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원자료 :: 인사원의 과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블랑쇼 2강 발제

김서연 2020.10.07 00:49 조회 수 : 73

<카프카 단편 - 선고> 

  1. 내용 

게오르크 벤데만은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떠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그 친구의 사업은 점점 기울어가고 있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해도 재기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게오르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사업이 잘 되어간다. 프리다 브렌덴펠트와 약혼도 했으나 처지가 좋지 않은 친구에게는 알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최선의 말을 골라 약혼 사실을 편지에 쓰고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아버지는 게오르크의 약혼을 빈정거리며 여태껏 친구를 기만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물에 빠져죽을 것을 선고, 게오르크는 방에서 바로 나와 강에 빠져 죽는다.  

 

 

  1. 발췌(이탤릭체)/단상

 

#1

게오르크는 조용한 일요일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억 속에 두서없이 쌓이게 되는 것들과 같은 

의미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만 편지를 쓰는데 그쳤다. 

 

게오르크는 친구의 삶을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가령, 친구가 고향에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도 러시아에서 사업을 제안하는 그에게 말을 아낀다. 

약혼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친구가 겪을 감정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게오르크가 그에게 전할 말은 오직 사소한 것들 뿐이다.   

 

#2

"나는 아마 나의 내면에서 현재의 나 자신보다도 그와의 우정에 더 적합한 인간을 끄집어낼 수는 없어.”

 

게오르크 본인이 실은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목이다. 

혹은 그가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가 생각하는 ‘우정’을 실현할 수 없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3

“너는 나를 엎어주고 싶었겠지. 그건 나도 알아, 이 녀석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덮여 있지 않아. 중략. 

너는 지금 그를 수중에 넣었다고 믿고 있을 거야. 깔아뭉개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야.”

 

이불을 덮고 있는 아들에게 이불을 잘 덮었냐며 재차 묻던 아버지의 속내. 

게오르크 본인은 잘 덮었다고 말하지만 실재는 그렇지 않음을 폭로한다. 

게오르크가 가지고 있는 확고한 믿음을 꾸짖는다. 

게오르크가 진실, 우정, 배려로 여기고 해왔던 행동의 진실은 정반대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카프카는 작품 속 아버지를 통해 자신을 꾸짖고 있다. 진실이라 여기고 주창해왔지만 실은 자기자신만을 위했던 상념과 결별하고자 죽음이라는 선고를 내린다. 선고의 의미는 우리가 일생동안 갖게 될 믿음에 관해서 의구심을 가지라는 것일 것. 다만 늘 물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기준점은 어디에 있는지, 지향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이다. 

 

 

 

<카프카와 작품의 요구>

 

글쓰기는 미결정의 상태만을, 질문의 형식으로만 근원에 도달할 수 있다. 카프카의 경우, 시적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구원에 대한 염려 또한 문학을 통해 드러낸다. 모호한 갈등들도 드러나지만 무언가를 밝혀 주는 전개의 양상이기도 하다.

 

  • 젊은 카프카

“나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작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난 그 무엇도 감히 시도할 수가 없다."

 

1912년까지 카프카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매우 컸으나, 글쓰기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글쓰기의 어떤 요구들을 알아차리지만 진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다 1912년 9월 22일 ‘선고’를 단숨에 쓰고는 그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진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 갈등

“굳어 버려, 난 이제 돌과 같다”

카프카는 외부적 상황(가족, 직업, 약혼)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시간의 부재가 주는 매혹과 고독으로 들어서는 그 지점’에 다다르지 못한다. 키르케고르는 레기네(약혼자)를 포기함으로써 종교적 차원의 길에 이르렀지만, 카프카에게 삶의 세속적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영원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그 자신 안과 밖에서 고독이 그를 위협하는 것을 뜻하고, 공동체란 단지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을 의미한다. 

 

  • 문학을 통한 구원

“난 어떻게 해서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글을 쓸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나의 투쟁이다."

카프카는 불안의 상태를 자신의 바깥으로 끌어내고, 깊은 불안을 글로 옮기는 것이 자신의 내면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 관점의 변화

“인간 세계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끔찍스럽기도 하고, 그 힘은 한순간 모든 것을 잊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세계의 인력 또한 대단하다.”

1914년 청년 카프카는 어떻게 해서라도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1915년에서 1916년경 옛 약혼녀와의 관계를 되찾고, 전장에 나서기 위해 휴가를 요청하는 등  생활의 범위를 넓혀 간다. 1917년의 새로운 약혼식을 병으로 끝을 맺게 되면서 그는 홀로 살아갈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갈 수도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1922년 병은 점점 악화되고 밀레나 예젠스카와 비탄의 감정의 관계를 나눈다. 그는 정신이 광기와 구원의 사이를 오가는 듯 보이는 절박한 지점으로 그를 몰고 간다. 

 

  • 긍정적 경험

“문학은 사물들을 쾌적한 빛 가운데 두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시인은 사물들을 진실과, 순수와, 지속의 왕국으로 고양시켜야만 한다."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카프카는 가나안으로부터 쫓겨나 사막을 방황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세계 바깥으로 내쫓겨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 떠돎을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시오니즘이 유배의 치유, 지상의 체류 가능성에 대한 긍정, 유태 민족의 거처는 성경이자 땅인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카프카는 그의 문학과의 화해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기쁨에 여전히 마음이 끌려 반시오니스트가 되면서도, 여전히 문학의 요구를 받아들이려 한다. 

앞선 발췌문은 이러한 요구를 불완전하게나마 충족하려는 방향성을 가리킨다. 문학은 ‘나’에서 ‘그’로 가는, 카프카 자신에 대한 관찰에서,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넘어 또 다른 세계, 자유의 세계로 이르는 드높은 관찰로 가는 해방의 통로이다. 

