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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5강 발제 4/11

재연 2022.04.11 04:16 조회 수 : 108

푸코 주체의 해석학 4/11 5강 발제

 

제가 이해한 정도 안에서만 정리해서 내용이 풍부하지 못한 점 미리 죄송합니다. 

 

 

▷ 1982년 2월 3일 강의 전반부

 자기 행동의 기초는 자기의 목표. 목표는 자기 자신. 자기 배려는 필연적인 타자 배려(236)

· 푸코는 진실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눈을 뜨고 정직하게 곧게 추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함
· 진실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명성의 선을 결코 놓지 않고 꽉 쥐는 것으로도 족하다고 함
· 인식 내에서 자기, 즉 있는 그대로만으로도 충분한데,(222)
· 이 중요한 주체의 영적인 변형의 관념은 데카르트와 칸트에 의해 소거된 역사를 가지고 있음(223)
· 그러나 우리는 ‘대상에 대한 인식’은 일단 제쳐 놓고 ‘철학과 영성’이라는 축에 입각해 주체와 진실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본질적이라고 생각되는 ‘자기변형’을 연구해야 된다고 푸코는 말함
· 푸코는 정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간의 단절에 집중하기 보다는 ‘관계의 역전’을 문제로 삼음(224)
· 에피쿠로스주의의 우정 개념 : “모든 우정은 그 자체로 인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정은 유익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정이 바람직하다는 사실과 그러나 우정이 유용성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간에는 명백한 대립이 존재함. 그러나 거기서 출발한다고 해도 우정은 그 자체를 위해 선택되어야 함. 우정은 유용성 제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으로 유용성과 유익성과는 다른 무엇간의 일정한 균형을 통해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것이 됨(226). ‘균형’이란 우정을 얻음으로써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확신을 갖는 것(227). 이 확신은 우정을 지혜와 행복의 한 요소로 만든다는 ‘신뢰 행위의 상호성’에 입각한 것(228). 따라서 유용성과 바람직성 간의 복잡한 관계, 우정의 상호성과 나에게 확보되는 행복과 평정의 특수성 사이의 복잡한 연관 관계를 볼 수 있음(228). 이를 드러냄으로써 에피쿠로스의 우정은 자기 배려 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환기시킴. 또한 아타락시아와 복락을 보증하는 우정의 필연적인 상호성을 발견하게 됨(228) - 플라톤주의의 상호성이 역전된 형상과 비교하면서 설명(플라톤은 타자를 위해 자신을 돌보아야 하고, 또 도시국가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내에서 타자가 나의 구원을 확보해 주는 것이라고 말함)
· 에픽테토스 : “제우스 신은 공동의 유익을 유발시키지 않는 어떤 특수한 선도 얻을 수 없도록 합리적 동물의 본성을 장치해 놓았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이기적 추구와 타자를 위한 유익한 행위의 관계를 설정함. 이 관계는 엄밀한 의미에서 합리적 존재와 인간 존재가 문제시될 때 그 순서가 바뀌게 됨(229). 달리 말해 합리적 본성을 완성하고 비합리적인 것과 자신을 대립시키는 차이를 완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배려의 대상으로서 삼아야 함. 결국 자기돌봄을 사유하게 된다는 것인데, 자기 자신을 잘 돌보아서 그 결과 자신의 표상에 어떤 것이 나타날 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인간 공동체에 속한다는 한에서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음(230). 자기배려와 타자배려의 필연적인 상호성.
· 구체적인 예 : 딸 돌보기(231)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 군주는 타자를 통치해야만하는 직업임. 이 직업이라는 겉포장에 속지 않아야 함. 그가 지향해 나가야 하는 목표점은 황제가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 또 그가 자기 배려를 하고 부단히 자기 자신을 돌봄에 따라 그는 황제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일련의 배려와 만나게 됨. ‘일에 시선을 고정시키기’란 훌륭한 왕의 업무도 아니고 인류 구원도 아니며 대중의 복락을 위한 헌신도 아님(235). 우리는 항시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하고 자연이 요구하는 바를 상기시켜 그의 행동의 토대를 이루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그가 타자를 배려하는 방식을 한정해야 함.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도 우회해서는 안 되는 인생의 목표를 단번에 결정적으로 고정시킨 사람이라는 말로 거듭 강조(236). 자기통치와 타자통치의 필연적인 상호성.

