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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4주차후기] 이상의 '꽃나무'

papanaya 2017.10.17 09:44 조회 수 : 479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 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 이상스러운흉내를 내었소. 


 

「 꽃나무 」에서 흔히들 이런  서사를 짜냅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꿈꾸는 시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다면 

떨어지는 잎새에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시인들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미덕이 되겠죠. 

 

그런 암묵적인 요청들에 호응한다면 이상의 시에서도 얼마든지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무기력, 그리고 자조를 읽어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가령, 위의「꽃나무」에서처럼  말이죠. 

 

우리는  이상이 조선어로 쓴 이 시발적인 시작품에서 

다른 꽃나무에게 ‘갈 수 없는 ‘ 한계 상황을 식민지의 억압적 상황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나름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꽃나무의 처절한 몸부림을 민중의 생명력으로 

그리고, 그런 꽃나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줄 몰라서 다만 ‘달아날’ 수밖에 없는 ‘나’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지식인의 무기력으로 

결국 화자가 자신의 행위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조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목자와 양, 또는 사제와 죄인의 이인극과는 

다른 연극을 상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는 바람에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에게 찢긴 악타이온의 서사라면 어떨까요? 

과연 그 서사에서도  참회와 반성, 그리고 자조 따위가 남아 있게 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꽃나무’는 의인화된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영혼임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주변에 꽃나무가 하나도 없고,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은 식민지의 억압적 상황이기 이전에 

꽃나무가 응시로써 물음을 던지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새뮤얼 버틀러의 묘사를 빌리자면 들판은 꽃나무의 실존에 관한 ‘미신적 지반’인 셈이죠(179)

그러니, 꽃나무는 다른 무엇의 표상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응시하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을 구성해가는 

그런 독립적인 영혼일 뿐입니다. 

 

따라서, ‘꽃나무’가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서 있는 것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식민지 민중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이 아니라  ‘자기 변형’에 대한 ‘주제넘은 믿음’이 아닐까요?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도 없으면서 마구 마구 꽃을 피워내기 때문입니다.

아, 이 대책없는 긍정의 마음을 보세요 ㅎ  

 

그런 점에서 꽃나무가 그렇게 꽃을  ‘울컥울컥 게워내듯 피워내는’ 것은 그런대로 

아르테미스의 생성의 힘과도 맞닿은 점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꽃나무도 없고 그 꽃나무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데도 꽃을 피워 올리는 것은 

벌거벗은 아르테미스의 역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 이제 악타이온이 등장할 차롑니다. 

 

악타이온은 화가 난 아르테미스의 저주로 그만 사슴이 되어 달아나다가 

자신의 사냥개에게 찢겨 죽었다고 하죠.. 

 

그렇다면, 꽃나무가 꽃을 피워 올리는 것을 훔쳐 본 화자가  

뜬금없이 내달리는 것에서  

그만 사슴이 되어버린 악타이온의  공포와 쾌락이 뒤섞인 정서를 

읽어내는 것은 무리일까요? ㅎ 

 

“우리는 응시에서 끌어내는 쾌락 때문에 나르키소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응시하는 것을 통해 언제나 악타이온이 된다.” (179) 

 

분명히 화자는 극한 상황에서 꽃을 피워내는 꽃나무를 응시함으로써 무언가를 짜 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짜냈을까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조와 한탄? 

어디서? 

 

화자는 달아나는 것도 그냥 달아나는게 아니라 

'막 '

달아납니다. 

 

마치 사슴이 되는 바람에 자신의 사냥개에게까지 쫓기지만 

달아나면서도 벌거벗은 아르테미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흘리고 있을 것같은 악타이온의 표정.. 이 

그 ‘막’이라는 강세부사에서 느껴지지 않습니까? ㅎ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꽃나무는 꽃을 피워냄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통해 이미 어떤 영광을 노래하고’  있으며 

화자는 ‘막’달아남으로써 ‘자신이 수축하면서 응시하는 요소들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이죠..  

 

“어떤 유기체가 예외이겠는가?” (180) 

 

그러니, ‘이상스러운 흉내’에서 드러나는 것은 자기 비하의 감정이 아닐겁니다. 

그것은 ‘언제나 먼저 다른 것을, 물, 아르테미스, 나무들을 응시’함으로써  마침내 

‘자기 자신의 이미지’로 충만해지는 몸짓일 겁니다.  

'꽃나무'는 그런 젊은 이상의 '시인-되기', 혹은 악타이온 -되기에 관한 시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일 이상이 꽃나무로부터 훔쳐낸 것이 있다면 아마도 바로 그 꽃나무의 자기 변형에 대한 꽃의 주제넘은 믿음일 겁니다. 

그래서 그토록 이상의 시작품들에는 귤도 훔치고, 비누도 훔치고 반지도 훔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 유명한 「날개」에서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언제나 너는 무슨 도둑질을 하러 다니느냐는 아내의 질타에 좀 억울한 표정을 짓지만 

뜬금없이 ‘그럼 어디로?’ 라는 물음을 던지죠.  

이상문학 전체에서 그 물음은 언제나 또 다른 가면을 향해서 던져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도 있을 법하죠 

그럼, 식민지 시기에 이상은 너무 행복했던 거 아냐? 라구요. 

뭐쫌 우울해야 하는 것 아냐? 라구요.. 

 

ㅎ 그건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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