 

*시오니즘 (zionizm) : 고대 유태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태민족주의 운동 

 

  • 왜 예술은 정당화되고, 정당회되지 않는가?

폭군 같다던 아버지로부터 숨으려 한(카프카는 세계 밖으로 던져진다) 카프카는 고독을 선고 받았고, 문학을 통해 그 고독을 풍요롭게 했다. 카프카에게 예술은 불행의 ‘의식’이었지만 ‘보상’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예술이란 나약한 예술가들이 스스로 흡족해 하는 허구, 몽상 건설, 진리 묘사이다. 모든 우상을 배제하는 일원론의 입장에서 예술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카프카의 예술은 세계의 진리를 잃어 버린자, 신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추방된 자들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당화된다. 

 

 

  • 진리 바깥의 발걸음 : 측량사

‘성’의 측량사 - 완강한 성격,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고향을, 여인과 아이들이 있는 삶을 영원히 거절한 것으로 묘사, 그의 구원은 바깥에 존재한다. 그의 시도의 비극적 어려움은 바깥과 격리된 세계 속에서는 모두가 거짓이고 허구이며, 그곳에 몸을 의지하자마자 모두가 결핍되어 있다는 데 있다. 카프카는 진리 바깥의 발걸음 가운데 모순되고 지킬 수 없지만 여전히 일종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어떤 규칙들이 있다. 실수 자체 속에 주어져 있다. ‘소송’의 요제프K 처럼 세계로부터 배척당했음에도 여전히 세계 속에 살며, 소송에 이기기를 바라는 데 있다. 또한 공허한 담론 속에서 더 높은 차원의 정의를 호소하면서 포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상황이다. 이는 세계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실존을 믿도록 허락하는 환상과 헛된 위안을 저버리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실수의 과정에서 희망이 있다면, 헛되이 대립하면서 거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실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진다. 

 

  • 본질적 과오

실수 가운데의 초조함은 본질적 과오이다. 정해지지 않은 것을 결고 끝내려 해서는 안된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부재의 깊이를 이미 현전하는 것처럼 잡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측량사에게서 성급한 해결의 요구가 드러나는데, 이 요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우상숭배의 저주가 동반한다. 초조함은 이렇게 즉각적 형상을 알아보지 못하게 방해함으로써 종결의 다가옴을 무산시킨다. 

 

  • 작품의 공간 

카프카는 종종 이야기를 포기한다. 글을 쓰는 과정이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라고 느꼈다. 고뇌, 초조함의 고뇌, 글쓰기의 요구에 대해 세심한 염려로 인해 그는 오직 완성만을 허락하는 도약, 기약 없는 것에 종결을 가져다주는 낙천적 믿음에 대해 결코 자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초조함을 몰아내기 위해 그리고 혼돈의 미망이나 이미지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카프카는 점차 세심함, 차분한 접근, 치밀한 정확성을 추구했다. 그는 단호하게 유지된 일관성을 통해 부재에 마주했다. 

 

  • 예술과 우상숭배 

성경은 다듬어진 이미지image를 만들지 않을 것을 요구하며 우상숭배를 금했다. 예술을 통하여 일종의 우상숭배에 빠졌고 자신을 엄격하게 고립시키며 예술, 이미지라는 실수를 통해 가려진 진실을 명백히 드러내려 했다. 이러한 종교적 요구를 문학적 요구로 이어 가는 경향이 있었고, 특히 만년에는 문학적 경험을 종교적 경험으로 이어갔다. 인간에게 제3 세계란 없지만, 카프카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염려에서 그 근원에 대한 추구에 있어서 그를 위해 단 하나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인사원_니체 :: 너희가 니체를 알겠지?! [1] oracle 2019.01.31 663
1465 [푸코의 말과 사물] 10강 : 8장 노동, 생명, 언어 (3절, 4절) 발제 file 바라 2023.05.11 21
1464 [푸코의 말과 사물] 10강_ 8장 노동,생명, 언어 1~2절 발제 file 오 나의 고양이 2023.05.10 22
1463 [칸트의 인간학] 8강 쪽글 누혜 2023.05.08 33
1462 [칸트의 인간학] 7~8강 후기 해돌 2023.05.08 34
1461 칸트의 인간학 쪽글. [1] 다카포 2023.05.07 46
1460 칸트 인간학 8강을 마치고 현옥 2023.05.07 33
1459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쪽글(수정) 동현 2023.05.05 35
1458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질문 현진 2023.05.04 17
1457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발제 현진 2023.05.04 17
1456 [푸코의 말과 사물] 9강 발제 ~ 3,4절 file 동현 2023.05.03 25
1455 푸코 말과사물 제9강 7장 재현의 한계 5-6절 발제 file 박소원 2023.05.03 34
1454 칸트 8강 쪽글 file 담묵(상혁) 2023.05.01 38
1453 칸트7강후 쪽글(6강 쪽글을 대신할 학부~발제문도 함께) 진(소나무) 2023.05.01 30
1452 [칸트의 인간학] 7강 쪽글 여여 2023.05.01 19
1451 [칸트의 인간학] 5-6강 쪽글 누혜 2023.05.01 29
1450 칸트 7강을 마치고 현옥 2023.04.30 45
1449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 6장 교환하기 (5절, 6절) 발제 file 바라 2023.04.28 22
1448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질문 현진 2023.04.28 23
1447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쪽글 file 동현 2023.04.28 36
1446 [푸코의 말과 사물] 8강 쪽글 사각사각 2023.04.27 24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