 


▷ 1982년 2월 10일 강의 전반부

 자기가 도달해야 할 곳은 바로 자기 자신, '자기 전향', (260)

· 자기 실천은 생활의 기술과 동일시되고 하나가 됨
· 자기 실천은 필연적으로 사회 관계망과 섞이고 착종될 수 밖에 없음(237)
· 우리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함(238) 이게 무슨 말일까?
· 자기 자신의 중심부에서 고정 지점과 부동 지점을 찾아야 함(239) 이건 또 무슨 말일까.
·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기라는 뜻을 가진 ‘전향’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극히 엄밀하고 ‘철저한’(construite) 개념과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함. 또한, 이는 엄격하게 구축되었지만 관념을 발생시키지 않는 일종의 행동 도식에 훨씬 더 가깝다고 덧붙임(240)
· 그러나 사람들은 혁명의 포기 쪽으로만 전향함
· 오늘날 위대한 전향자들은 오히려 혁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
· 여기서 ‘전향’이라는 것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플라톤의 대략적 도식을 언급함(242). 무엇으로부터 우회하기, 자기로 되돌아가기, 상기를 실증하기, 존재론적 본향으로 되돌아가기. 플라톤의 에피스트로페는 인식의 특권에 의해 작동함(242)
·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자기 수양의 중심에서 발견되는 이 ‘전향’은 플라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음.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진실된 바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플라톤의 인식과는 구별함(242)
·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양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와 자기의 완벽하고 완결적이며 적절한 관계 설정의 양상을 띤다는 점이 결론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전향의 또 다른 특성으로 귀결된다고 설명함(243)
· 이것은 자기와 자기의 조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243)
· 인식보다는 연습, 훈련, 실천과 같은 자기 수련이 핵심적인 요소가 됨(244)
· ‘전향’은 타동-주체화라기보다는 능동-주체화라 부를 수 있는 길고도 연속적인 절차이나(249)
· 우리는 이 여정에서 회개나 후회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도록 해야 함(250)
·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타자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해야 함(254)
· 자기 주변에 공(空)을 만들자
· 목표나 오히려 자기 자신과 목표와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행위를 하자 
· 내가 향해 가고자 하는 곳이나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과 나 자신을 분리시키는 이 도정을 사유하자
· 도정에 정신을 집중하자
· 자기와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바로 이 거리 때문에 자기와 자기 사이의 거리 내에 도정이 위치하는 것을 살필 줄 알아야 함
· 바로 이것이 타자에게 향해진 시선과 [차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시선 전환이 갖는 양태에 대해 푸코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260)

 

 

▷ 1982년 2월 10일 강의 후반부

 진실말하기와 동시에 해야 할 바를 명령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이 자체로 우리는 자기배려와 타자배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거 가능하다?(276) '자기 인식의 언어'

진실말하기는 무엇일까?

· 진실 말하기에 유용한 지식과 무용한 지식은 그 내용을 통해 구분되지 않음
· 그것은 생리학적 형식에 의해 구분됨(276) 이게 무슨 말일까?
· 먼저, 진실 말하기는 무엇일까? “생리학자의 자유 내에서 파레시아를 통해 생리학을 활용하면서 나는 만인이 동의하고 만인이 이해하지만 주체의 존재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는----왜냐하면 그것은 만인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기성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비록 모호하다 할지라도 진실된 바를 말함과 동시에 해야 할 바를 명령하는 신탁의 언어에 근접하기를 더 좋아한다”(276)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진실 말하기의 성격과 방향성을 드러내는 문장. 
· “천상의 현상들에 대한 인식이 아타락시아와 굳건한 확신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음을 납득할 필요가 있다. …… 동요 없는 변혁을 필요로 한다.”(276) - 진실 말하기에는 ‘확신’이라는 단어가 중요해보였습니다. 동요 없는 변혁이란 진실 말하기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일까요? 자기돌봄과 일치시킬 수 있을까요? 이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고 싶어요.

