”(90쪽)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성이 우연성이라는 것은 증명할 없다.’   왜 갑자기, 사실성을 우연성의 형식으로 만든다는 것인지요?

 

<우리의 반박>

우리는 사유 가능해지기 위해서 상관관계적 원환 그 자체가 우연성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Q27. “우리에 대한-것”(“나에 대한-것”)과 “그 자체”(“즉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대가를 치르고서만 당신은 즉자와 우리에 대한 것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98쪽)

 

우리는 상관관계의 사실성이 우연성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조건에서만 사유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모든 사물의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이 원환 자체에 의해 전제된 절대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면, 원환이 스스로 해체되지 않는 한 우연성은 탈절대화될 수 없다.

우연성은 상관주의에 고유한 작용을 한다. “그 자체”로부터 “우리에 대한” 것으로의 상대화 작용에 면역된 채 나타난다.

 

독단주의(기독교적/무신론적 독단주의자)의 안다(인식), 실재론자

VS 상관주의자(불가지론자 : 인식불가능)

VS 주관적 관념론자 (즉자에 대한 사유는 불가능하다)

VS 사변적 철학자 (절대자는 불가지론자가 이론화하는 것처럼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 그 자체다.)

 

Q28. 상관주의적 불가지론은 어떤 조건에서 실재론적 테제들뿐 아니라, 관념론적 테제를 반박할 수 있을까? (93쪽)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은 우리의 사유의 상관물로서 생각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비-존재의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가능한 비-존재를 사유할 수 없다.

불가지론은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을 재차 절대화함으로써만 그것을 탈절대화할 수 있다.

 비이성만이 영원한 것으로 사유될 수 있다.

그것만이 비가언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서 사유될 수 있다.

 

p.s. 발제가 미완이기에, 수업 이후에 보충하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인사원_니체 :: 너희가 니체를 알겠지?! [1] oracle 2019.01.31 664
1465 [푸코의 말과 사물] 10강 : 8장 노동, 생명, 언어 (3절, 4절) 발제 file 바라 2023.05.11 21
1464 [푸코의 말과 사물] 10강_ 8장 노동,생명, 언어 1~2절 발제 file 오 나의 고양이 2023.05.10 22
1463 [칸트의 인간학] 8강 쪽글 누혜 2023.05.08 33
1462 [칸트의 인간학] 7~8강 후기 해돌 2023.05.08 34
1461 칸트의 인간학 쪽글. [1] 다카포 2023.05.07 46
1460 칸트 인간학 8강을 마치고 현옥 2023.05.07 33
1459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쪽글(수정) 동현 2023.05.05 35
1458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질문 현진 2023.05.04 17
1457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발제 현진 2023.05.04 17
1456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발제 ~ 3,4절 file 동현 2023.05.03 25
1455 푸코 말과사물 ]제9강 7장- 재현의 한계 5-6절 발제[ file 박소원 2023.05.03 35
1454 칸트 8강 쪽글 file 담묵(상혁) 2023.05.01 38
1453 칸트7강후 쪽글(6강 쪽글을 대신할 학부~발제문도 함께) 진(소나무) 2023.05.01 31
1452 [칸트의 인간학] 7강 쪽글 여여 2023.05.01 19
1451 [칸트의 인간학] 5-6강 쪽글 누혜 2023.05.01 29
1450 칸트 7강을 마치고 현옥 2023.04.30 45
1449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 6장 교환하기 (5절, 6절) 발제 file 바라 2023.04.28 22
1448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질문 현진 2023.04.28 23
1447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쪽글 file 동현 2023.04.28 36
1446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쪽글 사각사각 2023.04.27 24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