 

진실말하기-자기돌봄에 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들. 되새겨야 할 것들.
· 기상에 대한 인식, 세계의 사물에 대한 인식, 천상과 지상에 관한 인식, 물리학에 대한 가장 사색적인 인식은 거부되지 않았으며, 차라리 그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음(276)
· 세계에 대한 앎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대립이 (에피쿠로스주의자들과 견유주의자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앎과 인간 존재에 대한 앎의 대립으로 결코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견지해야 함
· 그들이 설정한 대립과 그들이 행한 여러 지식의 자격 박탈은 단순히 이 앎의 양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 그것은 사물과 세계 그리고 신과 인간에 근거한 앎이지만 동시에 주체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효과와 기능을 담당하는 앎이기도 함
· 이 진실 혹은 진리가 주체에게 충격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음 - 충격? 어떤 방식으로? 교육? 기술? 
· 주체가 참된 담론이 대상이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 점이 두드러진 차이점.
· 고대의 자기 실천과 이것이 자연과 세계에 대한 앎과 연결되는 방식상에서 이후에 등장하게 될 의식의 자기 해독이나 주체의 자기 해석과 같은 것들이 결코 등장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77) (이 부분도 확실히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자기 배려와 자기해독, 자기해석의 개념들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이 안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흥미로워서 나누고 싶었던 부분들
· 사회에 잘 적응한 훌륭한 견유주의자 데미트리우스(264) - 훌륭한 육상선수 설명을 통해 유용성의 기준을 제시함. 지식의 유용성도 운동기술을 쓰는 방식과 유사함을 드러냄. 
· 모호한 진실은 심연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을 사악하다고 원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발견 자체 이외의 다른 결실을 가져다 주지 않는 사물들만이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를 더 나아지게 하거나 행복하게 해주는 바를 우리가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놔두었다.(265) - 상품화된 현실과 자기상품화에 혈안이 된 우리들과 비교하게 됨. 흥미로운 부분이여서 나누고 싶었어요.
· 인간이 우연한 사건들에 대비했다면, 공포를 극복했다면, 또 열망 속에서 무한을 포옹하지 않고 자기 내부에서 풍요로움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면 인간에 대해 거의 겁낼 바가 없으며, 신에 대해 무서워할 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인간과 신에 대한 공포를 억제하면, 인생의 골칫거리이자 장식에 해당되는 잡다한 장신구들을 경멸하며, 죽음이 결코 어떤 불행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불행들을 끝장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자기의 영혼을 덕에 몰두하여 영혼이 덕을 부르는 도처에서 쉬운 길을 발견했다면, 자기 자신을 공동체 내에 살기 위해 태어난 사회적 존재로 바라본다면, 세계를 만인의 공동의 거처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의식을 신을 향해 열고 항시 공중(公衆) 앞에서 산다면 그는 폭풍우를 피해 한결같은 평온 속에 정착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안에 참으로 유용하며 필요한 과학을 집결시킨 것이다, 나머지는 여가의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266) - 세네카가 무용했던 사물들과는 반대로 알아야 할 사물들을 열거한 것.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같이 읽어보고 싶었어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 집중해야 할 것들. 자기배려가 어떻게 타자배려, 세계배려, 우주배려가 되는지 잘 설명한 문장으로 느꼈어요.
· 흥미롭고, 중요하며 결정적인 것은 세계와 자연의 비밀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인식이라고 단언한 소크라테스주의자 – 물리학자 김상욱의 신간책 <떨림과 울림>에 첫 페이지를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고 장식하였는데, 이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김상욱은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라면서 이렇게 적었다.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더 경이롭다.” 이 책의 백미는 이렇듯 차갑지 않게 과학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데 있다.
· 이는 견유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와 같은 중요한 철학학파들 내에서 발견되는 테마이기도 함.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
· 지금 문제가 되는 시기인 헬레니즘·로마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겨 준 다수의 요소들과 간접적인 지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그런 견유주의자들을 검토하겠습니다(263). -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견유주의자들을 설명하겠다는 것인가요? 다수의 요소들과 간접적인 지표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으로 견유주의자들의 맥락은 이해하였습니다.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언 명령적 진리들이다(269). - 이중적인 결함으로부터 벗어난 정언 명력적 진리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1. 행복을 추구한다. 2. 주체의 존재 방식을 변형시켜야 한다. 를 나타내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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